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3)
633화. 새로운 무기 (1)
대장장이 인생 88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살아오는 동안 온갖 일들이 다 있었다.
힘든 시련도. 포기하고 싶은 역경도. 눈동자가 흔들릴 것만 같은 유혹도 있었지.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대장장이로서의 명예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안 돼.”
그렇기에 말해야만 한다.
이건 대장장이가 아니라 신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아니, 신을 가져다 놔도 가운데 손가락을 살포시 들어올릴 일이라고.
하지만.
“돼.”
상대에게 그런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아니, 내가 안 된다는데 되긴 뭐가 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내가 아니라 내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하다고!”
오룬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목에 핏대를 세웠다.
바로 그때.
콰앙!
단검이 책상 한 가운데 꽂혔다.
파치칙!
칼날을 따라 푸른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우면서 살벌한 살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꿀꺽.
오룬이 마른 침을 삼켰다.
마주보고 있는 진혁의 눈빛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내 말은… 꼭 불가능하다기 보다는 굳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억지로 시키면 전체적인 사기진작에 안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었어.”
“호오. 그건 참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그, 그렇지?”
“예. 근데 제 칼은 일리가 없다고 하네요.”
강화에 성공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선택지는 두 개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오룬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살다살다 성유물을 쪼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줄이야. 허허허. 알겠네. 빌어먹을.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인데 뭔들 못하겠나?”
“하하하.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영감님이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아니, 대의를 위한 결정을 하실 거라 믿었습니다.”
“대신, 준비해줘야 할 게 몇 가지 있네. 이 만한 일을 하려면 재료와 노동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
“뭐….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재료야 삥 뜯을 만한 거대 세력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노동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껏 부려먹어도 된다는 뜻인가?”
“그럼요.”
“크하하하! 모처럼 장인 정신이 불타오르는구만. 그래. 아주 뼛속까지 갈아 넣어서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주겠네.”
오룬이 광소를 터뜨렸다.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빵빵한 지원이 아낌없이 뒷받침된다는 말에 손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진혁의 입 꼬리에도 비릿한 미소가 멤돌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태고의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한 밑준비를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하기 시작했다.
* * *
우물우물.
냠냠.
엘리스가 작은 입을 연신 오물거렸다.
한참을 전력을 다해 싸워왔던 탓에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과 마력. 그걸 회복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 중이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화려하게 채워진 산해진미에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왜, 안 먹어? 다들 식기 전에 들어.”
요리사 모자를 쓴 진혁이 거대한 후라이팬을 불 위에 놓았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1.5m에 이르는 랍스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좋은 향기가 코끝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하지만, 엘리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쉽사리 음식에 손을 대지 못했다.
‘뭐지?’
‘이 자식이 이렇게 할 리가 없을 텐데? 아무 이유도 없이는 절대로.’
‘수상해요. 너무나.’
‘주인을 믿던 운디네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우리도 그 꼴이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선의를 의심해야 해.’
‘그럼그럼.’
‘달그락달그락.’
‘모기이!’
‘미요!’
반복된 학습이 무섭다고.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진혁의 의도를 절대 순순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참아야 한다.
그걸 알고 있는데.
음식의 향이 너무나 맛있게 느껴졌다.
“다들 고생해서 특별히 솜씨 좀 발휘해 보는데, 식욕이 별로 없나 보네. 또 다시 싸우게 되면 그땐 말린 건빵이랑 육포 같은 것 밖에 못 먹을 걸? 아니, 그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먹을 시간 자체가 없을 지도 몰라.”
악마의 달콤한 유혹이 이어졌다.
바로 그때.
“이게 무슨 냄새지…?”
“그러게요.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어요.”
“분명 이쪽 어디인데….”
수풀 사이로 다수의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토르와 헤라클레스. 그리고 베리엘과 아누비스 등 각 신화의 주신들이었다.
이미 온갖 종류의 미식을 다 경험해 본 주신들이었지만, 진혁이 만든 음식은 자신들의 인식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오! 인간! 그대 요리도 할 줄 아는 건가?”
“이런 재주가 있었을 줄이야.”
“양도 푸짐하구만!”
신격들이 반색을 했다.
진혁이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자자, 많이들 있으니 실컷들 드십쇼.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혹시, 맷돼지 통구이도 가능한가?”
“맷돼지 통구이 1인분. 주문 받았습니다.”
진혁이 아공간에서 시련의 탑 13층 ‘아스란 초원’에서 공수한 아이언 보어를 꺼냈다.
이미 적절하게 손질을 끝마쳐둔 상태였기에, 조미료를 뿌리고 적절하게 굽기만 하면 된다.
[이세계 식당 – ‘황금 비율’이 발동됩니다!] [각 대상에 맞는 최적의 레시피는 음식을 먹는 자로 하여금 최고의 만족을 제공합니다.]완벽한 재료와 레시피 그리고 요리사의 실력까지.
3박자가 모두 갖춰졌다.
“난 해산물이 좋겠어.”
“사막에 어울리는 요리로 부탁하마.”
“이 몸에게 어울리는 해골 잔에 피처럼 붉은 와인도.”
주신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음식을 한 입 가득 베어문 신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해 보였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니.”
“살아 있길 잘했어.”
극찬과 감탄사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는 접시들.
심지어 금욕의 상징이라 하는 가브리엘마저 입가에 그레비 소스를 잔뜩 묻힌 채 스테이크와 감자퓌레를 먹기에 바빴다.
목에 차고 있던 십자가는 기름기로 번들거린 지 오래였다.
“큭!”
“다… 없어지고 있어요.”
“에라, 난 모르겠다!”
“나도!”
결국 참다 못한 나머지 멤버들도 유혹에 넘어갔다.
이 뒤에 무슨 일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놓쳤다간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런 모습을 진혁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가 과자를 집어먹는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모두가 한계까지 음식을 집어넣은 뒤에야 시끌벅적했던 연회가 끝났다.
“너무 잘 먹었어요.”
“하아, 행복해.”
“훌륭한 요리사 덕분에 아주 기분 좋은 한 끼 였다.”
풍선처럼 굴러다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외형. 적어도 일주일 간은 풀떼기만 먹어도 만족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하하. 다들 잘 드셨습니까? 그럼….”
진혁이 양손을 부비적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손에 있는 하얀 종이를 모두의 앞에 보였다.
흔히 빌지라 불리는….
……’계산서’다.
“음식 값은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현금으로 하시겠습니까?”
“음식 값?”
토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요. 귀한 요리에는 그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한 법. 고과에 확실한 여러분이라면 그 누구보다 노력의 가치를 잘 이해해주시라 믿습니다.”
“크흠! 당연한 말이긴 하군. 이건 시원하게 우리가 계산하지.”
“어허! 한 번 망해버린 북유럽이 뭔 돈이 있다고 돈을 쓰나? 우리야 돈이 넘쳐나니 피라미드에 있는 황금 몇 개로 계산하겠네.”
“호호. 이집트야 말로 죄다 도굴을 당해 재정난이라던데 이건 저희 에덴에게 맡기시지요.”
“신도들에게 삥뜯은 돈으로 계산이라… 쯧쯧. 고귀한 마왕으로서 너희에게 얻어먹을 생각은 없다.”
“뭐, 뭐예요! 이 불경한 마족이 어디서 감히 신성 모독을…!”
여러 신화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금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
모두가 자신들이 계산하려는 걸 보니, 회식 끝나고 서로 지갑을 꺼내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뭐, 누가 내든 상관없지.
이쪽이야 제 값만 받으면 상관없다.진혁이 모두의 앞에 계산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S급 이상 성유물 50개 or 1조5,000억 코인]계산서를 본 신격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
호기롭게 나서던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미카엘은 연신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농담…이지?”
“제가 농담하는 것 보셨습니까? 아니면 설마….”
굽신거리던 진혁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이 사람들… 아니, 이 신들이 지금 다 먹어놓고 무전취식을 하겠다. 이런 말은 아니겠지요?”
“아니,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금액이어야지 수긍을 하지. 이건 순 강도가 아닌가?”
“그럼 먹기 전에 가격표를 보고 먹던가요.”
진혁이 테이블에 있는 식탁보를 가리켰다.
사슴이 뛰어놀고 있는 자수가 새겨진 식탁보의 일부분. 정확히는 사슴의 눈망울이 있는 부분에 아주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저건 보기 힘들었습니다….”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도 두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집중해서야 간신히 읽을 수 있을 만한 크기다.
내놔.
진혁이 모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면 설마, 탑의 위대하신 분들께서 숲에서 아무거나 먹는 오크 나부랭이처럼 명예도 긍지도 없는 더럽고 비열하고 벌레같은 양심을 갖고 계신 건 아니라 믿습니다.”
이건 졸지에 위대한 신격에서 탑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로 강등되게 생겼다. 무엇보다 격을 중시하는 이들에겐 참을 수 없는 일이리라.
모두가 얼굴을 붉힌 채 전전긍긍하자, 진혁이 빠져나갈 수 있는 숨구멍을 트여줬다.
“아니면… 가벼운 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는 걸로 퉁쳐도 되고요.”
“뭐, 뭔가?”
“뭔지 모르지만, 저걸 낼 바엔 그걸로 하겠네.”
“우리 쪽도!”
울며겨자먹기로 신격들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련의 탑 역사상 최악의 만찬이라 알려진 식사가 끝났다.
⁕ ⁕ ⁕
한 시간 뒤.
45층에는 천세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장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규모다.
다양한 신화가 한 가지 일에 총동원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우우웅!
각양 각색의 불꽃과 마력이 용광로를 따라 흘러들었다.
[단검 ‘홍련’과 단검 ‘바너드’가 인드라의 ‘바즈라’와 융합을 시작합니다.]보라색 성유물을 제작하는 건 탑에서도 매우 극소수만이 가능한 일.
당연한 말이지만, 오룬에겐 그 만한 역량은 없었다.
대신.
“불은 내게 맡겨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줄 만한 든든한 지원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올림포스의 주신 중 하나이자 탑에서 최고의 대장장이 중 하나로 꼽히는 ‘헤파이토스’.
근육질의 체구와 수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망치질은 이미 신의 영역을 초월해 있었다.
“맡겨만 주십쇼.”
오룬이 뻘뻘 흐르는 땀을 훔쳤다.
최고의 어시가 함께 한다는 생각에 심장은 연신 두방망이질 쳤다.
따앙! 타앙! 타앙! 망치가 허공을 가르고. 뜨거운 화염이 차가운 금속을 뜨겁게 달궜다.
두 장인이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이제 머지 않아 새로운 무기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천세의 신격들이었다.
가네샤가 조용히 비슈누에게 말을 건넸다.
“비슈누 님.”
“듣고 있네.”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다곤 하나, 결국엔 저들은 우리의 적이 될 자들입니다.”
“언노운이란 적을 찾게 해준 자를 배신하자는 말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알려준 것 뿐. 절대로 선의로 한 행동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최상급 성유물을 굳이 쥐어줄 이유는 더더욱 없지 않겠습니까?”
“흐음. 하긴 그건 좀 성가실 수 있겠군.”
비슈누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무기가 만들어진 후 그걸 몰래 훔친 뒤 다른 쪽에 책임을 돌린다면, 성유물도 얻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헌데, 그럴 경우 의심의 화살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향하지 않을까?”
이미 동고동락한 연합의 구성원을 의심하는 것보다야. 조금전까지 싸우던 천세 쪽을 의심하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다.
“허면…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비슈누가 가네샤의 뒤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스윽….
그러자 그곳에서 완전히 예상 밖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