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7)
67화. 1인 군단 (3)
“……그게 가능해? 아니, 정말로 상대가 그렇게 나올 거라고?”
엘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잔뼈 굵은 상대의 수를 읽는 건 물론, 10년 지기 죽마고우마냥 무혼의 성격까지 꿰뚫어보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마지막에 준비한 히든카드는 엘리스 본인조차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너…… 진짜 뭐야? 인간 맞기는 한 거야?”
엘리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혁이 굉장하다는 건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지만.
이건 어떻게 된 게, 까면 깔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난 그저 이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야.”
11년이란 세월.
그 누구보다 이 세계를 즐겼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이 세계에게 매달렸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익히는 재능충도 아니고.
처음부터 뛰어난 스펙을 갖고 태어난 천골(天骨)도 아닌.
닳고 닳은 고인물.
단지 그뿐이다.
“후우. 진짜 너다운 답변이네.”
엘리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물어봤자 진혁의 정체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네 머리에 쓴 거나 잘 지켜. 그거, 비싼 거다.”
“걱정하지 마. 나도 한 번 손에 넣은 걸 누구한테 빼앗기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피식!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그럼, 조금 이따 보자고.”
작별 인사를 건넨 진혁이 엘리스가 있는 중앙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체스말들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최우측에 위치한 넓은 공터였다.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두두두두두!
돌진용 랜스와 무장한 중갑기병들이 진혁의 양옆으로 도열했다.
“부르셨습니까?”
말을 탄 기사로부터 감정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체스말들과는 달리, 지능까지 추가한 특별 개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아껴 뒀던 ‘나이트’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검은 갑주로 전신을 완전히 감싼 흑마(黑馬) 한 마리가 다가왔다.
‘말을 타는 건 꽤나 오랜만이군.’
진혁이 흑마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말이나 다이어 울프 같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것부터.
불사조나 드래곤 같은 환수까지.
시련의 탑에는 그야말로 수천 가지 ‘탈것’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혁은 현존하는 모든 탈것들을 타 봤다.
오히려 워낙 특이하고 희귀한 것들 위주로 이용하느라, 말을 타는 게 어색할 정도였지.
진혁이 안장 위로 올라탔다.
“히이이잉!”
말이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부드럽고 능숙한 손놀림에, 날뛰던 말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가자.”
진혁이 랜스를 움켜쥐었다.
“알겠습니다.”
흑기사가 즉시 고개를 숙였다.
***
두두두두두두!
300기의 나이트들이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그때.
“그오오오!”
“오오오!”
석상들 사이로 유난히 팔과 다리가 긴 놈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숫자는 약 3천.
하지만, 하나같이 중형급 이상의 강한 놈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본진을 노리는 거군.’
막으러 돌아가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애매한.
딱 그런 숫자의 병력이다.
아마 저것 또한 무혼이 노린 거겠지.
“어떻게 합니까?”
“무시한다. 3천이 빠져나간 만큼, 그만큼 적의 벽도 얇아졌을 테니까.”
진혁이 석상들 중앙에 텅 비어 있는 틈을 가리켰다.
“저희가 파고드는 즉시 양익에 있는 병력이 퇴로를 차단해 버릴 겁니다.”
“그렇겠지.”
알고 있다.
저것이 일부러 열어 준 빈틈이라는 것쯤은.
상대 역시 우리를 안쪽까지 유인한 뒤 가두고, 그사이 엘리스의 왕관을 빼앗는 게 목적이리라.
중앙에 대형급을 배치하고 양쪽에 몸집이 작은 놈들을 배치한 것만 봐도 그 의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건 하나의 대전제가 성립되었을 때 가능한 작전이다.
놈이 보낸 3천의 섬멸대가 왕관을 빼앗는 것이.
‘내가 놈의 목을 쳐버리는 것보다 빠를 것이라는 대전제가.’
두두두두!
진혁이 더욱 말의 속력을 높였다.
어느새 적진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단숨에 돌파한다!”
목청껏 고함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는 랜스가 앞으로 향했다.
[체스말 ‘나이트’가 ‘쐐기대형’을 발동합니다!] [충돌 시 피해량이 200%만큼 증가합니다!]적은 수로도 최대의 파괴력을 만들 수 있는 돌격 대형.
300기의 나이트가 적진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콰콰콰콰쾅!
랜스에 꿰뚫린 석상들의 파편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무게와 속도가 배합된 일점 돌파에, 겹겹이 펼쳐진 방어선이 모조리 박살났으니까.
선두에 선 진혁이 병력들을 갈무리하며 점점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몇몇 석상들이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애초에 네임드급이 아닌 한 진혁의 발목을 붙잡을 순 없었다.
그렇게 1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진혁이 이끄는 나이트들은 적진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석으로 치장된 석상 위에 서 있는 무혼의 모습이 보였다.
‘……웃고 있군.’
입꼬리가 뒤틀린 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얼굴이 꽤나 볼 만했다.
“잘도 여기까지 기어왔구나, 인간이여. 그 적은 숫자를 이끌고 이 몸의 앞까지 온 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되도 않는 헛소리는 그쯤 해. 의도적으로 열어 줬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호오. 함정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지.”
“재밌구나, 허면, 어째서 사지로 걸어 들어온 것이냐?”
“응? 사지? 내 눈엔 한여름 밤 한강 둔치로 보이는데? 봐. 저기 닭꼬치에 맥주도 팔고 있네.”
“……이 상황에서조차 여유를 부리다니. 이쯤 되면 내가 널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생각마저 드는구나.”
무혼이 천천히 양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뭐, 됐다. 비쩍 마른 소녀에게 왕관을 맡기질 않나, 고작 그 숫자를 데리고 이 안까지 오질 않나……. 더 이상 상대할 가치는 없을 터.”
그리고 그대로 손바닥을 하나로 모았다.
“그만 끝내 주마.”
쿵! 쿵! 쿵! 쿵! 쿵!
양 옆에 있던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리스의 다비드상과 대예적금강(大穢跡金剛)까지 소환해 뒀군.’
천수천안관음과 마찬가지로 꽤나 강력한 네임드급 몬스터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콰앙!
콰아앙!
나이트들이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박살나기 시작했다.
철갑주가 반으로 쪼개지고 랜스가 산산조각 났다.
“푸하하하! 시바 세계에는 좀 더 제대로 된 놈들이 없는 것이냐!”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대예적금강과.
“흐음. 완벽한 인체 비율을 갖고 있는 인간도 보이질 않는군요.”
적의 신체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다비드상.
전투광과 변태가 한자리에 있다.
이것도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인데…….
과연, 보유한 마력 양 하나만큼은 엄청나긴 하네.
저토록 무지막한 놈들을 죄다 부릴 수 있는 걸 보면, 마나통이 목구멍까지 차 있는 게 틀림없었다.
‘보스는 보스라 이건가.’
하지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얼굴에선 조금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미소를 머금은 채 무혼을 바라봤다.
“미치기라도 한 것이냐? 어째서 웃는 거지?”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걸 두 가지만 짚어 줄게.”
진혁이 첫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먼저, 네가 보낸 석상들. 꽤나 자신 있는 놈들로 골라 보낸 것 같은데…… 맞냐?”
“그렇다. 정예들로만 추려서 보냈지. 어떤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놈들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뭐라고?”
“내가 왕관을 맡긴 녀석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놈이라고.”
진혁의 말이 끝난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콰!
저 멀리서 붉은 선혈이 솟구쳤다.
“이런 잡것들이! 감히. 누구 머리에 손을 대려고 해?”
엘리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엘리스가 Lv?? ‘선혈의 비’를 발동합니다!]핏줄기로 만든 수백 개의 작살들이 하늘을 빼곡히 뒤덮었다.
숫자는 많지만,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마력이 실려 있었다.
햇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대신 먹구름이 검게 드리웠다.
“죽어.”
엘리스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걸로 끝.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핏줄기에 석상들이 모조리 박살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융단 폭격이 펼쳐졌다.
그마저도 마력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서 저 정도지 만약, 본신의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있으면 이 일대 자체가 초토화되었으리라.
“뭐, 뭐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혼이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일부러 집단전이 아닌 대인전에 특화된 놈들만 선별해서 보냈건만.
백발의 소녀 앞에선 종이 병사에 불과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저 중에는 네임드에 해당하는 석상까지 섞여 않은가?
그런데, 대체 어떻게…….
무혼이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는 사이.
진혁이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를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틈을 열어 준 것. 그거야말로 내가 노린 거였어.”
발동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지만, 때마침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세계의 기억’을 불러옵니다.]진혁이 고유 능력과 스킬들이 저장된 대도서관을 소환했다.
우우우웅!
융합의 재료가 될 능력은 ‘혈마기’와 ‘만다라’.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서로 다른 두 개의 능력을 융합해 이 싸움을 반전시킬 능력을 만든다.
[고유 능력 ‘혈마기(血魔氣)’와 ‘만다라(曼茶羅)’가 융합합니다!] [융합에 성공하셨습니다!] [스킬 ‘이중 첩자(S)’를 획득하셨습니다!] [발동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랭크가 S→A로 하향됩니다.] [이중 첩자]입수 난이도: A
내용: 적들 중 일부를 세뇌시켜 서로가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게 할 수 있습니다. 단, 이중 첩자의 대상은 보스 몬스터가 부리는 ‘소환수’여야 하며, 소환수를 부리는 ‘보스 몬스터’와의 거리가 5m 이내일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마워.”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사거리까지 끌어들여 줘서.
덕분에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Lv1 ‘이중 첩자’가 발동됩니다!]파츠츠츠!
진혁의 몸을 중심으로 투명한 파장이 뿜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오오오!”
촘촘하게 펼쳐져 있던 포위망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진혁과 나이트를 노리던 검과 창들이 바로 옆에 있던 동료에게 향한 것이다.
퍼억!
카가가각!
동시다발적으로, 거의 절반에 이르는 석상들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네임드급에 해당하는 석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체 비율 좋아하네. 빌어먹을 서양의 애송이 따위가!”
대예적금강이 다비드상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다비드상의 얼굴에 보기 흉한 금이 죽죽 그어졌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닥쳐라! 처음부터 네놈의 그 기생오라비 같은 면상도, 잘 빠진 복근과 허벅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이중 첩자’의 능력에 당한 이상,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
지금 대예적금강의 눈엔 다비드상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일 테니까.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전장.
“빌어먹을. 이걸 위해서 일부러 연기를 한 거였나.”
무혼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꽉 깨물었다.
“함정에 함정을 팠지.”
머리 좋은 놈을 잡으려면, 한 번 꼰 걸로는 안 되더라고.
그래서 조금 더 양념을 추가했다.
아무리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도 걸릴 수밖에 없도록.
그 왜, 구라의 꽃은 역구라란 말도 있잖아?
어찌 됐든…….
이걸로 상황은 대등해졌다.
“지금부터 2라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