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1인 군단 (2)
양측의 병력이 서로를 마주봤다.
물론, 숫자의 차이는 존재한다.
체스말들은 약 2천800기.
반면, 석상들은 그 10배가 넘는 3만에 이르렀다.
“확실히…… 지금까지 왔던 인간들과 다르다는 건 인정해야겠구나.”
무혼이 낮게 중얼거렸다.
시련의 탑이 개방되고 여러 번의 도전을 받아 왔건만.
이토록 독특한 방법으로 도전해 오는 이는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위협이라는 걸 느낄 정도다.
“나도 하나는 인정할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야 뭐,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안 할 수가 없다.
“너는 어째 갈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냐?”
“뭐, 뭐라고?”
“맞잖아? 약해빠진 놈들 상대로 몇 번 이겼다고 잔뜩 헛바람만 들어선 방심이나 하고. 그러니까 3층에 머물고 있는 거 아니야. 위로 갈 기량이 안 되니까.”
시련의 탑의 보스 몬스터들은 각 층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그 층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종의 층을 지배하는 관리자란 뜻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뿐 아니라 그들 역시도 탑을 오르며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럴 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하하, 이것 참. 맹랑한 인간이로고.”
무혼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분노와 허탈함이 가득 배어 있는, 어딘지 모르게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내 힘이 부족해서 4층의 영역을 넘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면상에 대고 직접 말해 줬지. 아! 혹시, 의미 전달이 정확하지 않았으면 다시 한번 말해 줄게. 네 수준으로 4층은 어림도 없어. ‘3층 지박령’. 그게 딱 너한테 어울리는 포지션이야.”
이죽임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대놓고 도발하는 거다.
속이 뒤집히도록.
“그런 식으로 상대를 흔드는 것조차 다 네놈의 계획인 모양이구나.”
그러나 무혼은 미끼를 물지 않았다.
“그래. 마음 내키는 대로 지껄여도 좋다. 허나, 병력의 절대적인 차이와 전술의 우위는 결코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려 주마.”
오히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부하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석상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공수가 완벽한 포진(布陣)이 형성됐다.
압도적인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무혼은 전력을 다해 진혁을 찍어 눌러 버릴 생각이었다.
“소모전만 펼쳐도 네놈의 병사들은 말라 죽을 것이다.”
2천 대 3만의 병력.
같은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면, 누가 승리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그걸로 이 싸움은 끝날 것이다.”
어설픈 판단은 전체 병력의 전멸로 이어질 터.
무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려하게 조각된 석상 위에서 모든 전장을 내려다봤다.
“가라.”
낮게 깔린 음성과 함께.
“그오오오!”
“오오오!”
가장 앞쪽에 있던 석상들이 지면을 박찼다.
전쟁의 막이 올라갔다.
이제 시작이다.
***
진혁이 돌진하는 석상들을 바라봤다.
한꺼번에 전 병력을 보내는 게 아닌, 약 1천으로 이루어진 선발대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역시, 이쪽의 대응부터 볼 생각인가.”
만약 대처가 미숙하다면, 즉시 나머지 병력을 보내오겠지.
다시 말해, 무혼은 지금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입만 산 놈인지 아닌지를.’
피식.
진혁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최초의 체스판’의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필드 마법 ‘전장지배(戰場支配)’가 발동됩니다!] [필드 위에 있는 모든 체스말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30%만큼 증가합니다!] [사기가 10%만큼 상승합니다!]파츠츠츠……!
지면을 따라 퍼져 가는 푸른빛 마력.
그 위에 있던 체스말들의 몸 또한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숫자?
물론, 적다.
비교하기 초라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각 개체의 전투력까지 동일하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중앙에 있는 폰(Pawn)들은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서라. 좌익과 우익의 폰들은 한 걸음 앞으로 이동한다.”
진혁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철컹! 철컹!
검은색 철갑주로 무장한 폰들이 신속하게 진형을 바꿨다.
[체스말 ‘폰’이 ‘철의 인내’를 발동합니다!]2m에 이르는 방패 또한 지면 깊숙이 박혔다.
곧이어 닥칠 충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쿵! 쿵! 쿵! 쿵!
석상들의 발소리가 더욱 커졌다.
지면이 흔들리고 공기 중의 수분이 메말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검은색 장벽 위로 회색 파도가 부딪쳤다.
철과 쇠의 격돌로 인해 귀청이 찢어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제부터는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이다.
쿠쿠쿠!
폰들이 약간 뒤로 밀렸지만, 단단하게 형성된 횡진은 깨지지 않았다.
찰나의 교착이 이어졌다.
“지금이다!”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체스말 ‘룩’이 ‘다중연사(多衆聯射)’를 발동합니다!]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위에서 강철 화살들이 일제히 발사됐다.
퍼퍼퍼퍽!
퍼퍽!
포물선을 그린 화살들이 석상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그오오오오!”
“오오오!”
석상들이 화살을 방어하기 위해 한 곳으로 뭉쳤다.
작은 방패를 둥글게 펼치며, 사각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이번엔 반대편에서 거대한 화염이 날아오기 시작했으니까.
[체스말 ‘비숍’이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발동합니다!]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캐스팅을 하던 비숍들이 압축했던 마력을 해방시켰다.
유성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하늘에서 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퍼퍼펑!
퍼어엉!
삽시간에 지면 한가운데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생겼다.
박살난 몸과 날아간 팔다리.
완전히 걸레짝으로 변해 버린 석상들이 신음을 토했다.
엄청난 위력이다.
특히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밀집해 있던 터라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막대했다.
물론, 이것마저도 진혁이 그려 놨던 구도였지만.
좋아.
고통은 충분히 준 것 같으니, 이제 아예 숨통을 끊을 시간이다.
“전진해라.”
짧은 명령과 함께.
폰들이 지면에 꽂혀 있던 방패를 뽑았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콰콰콰콰콰콰!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
“호오.”
지켜보던 무혼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팽팽한 접전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첫 번째 교전은 금방 끝났다.
선발대로 보낸 천여 기의 석상들이 모조리 박살나 버린 것이다.
반면, 체스말들은 채 100기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대패.
‘같은 수로 싸워선 이길 수 없겠군.’
방패병들이 있는 정면은 꽤나 탄탄했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뚫을 수야 있겠지만, 이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허나, 이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선발대를 보낸 가치는 있었다.
[무혼이 Lv14 ‘군략(軍略)’을 발동합니다!]수없이 많이 치러 온 전장의 경험.
‘군략’은 축적된 방대한 양의 기록을 바탕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스킬이다.
공격대들이 이 보스에게 그토록 애를 먹었던 것도 모두, 탁월한 전술과 전략에 휘둘렸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방진 자체는 훌륭하나, 왼쪽 측면에 틈이 있다.’
상대적으로 얇은 벽. 게다가 캐스팅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숍들이 주로 위치해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틈이다.
살짝만 들쑤셔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왜일까?
무혼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구나.’
독이든 사과를 눈앞에 둔 것처럼 말이다.
뭔가 있다.
그렇기에 사과 안에 든 독이 어떤 종류인지 파악할 때까진 성급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무혼이 Lv14 ‘약점 간파’를 발동합니다!]스킬이 발동되자 상태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1. 체스판 위의 ‘왕관’을 파괴한다면, 모든 체스말들이 파괴됩니다.
2. 왕관은 ‘킹’ 혹은 ‘퀸’만이 쓸 수 있습니다.
3. 왕관을 쓴 킹이나 퀸은 반드시 가장 안쪽에서 다른 체스말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합니다.
4. 왕관을 쓰지 않은 킹이나 퀸은 상대 적장과의 전투 시 모든 능력치가 100%만큼 상승합니다.
왕관을 쓸 수 있는 건 킹과 퀸, 단 둘뿐.
무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소녀가 퀸의 역할을 맡고 있는 건가.’
겹겹이 둘러싸인 병사들 사이에서 은발의 소녀가 왕관을 쓰고 있는 게 보였다.
반면, 킹이라 할 수 있는 진혁은 ‘나이트’들을 이끌며, 어디론가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무혼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그런 거였나.’
이제야 상대의 의도가 이해됐다.
일부러 틈을 만들었다는 건 공격을 유도하겠다는 뜻.
그렇다면 왜 공격을 유도하려고 했을까?
무혼의 사고는 거기서 더욱 뻗어 나갔다.
‘나와 싸우기 위해서.’
정확히는 4번째 특성 ‘적장과의 전투 시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겠지.
겉으로는 부하들을 희생하지 않겠다느니, 가장 앞에서 싸우겠다느니 하더니.
속으로는 본진 전체를 미끼로 삼아 이쪽의 목숨을 노리려고 한 것이다.
‘재밌군.’
능글맞은 모습과는 다르게 배 속에 능구렁이를 100마리쯤 품고 있다.
하지만, 목적을 알아낸 이상 이 점을 얼마든지 역이용할 수 있으리라.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대신, 네놈의 칼이 나에게 닿기 전에 내 부하들이 네놈의 퀸을 칠 것이다.’
무혼의 입꼬리가 서서히 위로 향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진혁이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그토록 도발을 해 뒀으니, 무혼은 지금 가능한 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승리를 원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혹시라도 패배한다면,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약점 간파 스킬을 갖고 있는 이상, 당연히 내 의도와 전술의 약점 또한 파악했겠지.’
의문을 품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을 통해 굳어진 확신.
똑똑한 놈일수록, 정황을 자기 입맛대로 끼워 넣는 법이다.
물론, 그게 틀렸을 때의 대가도 뼈아플 테지만.
그때였다.
“정말로 괜찮겠어?”
왕관을 쓰고 있던 엘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왜, 걱정돼?”
“당연히 걱정되지. 뭐, 나도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저 녀석도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야. 아무 능력도 없이 3층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고.”
“네가 그렇게 칭찬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 그렇다면 쟤네가 설마, 너랑 널 따르는 혈족들보다 강하단 거야?”
“뭐! 그게 무슨…! 지금 머리가 텅텅 빈 돌덩이들이랑 고귀한 밤의 귀족인 이 몸이랑 비교를 하는 거야? 내가 진짜 회랑에 유폐되지만 않았어도 저런 놈쯤은……!”
엘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발끈하는 걸 보니 긴장은 다 풀린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는 내가 시킨 대로 이곳에서 왕관을 지키기만 하면 돼.”
누가 더 오랫동안 왕관을 지키느냐.
누가 먼저 적장의 목을 따느냐.
그 두 가지가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진혁은 이미 그 답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