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29)
629화. 웅크란 대사원 (3)
성유물을 휘두르던 비슈누의 손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진혁이 하는 말은 꽤나 그럴듯한 가설이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언노운이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난 게 이상하긴 했어. 단순히 강진혁 쪽에서 최초의 연꽃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라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됐으니.’
진혁이 던진 잔잔한 조약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설마 했던 작은 의심이 확신이 되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우리끼리 계속 싸워야 할 것 같아?”
“……확실히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당사자로부터 직접.”
진실을 알기 위한 방법은 하나 뿐이다.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잘 생각했어. 일단 그 녀석부터 어떻게 하고 그 다음에 담판을 짓든 춤을 추든 하자고.”
“따라오거라.”
헛웃음을 지은 비슈누가 즉시 등을 돌렸다.
“뭐, 뭐야.”
“이렇게 쉽게 된다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켜보던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은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천세의 주신 중 하나가 진혁의 말 몇 마디에 순순히 전투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며 길잡이 역할까지 자청하고 있었다.
“훗! 사실 짐의 공격을 한 번 받은 다음 안 될 것 같으니 저러는 거다. 워낙에 짐의 마력이 강력해야 말이지.”
유일하게 엘리스만이 혼잣말을 계속 늘어놨지만, 주변에서 호흥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비슈누가 ‘현상유지’ – 만물의 길을 개방합니다!]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지면이 무너지며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언노운이 간 것 보다 더 빠른 지름길.
이곳이라면 늦게 출발한 단점을 메우고도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만 만약에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그럼, 신의 천벌이라도 받도록 할게. 반대로 내가 진신을 말하는 거였다면?”
“……그랬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셈이었으니 언노운을 넘겨주고 나머지 주신들에게 전쟁을 끝낼 것을 제안하겠다.”
휴전협정.
더 이상 무의미한 싸움을 끝내고 더 중요한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진데….
비슈누의 입에서 뜻 밖에 보상이 한 가지 더 튀어나왔다.
“또한 45층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권한과 최초의 연꽃을 제외한 성유물 중 하나를 주도록 하지.”
“……진심이야?”
“신은 인간과 달리 한 입으로 두말을 하지 않는다. 균형과 조화를 중요하시하는 나는 더욱더.”
이건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건이다.
40층대 중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천세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그 아래 층계 역시 순순히 길을 터줄 테고.
꼭 필요한 미궁이나 유적만 공략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천세가 보유하고 있는 성유물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터져나오는 함성을 참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진혁이 씰룩이는 입 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이래서 사람은 관찰력이 좋아야 하고 입담도 좋아야 하는 법이다.
“알겠어. 계약하는 걸로 하지.”
탓.
콰앙!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질주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수많은 함정들과 미로들을 통과한 끝에 일행은 마침내 ‘최초의 연꽃’이 잠들어 있는 대사원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늦은건가.’
진혁이 붉은 빛이 스며나오고 있는 한 쪽을 바라봤다.
마지막 관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리고.
쿠쿠쿠쿠쿠!
안쪽에선 무시무시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용솟음 치고 있는 중이었다.
“멈춰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비슈누가 고함을 치며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꽃과 신비한 자연이 가득해야 할 원래의 내부는 간데 없고. 그 곳엔 고통에 가득 찬 붉은 원념들이 큰 원을 그리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중이었다.
천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마경.
지옥을 연상케하는 장소의 한 가운데 언노운이 서 있었다.
‘최초의 연꽃’을 움켜쥔 채.
“대답해라!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비슈누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인해 두 눈에는 핏발까지 시뻘겋게 돋아나 있었다.
“흐음. 결국 저보다 그 인간의 말을 듣기로 한 거군요.”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분명 네놈은 연꽃을 그 누구도 건들이지 못하게 봉인해준다고 했을 터. 헌데 어째서 꽃에 있는 마력을 흡수하고 있는 거지?”
“그래야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언노운이 태연하게 비슈누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그리고 그 모습이 비뉴수의 인내심을 짓밟아버렸다.
[성유물 ‘샤랑가’가 소환됩니다!]만물의 물질을 관통할 수 있는 비슈누의 성유물.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호흡 한 번 들이마실 사이에 언노운의 미간에 닿아 있었다.
콰아아아앙!
마치 핵미사일이 떨어진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하지만 일격필살의 공격에도 언노운의 마스크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후후. 덜 떨어진 연꽃이라 반신반의 했는데, 그래도 45층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게 마냥 작지만은 않군요. 이거라면 그럭저럭 합격입니다.”
완전히 시든 꽃잎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동시에 언노운의 몸에서 주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이 뿜어졌다.
쿠쿠쿠쿠쿠쿠!
전신의 솜털이 모조리 오소소 일어난다.
압도적인 힘은 슈브니구라스와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부족했던 힘이 채워지면서 모든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쉽게 가는 법이 없네.’
진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게임은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전개로.
“그동안 제가 전투를 피하기만 했어서 실망하셨을 텐데, 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노운이 ‘음영극살’을 발동합니다!]언노운의 그림자가 스르륵 사라졌다.
뒤!
희미한 마력의 잔향을 파악한 즉시 진혁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카아앙!
불꽃이 피어오르며 똑같은 형태의 단검이 맞부딪쳤다.
“반응이 좋군요.”
“가짜 녀석한테 그런 말 들어봤자 기분이 좋진 않아.”
“까칠하시기는. 그래도 동류끼리의 싸움은 처음이실 텐데,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시죠. 즐기는 거야 말로 당신의 주특기 아니었습니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놈은 정말 오랜만이네. 어디 몇 분 뒤에도 같은 말이 나올 수 있을지 볼까?”
[진혁이 ‘음영극살’을 발동합니다!]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쳐졌다.
꿀렁이는 검은 연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주변에서 보기엔 검은 잔상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혁이 서서히 언노운의 패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페이크를 3번 준 다음에 오른쪽 뒤를 잡으려는 버릇이 있네.’
카카카카캉!
1초에 열 번이 넘게 합을 주고 받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상대의 습성을 파악했다.
한 번.
카앙!
다시 한 번.
카캉! 마지막으로 목젖을 노린 공격마저 쳐내면…!
츳!
진혁의 뒤쪽에 있던 그림자가 슬며시 일어섰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가장 익숙하고 자신있어 하는 방식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다.
진혁이 눈치 못챈 척 하며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콰앙!
단검이 진혁의 척수를 파고들었다.
아니, 파고들었다고 생각했다.
‘1초 무적’을 완벽한 순간에 사용했다는 걸 알기 전까진.
“알고 있었다고?”
“물론이지. 1:1 에서는 상대 전투 패턴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능력이야 내 걸 그대로 쓰니 분명 강하긴 한데…. 실전 경험이 살짝 부족한가 보네.”
터무니없는 마력과 각종 능력들에 비해 노련한 맛이 떨어진다.
철저하게 상대를 고립시킨다음 쥐어짜는 전투가 뭔지 보여줄 차례다.
[고유능력 ‘하얀 맹수’가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고속검’이 발동되니다!]단검이 투명하게 흐려지는 것과 동시에 검의 속도가 2단계 더 올라갔다.
카카카카카캉!
미친 듯이 몰아붙인다.
언노운 역시 반 박자 늦게 같은 능력을 발동했으나 능력을 다루는 센스와 숙련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균형.
푸욱!
진혁이 검이 언노운의 심장을 꿰뚫었다.
“큭!”
1초 무적을 통해 한 번 목숨을 건진 언노운이 대번에 거리를 벌렸다.
“하아… 하아….”
언노운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텼지만, 요행이 두 번 세 번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별의 가호를 통한 부활 뿐인가. 그마저도 즉사를 안 해야겠지만.”
진혁이 느긋하게 벌걸음을 옮겼다.
‘약간 이상하긴 해.’
극악의 난적이 될 거라 생각했던 언노운은 예상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다. 최초의 연꽃을 흡수했음에도 말이다.
아직 이쪽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들이 잔뜩 남아 있는 상태.
‘내가 지나치게 강해진 건가.’
아니면….
일부러 당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