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54)
654화. 결전(決戰) (4)
우우웅!
계약에 의해 시작된 굳은 신뢰.
수많은 경험을 나누며 만들어진 결속이 이어졌다.
[만상공유 – ‘인연의 끈’이 발동됩니다!]마력이 떨어지고 대관식의 힘이 바닥난 지금의 ‘나’로서는 이 보석을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전성기의 극에 이른 엘리스라면 그 단단한 표면을 꿰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확률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띄운 것이다.
파츠츠! 파치칙!
서로에 대한 신뢰가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에만 발동되는 만상공유의 특수스킬. 바로 ‘위치 교환’이다.
순식간에 진혁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전신을 뒤흔드는 어지럼증에 구토가 솟구쳤지만, 이를 악 물고 견뎌냈다.
그렇게 몇 초나 흘렀을까?
눈을 떴을 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곳엔 숨을 헐떡이고 있는 언노운이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면이 파르르 떨렸다.
“엘리스한테 호되게 얻어 맞고 있던 모양이네. 미안하지만, 그 녀석은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 잠시 보냈어.”
“……만상공유. 그래. 그런 거였군요.”
언노운이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성기를 구가하는 엘리스를 이용해 아자토스의 궁전을 파괴할 생각인 거다. 확실히 조금 전 보여준 무시무시한 실력이라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시기가 너무 늦었습니다.”
쿠쿠쿠쿠쿠!
궁전의 모습이 이제 눈에 띄게 확연해졌다.
세세한 룬어들과 태고의 언어들까지 각인되고 있는 시점에선, 제아무리 엘리스라고 하더라도 보석을 파괴하기 힘들 것이다.
북쪽에 있는 마지막 족쇄를 부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엘리스라면 바깥쪽 보석에 약간의 흠집만 내더라도 충분해.”
“하하하! 외부에 있는 동료들에게 아주 큰 기대를 걸고 계시나 봅니다. 지금 현재 저쪽에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뭔가 또 장난질을 해뒀던 거냐?”
“후후. 글쎄요. 그거야 나중에 천천히 확인해 보시면 될 입니다. 그보다는 저와의 싸움에 집중해주시죠. 안 그래도 진조 분이랑 어울리는 게 버거우려던 참이었거든요.”
언노운이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신경을 거스른다.
이쪽에 대한 공략이 완벽하게 끝났다고 말하는 셈이었으니까.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 탑에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애는 정말 오랜만에 보거든. 이래서 시련의 탑이 재밌다니까.”
진혁이 손목을 살짝 틀었다.
그러자 쥐고 있던 사복검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댔다.
촤앗!
칼날이 단번에 언노운의 안면을 노렸다.
저 안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궁금해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채 가면의 표면에 닿기도 전에 언노운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이형환위.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쓸 수 있는 무림의 무공이 펼쳐졌다.
곧바로 진혁의 뒤를 잡은 언노운이 반격을 가했다.
“패턴 파악은 이미 끝났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사복검이 진혁의 심장을 노렸다.
퍼퍼퍽!
칼날이 등을 꿰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야 할 피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블링크…?”
언노운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무림의 이형환위와 비슷하면서 구현 방식은 전혀 다른 이동형 스킬이다.
“너야말로 패턴이 너무 뻔한데? 페인트를 고작 한 번만 섞어놓고 날 잡을 생각이었던 거야?”
“……설마 그럴 리가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당신을 위해 준비해둔 게 아주 많습니다. 제대로 어울려드리도록 하죠.”
쿠쿠쿠쿠쿠!
언노운의 몸에서 보라색 운무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체내에 완전히 흡수된 힘이 본격적으로 발동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나 엘리스와 전투를 하며 마력을 낭비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모든 힘을 오롯이 진혁에게만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간격을 파악하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에서 싸울 수 있게끔 모든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서 계산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승산이 절반을 넘어섰다고 생각이 된 순간.
두 개의 사복검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다.
카카카카카캉!
날카로운 공방전이 오갔다.
칼날과 칼날이 서로를 물어뜯기 위해 매섭게 울부짖었다.
‘빙하조형’, ‘태초의 불꽃’, ‘고속검’.
서고와 서고에서 능력들이 뽑힐 때마다 다양한 능력들이 변수를 창출해냈다.
‘일단 광역기로 움직임을 봉쇄해야 해.’
‘저 성가신 이동기를 막으려면 좀 더 큰 기술을 쓰는 수밖에.’
진혁이 거대한 늪을 만들었다.
이에 맞서 언노운은 태양의 힘을 그대로 머금은 불덩이를 소환했다.
……8개의 늪과 플레어 이클립스가 맞부딪치자 독과 불이 주위의 모든 공기를 그대로 태워버렸다.
치이익!
자욱한 연기가 솟구쳤다.
아무리 실드로 버티고 있다곤 하지만, 이 한복판에서 시간을 지체한다면 몸이 그대로 녹아버릴 것이다.
짧은 마법전이 끝을 고하자 이번엔 처절한 육탄전이 이어졌다.
콰콰콰콰콰쾅!
허공이 온통 검은색과 붉은색 마력으로 물들었다.
보랏빛 불꽃이 어지럽게 흩어지며 그 사이로 진혁과 언노운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하하! 그 잘난 대관식의 효과도 이제 거의 다 끝난 모양입니다?”
언노운의 가면이 벌어지며 기괴한 광소가 터져나왔다.
무슨 베x도 아니고.
검은 가면이 진흙처럼 쩍쩍 늘어난다.
“혀 깨문다 그러다.”
진혁이 퍼스트 블레이드를 양쪽으로 교차했다.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거칠게 회전시켰다.
[강진혁이 혈사(血蛇) – ‘블러드 아투라스’를 발동합니다!]“키에에에!”
붉은 뱀이 아가리를 벌렸다.
기다란 아가리가 사람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큼 벌어졌다.
동시에.
[언노운이 흑사(黑蛇) – ‘블랙 드레이든’을 발동합니다!]“크오오오!”
검은 송곳니를 드러낸 뱀이 측면에서 내달렸다.
퍼퍼퍼퍼퍽!
뱀과 뱀이 격돌했다.
송곳니를 세운 뱀들이 미친 듯이 지면을 훑으며 빈틈을 찾았다.
거기에 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인 직업의 정수가 더해졌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 ‘별자리 연회’가 발동됩니다!]12개의 별자리들이 대결계를 자아내며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눈부신 별빛이 뱀들을 휘감자 가뜩이나 흉폭하던 뱀들의 기세가 몇 배나 올라갔다.
검격과 검격.뱀과 뱀들이 사방에서 날뛰었다.
매 공격 하나하나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둘의 합이 세 자릿수를 가볍게 넘어섰다.
그런데도 결정타를 날릴 만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인내심이 먼저 바닥난 건 언노운 쪽이었다.
팽팽했던 균형을 도저히 깨뜨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언노운이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뭐냐! 뭐가 문제란 말이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모든 게 이쪽이 위.
기본 스탯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저장되어 있는 스킬과 능력의 수도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토대로 각 상황에 맞는 패턴까지 숙지해뒀기에, 1:1에서는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저 녀석은 엘리스와 달리 예전의 무장마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을진대….’
애병기로 사용하던 권총은 없다.
보라색 등급인 퍼스트 블레이드를 변형해 사복검을 손에 넣었다곤 하더라도 강화석으로 강화까지 끝낸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
전력 차는 감히 계산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야 정상일진대….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언노운이 고함을 질렀다.
진혁이 대답 대신 더욱 정확하게 언노운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카앙!
힘을 잃은 흑사가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당황스럽겠지.’
속도와 위력은 분명 예전만 하지 못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때는 훨씬 더 높은 레벨과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최강의 시절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분명 부족한 게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딱 한 가지.
전성기 때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바로 경험.
과거 시련의 탑을 올랐을 때의 경험에 지금까지의 경험이 더해지며 기술의 정교함과 숙련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승해 있었다.
부족한 힘과 스탯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전투 센스가 갖춰져 있다는 소리다.
서걱!
마침내 언노운의 몸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워낙에 예리하게 베인 탓에 통증은 몇 초가 흐른 뒤에야 느껴졌다.
“크아아악!”
예상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리는 결과에 언노운이 단검을 버렸다.
“죽인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남은 마력을 모두 끌어모아 하나의 빛으로 환원시켰다.
[고유성창 ‘에드 포 아스트라’를 발동합니다!]태고의 존재와 운영자로부터 얻은 능력을 융합한 신능력.
드래곤의 브레스나 주신의 고유성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닌 일격필살의 빛이 점멸했다.
……온다.
진혁이 터무니없는 마력이 응집되는 걸 보며 끝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동시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것에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현재까지 만난 가장 골치 아픈 적. 언노운이 가진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참고 또 참았다.
벨루스에 이어 이것마저 손에 넣는다면 모든 고생을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만 넘기면 된다.’
[고유능력 ‘원 아이즈 문’이 발동됩니다!]진혁이 그로스로부터 복사했던 능력을 꺼냈다.
* * *
‘좋아….’
‘해 볼 만하다.’
‘역시 강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조합은 강력해.’
‘기대 이상이군.’
화면을 보던 상급 관리자들이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엘리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외부에 있는 동료들을 동원해 아자토스의 궁전을 막으려는 계획. 거기에 만상공유를 통해 위치를 바꾸어 최적화된 빌드업을 하는 과정까지.
모든 게 완벽 그 자체였다.
심지어 베리엘과 이집트 측에서 진혁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배신하지 않는 걸 보자, 천세의 뒤통수마저 만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흐음….”
의자에 앉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연신 테이블을 두드렸다.
“불안하신가 보군요.”
릭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뒤 질문을 던졌다.
툭하고 던진 말이지만, 민감한 상황에선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래 보이나요?”
“통상 같은 행동을 빠르게 반복하는 걸 보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고들 하죠.”
“후후. 여전히 릭 씨는 신랄하시군요. 뭐, 그리 생각하시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 제가 준비한 계획이 제대로 먹히질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실제로도 그러는 중이고요.”
릭이 다시 한 번 톡하고 쏘았다.
남자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대국을 조금 더 크게 보고 있습니다. 한 번 전투의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재밌는 판을 짜서 전체적인 전쟁을 승리로 끝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남자가 이번에는 조금 텀을 두고 손가락을 두드렸다.
따악.
그러자. 거울이 반으로 나뉘며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의 광경이 펼쳐졌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장소는 진혁이 있는 곳도. 혹은 연합 측이 싸우고 있는 곳도 아니었다.
전투와는 완전히 거리가 떨어진 제3의 장소.
그곳에는 탑의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만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