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71)
671화. 초대받지 않는 손님 (2)
단순히 변장하거나 마법을 부린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불길한 짓을 벌인 게 틀림없었다.
여전히 입 부근 외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상대가 겐스케가 아니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
천유성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을 보다가 순간 분노를 참지 못했다.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그 고인물 놈도 아닌 다른 이에게?
인정할 수 없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오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온….
오롯이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온.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고유성창 ‘백야(白夜)’가 발동됩니다!]하얀 눈보라가 휘날리며 천유성의 몸이 한 자루의 검처럼 예리하게 변했다. 전광석화처럼 사라진 신체.
한 줄기 선풍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추혼검’의 10초식이 펼쳐지며 검로를 예측하기 힘든 검들이 쏟아졌다.
전후좌우.
허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검이 최강의 검격이 되어 덮쳐왔다.
그런데.
콰아앙!
태산조차 베어버릴 기세로 휘둘러진 검이 그대로 가로막혔다.
제대로 된 성유물이나 이름 있는 아이템도 아닌.
심지어 스테이크 썰 때 쓰는 나이프도 아닌 디저트용 스푼으로.
카가각…!
보랏빛 강기가 덮인 스푼은 더 이상 스푼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었다.
“진정해. 너랑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단 둘이서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거든.”
“날… 알고 있나?”
“한국대 의대생이며 한국 검도 아마추어 대회에서 2회 우승. 취미는 길냥이 돌보기에 과거 티모대령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강진혁을 넘어서기 위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지. 아, 그 외모에 모쏠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어.”
“……누, 누가 모태솔로라는 거냐!”
“에헤이. 너에 대해서라면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 괜히 발뺌하려고 하지 마. 물론, 일일이 진위 여부를 확인하며 노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긴 한데, 그보다는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건설적인 이야기라고?”
천유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적이 싸우는 것 대신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게 보통 의문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하는 성질대로 검부터 휘둘러댈 수도 없다.
백야 속에서도 저토록 압도적인 위용을 뿜어내는 적을 상대로 선공을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틈을 먼저 찾아야 해.’
고유능력이 무엇인지. 어떤 식의 패턴으로 싸우는지 등등.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찾아야 했다.
천유성이 검을 회수했다.
겐스케로 위장했던 남자가 싱긋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미소로.
“좋아. 고분고분해서 좋네. 우리 진혁이랑 다니면서 성질 죽이는 법은 제대로 터득했나봐?”
“그 망할 자식이랑 붙어 있으면 싫어도 인내심이 붙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하하 맞는 말이야. 그 녀석이 인성은 좀 글러먹긴 했지. 그래서 말인데….”
남자가 여전히 미소를 가득 띄운 채 천유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고인물을 이기고 싶다는 소망. 나와 함께한다면 내가 들어줄게.”
너무도 짧고 간단한 문장.
허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말 그대로….
……천유성이란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찌르는 말이었으니까.
“네놈이… 강한 건 알겠다. 하지만, 그딴 사탕발림으로 내 자존심을 건드는 거라면….”
스릉!
검집에 잠들었던 요도 ‘류화’가 녹색 강기를 흩뿌리며 뽑혔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흉한 기세.
동귀어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여과없이 드러났다.
“워워. 진정해. 힘을 합쳐서 뒤통수를 치자느니 하는 헛소리나 하자고 하는 게 아니니. 난 너를 그 고인물과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도록. 어쩌면 그 녀석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성장시켜줄 수 있어. 순순하게 네 힘만으로 그 녀석을 꺾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소리야.”
“…….”
천유성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었다.
확실히….
눈앞에 있는 남자가 가진 힘이라면 최소 진혁과 동급.
‘……아니, 그보다 몇 단계는 위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태고의 존재와 주신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존재보다도 이질적이고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광기와 집념까지 느껴지는 마력은 단순히 노력과 재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넘어선 지경이었으니까.
그런 자가 하는 말이라면 충분히 신빙성은 있을 터.
미동조차 없던 호수에 작은 잔물결이 일어났다.
“사실, 인류의 구원이나 탑에 존재하는 온갖 부귀영화는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 아니잖아.”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단 하나.
스스로의 손으로 최강의 라이벌을 쓰러뜨리고 자신을 증명하는 것.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었다.
속 안에 있던 강렬한 욕구가 꿈틀댔다.
“압도적인 강함과 승리. 나 역시 그 누구보다 그게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와 함께 해 널 이해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니까.”
남자가 뱀의 혓바닥을 더욱 달콤하게 놀렸다.
부우웅!
천유성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벌렸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은 천유성이 다시 한 번 투지를 불태웠다.
“아쉽네. 그래도 언제든지 생각나면 말해줘. 아, 겐스케는 네가 처치했다고 모두에게 말해도 좋아. 나와 대화해준 보상… 이야.”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듯, 남자가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천유성이 멀어져가는 남자를 보며 참았던 호흡을 쏟아냈다.
격렬하게 들석이는 가슴.
고작 몇 분간 대화했을 뿐인데도 기력이 모조리 뽑혀나간 기분이다.
‘파문을 일으킨 정도로 충분하다는 건가….’
다시 보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너무도 여유로워 보이는 웃음에서 미래의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으니까.
문제는.그 때는 지금보다 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해올 게 틀림없다는 점이다.
뿌드득.
천유성이 이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절대로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 다짐하면서.
같은 시각.
천유성을 떠난 남자가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흐음.”
남자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광범위한 감각에 무언가 감지되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나무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구경꾼을 발견했다.
서정희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온 스윙뱃의 리더 잭 이든을.
“……흐읍.”
이든이 양 손으로 입을 감싸쥐었다.
거대한 독사 앞에 선 생쥐처럼. 그저 상대에게 발견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남자가 손가락 끝으로 턱을 톡톡 건드렸다.
“재밌는 생각이 났네.”
숲속에서 만난 작은 생쥐.
이든을 이용한다면 한 가지 변수 정도를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 * *
쿠웅!
쿵!
방패로 전신을 감싼 기사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최강의 방어스킬을 모조리 박살내버리고 파고든 한 줄기 섬광.
그 빛은 언데드 소환수들을 전부 관통해버린 걸로도 모자라 클레망스의 실드까지 꿰뚫어버렸다.
“쿨럭!”
클레망스의 두 눈에 붉은 핏줄기가 돋아났다.
[대량의 마력이 보충됩니다!]통증을 마력으로 치환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건 좋아하기엔 지나치게 과한 충격이었다.
뇌수까지 불태워버리는 격통은 아드레날린의 허용치마저 초과해버렸으니까.
“고통을 좋아하느니 뭐니 하더니 너도 진짜 광기는 아닌가보네.”
다른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면서 언제나 우위에 있던 강자.
그렇기에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쫓겨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감히 누구 앞에서 그 딴 말을 지껄여!”
클레망스가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클레망스가 ‘포가튼 엠파이어’ – ‘신성전쟁’을 발동합니다!]과거 제국과 마왕의 모든 병력들이 전면전을 치룬 신화 속 대전쟁.
하늘과 땅 그리고 물에서까지.
신화를 장식한 대영웅들과 신 그리고 마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와는 다르게 전원이 각자가 전성기 때 사용하던 성유물과 완전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클레망스의 지팡이 끝에 달린 보석에 균열이 일어났다.
여태까지 모은 통각 마법을 영혼 끝까지 사용하려는 것이다.
[클레망스가 ‘검은 요정향’을 발동합니다!]한쪽에서는 다수의 요정들로 만든 별동대가 운용되었다.
함부로 죽일 경우 패널티를 받을 수 있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 진혁의 공격 루트를 제한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엄청난 수의 대군이 시야를 검게 물들였다.
역시나 저 고유성창을 깨기 위해서는 클레망스의 본체를 처리해야만 한다.
“계약자!”
“엄호할게 응.”
진혁이 능력을 해방한 걸 본 엘리스와 프레이가 좌익과 우익을 맡았다.
전력을 분산시켜 시선을 끌고.
중앙에서 진혁이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개벽의 계시록 ‘블러드 이클립스’가 발동됩니다!] [인형놀이 ‘스피어 댄스’가 발동됩니다!]진조의 혈계 마법이 우측의 지형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좌측에서는 프레이의 인형들이 화려한 검무를 펼쳤다. 두 개의 창이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언데드 몬스터 사이를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앙!
서걱! 콰지직!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주는 든든한 아군.
‘좋아,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진혁이 코인거래소에서 구매한 민초맛 츄파x스를 꺼내물었다.
깊게 흡입한 다음에 숨을 내뱉으면 녹색 연기가 나는 신제품이었다.
[컨셉에 충실함으로 인해 공격력과 공격속도에 10%만큼 가산점이 추가됩니다.]타타타타타탕!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 * *
탑의 정상을 정복한 최강의 랭커.
그런 진혁이 권총은 물론 다양한 고유성창들까지 사용해대니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대륙을 유린했던 기사단이 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고. 제국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상위 마족과 마왕들 역시 탄환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
공격 반경을 제한하기 위해 뿌려둔 요정들 역시 날개만을 기가 막히게 맞춰 떨어뜨리는 것으로 회피해버렸다.
화력이면 화력. 속도면 속도. 거기에 곡예에 가까운 정확도까지.
“그 대관식인지 뭔지만 없으면 할 만하다고 했는데….”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버린다해도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클레망스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사라졌다.
어차피 비참하게 패해 죽을 바엔 차라리….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클레망스가 주인 없는 그림자 묘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또옥. 또옥.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자 묘목이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주인 없는 그림자 묘목’의 기생화가 시작됩니다!]클레망스의 몸이 주인 없는 그림자 묘목의 중심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쩌저적! 쿠쿠쿠쿠쿠!
나무넝쿨들이 대마도사의 몸을 단단히 속박한 뒤,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질 리가 없어. 고작 탑을 등반하는 놈 따위에게… 제국을 멸망시킨 이 몸이 패배할 리가 없다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