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7)
637화. 멸망을 예고하는 자 ‘그로스’ (3)
언약이 시작된 지 24시간이 지난 시점.
탑의 안과 밖에서는 생존을 건 치열한 혈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안드리아가 있는 5층, 카라칼이 있는 7층. 그 외에도 수많은 탑의 층계들이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가 ‘제국과 무림’이 있는 곳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무림에서 전투를 치르던 툴차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이곳은 탑의 중층부.
상층부와 달리 장난을 칠 건덕지조차 없는 탑의 어중이떠중이 같은 층계다.
자신의 손짓 한 번에 층계 전체를 역병으로 뒤덮어버리고. 이곳에 사는 모든 거주자들은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다 죽어야 정상이란 소리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적들의 주력이 모여 있는 십만대산만큼은 쉽사리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골칫거리였던 천마에게 치명상을 입혀 전선에서 이탈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거머리 같은 놈들….’
툴차의 머릿속에 10시간 가까이 싸우던 천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마신공’이란 능력을 사용하며 종횡무진 날뛰던 난적.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마교의 정예들과 에브라함이라 불리는 제국의 그랜드 소드마스터를 비롯한 몇몇 버러지들 역시 귀찮기는 마찬가지였다.
개개인으로 보면 한낱 미물에 불과하지만, 천마를 위해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내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까다로웠던 시간은 모두 지나갔다.
천마가 내상을 입은 시점부터.
분명, 그럴진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루 안에 이곳을 전부 쓸어버리라고 분명히 말했거늘!”
툴차가 같이 온 부하들을 향해 역정을 냈다.
그곳엔 툴차와 마찬가지로 무희의 복장을 한 다수의 사역마들이 서 있었다.
“그게… 놈들이 알 수 없는 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이라고?”
“예.”
“너희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독을 고작 여기서 사용하고 있단 말이냐? 당문이라고 해봤자 내공을 약간 다룰 줄 아는 인간들에게나 효과가 있는 걸로 아는데.”
제국 쪽에서 사용하는 독이야 뻔한 수준이고. 그나마 무림의 사천당문이 독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영역에서의 이야기다.
50층에서 사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유명한 학정홍이나 절명소공산 같은 극독은 식후 마실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며,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사역마들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변명이었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미 산의 내부로 진입하려다 죽은 사역마들의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섰으니까.
“멍청한 것들. 이런 놈들에게 일을 맡긴 내가 잘못이지.”
툴차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고작 이런 놈들을 상대로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손을 써야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하지만 툴차는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진혁과의 전투에서 진혁이 자신에게 ‘역병의 꼬리 중 하나인 코르나’를 사용해 뒀음을.
그리고.
코르나는 툴차가 능력을 개방하거나 다양한 역병과 시너지를 낼수록 태고의 존재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자신들이 자신들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툴차를 비롯한 사역마들은 제국과 무림이 모종의 장난질을 치고 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 *
우우우웅!
밤하늘에 떠 있는 눈부신 별들.
12개의 별자리가 그로스를 둘러쌌다.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운 광경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둔 것처럼.
“흐음.”
그로스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전까지 짜증을 내며 상대를 죽이려던 마음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너무나 따분한 삶에 흥미라는 새로운 자극제가 찾아왔으니까.
“과연, 그 남자가 네놈에게 그리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를 알겠구나. 설마, 이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이나 날 놀라게 하는 인간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 남자.
또 다시 그 이름이 나왔다.
이제는 대충 정체가 예상이 가긴 하지만, 속단하긴 이르다.
상대에 대한 단서가 너무나 부족했으니까.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천천히 놀아주고 싶지만 이쪽도 시간 싸움이라서 말이야. 금방 끝내야겠어.”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내야할지 결정하는 건 나다.”
그로스가 대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쩌저저적!
공간이 갈라지며 조금 전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우우웅!
별빛이 갈라진 균열을 순식간에 메워버렸다.
원 아이 문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무슨…?”
그로스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진혁의 몸 주위에 빛나는 여러 마리의 뱀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을 뿜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진혁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콰아앙!
측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
일격에 실드를 박살낸 발뭉이 그대로 그로스의 허리를 강타했다.
“크아악!”
그로스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낯설다 못해 생소하기 짝이 없는 감각은 날카롭게 유지하던 이성의 끈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무수한 검격이 쏟아졌다.
질량이 느껴지지 않는 듯, 발뭉이 궤적에 궤적을 그리며 그로스의 전신을 두드렸다.
카카카카카…콰콰콰쾅!
[황도십이궁 ‘사수자리’가 깨어납니다!] [황도십이궁 ‘물고기 자리’가 개방됩니다!]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속으로 별들로 이루어진 화살들이 쏟아졌다.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쏘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데다 워낙에 그 숫자가 많았던 탓이다.
무시무시한 별자리의 향연이 펼쳐지며 그로스의 몸에 작은 자상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드디어 효과가 나오네.’
진혁이 손에 전해지는 감촉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과 넘쳐 흐르는 마력.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황도십이궁 ‘천칭자리’의 효과로 인해 태고의 존재들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간극이 최소화 됩니다!]‘파이널 제네시스’가 심상세계를 구현하는 거라면, ‘콜 오브 스타라이트’는 현존하는 별자리들 의 세계를 불러 오는 것.
다루기 극히 까다로운 신의 영역. 허나,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에겐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선 이질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물결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온갖 종류의 별자리들로부터 내려진 가호는 정신을 차릴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콰앙!
그로스는 무수히 몰아치는 공격 속에서도 위험한 공격과 덜 위험한 공격을 분간하며 호흡에 쉼표를 만들었다.
화살과 검격이 서서히 막히며 허공에 무수한 불꽃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공간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탓!
그로스가 재빨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
경악과 충격으로 일그러진 얼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어떻게 무적이라 자부하는 자신의 실드를 이토록 가볍게 뚫고 몸에 충격을 준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원 아이 문’의 소환을 막아버린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무효화…를 시킬 수 있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태고의 힘을?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게 가능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은 만물의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군림하고 짓밟고 유린하는 것만이 이 거대한 탑에 존재하는 유일한 법칙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동쪽으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당연시 해왔던 상식은.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다.
* * *
쉬잇…!
쉿쉿!
빛나는 외피로 전신을 감싼 뱀들이 진혁의 주위에서 혀를 낼름거렸다.
13번째 별자리가 개방되며 생겨난 신수들이다.
[별자리가 개방되어 있는 동안 모든 공격력과 속도 방어력이 200%만큼 상승합니다.] [마력 소모가 평상시에 200%만큼 증가된 상태입니다.] [절반 이상의 별자리들이 유지될 경우 적이 보유한 능력 중 하나를 봉인할 수 있습니다.] [‘뱀의 가호’로 인해 모든 공격에 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태고의 권능.
‘콜 오브 스타라이트’에는 여러 개의 사기적인 특성이 있었지만, 바로 저걸 봉인시킬 수 있는 게 가장 컸다.
네크로노미콘과 대관식의 대용으로 최적인 셈이다.
하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욱씬!
지나친 마력 소모량은 무수한 레벨업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났다.
매번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고유성창을 하나씩 사용하고 있는 기분이다.
‘서둘러야 해.’
승부를 빨리 내야 한다.
상대가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 유일한 호기.
조금이라도 그로스가 이 패턴에 익숙해진다면 두 번 다시 놈을 쓰러뜨릴 기회는 없을 것이다.
진혁이 전신의 세포들을 모조리 일깨웠다.
“후우….”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완벽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모든 것이 하나를 이룰 때까지.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이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음영극살’을 통한 초고속 이동.
스륵!
그로스의 등을 잡은 진혁이 그로스의 등을 노렸다.
콰아앙!
그로스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반응해 자신의 대검으로 방어했다.
점과 점에서 만난 검격이 거대한 파공성을 만들었다.
[‘스네이크 로드’ – 뱀들의 연회가 발동됩니다!]크고 작은 뱀들이 발뭉의 주위를 맴돌며 검의 능력치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스스슷…!
맹독을 지닌 블랙 맘바가 그로스의 발목을 노렸고. 육중한 덩치를 지닌 아나콘다는 그로스를 뼈째로 으스러뜨리기 위해 크게 원을 그렸다.
“잔재주를…!”
그로스가 쥐고 있던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달려들던 뱀들의 몸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태고의 권능이 이전처럼 마음대로 발동되진 않았지만, 어차피 그건 수많은 능력들 중 극히 일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은 빛마저 밝히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겠다.
“지금부터는 네놈을 엘더 갓들과 같은 급이라 생각하고 싸워주마.”
[그로스가 ‘샤가이의 뿌리’를 개방합니다!]그로스의 모체 행성인 ‘샤가이’. 그 심장부의 결정체를 모으고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이 대검이다.
키에에에!
검의 표면이 가로로 갈라지며 소름 끼치는 외눈이 나타났다.
동시에 바닥을 따라 보랏빛을 띄는 수많은 촉수들이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쾅!
13번째 별자리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그로스의 격. 요동치는 천지에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괴물은 괴물이네.’
이래서 언약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아직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규격 외 적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해야 해.’
다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다.
그 어떤 신격과 날고 기는 거주자와 플레이어들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아포칼립스 앞에선 티끌에 불과할 것이기에.
진혁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씩….
별자리들이 빛을 잃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결계들을 사용하고 또 응용하면서 숙련도를 올렸다곤 하지만, 전직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 모든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진혁이 발뭉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하늘을 비추던 수많은 별들의 빛이 급속도로 사라졌고. 대신 모든 별빛이 하나의 별자리로 모여들었다.
[12개의 별자리들이 물러갑니다.] [13성궁 뱀자리의 주인 ‘아스클레피오’의 힘이 개방됩니다!]별들이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변했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거대한 송곳니가 돋아났다.
[성명절기 ‘행성을 집어삼키는 뱀’이 소환됩니다!]이걸로 승부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