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마인 협회 (1)
시련의 탑의 밤은 조금 특별하다.
낮에는 따뜻했던 기온도 급속도로 떨어졌고 몬스터들의 흉폭성과 공격력도 훌쩍 뛰어올랐다.
그렇기에, 밤이 되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사냥을 멈추고 안전한 곳을 찾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천수관음을 처리한 지 1시간 정도 흘렀을 무렵.
진혁은 대나무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는 사당 앞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잠을 자거나 방송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공간. [시련의 탑].
미친 듯이 사냥을 하고 난 뒤엔 꼭 밤하늘이 보이는 곳을 찾았다.
휴식을 취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다.
특히나 이곳에 있으면 쏟아지는 유성우를 볼 수 있었으니.
‘죽순과 탑에서만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묘미지.’
진혁은 불을 피운 뒤 대나무로 만든 통에 죽순과 쌀, 암염(巖鹽)을 넣고 끓였다. 거기에 계곡에서 잡을 수 있는 철갑 슈림프도 3마리 추가했다.
곧바로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꼬르륵.
식욕이 동한다.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넣자. 부드럽고 따뜻한 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중간 중간 살집이 통통하게 오른 새우의 육질이 환상적인 식감을 자아냈다.
크으, 바로 이 맛이지.
‘다음엔 요리 관련 스킬들도 좀 복사해 둬야겠어.’
탑을 오르다 보면, 온갖 종류의 산해진미들이 넘쳐났다.
육즙이 가득 차 있다 못해 넘쳐흘러서 올리브유도 필요 없는 사막 송아지 고기.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무지개 크랩.
천 가지 향을 간직했다는 사우전드 애플 등.
탑 외부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재료들이.
그야말로 천해의 식재료를 간직한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진혁이 모처럼의 만찬을 즐기고 있을 바로 그때.
“이야. 좋은 냄새네.”
“꽤나 맛있어 보이는 식사로군.”
대나무 숲 사이로 남녀 한 쌍이 나타났다.
고혹적인 서양 미녀와 탄탄한 체구를 갖고 있는 동양 남성.
멜레나와 리챠오였다.
“아!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야. 그저 불빛이 보여서 한번 와 본 거니까.”
“잠시 밤이슬만 피하면 그걸로 족하다.”
멜레나와 리챠오가 태연하게 모닥불로 다가왔다.
뭐야, 이 녀석들 설마…….
마인 협회가 아니라 평범한 플레이어를 연기할 생각인 건가?
진심으로?
‘어이가 없네.’
이쯤 되면 기가 차서 할 말도 없다.
상상을 초월하도록 멍청한 놈들이든가. 아니면…….
정체가 들통 나도 이길 수 있는 수단이 있든가.
둘 중 하나겠지.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긴긴 밤을 따분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추위를 피하게 해 주는 것쯤은 가능하니, 어서 앉으시죠.”
진혁이 모닥불 한쪽을 가리켰다.
“고마워. 멜레나라고 해.”
“리챠오라고 한다. 그럼, 몇 시간만 실례하도록 하지.”
멜레나와 리챠오가 한 자리씩 차지했다.
적어도 밤이슬을 피하고 싶다는 말만큼은 거짓말이 아닌 듯싶었다.
서둘러 반쯤 언 팔과 다리를 녹이는 걸 보면 말이다.
“많이 고생했나 보군요.”
“말도 마. 가면 쓴 오빠가 몰라서 그렇지, 나무 위에서 하루 종일 벌벌 떨었다니까?”
그래, 당연히 힘들었겠지.
쥐새끼처럼 이쪽을 염탐하느라고 얼마나 두 눈이 빠져라 고생했겠는가?
“음식을 꽤 넉넉하게 했는데, 어떻게. 좀 드시겠습니까?”
진혁이 대나무 그릇 하나를 건넸다.
먹음직스럽게 살이 오른 새우와 뽀얀 쌀이 돋보였다.
사양하지 말라고.
쫄쫄 굶느라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은 거 다 알고 있으니.
“…….”
멜레나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갈등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하지만, 음식을 향해 선뜻 손을 뻗진 않았다.
의심스러운 거다.
음식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를 테니까. 그러나 식욕에 대한 강한 본능 때문인지 그 짧은 찰나에 몇 번이나 동공이 움찔거렸다.
반면 리챠오는 단칼에 선을 그었다.
“우린 괜찮다. 미안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준 음식엔 손을 대지 말자는 주의라서 말이지. 특히나 그 대상이 얼굴을 가렸다면 더욱더.”
“가면이 신경 쓰이나 보군요?”
“당연한 거 아닌가?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가면 따위는 쓰지 않을 테니까.”
“음. 보시기에 정 불편하시다면, 벗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뭐?”
“……정말로?”
진혁이 던진 말에, 두 사람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어떻게든 정체를 알아내려고 했던 상대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겠다고 선언했으니,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물론, 그냥 벗으면 재미없으니 간단한 게임을 하죠.”
“게임이라면……?”
“서로 궁금한 게 있는 것 같으니 세 번씩 번갈아 질문을 주고받는 겁니다. 만약 그쪽이 제 질문에 모두 대답해 주시기만 한다면 게임이 끝나는 즉시 가면을 벗도록 하겠습니다.”
서로가 갖고 있는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게임.
리챠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차피 말의 진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거짓 정보를 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반면, 이쪽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상대는 방심하고 있을 터.
‘저 제안을 받아들여도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다.’
옆에 있던 멜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속삭였다.
“성유물이 발동되려면 아직 5분은 더 있어야 돼. 일부러 시간을 끌게 해 준다면 우리야 좋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재밌군. 시간 때우기로 나쁘지 않겠어.”
리챠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누비스의 심판’이 발동됩니다!]진혁의 주위로 투명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
***
……걸렸군.
진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두 사람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한 건 놈들이었으니까.
파츠츠츠!
멜레나라는 여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독특한 파장.
과거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면서 몇 번인가 느꼈던 마력이다.
‘칼리큘라의 동전이라…….’
로마시대의 폭군 칼리큘라의 모습을 새긴 동전.
어떤 카드를 준비했나 했는데, 그거였나.
확실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발동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완전히 발동되고 나면 지정한 대상의 경계심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효과를 갖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걸리는 육체적인 고문을 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는 모든 걸 순순히 자백하게 만드는 정신계열 성유물은 꽤나 쓸모 있는 카드였다.
‘아직 내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더욱 완벽하게 승리를 취하려고 하는군.’
작은 부상조차도 피하려고 하는 의도가 돋보였다.
훌륭하다.
훌륭하긴 한데.
발동 전에 그 존재가 알려진 이상, 칼리큘라의 동전은 성유물이 아닌 단순한 기념 주화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야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알려주마.’
진혁이 생긋 웃었다.
“선공권 정도는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질문하시죠.”
“이름이나 소속은 물어 봤자 대답하지 않을 테고…….”
“첫 번째 질문에 제 정체를 밝힌다면, 이 문답을 하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가면을 벗는 건 어디까지나 게임이 끝난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 이곳에 당신 외에 다른 동료들이 있는 건가?”
흐음.
다른 걸 물어볼 줄 알았는데.
꽤나 현실적인 질문이군.
상식적으로 보스 레이드에 혼자 왔다곤 생각하기 힘들 테니, 또 다른 동료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칼리큘라의 동전이 갖고 있는 범위는 10m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있을 변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곳엔 혼자 왔고, 나갈 때도 혼자일 겁니다.”
“……그렇군.”
“이번엔 제가 묻죠. 보아하니 그쪽도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은데, 어째서 가만히 지켜만 봤던 겁니까?”
“절 내부로 들어갈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워낙 악명 높은 곳이라 신중할 필요가 있었거든.”
신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이걸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얻었다.
남은 건 두 개.
바로 그때 리챠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
“탑을 오른다면 무언가 소망하는 게 있을 터. 권력인지 아니면 부인지, 그것도 아니면 명예인지. 그게 알고 싶다.”
호오.
리챠오의 말에,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를 죽이려고 온 건 줄 알았는데…….’
조건이 맞으면 회유할 생각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원하는 거야 있습니다만, 말한다고 해서 과연 그쪽에서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추위에 떨고 쫄쫄 굶은 상태.
리챠오와 멜리나는 종일 나무 위에 있던 터라 몰골까지 말이 아니었다.
“하긴, 지금 우리 꼴이 우스워 보이긴 하겠군.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걸로 두 번째…….
필요한 대답은 이제 단 하나뿐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동시에 공손했던 말투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라……. 그럼, ‘원탁’의 한 자리도 줄 수 있나?”
“지, 지금 뭐라고?”
“어떻게 원탁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두 사람이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마인 협회의 가장 높은 간부를 상징하는 원탁.
그 베일에 싸인 단어가 외부인의 입에서 흘러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들은 알고 있을까?
‘원탁’이란 표현이 사용된 유래와 이유에 대해 그 누구보다 먼저 파악한 고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는데, 그래서 줄 수 있어 없어?”
“당연히 줄 수 없다!”
리챠오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게 어떤 거라고 함부로 입에 담는 거야!”
멜레나는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상태였다.
역시나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사실, 준다고 해도 관심도 없어.”
마인 협회의 간부 자리 따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사양이다.
그리고 더 이상 어설픈 연기를 할 필요도 없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아누비스의 심판이 지금 막 발현됐으니까.
쿠쿠쿠쿠쿠!
지면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큭!”
리챠오가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심상치 않은 마력에,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때마침.
“5분 지났어!”
멜레나가 고함을 질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다 됐다.
칼리큘라의 동전만 사용할 수 있다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제압할 수 있었다.
정신계열을 방어하는 능력은 현재까지 그 어떤 플레이어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니, 성유물은 발동하지 않는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뭐라고?”
단검을 꺼내든 리챠오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 동전. 지금 당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거라고. 발동하는 시간을 5분 정도 더 늦춰 놨거든.”
“개소리하지 마라! 네놈이 무슨 수로……!”
“잠깐! 진짜야.”
옆에 있던 멜레나의 얼굴이 급소도로 어두워졌다.
틀림없다.
“아직 동전에 마력이 충분히 주입되지 않았어. 저 녀석이…… 저 녀석이 뭔가 수작을 부린 거야. 우리 마력을 억제하는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음식을 입에도 안 댔는데!”
유일한 가능성은 진혁이 건네줬던 요리뿐.
하지만, 먹지도 않은 음식으로 대체 어떻게 장난질을 했단 말인가?
“그거야 이 요리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발휘되니까.”
경계심 많은 놈들이, 남이 주는 음식을 덥석 받아먹을 리 없지.
그래서 조금 더 머리를 썼다.
입으로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 효과는 느리지만, 더욱 치밀한 방법을.
“죽순에 흐르는 수액이 철갑 슈림프와 반응하면 마력을 억제하는 독성 물질을 만들지. 물론, 이 풀을 씹을 경우엔 중독되지 않지만.”
진혁이 입안에 있던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슬쩍 보여 줬다.
“마, 말도…… 안 돼. 우리의 정체는 물론, 성유물의 효과와 그걸 파훼할 방법까지 전부 설계해 뒀다고?”
“시간을…… 벌고 있는 게 우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완벽하게 함정을 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분명 자신의 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진혁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와 동시에.
[아누비스가 대전자(對戰者)를 선택합니다!]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