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56)
656화. 전쟁의 끝, 그리고 일상 (1)
툭….
가면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그 안에는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얼굴이.
[불가능한 업적 ‘과거의 자신을 쓰러뜨려라’를 달성했습니다!]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를 위한 마지막 보상이 정산됩니다!] […….]연이어 상태창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런 것들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란스럽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당연히 그 남자라 불리는 존재가 과거 50층을 올랐던 자신의 데이터라고 생각했다. 유추할 수 있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과거 자신의 데이터가 아니고. 지금 눈앞에 쓰러져 있는 자가 50층을 정복했던 자신의 데이터라니.
그 남자: 과거 시련의 탑 50층을 공략했던 나.
언노운: 그런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분신.
……이라는 가정이 휴지쪼가리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라 불리는 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쪽이 모르는 제3자? 그렇기에는 너무나 이 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데? 플레이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거주자라하기에도 말이 되지 않았다.
최소한 탑의 정상부근까지 가본 자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보여줬던 남자의 행보를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진짜 어질어질하네.”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여태까지의 계산이 완전히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복잡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긴 싸움이 끝났고 적의 우두머리가 쓰러졌다.
이제부터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의 잔당들을 몰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노운의 죽음을 알리는 것부터겠지.
[플레이어 강진혁이 대형 확성기를 사용합니다!] [현재의 화면이 외부로 송출됩니다.]“제 이름은 강진혁.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이끌고 있는 리더입니다.”
진혁이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 ⁕ ⁕
종전.
구심점이 사라진 운영자와 태고의 존재들은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유성에 의해 계시록의 세 기사와 쉐이드 리퍼가 쓰러졌고. 천세 역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굵직한 전투들이 마무리되며 마침내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올림포스의 최상층에서는 진혁과 크로노스가 단 둘이 독대를 하고 있었다.
“부분 회귀라….”
시간을 관장하는 고대의 신이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회중 시계를 사용한다면 일부 시간과 공간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진혁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 약 일주일의 시간을.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공간을 대상으로 하길 원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언약과 태고의 존재들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버린 세계. 70억이 넘는 인구 중 90% 이상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은 인간들도 대부분 인간성을 버리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이 대부분인 터라 사실상 인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하리라.
“이해는 한다만, 나로서도 무리다. 아마 어떤 신들도 그대가 원하는 걸 해줄 수는 없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도움을 약간 드리려고 하는데요.”
진혁이 아공간에서 오래된 톱니바퀴를 꺼냈다.
언노운을 처리하고 얻은 수많은 아이템들 중 하나였다.
[특수 아이템 ‘더블 크로스 라인’ x 2개]입수난이도: 시련의 탑 최초 정복자 한정.
내용: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특수 아이템으로 ‘시간’ ‘기억’에 관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사용할 경우 본인의 능력치를 1,500%만큼 상승시켜줄 수 있습니다. 단 이 아이템은 일회성으로 한 번 사용할 경우 영원히 재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망각의 샘물]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전세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과 탑 밖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기억조작’이 가능하게 합니다. 왜곡된 기억의 지속 시간은 망각의 샘물이 완성된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현재 완성도 7%)
사실….
망각의 샘물은 지금 타이밍에서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 속에서 확실한 이득을 얻기 위해서 사용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스템 조작으로 아이템의 일부 설정이 변경됩니다.] [플레이어 강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활약상이 기억 조작 범위에 포함됩니다. 그 외에도 127가지 세부 기억조작이 선택되었습니다.] [특정 인원의 기억은 훼손되지 않습니다.]시스템 조작과 더블 크로스 라인을 이용해 망각의 샘물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인류를 되살리고. 황폐화된 문명을 재건한 뒤….
모두의 기억을 지울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몇몇 이들을 제외한 모두의 기억을 말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만약 자신들이 다시 살아난 걸 안다면 모든 인류는 그대에게 고마워할 텐데?”
크로노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언노운이란 거짓된 존재에게 속았음에도 사람들을 구원한다. 그렇게 한다면 고마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진혁의 가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올라가리라.
인류 구원의 대서사.
영웅으로서 영원히 추앙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뇨.”
진혁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었지만, 그 대가는 비난과 질책이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은인이었던 이들을 짓밟으며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 물론,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위기의 순간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다.
“염증을 느낀 거군.”
“예. 게다가 앞으로의 싸움을 생각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좋습니다. 태고의 존재들이 또 다시 사람들을 인질로 삼거나 절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할 확률이 높거든요.”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 자존심 강한 놈들이 자네에게 호되게 당했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전력을 다해 덤벼올 걸세.”
“그 부분은 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제 최종막이 다가오는 시점.
어차피 놈들과는 싫든 좋든 제대로 맞붙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준비해야할 것도 많겠지만, 시간은 이미 충분히 벌어뒀다.
“알겠다. 그대 뜻이 정 그렇다면야…. 이 정도면 아이템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군.”
[크로노스가 특수 성유물 ‘시간의 회중 시계’를 발동합니다!]거대한 시계 태엽이 빠르게 돌아갔다.
순간.
묘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람들은 그대를 잊을지라도. 내가… 우리가 그대를 기억하겠다.”
크로노스의 말과 함께 세계의 공간이 일부 회귀했다.
⁕ ⁕ ⁕
언약 이후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재 서울의 온도는 24도로 매우 화창하겠으며 일교차가 다소 있을 예정이오니….] [해외 유명 길드의 랭커가 어제 새벽 올림픽대로에서 음주를 하다 적발되어….] [시련의 탑 39층 공략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5회차 대규모 레이드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커다란 전광판에서 여러 속보들이 줄지어 흘러나왔다.
인류가 거의 사라질 뻔 했던 과거는 사라졌고. 그 자리엔 꽤나 위협적이었던 아포칼립스가 있었다… 정도의 거짓된 진실이 덧씌워졌다.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했고. 새로운 길드들이 탑 안에 세력들과 결탁해 자신들의 힘을 키워나갔다.
짧은 기간에 꽤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신라호텔의 1층에서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평화롭구나. 이 세계는.”
엘리스가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채 홍차를 홀짝였다.
“넌 지금 그게 목구멍에 넘어가냐?”
진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라고는 하지만, 중세 유럽의 귀족 같은 차림새를 하면 눈에 띄는 게 당연했으니까.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흰 드레스와 실내에서 뜬금없이 쓰고 있는 양산. 거기에 화려한 보석들까지.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어머, 저것 봐.”
“드라마 촬영이라도 하나.”
“외국에서 온 연예인인가? 되게 이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이쪽을 바라봤다.
“그래도 모처럼 이렇게 전부 다 모이니까 좋네요. 전쟁 이후 멤버들 전원이 다 모인 건 처음이죠?”
마찬가지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테레사도 환하게 웃었다.
시선이 집중되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워낙에 바빴으니까. 나 역시 더 이상 휴학이 되지 않아 복학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천유성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아직 대학생이었지.
하루 종일 치고박고 하는 와중에 그 빡세다는 본과수업까지 들었다니….
이 녀석이야 말로 진짜 괴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 덕분에 모두가 일상을 살아가는 건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게 좀 아쉽긴 하네요.”
“뭐, 오빠가 한 결정이니까. 다 이유가 있겠다 싶다만은….”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이태민과 유연화도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좋으시겠지요. 저만 망했습니다. 하하하. 임대료에 인건비에 세금에 유지비가 월 1억이 넘는데… 신규 가입자가 0명이에요! 어제는 옆 건물 사채업자가 나보고 불쌍하다면서 밥을 사줬다니까요? 이게 말이 됩니까? 예? 카악 퉤.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진혁의 이름이 사라진 이후 사실상 망해버린 검은 까마귀 길드.
그걸 이끌던 바지사장 김희웅만이 차 대신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직원이 여기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저 손님들 죄송하지만, 조금만 목소리를 좀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손님들에게 폐가 되어서요.”
“평범한 인간들은 짐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영광이거늘. 오히려 짐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미천한 것들과 어울려 주는 걸 감사히 여기라고 전하거라.“
“예?”
매니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 하지만… 손님 그래도 호텔 내에서의 예의와 규칙이라는 게….”
“규칙? 그건 이 호텔을 소유한 자가 장한 기준인 건가?”
엘리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매니저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엘리스는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공간이 개방되며 각종 보물들이 후두둑 쏟아졌다.
“어느 누군가가 기억을 지운 덕에 짐의 각종 백화점 vvvvvip 특권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런 것쯤이야 짐의 권세 앞에선 하등 보잘것없는 것들이었으니까.”
특권이 사라졌다면 사버리면 그만.
이미 자신의 보고를 되찾은 엘리스 앞에서 돈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과거가 국가의 인플레이션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은 세계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재앙이 되어버린 것이다.
“엘리스 씨.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라 호텔의 주인이 되고 싶으면 이 호텔의 지분을 사야 해요.”
테레사가 현대의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말이냐. 바보 성녀.”
“바, 바보가 아니라! 아무튼 핸드폰에서 주식 어플 다운 받으신 다음에 돈을 넣고….”
“호오. 그 다음에?”
“이렇게 매수 버튼 눌러서 주식을 모으기 시작하면 이 기업의 주인이 되실 수 있어요.”
“이 호가창인지 뭔지에 쌓여 있는 것들을 전부 사버리면 되는 것이냐?”
“네. 바로 그거예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 그게 주식의 기본 원리거든요.”
“재밌구나. 하지만, 짐은 시시하게 싸게 사고 비싸게 팔고 같은 건 모른다. 그냥 최고가에 전부를 사버리겠느니라.”
“멋진 생각이에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죽이 맞아 꺅꺅거려댔다.
참 좋은 걸 알려준다 진짜.
진혁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얼핏 봐도 엘리스의 통장 잔고는 조 단위를 가볍게 넘을 터.
이제는 하다하다 내일 아침 코스피 지수를 바꿔버릴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좋아했는데… 어디서 이상한 것들이 분위기를 다 망치는군요. 웬 가짜 보석으로 되도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사모님.”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날카로운 반응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