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마인 협회 (2)
우우우웅!
소리가 난 건 바로 뒤쪽에 있는 사당이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가로질렀다.
“뭐, 뭐야?”
“마력 반응이라고?”
리챠오와 멜레나가 동시에 외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주위에 마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셋뿐이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한 사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낡은 목조 건물로부터 새로운 기운이 일어났으니까.
[장승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대전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장승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대전자로 지정되었습니다!]쿠웅! 쿠웅! 쿠웅!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약 5m 크기의 나무 장승 둘이 나타났다.
[장승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적들을 바라봅니다.] [장승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시전자의 명령을 기다립니다.]과거, 한 마을을 수호하던 한 쌍의 고목.
방어에 최적화된 토지의 수호신(守護神)이다.
“이럴 수가…….”
리챠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차라리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 리치나 데스나이트였으면 이토록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어.”
멜리나 역시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소환수를 다루는 능력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체를 부리는 네크로맨서는 전체 직업의 3%에 불과했고.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는 전 세계에서 100명 안에 꼽을 정도로 희귀했다.
그리고 영물이나 환수를 다루는 기껏해야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랄까?
하지만.
그중에서 그 누구도.
신(神)을 부릴 수 있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이냐 네놈은!”
리챠오가 절망 섞인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
진혁이 다가오는 장승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동시에 부르는 건 꽤나 오랜만이군.’
수많은 야영 장소 중 바로 이곳을 고른 이유는 모두 아누비스의 심판을 통해 이 녀석들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천수관음을 상대하느라 바닥난 마력.
그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름대로 공들인 무대였는데, 두 사람이 장단에 제대로 놀아나 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진혁이 뒷걸음질 치는 리챠오와 멜레나에게 조언을 건넸다.
“추격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네놈이 아직 온전한 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맞아. 나는 못 하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추격전이라니.
지금 몸 상태론 절대로 무리다.
그러니…….
“그걸 대신 해 줄 대전자를 부른 게 아니겠어?”
진혁이 말을 내뱉은 바로 그 순간.
[장승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출입불허(出入不許)’를 발동합니다!]쿠쿠쿠쿠쿠!
대나무 숲을 따라 굵은 나무 넝쿨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일대를 완전히 봉쇄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엄청난 수의 넝쿨들이 요동쳤다.
“뚫어! 갇히면 안 된다!”
리챠오가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쳇!”
멜레나도 그 뒤를 따라나섰다.
퍼퍼퍼펑!
검은 탄환이 넝쿨로 만든 벽을 두드렸다.
넝쿨에 제법 큼지막한 상처가 생겼지만, 회복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타들어간 자리에 새살이 돋아났다.
녹색 물결이 점점 더 짙게 몰려왔다.
“이쪽으로……! 여기를 노려야 한다!”
“젠장,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난사한들 소용없다.
고작 2차 전직을 갓 끝마친 네크로맨서 따위가 장승들이 펼친 스킬을 파훼할 순 없었으니까.
아누비스의 심판이 충족된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힘내. 그렇지! 조금만 더!”
진혁이 고군분투하는 리챠오와 멜레나를 응원했다.
“거의 다 됐어! 파이팅! 할 수 있다. 가즈아!”
뿌우우우!
코인 거래소에서 구매한 응원 풍선이랑 부부젤라까지 사용한 건 덤이다.
“영!”
“차!”
“영!”
“차!”
진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도발이라기 보단 능욕에 가까운 행동.
“크아아아!”
결국 참다못한 리챠오가 칼을 휘두르기를 멈췄다.
그리고 살기가 뚝뚝 흐르는 칼끝을 돌렸다.
“왜, 넝쿨 자르기는 이제 그만하려고?”
“넝쿨 따윈 아무래도 좋다. 네놈을 죽이면 이 빌어먹을 것들도 사라질 테니.”
이야, 똑똑하네.
“맞는 말이야. 시전자를 죽이면 소환수도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거든.”
근데 말이다…….
“가능하겠어?”
천수관음과의 싸움을 지켜봤으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너희들로는 나한테 안 된다는 걸.
애초에 그게 무서워서 일반 플레이어인 것처럼 연기하고 칼리큘라의 동전까지 준비했던 거 아니었나?
“우습게보지 마라.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무는 법이니까.”
리챠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여차하면 동귀어진이라도 할 기세다.
하지만 진혁은 리챠오의 발밑에서 그려지는 마법진을 간파한 상태였다.
파츠츠츠…….
희미한 마력이 선을 따라 이어졌다.
네크로맨서들이 자주 쓰는 단거리 공간이동용 마법진이다.
이것 봐라?
싸울 것처럼 해 놓고 뒤로는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네?
경매장에서 만났던 알렉스도 그렇고, 그 스승이라는 캐드릭도 그렇고.
어째 이 녀석들은 궁지에 몰리면 하는 행동이 하나같이 똑같을까?
이쯤 되면 마인 협회 내에 자체적인 아카데미가 있고, 거기에서 도주 수업을 가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능하면 상하지 않게 생포하려 했는데, 아주 매를 버는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순순히 놓아 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렇게 공을 들였는데 다 잡은 먹잇감을 방생시킬 순 없지.
진혁이 뒤쪽에 있는 또 다른 장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압해.”
차갑게 내려진 명령.
[장승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일벌백계(一罰百戒)’를 발동합니다!]콰아아앙!
보이지 않는 주먹이 리챠오의 머리를 강타했다.
“으아아악!”
리챠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공격이 이어졌다.
콰앙!
콰아앙!
리챠오의 몸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엄청나게 빠른데도, 한 방 한 방이 뼈마디가 으스러질 정도로 묵직한 공격이다.
“쿠어억!”
한 번 더.
콰아앙!
“컥!”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전신에 뼈가 모조리 박살나기까지는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끄으으으…….”
피투성이가 된 리챠오가 바닥에 뒹굴었다.
처참한 몰골이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덜덜덜!
옆에 있던 멜레나의 몸 역시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수, 수호신……급을 대체 무슨 수로 이기란 거야.”
칼리큘라의 동전이 발동하기까진 앞으로 1분도 남지 않았지만, 감히 동전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상식을 벗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진혁에게 완전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진혁이 멜레나에게 다가갔다.
“대충 상황 정리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문명인답게 대화를 좀 해 볼까?”
‘탐식의 눈’을 통해 ‘마인드 리딩’을 할 수 있으면 간단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레벨이 더 높았다.
제일 쉬운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해 주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주는 수밖에.
[Lv4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진혁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지금부터 질문을 할 건데, 부디 성실하게 대답을 해 줬으면 좋겠어.”
“뭐…… 뭐가 궁금한 건데?”
멜레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들의 존재에 대해선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 동기까지는 모르겠거든. 탑을 오르지 못하면 인류는 멸망한다. 헌데 어째서 플레이어들을 방해하고 이상한 수작을 부리는 거냐?”
“그건…….”
멜레나가 멈칫했다.
바로 그때.
“말……하면 안 된다. 그 입 다물어라, 멜레나!”
리챠오가 쥐어짜는 듯한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호오.’
그 상처를 입고도 아직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니.
정신력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겠다.
“자신이 소속된 곳에 의리를 지키는 건 멋지긴 한데, 상황과 장소를 좀 가렸어야지.”
애초에 질문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두 명이나 있다.
한 명쯤 없어져도 심문을 진행하는 데 아무 문제는 없을 터.
진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절대……! 절대로 말해선 안 된다!”
리챠오가 멜레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것이.
콰아아앙!
리챠오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보이지 않은 힘이 리챠오를 완전히 짓이겨 버렸다.
두 사람뿐이긴 했으나, 일벌백계란 말에 어울리는 광경이다.
“히이이익! 주, 죽었어. 리, 리챠오……가 진짜로 죽었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 멜레나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얗게 질린 안색.
좋아.
채찍은 충분히 썼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다.
“내 목숨을 노리는 놈들은 살려 두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살려 줄 수도 있어.”
“사, 살려 준다고?”
멜레나가 토끼눈을 떴다.
“그래. 내부 정보는 꽤나 값진 정보니까. 쓸 만한 정보를 넘긴다면 처분을 보류해 주지.”
“…….”
잠깐의 침묵.
이어진 건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목소리였다.
“……알겠어. 하지만,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진혁이 또 다시 손가락을 튕기려 하자, 멜레나가 황급히 덧붙였다.
“아니, 진짜로. 진짜라고! 애초에 우리는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데다 나나 리챠오는 암살조라서 당장의 임무 외에는 추가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단 말이야.”
[‘탐식의 눈’이 대상의 말을 간파합니다.] [멜레나가 하는 말은 ‘진실’입니다.]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임무를 주는 사람은 누구지?”
“본명은 몰라. 하지만, 우리는 그를 ‘랜슬롯’이라고 불렀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아서왕의 전설.
그리고 그 원탁에 나오는 기사 중 하나가 랜슬롯이다.
역시나 예상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코드 네임까지 붙였다는 건. 2차 전직을 끝냈다는 뜻이겠지.
“계속해.”
“간부들이 그랬어. 탑에 있는 성물들을 전부 모을 수 있다면…… 인류는 멸망해도 우리는 죽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될 거라고.”
“성물이라고?”
멜레나의 말에,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꽤나 의미심장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나, 나도 그 이상은 진짜 몰라. 이게 아는 전부야.”
[‘탐식의 눈’이 대상의 말을 간파합니다.] [멜레나가 하는 말은 ‘진실’입니다.]간부가 아닌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인 건가.
“그래. 믿어 줄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뿐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었다.
원탁의 기사와 12개의 저주 받은 성물. 그리고 그걸 다 모았을 때의 보상까지.
단서와 단서가 취합한다.
과연, 놈들이 노리고 있는 게 어떤 건지 알겠다.
진혁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주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와 있었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친놈들이다.
마인들이 히든 퀘스트에 도전할 거라는 것까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설마 ‘마왕’을 불러오는 것과 관계가 있을 줄이야.
이거 일이 아주 재밌게 돌아간다.
어쩌면 이 변수들까지 포함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