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39)
639화. 불확실한 미래 (1)
그로스의 죽음.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발생시켰다.
그야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 태고의 존재는 일명 불멸자. 다시 말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소멸되지 않는 괴물들로 추앙받았다.
얼마나 많은 병력을 쏟아붓든, 화려한 고유성창이나 강력한 고유능력을 발휘한들. 혹은 그 어떠한 참신하고 기발한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여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법칙처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한 인간에 의해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로스 님이 이리 허망하게 당했다는 겁니까?”
“믿을…수가…없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태고의 존재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툴차 때야 어떻게 운과 요행으로 이기긴 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일 뿐.
툴차를 죽인 건 아니었다.
심지어 그로스는 툴차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위격인 존재 아닌가?
그런 그로스가 단일 개체한테 목숨을 잃었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식이었다.
오히려 누군가 거짓 정보를 흘려 혼란을 줬다는 게 더 이치에 맞으리라.
“아니, 확실하게 확인된 정보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현장에 가서 그로스 님이 죽은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니알라토텝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역시 혹시나 해서 여러 차례 재확인을 했었지만, 정교하게 검사하면 할수록 그로스의 죽음만 더욱 확신하게 만들 뿐이었다.
니알라토텝의 말에 다시 한 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몇 분이나 적막이 흘렀을까?
영겁 같던 시간이 누군가에 의해 깨졌다.
“그래서. 승리를 자신하던 분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 처음엔 며칠 내로 싸움이 끝날 것처럼 말하더니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영 다르게 나오는데?”
요염하고 고혹적이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탁한 회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창백한 피부의 소녀.
바로 ‘슈브 니구라스’의 분신체였다.
워낙에 막대한 힘을 인간의 형태로 억눌러 놓긴 했지만, 타고난 무한의 마력을 억누른다는 건 바다를 사과 상자 안에 담아두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쿠쿠쿠쿠쿠!
무시무시한 살기가 솟구쳤다.
“…….”
“……흡.”
넘실거리는 보라색 기운과 촉수들로 인해 50층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
감히 숨소리 한 번 내뱉기도 쉽지 않은 지독한 위압감이다.
그러나 정작 그 분노의 화살이 향한 상대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나도 일이 이렇게 어렵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니까? 생각보다 그 고인물 녀석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수를 생각해내는 걸 어떡해?”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변명이 아니고… 그냥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게다가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라고. 안 그래 우리 무능한 가면 씨?”
“……면목 없습니다.”
남자의 질문에 언노운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수치와 분노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이 이상 남자를 실망시켰다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걸.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소중한 아이들이 죽는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전쟁에 있어서 희생은 필요한 법 아니겠어?”
“희…생? 지금 내 앞에서 희생이라고 말한 것이냐?”
슈브니구라스가 촉수들로 만들어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옆에 도열해 있는 거대한 검은 염소들과 양들이 일제히 남자를 노려봤다.
“아니 내 말은…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내 제약 한 가지가 풀릴 수 있었다. 뭐 이런 뜻이었어.”
촤르륵….
남자의 몸에 있는 5개의 황금 쇠사슬.
원래 7개였던 쇠사슬의 개수가 줄어 있었다.
“그걸 전부 풀면 당신이 완전히 탑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지. 게다가 네크로노미콘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다고 했고.”
“저번에 했던 말 그대로야. 이게 진실이라는 건 당신의 ‘눈’으로 이미 확인이 끝났을 테니 의심할 필요는 없을 거고.”
둘 사이의 거래.
남자에겐 재미와 그걸 마음껏 누리기 위한 자유를.
그리고 태고의 존재들에겐 자신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네크로노미콘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되어 있었다.
서로의 이해 관계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무엇보다… 당신들이 열심히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드디어 이걸 완성시켰어.”
남자가 품 안에서 붉은 피 한 방울 담긴 유리병과 검은 연기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한 눈에 봐도 평범한 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은 연기 역시 심상치 않긴 마찬가지였고.
“……호오.”
슈브니구라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엘더갓의 피와 13 종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알파들의 피를 혼합해 만든 가장 완전무결한 피.
그걸 배합하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다른 쪽에 있는 것은 일곱 개의 죄악들로부터 추출한 ‘타락’.
가장 순결한 자라도 이 기체를 흡입한다면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릴 수 있었다.
“확실히 이거라면 놈에게 가장 치명적인 한 방을 안겨줄 수 있겠구나.”
슈브니구라스가 유리병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안에 있는 루비빛깔의 아름다운 피와 검은 연기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테레사 드 로렌시아.
이 피로 인해 진조와 타락한 성녀를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이 갖춰졌다.
***
“술! 술을 더 따라라!”
“위대한 영웅의 승리에 영광을! 적에겐 치욕적인 죽음을!”
연합이 거주하는 성벽 안에선 한참 거대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진혁이 적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존재 중 하나를 쓰러뜨림에 따라 전황이 완전히 뒤바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탑 전체 층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던 언약 역시 그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주춤거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총 7일만 버티면 되는 연합 측의 입장에서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고생했다.”
“정말 훌륭했어.”
“크하하하! 난 그대가 갑자기 성 아래로 뛰어내리길래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했다.”
각 신화의 신격들이 진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와인과 맥주 등을 건넸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에 코가 삐뚫어질 때까지 마실 순 없을 테지만, 분위기를 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짐은 계약자를 믿고 있었느니라.”
엘리스가 진혁에게 총총 달려와 옆에 꼭 붙었다.
“진혁 씨는 어떻게 못 하는 게 없어요?”
반대 쪽에선 테레사가 달려와 팔짱을 끼었다.
파치칙! 파칙!
어째 묘하게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데.
양쪽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은 오히려 그로스와 정면에서 맞섰을 때보다 위협적인 것 같았다.
“일단 다들 좀 쉬고 있어. 먹을 것도 최대한 잘 먹어두고.”
“응? 계약자는?”
“진혁 씨는 어디 가게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시스템으로 받은 6개의 보상.
그 중에서 2개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진혁이 아쉬워하는 신격들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을 뒤로한 채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두근! 두근! 두근!
모처럼 심장이 기분좋게 고동쳤다.
어쩌면 시련의 탑에 들어와서 가장 커다란 결정 중 하나를 하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걸 골라야 하나.’
일단 레벨 업.
이건 35레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경험치를 제공해주는 조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려 105라는 스탯이 주어지는 사기적인 선택지이기에 시선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단기간에 대폭 성장이 가능하다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해본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란 놈은 절대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이다.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복사조건을 내걸기도 하고 자기 즐겁자고 온갖 이상한 짓거리를 다 시키는 소시오패스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 조건에도 역시 함정이 있을 거라는 의미다.
‘내가 조개 속에 감춰진 진주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걸 고르고 좋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왜인지 모르게 상대의 속내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진혁이었다.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곳엔 50층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이 놓여 있었다.
영롱한 빛을 내는 녹색 양피지. 보라색 글자와 황금 인장이 박혀 있는 출입권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마스터키인 셈이었다.
당장 그곳에 간다고 누굴 죽이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몇몇 특수 아이템들은 노려볼만 해.’
특히 최강의 경비를 자랑하는 아자토스의 궁전에서 그걸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이후의 판세를 이끌어가는데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네크로노미콘의 핵심 단서나 왕관의 위치 추적 역시 매력적이긴 했으나, 이건 시간과 노력만 더 투자한다면 굳이 시스템의 보상 없이도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네크로노미콘이야 이제 슬슬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고. 왕관이야 뭐, 남은 세력들을 적절하게 구슬르거나 족치면 그만이니까.’
이건 어렵지 않는 결정이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인데….
‘보라색 등급의 성유물’과 ‘랜덤 보물박스’.
진혁의 시선이 그곳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현존하는 보라색 등급의 성유물의 총 개수는 1,077개. 태고의 존재가 사용하는 거나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몇몇 종류를 빼면 사실상 대부분의 성유물이 선택지 안에 들어갔다.
이 중에서 가장 잘 맞는 걸 고른다면 35레벨업에 해당하는 스팩을 단숨에 채울 수도 있을 터.
진혁이 목록에 있는 수많은 성유물들을 훑으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진혁이 마지막 선택지를 확인했다.
SSS급 랜덤 보물박스.
최소 S급부터 최대 측정불가까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아이템들을 죄다 모아둔 박스다.
상세 설명에 따르면 이곳엔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할 수 없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사멸자의 총이나 서리혼령의 창 같은 신병이기들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후우….”
진혁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두 개의 선택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50층 자유 출입권을 선택하셨습니다.] [SSS급 랜덤 보물박스를 선택하셨습니다.]우열을 가리기 힘든 어려운 선택지였지만, 이게 최선이다.
아니, 이 선택지를 최선의 선택지로 만들고 말겠다.
진혁이 전의를 불태우며 곧바로 다음 단계를 위해 움직였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축배를 들고 있는 성 내부에 묘한 그림자들이 솟구쳤다.
“이쪽에 펼쳐진 결계와 방어마법들은 전부 파훼했습니다.”
“잘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언노운이 손톱자국이 남아 있는 가면을 바로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실패해선 안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