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0)
630화. 7일간의 언약 (1)
종말을 고하는 최후의 전령 ‘쉐이드 리퍼’.
가장 최악의 아포칼립스라는 ‘언약’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로 시련의 탑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놈이기도 했다.
자체 전투력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이 녀석에겐 몇 가지 사기적인 특수 능력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과 비슷한 포지션의 전령들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열려진 틈 사이로 쇳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숫자는 넷.
전원이 다른 깃발을 든 채 전신을 쇠갑주로 무장하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다.
한 때 북유럽을 박살내고 위그드라실을 불태운 아포칼립스가 다시 한 번 현현했다.
철컹! 철컹!
“크르르….”
“킥킥!”
“이번에는 확실히 재밌겠군요.”
“전부 죽인다.”
투구 사이로 퍼지는 스산한 안광.
오롯이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네 명의 기사가 무기를 뽑았다.
게다가 언약이 발동됨에 따라 탑과 탑 밖에 있는 모든 장소들에 이변이 일어났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하고 많은 수의 게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슈누가 내 제안에 넘어올 것까지 계산했던 거였나.”
“일부러 당하는 척하다가 한 번에 판을 엎는다. 그게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거죠.”
그건 그렇지.
워낙에 이쪽이 즐겨 쓰던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같은 걸 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하고 보니 기분이 더럽네 이거.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비슈누와 천세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노운이 대놓고 최초의 연꽃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진다면 브라흐마와 시바를 비롯한 천세의 모든 이들이 적대할 테니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알겠습니다만 그것도 역시 살아서 여기서 나갔을 때에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언노운이 무얼 예상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쿠쿠쿠쿠쿠!
흔들리는 지축.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콸콸콸콸콸!
저 아래에서 시뻘건 용암들이 보였다.
그리고 벽면을 따라 엄청난 수의 검은 양과 염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잊고 있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최악의 아포칼립스가 재현되었다.
⁕ ⁕ ⁕
쿠쿠쿠쿵!
콰아앙!
이변을 감지한 건 내부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전투를 펼치고 있던 수많은 이들도 격동하는 세계를 느꼈다.
붉은 빛으로 얼룩진 ‘언약’ 메시지는 전 세계에 있는 플레이어들과 살아남은 인류를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젠장. 저게 대체 뭐야?”
“그리 아등바등 애썼는데. 다 끝인가.”
“하하.”
“가짜를 처리하지 못했어. 다 끝이야. 끝장이라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각종 길드의 랭커들이 멍하니 시련의 탑을 바라봤다.
탑에서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그 안에서 검은 염소와 양. 그리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촉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웃브레이크.
그것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다.
동시에 탑 내에서도 슈브니구라스의 사도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언약으로 인해 층계 이동 제한이 사라진 지금, 태고의 존재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서리칼날 부족이 있는 얼음호수에서도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왔다.
“……족장.”
“그래. 나도 보고 있다.”
카라칼이 호수 맞은 편을 바라봤다.
7층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형.
그러나 인지를 초월한 살기는 데카서스의 혈족들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부족원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
“족장은?”
“난 모두가 벗어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
모름지기 족장이라면 일족의 안위를 지키는 자.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포지션에 설 수 있는 자만이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 것이다.
카라칼이 거대한 창을 든 채 슈브니구라스의 사도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같은 시각.
정신병동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오오오!”
“그오오!”
“으아아악!”
“도, 도망쳐!”
조잡한 무기로 검은 양과 염소들을 막으려던 광신도들이 혼비백산한 채 도망쳤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 차.
5층의 네임드 몬스터인 삼각두를 쓴 거인들마저도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찢겨버렸다.
“진혁 님….”
뒤늦게 5층으로 복귀한 안드리아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언약의 발동으로 인해 전 층계가 위험에 빠진 이 상황. 누군가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맡고 있는 층계와 영역을 지키는 것뿐.
“전 신도들을 제 방으로 모이라고 하세요. 거기서 다 함께 적과 맞서겠습니다.”
[안드리아가 고유능력 ‘여우불 놀이’를 발동합니다!]구미호의 꼬리에 9개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
제국과 무림이 자리잡고 있는 24층.
한창 무림과 제국의 정기 회동이 열리고 있는 이 때, 낯선 이방인이 회의장에 찾아왔다.
“웬 놈이냐!?”
“…!?”
입구를 지키던 기사와 무사가 즉시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퍼퍼퍽!
두 명의 검이 채 검집에서 나오기도 전에 피분수가 뿜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조차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빠르고 간결한 일격이 소드 마스터와 절정에 오른 무사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무슨…?”
“헉!?”
회의장에 있던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나름 각 진형에서 선별해둔 실력자.
그 둘이 제대로 반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이 느낌은 설마.”
암황의 표정이 진중하게 굳어졌다.
경험해본 적 있는 기운이다.
심해와 같이 어둡고 불길하면서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안 드는. 오직 한 종족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죽음의 냄새.
저벅.
아름다운 무희의 모습을 한 존재가 피웅덩이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태고의 존재 중 한 명인 ‘툴차’였다.
지면 위로 붉은 발자국이 남겨졌다.
“이 녀석은 아니고… 저 녀석도 아니고….”
툴차가 회의장 안에 있는 이들을 한 명씩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어붙은 공기에 누구 하나 감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툴차가 내뿜는 살기는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툴차의 발걸음이 한 곳에서 멈췄다.
“흐응. 어머니를 그렇게 괴롭혔다는 게 네놈이냐?”
수려한 외모의 청년.
마교의 절대자이자 슈브니구라스를 상대했던 ‘천마’였다.
층계가 해방됨에 따라 툴차는 슈브니구라스의 복수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천마와 무림의 몰락은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도 큰 타격이 될 것이기에 우선 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과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그토록 당하고도 너희는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후후. 그때야 손발이 다 묶인 채 싸웠던 거고. 지금은 언약이 끝나기 전까진 내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지.”
언약은 7일 밤낮 동안 이어진다.
다시 말해 인류와 거주자들은 7일이란 시간 동안 버텨야지만, 이 지옥 같은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네놈에게는 더 이상 그 잘난 놈의 왕관도 없지 않느냐?”
툴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패도의 왕관.
슈브니구라스를 상대로 팽팽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그 빌어먹을 왕관 때문이 틀림없었다.
그게 없어진 이상 천마는 인간치고는 조금 쓸 만한 힘을 지닌 자에 불과하리라.
쿠쿠쿠쿠쿠쿵!
툴차가 본신의 힘을 드러내자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이 이 일대를 짓눌렀다.
그걸 신호로 제국의 평원을 따라 다수의 검은 양들과 염소들이 길고 긴 포효성을 내뱉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음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쿨럭. 커억….”
“으으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된다.
귀족과 왕족들은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실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기사와 무림인 역시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손쉬운 사냥이 되겠어.’
리스크 없는 일방적인 살육.
그것이 툴차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 거라 예상했던 천마의 눈에선 일말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본교의 전 교인은 들어라.”
천마가 입을 열었다.
거기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절대자로서 해야 할 말을 할 뿐.
“본좌를 따라라.”
짧은 말.
허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천마가 ‘천마신공(天魔神功)’을 발동합니다!]“오오오오!”
“쳐라!”
엄청난 함성과 함께. 공포에 짓눌려 있던 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암황을 비롯해 마교의 초절정급 고수들이 검강을 흩뿌렸다.
콰앙!
제국 쪽에서도 한 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제국의 제일검. 그랜드 소드마스터 에브라함이 눈부신 오러 블레이드를 뽑았다.
“기사단을 소집해라. 제국을 수호한다.”
각 진형의 최강자들이 태고의 존재에게 맞서기 위해 움직였다.
⁕ ⁕ ⁕
“혼란스럽겠죠. 어디를 먼저 지켜야 할지. 아니면 절 죽이는 걸 우선해야 할지. 선택지가 너무나 많을 테니까요.”
언노운이 각 층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중계했다.
각 층계에서 소중하게 인연을 쌓아왔던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그 외에도 서울에서도 수많은 몬스터로 인해 각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
‘……저쪽은 어쩔 수 없어.’
이제 와서 다른 층계를 도우러 갈 여력은 없다.
지금까지 사선을 넘어온 경험과 각자의 실력이 빛을 발하길 기도하며 믿고 맡기는 수밖에.
진혁이 무겁게 결단을 내렸다.
최우선 사항은 연합과 천세의 전쟁을 멈추고 모든 힘을 결집시키는 것.
각자의 전력을 깎아먹는 행동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엘리스.”
진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 테니, 비슈누와 함께 천세가 있는 곳으로 가줘. 비슈누가 나머지 주신들을 설득해줘야 반격할 기회를 만들 수 있어.”
“계약자는?”
“난 저 녀석이랑 한 판 붙어야지.”
언노운을 쓰러뜨리고 7일간의 언약을 막는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만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알겠어. 무사히 돌아와야 해? 짐과 계약한 이상 먼저 죽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니까.”
“걱정 마.”
진혁이 한결같은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런 든든한 미소를 보며 엘리스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흐음. 둘로 쪼개서 움직이려나 본데, 그걸 제가 가만히 지켜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언노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랏빛 촉수들과 슈브니구라스의 사도들이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쉐이드 리퍼와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역시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고.
“지켜봐야 할 거야.”
진혁이 양 손에 단검을 쥐었다.
“나 하나 상대하기도 쉽지 않을 거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패도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 [‘신속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우우우웅!
아공간에서 두 개의 왕관이 동시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