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43)
643화. 무한의 수레바퀴 ‘샤일록’ (3)
우우웅!
눈부신 빛과 함께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30cm 크기의 조각상이 깨어났다.
[특수 성유물 ‘신의 충실한 심복’이 소환됩니다.]입수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신의 충실한 심복은 대상의 동의와 신의 승낙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거래입니다. 한 번 심복이 된 이는 신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을 가장 선두에서 수행하는 충실한 종이 될 것입니다.
이건….
진혁의 얼굴빛이 처음으로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성유물은 ‘염혼의 낙인’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 것. 다른 상황이었으면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인체실험에 동의한 지금이라면 이 성유물은 말도 안 되게 위험했다.
강압적으로 심복이 될 거라 맹세해야만 할 테고. 자연스레 샤일록의 노예가 되겠지.
그렇다고 심복이 될 것을 거부했다가는 3번째 내기를 포기하는 꼴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길 수가 없는 상황.
“후후후.”
샤일록이 이번에야말로 승리를 확신했다.
신의 충실한 심복을 파훼할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하긴 했으나, 적어도 진혁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없었기 때문이다.
“…….”
진혁이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완전히 외통수다.
‘노예냐 목숨이냐…를 선택해야 된다는 말인데….’
둘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고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래시계 속 알갱이들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목숨보다야 앞으로 저와 함께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샤일록이 선택을 종용했다.
[제한시간 0H : 1M : 33S]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분 30초 남짓.
그런데 바로 그때.
[많이 곤란한 상황인가 보군요.]진혁의 귓가에 낯익은 음성이 울려퍼졌다.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변수가 개입한 것이다.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진혁이 안도가 가득 담긴 인사말을 건넸다.
* * *
‘흐으음. 무얼 할까.’
전전긍긍하는 진혁을 보며 샤일록이 양 손을 부비적댔다.
새로 들어오게 될 에이스를 어떻게 활용할지. 지금 입은 손해를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근질거렸다.
‘최대한 굴리고 또 굴려야지. 적어도 10배 이상은 뽑아 내야 밤에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
샤일록의 행복한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머릿속에선 이미 앞으로 수년간의 계획이 차곡차곡 세워져 있는 상태였다.
우우웅!
녹색 빛깔의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게이트 사이로 나타난 것은 일생일대의 라이벌이자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원수. ‘릭 헤네시’였다.
멀끔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 중년의 신사가 샤일록과 진혁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러더니 진혁을 보호하듯 그 앞에 굳건히 섰다.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제 고객님에게 아주 불합리한 내기를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객님과 전속 계약을 맺은 입장으로서 아주 불쾌하기 짝이 없더군요.”
“공정한 내기를 했을 뿐이다. 게다가 네놈은 상단을 이끄는 마스터이기 전에 상급 관리자가 되었을 터. 이런 식으로 개입할 순 없을 텐데?“
샤일록이 가장 아픈 부분을 꼬집었다.
물론.
“공정성에 문제가 생겼으니 정당히 개입했을 뿐입니다.”
능청을 잔뜩 떨고 있는 릭은 비난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개소리를 아주 예쁘게도 포장해놨군. 공정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다 이긴 게임에 난입해놓고 뻔뻔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기준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 법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뒤에 말은 동의하기 힘들군요.”
“내가 이겼다는 말 말인가?”
“그렇습니다.”
릭이 가볍게 지팡이를 내리쳤다.
탁탁!
지팡이가 지면에 닿자 반투명한 액체가 솟구쳤다.
[특수 성유물 ‘신의 물방울’이 발동됩니다!]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부정한 계약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단, 파훼하려는 계약이 본 성유물과 같은 등급의 계약일 경우 예기치 못한 파급력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단 세 개. 신의 충실한 심복을 파훼하기 위한 세 가지 가능성 중 하나가 나왔다.
맑은 물방울들이 요동치며 석상의 주위를 감쌌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니, 제정신이냐!”
샤일록이 흙빛이 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두 성유물의 특성상 서로가 서로를 집어삼킬 터.
엄청난 고가의 성유물들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버릴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자칫 잘못하다간 단순히 이 두 개의 성유물만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쿠쿠쿠쿠쿠!
역류하는 마력의 파장이 저장해둔 나머지 보물들에게까지 뻗어나갔기 때문이다.
카카가가각!
콰드득! 우두둑!
화려한 아이템들의 표면에 미세하게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한 명이 멈추지 않는다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잃게 될 것이다.
둘 중에 하나가 파산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종의 치킨 게임.
잃을 게 많은 두 거상의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릭은 눈썹 하나 꿈뻑하지 않았다.
“제 고객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확신에 가득 찬 말투.동시에 릭은 묻고 있었다.
샤일록 또한 자신과 같은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허세 부리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저 인간 한 명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포기할 거라는 말을 믿으란 거냐?”
“그게 궁금하시다면….”
[S등급 ‘헤츨링의 발톱’이 파괴됩니다!]“한 번 시험해 보시든가요.”
릭이 들고 있던 발톱을 그대로 불태워버렸다.
화르륵!
푸른 화염에 휩싸인 고가의 아이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새카만 재가 되어 흩어졌다.
“…….”
샤일록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 눈빛과 기세를 보건대, 릭이 결코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해진 내기의 승패와 진혁이라는 상품. 그리고 거기에 걸어야 하는 리스크가 자신의 전 재산이라는 게 결정되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더 이상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니다.
아무리 열이 받고 화가 나더라도 전부를 잃을 순 없었다.
“……제가 졌습니다.”
샤일록이 꼬리를 말았다.
동시에.
촤르륵….
쇠사슬이 풀리며 진혁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휴.”
꽤나 아슬아슬했던 줄다리기였는데, 다행히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이제는 위험했던 다리를 건넌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진혁이 샤일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를 가득 띄운 채.
샤일록이 똥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아이템을 넘겼다.
[‘샤일록의 잔혹한 거래’가 종료됩니다.] [보상으로 ‘기묘한 포츈 쿠키 X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기묘한 포츈 쿠키]입수난이도: 시련의 탑 기간 한정판
내용: 시련의 탑이 처음 탄생했을 때를 기념해 만들어진 포츈 아이템 중 하나. 이걸 사용한다면 시스템이 정한 확률 수치를 일정 부분 조작 가능합니다. (확률 조작 가능한 범위는 전 범위이며 포츈 쿠키 1개당 2.5%의 확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입수난이도: 시련의 탑 기간 한정판
내용: 가장 밝은 보석도 빛이 바랄 수 있는 법. 이 보석을 사용한다면 정해진 인과율을 미세하게 비트는 것이 가능합니다.
드디어 이 두 개를 손에 넣었다.
진혁이 세트로 묶인 먹음직스러운 과자 상자와 보석을 요리조리 뜯어봤다.
“원하시는 건 이루셨나 봅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진혁을 보던 릭이 말을 걸어왔다.
아, 그렇지. 보상도 좋지만 우선은 감사 인사부터 하는 게 예의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위험에 빠지셨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죠.”
“그것참… 마음 따뜻해지는 말이네요.”
여전히 릭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체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또한 예측이 가질 않았고.
뭐가 됐든 지금 당장은 릭이 이쪽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꽤나 엄청난.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마침, 근사한 커피 원두를 입수했거든요.”
“후후후. 그건 조금 기대되는군요.”
릭이 중절모를 살짝 들어올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제 감이 살짝 둔해져서 확실하진 않지만…. 일행분들이 있는 곳에서 뭔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혁이 재빨리 감각을 끌어올린 채 릭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츠츠츠….
정말이다.
워낙에 희미하긴 했으나, 멤버들이 머무는 하늘 주변에 반투명한 기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결계와는 다른 종류다.
“침입자….”
진혁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가능성들. 가장 높은 건 역시나 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언노운이다.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진혁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나갔다.
콰앙!
한 줄기 빛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꽈드득…철컹! 쿵!
벨루스가 몸을 꿰뚫은 꼬챙이들을 하나둘 뽑아냈다.
무시무시한 마력을 쏟아부어 퍼부은 맹공에도 멀쩡한 모습. 태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는 모습은 정말로 불사신 그 자체였다.
“괴물 같은 놈….”
엘리스가 치가 떨린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벌써 100번은 가볍게 넘게 죽였건만, 계속해서 살아나는 벨루스는 거머리 그 이상의 성가심을 자랑했다.
‘아무도 이 소동을 눈치채지 못 하는 건가.’
엘리스의 시선이 저 먼 곳으로 향했다.
일부러 최대한 소란을 피우며 요란하게 날뛰었는데,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강력한 마력을 폭발시켜도 외부에서 도우러 오는 기색은 없었다.
마치, 누군가 이 공간 자체를 단절시켜놓은 것처럼 말이다.
‘뭔가 장난질을 쳐둔 거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유일하게 앞뒤가 맞았다.
“최강의 진조라 평가받는 로드께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입니다만, 저야말로 로드가 괴물 그 자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군요. 나름 전력을 다해 간격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이게 그리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벨루스가 피로 얼룩진 옷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어의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는 이야기.
승리를 하기 위해선 상대를 위협할 만한 공격기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뱀파이어로서 로드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장기말로서 움직이도록 하죠.”
스릉!
벨루스가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았다.
핏빛을 머금은 칼날이 앞으로 뻗었다.
[벨루스가 관리자의 권한 ‘시스템 조작’ 발동합니다!] [‘속도’에 관한 스탯이 일시적으로 300%만큼 증가합니다!] [‘재생’에 관한 스탯이 일시적으로 30%만큼 감소합니다.]오랜 세월 아타락시아의 혈족으로 살아오며 확립해온 또 다른 정체성. 이제는 그 껍데기를 벗어던진 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