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69)
669화. 열혈 용사 (2)
천유성이 아이템을 사용하기 약 1분 전.
탑의 밖에선 대대적인 모금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유럽의 대형 길드와 명문 귀족들. 그리고 각종 인플루언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련의 탑 공략을 위한 자금과 인력을 모으겠다는 이유에서다.
인류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이 걸려 있는 이상.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터.
당연히 그 중에는 유럽의 명문가인 로젠베르크 가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또각.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등장하자 호텔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이곳에 모인 남녀 모두 나름 한껏 멋을 낸다고 낸 상태였으나, 테레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와아. 저기 봐.”
“호오. 테레사로군.”
“암스테르담을 구원한 성녀라죠?”
“대대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을 배출한 로젠베르크 가문답군요.”
“헌데, 그 이후로 특별히 활약이 없네요. 시온 길드에서도 중간에 나갔다고 들었는데, 딱히 어딘가에 소속된 것 같지도 않고요.”
여러 가지 의문 섞인 반응이 튀어나왔으나, 생긋 웃고 있는 테레사의 순수함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모두가 원하는 일등 신붓감이라면 단연 테레사를 꼽을 수밖에 없었다.
고품격적인 이곳의 분위기와 완전히 동떨어지는 음악이 들리기 전까지는.
[빠라밤밤! 빠라라밤밤밤!]유치찬란하고 요란한 노래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율을 완전히 묻어버렸다.
“뭐, 뭐야?”
“갑자기 누가 이런 장난을 친 거죠?”
“경비원은 뭐 하고 계신 거예요! 당장 저 요상한 음악을 끄지 않고? 우리가 보안에 얼마를 들였는데 대체…!”
당황한 손님들이 저마다 불평을 늘어놨다.
영문 모를 상황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하지만 단 한 명.
테레사에겐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상태창이 점멸하고 있었다.
[동료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당신의 도움을 강하게 요구합니다.]“진혁…씨?”
위험하다는 말에 가장 먼저 진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유성과 함께 30층대 유적을 탐험하러 간다는 것까진 들었는데, 설마 그 둘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줄이야.
여유롭게 자선행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데.
도움을 수락하기 위한 조건을 읽던 테레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과거의 끔찍한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술공주 핑레사
-로렌시아의 사춘기는 20년이 넘게 진행 중.
-암스테르담을 지키는 고인물 특전대 핑크.
-사랑해요 핑크레인저 등등.
그야말로 수백 개의 별명들이 등장했었다.
언론매체와 뷰튜브를 포함해 sns 댓글부터. 허락한 적 없는 광고들까지.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수치사하고 싶은 기억도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기껏 망각의 샘물로 모두의 기억을 지웠는데…!
그 악몽의 늪으로 다시 한 번 걸어가게 될 줄이야.
‘미쳤어… 미쳤어.’
테레사의 목덜미가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단순히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것만 같았다.
평소라면 고려 자체를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일 터.
그러나 지금 저울 위에 올라가 있는 건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명이다.
진혁의 목숨과 아들딸에게까지 로젠베르크 가문 대대로 물려지게 될 흑역사.
“…….”
고민은 길지 않았다.
[대상이 부름에 응답합니다.] [테레사의 복장이 커스터마이징 됩니다.]“테레…사 씨?”
“응?”
“어버버버….”
사람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우, 우리 딸이….”
“꼬르륵.”
테레사의 가족들은 게거품을 문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정의와 사랑을 지키는.
“가, 갈게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핑크가 탑으로 소환되었다.
* * *
쿠쿠쿠쿠쿠!
저 멀리서 떨어지는 빛줄기를 본 진혁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꼴을 보아하니 천유성이 특수 아이템 ‘열혈용사’를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자식.
꼭 요긴하게 쓸 거면서 항상 한 번씩 뺀다니까.
사실 본인도 저렇게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상황을 내심 반기고 있을 거다. 테레사 씨에겐 솔직히 말해 조금 미안한 감정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강요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선택한 거니 괜찮겠지.
어쩌면 순박한 얼굴 뒤엔 관종기가 가득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저 방향은….”
여유롭게 전투를 풀어나가던 클레망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요틀레암 협곡의 서쪽.
그레고리와 겐스케가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받은 단서를 찾기 위해 간 곳이다. 최대한 흔적을 감추고 기밀하게 움직였건만 이토록 빠른 시간에 위치를 간파할 줄이야.
“괜히 그 촉수들이 치를 떨던 게 아니구나. 우리 멋진 오빠와 동료들한테?”
“우리가 밉상 짓을 많이 하긴 했지. 알았으면 이제라도 물러서는 게 어때? 그럼 목숨까지 빼앗진 않을게.”
“어머나. 고마운 제안이긴 한데, 어쩐다? 두 사람의 위치를 찾아낸 건 솔직히 좀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봤자 결과가 바뀌진 않을 거야. 나름 지독한 세계에서 정점을 찍고 귀환한 남자들이거든 그 둘. 희망 따위는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뭐, 그렇겠지.
피로 얼룩진 흡혈귀의 세계에서 무쌍 찍고 귀환한 그레고리나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도 암습이 빗발치는 세계에서 정점을 찍은 겐스케는 귀환자들 중에서도 강자에 속한다.
하지만.
“글쎄. 내 생각에는 너야말로 희망을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우리 쪽 멤버들은 그보다 더 혹독한 집단에서 살아남은 정예들이거든.”
세계관 최악의 난이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에서 잘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에 진짜들만 가능한 영역이다.
“백날 말로 해봤자 소용이 없겠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나중에 확인해보면 되겠지.”
클레망스가 지팡이에 올라탔다.
그리고 하늘 높게 날아올랐다.
[클레망스가 10서클 ‘딥 호라이즌 페인’을 발동합니다!] [라이볼트가 ‘레이나 데이라이트’를 발동합니다!] [시전 시간은 5분입니다.]두 개의 영창이 시작되었다.
무려 대마도사가 몇 분이라는 시간을 할애해 펼치는 대마법.
시전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영창을 끝까지 외우기만 한다면 일격필살을 자랑하는 한 방이 갖춰질 것이다.
‘시간벌이용 인형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건가.’
하긴, 썩어날 정도로 많은 숫자의 언데드가 클레망스를 호위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저렇게 든든한 병력을 믿고 모든 카드를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고 있기에 이쪽으로서도 여유를 갖고 모든 이득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진혁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탐식의 눈’이 대상의 주위에 펼쳐져 있는 보호 결계를 모두 꿰뚫었습니다.] [복사조건의 세부사항이 해금되었습니다.]한 세계를 풍미했던 대마도사답게 혹시 모를 정신 계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아주 겹겹이도 벽을 쳐뒀다.
상대적으로 신체가 약한 마법사의 특성상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버릇 때문이겠지.
그래서 가장 중요한 복사조건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대 결계’를 이용해 빈틈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볼까?
안 그래도 자신이 죽인 자들을 부하로 부릴 수 있는 ‘포가튼 엠파이어’는 너무나 탐이 나는 고유성창이었다.
지금까지 해치운 강적들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테니까.
진혁이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상대했던 각종 네임드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 그리고 거주자들과 신격들을 떠올렸다.
숙련도의 제약이 걸리긴 할 테지만, 종국에는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단을 진두지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태고의 존재들과 그 위에 있는 최후의 적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내 서고의 컬렉션으로 저장해주지.’
어떤 조건이 나온다고 해도 반드시 달성하고야 말겠다.
그렇게 의지를 불태웠는데.
이어지는 상태창을 본 순간, 철혈 같았던 마음이 주르륵 녹아내렸다.
[복사조건: 고통의 대마도사 클레망스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선 그녀와 마찬가지로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녀와 함께 쾌락의 본질에 대해 깨달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클레망스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창과 고유능력 혹은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단, 고통의 크기와 고통을 느낀 대상의 반응 등에 따라 복사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집니다.)]조건을 확인한 진혁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빌어먹을.
꿈인가 싶어 다시 한 번 읽어봤지만 상태창에 적힌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저 변태보다 더 고통을 즐기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보상으로 메드레이가 아니라 복사 프리패스권을 선택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물 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는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수밖에.
진혁이
파치칙!
파츠츠…!
두 개의 스파크가 한데 어우러졌다.
무시무시한 마력의 폭풍은 금방이라도 대기를 꿰뚫고 이쪽에까지 닿을 듯 보였다.
저기에 맞으면 더럽게 아프겠지.
‘별의 가호’를 통한 부활이나 ‘1초 무적’을 사용하지 않고 순순히 고통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공격을 허용해야 하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시련의 탑의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었다.
“계약자! 뭐 하느냐! 빨리 공격하지 않고!”
엘리스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혼자서 수천의 적들을 상대하고 있느라 진혁을 도울 수 없었지만, 지금 무얼 해야하는 게 최선인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캐스팅이 끝나기 전에 공격하는 게 가장 확률이 높아 응.”
프레이도 거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적의 공격이 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지금까지 진혁이 했던 행동들에는 언제나 합리적인 이유가 따라왔기에 이 이상으로 경고하진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끝이다!”
클레망스의 고함소리와 함께 두 개의 빛이 점멸했다.
콰콰콰콰콰콰!
직선 궤도로 달린 스킬이 진혁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콰쾅!
이어진 것은 엄청난 충격파였다.
* * *
“계약자!”
엘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스킬들을 발동하지 않은 채 빛에 가격당한 진혁이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는 진혁의 모습을 확인했던 것이다.
다행이다.
엘리스가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바로 그때.
“아…흥.”
진혁이 검지 마디를 깨물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방금 전 공격에 느껴서는 안 되는 감각을 느낀 것 같다.
“…….”
엘리스가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보지 말아줄래?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젠장.
복사조건이 그런 거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
프레이까지 같은 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졸지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변태로 몰리게 생겼다.
진혁이 부들거리는 손발을 애써 진정시켰다.
이미 낙인이 찍혀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그래도 능력이라도 손에 넣었으니 다행….
……응?
상태창을 확인하던 진혁의 동공이 다시 한 번 커졌다.
[통증에 대한 공감성 수치가 최상위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 [현재 상황에선 ‘고유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한계입니다.]반쪽짜리 목표 달성.
고유성창을 얻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