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1인 군단 (1)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로 쓸 만한 정보를 말해 줘서 고마워. 정말로 큰 도움이 됐어.”
판을 짜는 데 요긴하게 사용할 정보들을 얻었다.
궁금했던 점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그럼 난 이제 가 봐도 되는 거야?”
멜레나가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사, 살려…… 준다고 했잖아? 분명히 아는 걸 말하면 보내 주겠다고!”
“걱정하지 마. 약속은 지킬 테니까.”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한 이상 함부로 죽일 생각은 없다.
이렇게 유용한 장기말을 왜 1회용으로 쓰고 버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써먹을 수 있을 텐데.
“단지, 한 가지 약속을 해 줘야겠어.”
“약속?”
“그래. 약속.”
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도 아닌 진짜 약속.
영혼에 새기는 맹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약속이다.
[Lv3 ‘염혼의 낙인’이 발동됩니다!]진혁의 손가락 끝이 밝게 빛났다.
“앞으로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증표야. 뒤통수를 때린다든가, 반기를 들 시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테니 신중하게 결정해.”
죽든가.
복종하든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에 하나뿐이다.
그리고 멜레나는…….
“난…… 죽고 싶지 않아.”
살아남는 쪽을 선택했다.
***
혹독했던 첫 날 밤이 지났다.
따사로운 햇살이 야영장을 비출 무렵.
“흐으음.”
진혁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쾌한 아침이다.
쌓였던 피로가 전부 회복된 기분이랄까?
간밤에 모든 일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수월하게 풀린 데다, 영양까지 든든하게 보충해 준 덕분에 컨디션은 최고치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전력을 다해 싸워도 문제없겠어.’
마지막으로 남은 보스 레이드에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없는 난전이 펼쳐질 것이다.
‘전투라기보다는 전쟁에 가깝겠지.’
진혁이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이번 레이드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재점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주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때문에 진혁은 복잡한 상황과 최적화된 움직임 그리고 그 모든 가정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변수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침내 진혁이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새 손에는 천수관음에게서 얻은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아. 보스를 부르기 전에 잠깐.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군.’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진혁이 ‘방송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채널 언노운(Unknown)’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원하시는 카테고리를 선택해 주십시오.]주르륵 나열되는 각종 카테고리들.
지금 필요한 건 ‘공지사항’을 작성하는 일이다.
[보스 레이드 스트리밍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편집해서 공략 영상 올릴 테니까 볼 사람만 보세요.]두 줄짜리 짧은 공지가 업데이트되었다.
‘어차피 첫 번째 방송에서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으니 굳이 보스전까지 생방송으로 진행할 필요는 없어.’
목적은 동영상에 대한 조회수와 ‘언노운’이란 채널의 인지도를 쌓는 거다.
시청자들이랑 낄낄대며 떠들다가 보스한테 허점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동영상을 업데이트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수십 개의 댓글들이 달렸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이슈텔러: 와 공지 보소. 방송 키겠다고 하더니. 갑분싸 동영상으로 대체하겠다고?
-누텔라 짜장: 게다가 공략 성공했다는 걸 기정사실화했는데? 실패하고 죽으면 어쩌려고 이런 공지를 남기는 걸까?
-백수위에트수: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어제 스트리밍 못 본 사람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감.
-피자탕수육 존맛탱: ㅇㅇ. 니들이 봐 왔던 고인물이랑 차원이 다름.
-중고딩나라: ㄹㅇ 그 정도임?
-고인물 감별소: 나도 어제 좀 봤는데, 우리 언 형, 완전 두바이산 석유였음.
-디아블로3의 추억: ㅇㅈ. 거의 제작진 탈모 제작기 수준이지. 혼자서 대형 길드 공격대도 쩔쩔 맨 걸 성공해 버렸으니.
-매드무비: 흠. 김칫국 같은데,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몇 만이 넘는 군대를 상대할 순 없을걸?
-새영언환: 과연 어떤 방법으로 보스를 쓰러뜨릴지 기대되긴 하네.
반신반의하는 사람들과 믿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 간의 갑론을박으로 인해, 채널 게시판이 한껏 달아올랐다.
‘연출에도 신경을 좀 써야겠군.’
레이드의 성공이야 당연한 거지만, 흥행에도 성공하려면 각본과 구도 그리고 무대에 나오는 배우들까지 중요하다.
그리고 물론.
진혁은 그 모든 걸 충족시킬 방법 또한 구상해 둔 상태였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진혁이 열쇠를 쥔 채 정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하지만, 열쇠가 텅 빈 공간의 한 점과 접촉한 순간.
철컹!
격철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상의 열쇠’가 반응합니다!] [3층의 주인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붉은색 상태창이 나타남과 동시에.
쿠쿠쿠쿠쿠!
눈앞에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수관음이 나타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게이트다.
“이야…….”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넓이로는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높이로는 구름에 닿아 하늘을 집어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곧이어.
쿵! 쿵! 쿵! 쿵! 쿵! 쿵!
게이트 너머에서 엄청난 수의 석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3만이라는 병력.
대부분 중무장한 1m급 병사들이었지만, 10m가 넘는 중형급과 50m에 이르는 대형급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석상들의 중앙에는 가장 화려하게 조각된 석상이 보였다.
저 녀석이 3층의 주인이다.
정확히는 저 석상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놈이.
“흐음. 이번에는 혼자서 온 건가?”
석상의 머리 꼭대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릿저릿!
진혁의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과연.
‘이게 보스의 마력인 건가.’
3층의 보스 몬스터는 본신의 마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축에 속했다.
워낙에 많은 소환수들을 거느린 탓에 마력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신을 짓누르는 이 압박감.
역시 보스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다.
진혁이 ‘탐식의 눈’을 통해 상대를 훑었다.
하지만.
[대상과의 레벨 차이가 극심하여 상태창을 열람할 수 없습니다.]돌아온 건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문구였다.
바로 그때.
[행운 스탯과 적응형 스탯이 레벨 차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대상의 상태창을 꿰뚫어봅니다.]두 개의 스탯이 빛을 발했다.
‘천수관음 땐 실패했던 행운 스탯이 이번엔 터진 건가!’
진혁이 작게 환호성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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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무혼
성별: 알 수 없음
나이: 알 수 없음
레벨: 105
힘 72 민첩 101 체력 79 마력 93 카르마 128
고유 능력: 심장 없는 군대
스킬: Lv17 ‘천라지망’, Lv15 ‘일괄지휘’, Lv14 ‘약점 간파’, Lv14 ‘군략(軍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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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만다라의 레벨이 15이하이기 때문에 무혼의 고유 능력이나 스킬 복사는 불가능합니다.]레벨이 105라…….
그동안 각종 길드의 공격대가 어지간히도 많이 죽어 주긴 했나 보다.
원래 이 녀석의 레벨이 3자리 수까지 가려면 1년은 족히 넘게 필요했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서 저렇게 자신감이 천장을 뚫고 있던 거였냐.’
고작 3층의 보스면서, 잡는 똥폼은 상층에 있는 드래곤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나쁘진 않다.
‘반대로 말하면…… 방심을 유도하기에 더 좋은 상황이라는 뜻이니까.’
게다가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걸 뒤엎었을 때 구독자들이 느끼는 만족감도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웃어?”
“아, 미안.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고. 그래서, 조금 전에 했던 질문이 뭐였지?”
“이곳에 온 건 너 혼자였냐고 물었다.”
“뭐, 보다시피. 누구랑 다르게 부하들 뒤에 숨어 있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진혁이 이죽거렸다.
그 도발 섞인 대답에 무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자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표정에 아주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흔들리던 동공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았다.
“미안하지만, 이 몸은 직접 몸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 군림하며, 명령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군주의 덕목 아니겠는가?”
여유 있는 응수다.
아니, 여유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응수라고 하는 게 맞겠지.
아무리 레벨이 오르고 수많은 승리를 쌓아 왔어도…….
‘본신이 강하지 않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은 변하지 않았군.’
이래서 완벽한 존재는 없나 보다.
누구에게나 파고들 허점 한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글쎄. 내가 생각하는 군주의 덕목은 싸울 때 뒤에 숨는 게 아니라 가장 앞에서 나서는 거라서.”
“꼭 그런 멍청이들 때문에 전쟁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지. 혼자 앞서 나가던 지휘관이 죽으면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전멸한다. 그런 기본 중의 기본조차 모른단 말이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단.
“가장 앞에서 싸워도 죽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꼭 앞에서 나서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충분한 실력만 뒷받침된다면 그것만큼 전체적인 사기를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
“……어이가 없군. 네놈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이냐?”
“있고말고.”
가능성이 없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고생해 가며 승리를 위한 재료들을 모으지도 않았을 테고.
진혁이 천천히 마력을 갈무리했다.
“보아하니 병력 간의 전투에 꽤나 자신이 있나 본데…… 나도 난전이 꽤나 취향에 맞거든.”
그러니 한번 붙어 보자고.
누구의 말이 옳은지 증명하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묘하게 생긴 체스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체스판’이 활성화됩니다!]츠츠츠츠!
지면을 따라 푸른 선들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선과 선이 만나 정사각형 모양의 판을 만들었다.
제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진혁이 이번엔 이유리에게서 받은 조각품들을 꺼냈다.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수천 개의 체스말들이 나타났다.
물론, 이것들은 보드게임이나 하기 위해 만든 장난감이 아니다.
소환사인 이유리가 마력을 이용해 조각했고 거기에 룬어를 새겨 만든 예술품.
그렇기에 각각의 체스말은 하나의 병사로서 제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발상은 참신하구나.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혼자서도 병정놀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체스판 위에 깔린 체스말들을 본 무혼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자아냈다.
그러나 잠깐의 놀람 뒤엔 비웃음이 짙게 실린 말이 이어졌다.
“그 작은 것들로 무얼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기다려 봐. 아직 안 끝났어.”
그렇게 쫑알대지 않아도 조금 뒤엔 입 다물게 해 줄 테니 가만히 좀 있어라.
진혁이 마지막을 장식할 아이템을 꺼냈다.
시련의 탑 지하 1층, 아누비스를 농락하고 얻은 아이템.
[‘거대화 알약’을 사용하셨습니다!]바로 거대화 알약이다.
대량으로 모아 뒀던 알약들이 체스말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쿠쿠쿠쿠쿠!
10cm가 채 되지 않았던 체스말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m에 이르는 나이트와 비숍 그리고 룩이 지평선을 따라 전열을 갖췄다.
중갑주로 무장한 폰이 방진을 형성한 채 창을 뻗었다.
이제 더 이상 체스말들은 장난감이 아니다.
군단의 위용을 갖춘 병력들을 보며, 그 누가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이죽대던 무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으득!
무혼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네놈.”
손쉽게 생각했던 날파리였다.
고작 한 명쯤이야, 손짓 한 번으로 짓밟아 버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별 볼일 없던 인간은 어느새 무시하기 힘들 정도의 대군을 거느린 적으로 변모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