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5)
635화. 멸망을 예고하는 자 ‘그로스’ (1)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올랐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가장 최선의 수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툭….
진혁의 몸이 가볍게 성벽 아래로 향했다.
“계약자!?”
“뭐 하는 짓이냐?”
“주군!”
“진혁 씨!”
나머지 멤버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정문이야 헤라클레스와 토르를 비롯한 정예들이 잔뜩 포진해 있기에 비교적 덜 위험하다 치더라도.
성벽 아래는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켜버리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엘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진혁을 따라 아래로 몸을 던질 뻔했다.
하지만, 진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쪽 방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바로 그때.
달그락.
진혁의 품 안에서 오래되고 낡은 만년필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묻어 나오는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있어 별달리 대수로울 게 없는 잡동사니들이었다.
단 하나.
두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태고의 존재를 제외하고선.
그로스를 바라보던 진혁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모를 리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진실을 가리는 만년필’과 ‘낡고 부서진 보석상자’.
두 가지 모두 ‘우로보로스의 미로’로 가는 단서인데.
“저건….”
그로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그 영향으로 인해 일순간 모든 흑염소와 양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콰콰콰콰쾅!
전쟁에 있어서 1초라는 찰나는 상상 그 이상으로 커다란 파급력을 만든다.
전황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릴 만큼 말이다.
“크오오오!”
“메에에!”
수많은 마력탄과 마법들로 인해 태고의 진형 쪽에 수백 마리가 넘는 병력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공격을 멈추고… 딴짓을 하다니.”
“뭐가 됐든 기회다! 이참에 더욱 거세게 밀어붙여라. 화력을 총동원하란 말이다!”
모처럼 적의 병력을 깎아먹을 수 있는 호기.
장기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더 큰 피해를 만들어야만 한다.
“후웁!”
“간다!”
[토르가 Lv??? ‘천둥의 부름’을 발동합니다!] [헤라클레스가 고유성창 ‘네메시스’를 발동합니다!]무시무시한 마력이 방출되며 두 개의 섬광이 적진 한복판을 꿰뚫었다.
잘린 적들의 팔 다리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피 분수와 함께 대지가 붉게 물들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언노운이 그로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 그로스에게 분노가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로스는 언노운이 짜증을 내든, 병력이 얼마나 쓸려나가든 하등 관심이 없었다.
‘……벌써 저 정도를 모았다고? 게다가 망가진 부분에 관한 수리도 끝냈어.’
태고의 존재들에게 있어서 단 하나의 커다란 위협이 있다면 바로 그건 ‘네크로노미콘’이란 책이다.
자신들에 관한 세세한 정보들이 적혀 있을뿐더러,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되는 약점들과 그걸 찾을 수 있는 장소까지 기록된 금서 중의 금서.
설령 여기 있는 모든 병력이 전멸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저 단서만은 확보해야 한다.
욱씬!
강한 집념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그로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콰앙!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그로스의 몸이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저 인간을 잡아라!”
모든 검은 양과 염소들의 머릿속에 최우선 사항이 바뀌었다.
성을 함락시키고 거대 신화를 멸망시키는 것에서 진혁을 사로잡는 것으로 말이다.
쿵! 쿵! 쿵! 쿵!
순식간에 전 병력이 등을 보이며 진혁을 추격하려 했다.
“멍청한!”
언노운이 한 발 늦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돌격과 후퇴를 동시에 반복해버린 탓에 전 병력이 얽히고설켜 버린 것이다.
거대한 혼란.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으리라.
“쫓아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언노운이 뒤에 있는 자신의 친위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강한 힘을 지니고도 이렇게 어설픈 대응이라니.”
“지휘관의 자질 따윈 찾아볼 수 없군요.”
“뭐가 됐든 우리는 따를 수밖에.”
언약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통제하게 된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그리고 쉐이드 리퍼를 비롯한 아포칼립스의 화신들이 즉시 움직였다.
그렇게 게임의 국면이 완전히 전환되었다.
* * *
‘좋아. 예상대로야.’
진혁이 신법에 더욱 신중을 가했다.
최대한 속도를 살려 멀리 도망칠수록 아군의 전력에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베리엘이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완벽하게 완성될 수 있을 테니, 더욱더 이쪽이 분발해줘야만 한다.
문제는….
쿠쿠쿠쿠쿠…쿠콰콰콰콰콰!
지금 몰려오는 죽음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고 거대하다는 점이다.
‘그로스….’
진혁이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살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범우주적인 존재이며 니알라토텝과 마찬가지로 태고의 존재들 중 최상위에 위치한 괴물이다.
두 개의 왕관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승산이 희박한 난적.
이미 ‘바람의 영역’과 ‘풍신’까지 사용하며 모든 마력을 속도에 쏟아붓고 있지만, 그로스로부터 10분 이상 도망칠 수 있을 거란 상상이 들지 않았다.
최소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든가.
아니면….
진혁이 아공간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그림을 떠올렸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는 성유물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격필살의 카드였다.
‘아니….’
아무리 전성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네크로노미콘의 도움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그로스를 쓰러뜨릴 순 없다.
무엇보다 언노운이란 변수가 존재하는 이상, 대관식이란 최강의 패를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고유성창 ‘잔류월광’이 발동됩니다!]우우우웅!
여러 개의 빛이 쪼개지며 진혁이 열 명이 넘는 숫자로 나뉘어졌다.
질이 안 되면 양으로라도.
최소한 10명 이상의 분신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면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10배 이상의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최대한 버텨줘. 굳이 싸워줄 필요 없이 도망만 잘 다니면 돼.”
“항상 어려운 일에만 부르는군. 하긴, 그래야 나답긴 하지만.”
“술래잡기야 제 전공이지.”
“흐음. 첫째로 잡히면 쪽팔린 줄이나 알라고.”
각각의 분신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
분신까지 동원한 술래잡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콰콰콰쾅!
콰아앙!
저 멀리서 폭발음과 함께 분신들의 마력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로스에 의해 하나씩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벌써 일곱이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두 명 정도 당했었는데, 그로스가 추격을 거듭하면서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해야 효율적인지. 그 감을 익힌 게 틀림없었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빠를 줄이야.
새삼 그로스의 힘이 얼마나 규격 외인지 다시 한 번 실감이 갔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순 있을 것 같은데….’
잔류월광으로 만들어낸 분신들이 나름 멀리까지 유인해준 덕에 그로스가 낭비하는 시간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우우웅!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따라잡힌 게 아니다.
근처 1km 사이에서 그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이토록 흉흉한 마력이 느껴지는 건….
진혁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로스가 고유능력 ‘원 아이 문(One eye Moon)’을 발동합니다!]콰드득… 콰드드드득!
저 멀리 하늘로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달의 표면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며, 거대한 외눈이 나타났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거대하고 불길한 눈이다.
시선을 몇 초간이나 떼지 못했고. 그토록 가볍던 발걸음은 땅에 붙어버린 듯 무겁게 다가왔다.
그것도 잠시, 엄청난 충격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콰앙!
정신 붕괴.
어지간한 스킬에 내성이 있는 진혁마저도 견디기 힘든 위력이었다.
“크으윽….”
진혁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인지를 초월하는 태고의 권역이 펼쳐지면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간 그대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것이다.
“거기 있었구나.”
바로 옆에서 소년의 가녀리고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전신의 모든 세포들이 최고조의 경고음을 보냈다.
반사적으로 끌어올린 마력이 오른쪽 팔로 집중되었다.
콰아앙!
아찔한 충격과 함께 진혁의 몸이 숲을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나무들이 좌우로 꺾이며 태풍에 직격당한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호오. 제법 튼튼하구나.”
그로스가 반대편에서 일어서는 진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수많은 적들은 방금 전 일격으로 숨통을 끊어왔던 터.
그런데 제법 힘을 실은 공격에도 죽지 않은 진혁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주신이나 환수, 신수도 아닌 한낱 인간의 연약한 살과 뼈에 불과하지 않은가?
“툴차도 그렇고 태고의 존재란 것들은 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뒤통수를 때려대는 건지 모르겠네.”
진혁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래도 직접 나타나준 덕에 머리를 옥죄던 정신 공격이 한결 덜해졌다.
“그러고 보니. 넌 그 멍청한 무희랑도 싸웠다고 했던가?”
“내 앞에서 유치원 재롱잔치를 해대길래 꿀밤 몇 대 때려줬지.”
“제법이로군. 하지만….”
그로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으려 했다.
“설마, 그 녀석은 우리 중에 최약체다, 라든가 하는 3류 악당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
진혁의 말에 그로스의 이죽이던 입 꼬리가 일자로 꾹 다물어졌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니알라토텝 말로는 네놈과 말을 섞으면 머리가 아플 거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구나. 나도 시답잖은 대화나 나누려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다.”
그로스가 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크로노미콘에 관한 단서들을 내놔라.
아니면 죽이겠다.
뭐 이런 일상적인 협박을 하는 것이다.
물론.그런 협박 따위가 먹힐 진혁이 아니었다.
[고유성창 ‘페이즈2’가 발동됩니다!]순식간에 전신이 검은 흑염에 감싸였다.
거기에 ‘태초의 불꽃’과 ‘크로노 스피어’가 동시에 발동되며, 검붉게 물든 탄환이 그로스의 안면으로 향했다.
퍼어엉!
뜨거운 겁화가 그로스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주변의 바위가 그대로 증발해버릴 정도로 끔찍한 열기가 솟구쳤다.
그 틈을 타 진혁이 보법을 사용해 그로스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정신없이 몰아쳐야 해.’
쉴 틈 자체를 주지 않아야 조그마한 승산이라도 있다.
[고유성창 ‘플레이그’가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8개의 늪’이 발동됩니다!]맹독과 전염병을 머금은 끈적끈적한 화염이 뒤섞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서리혼령’의 창까지 꺼내든 진혁이 그로스의 일점을 노렸다.
산성 안개 속에서….
……번개처럼 뻗은 일창(一槍).
한 줄기 섬광이 대기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