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73
673화. 이름 없는 대마도사 (2)
진혁이 당당하게 외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둘의 반응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안?”
“네가… 우리한테?”
무혼과 펜다리엘이 불신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우리가 첫인상이 안 좋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뭐,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신념이나 목적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 케케묵은 과거 일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보자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인 거냐?”
“난… 네 손에 죽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단순히 케케묵은 과거 일이라 치부한다고?”
감정이 한 단계 더 뜨거워졌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크흠!
진혁이 목을 가다듬으며 준비해뒀던 카드를 꺼냈다.
“물론, 맨입으로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야.”
낚시에는 미끼가 중요한 법.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근사한 지렁이를 매달아놨다.
진혁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만약 너희 의지대로 날 돕는다면…. 너희가 지배하던 층계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해주겠어.”
“……!?”
“……!!”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매서웠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미 한 번 죽은 몸뚱어리라도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터.
과거에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터전을 되돌려준다는 제안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시간으로 치면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두 보스 몬스터의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온갖 경우의 수와 상상의 나래들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 약속, 확실히 지킬 수 있는 거냐?”
처음으로 침묵을 깬 건 무혼이었다.
“당신, 설마…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 탑에서 내게 남은 것뿐이라곤…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곤 그 층계밖에 없단 말이다!”
무혼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건….”
무혼의 말에 펜다리엘이 말 끝을 흐렸다.
홀로 남겨져 있던 어둡고 좁은 방. 희망 따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밑바닥에서 외로운 세월을 보냈었다.
언제나 착취당하고 핍박받던 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삶.
그저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줄 존재가.
그걸 마침내 이루게 되었건만. 그 모든 걸 빼앗은 존재가 다시 한 번 그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겠노라 제안하고 있다.
으득.
복수라는 소원과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
저울은 이미 확실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너…와 함께하겠어.”
[과거 3층의 주인 ‘무혼’이 복종을 맹세합니다.] [과거 4층의 주인 ‘펜다리엘’이 합류합니다.]두 보스 몬스터가 진혁의 앞에 섰다.
***
“잔챙이 따위가….”
미꾸라지처럼 날뛰는 데스나이트로 인해 클레망스가 잔뜩 약이 올랐다.
제법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면전을 펼치기보단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승부를 피해버리는 탓이었다.
콰콰쾅!
콰콰콰쾅!
“히이잉!”
넝쿨 줄기를 피해 빠르게 측면을 따라 이동하는 데스 나이트.
“키에에!”
“크오오!”
언데드 병력이 포위망을 좁히려 했지만,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유령군마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목숨을 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술래잡기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경험 덕분이었다.
물론, 그걸 처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귀에서 앵앵거리는 모기마냥 짜증이 솟구칠 수밖에.
“크아아아!”
콰콰콰콰콰콰!
클레망스가 일부러 요란하고 화려한 스킬을 사용했다.
뿌옇게 일어난 연기 속에서 빈틈을 노출한 채 상대가 접근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데스 나이트는 일정 거리를 둔 채 절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
명백한 시간 끌기.
그걸 알고 있는데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건, 티본이 철저하게 방진이 취약한 지점만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치했다간 진조나 호문쿨루스 쪽이 위험해진다.’
나름대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전장이다.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저 둘이 진혁에게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대전제였다.
그렇다면….
마력 소모가 심하더라도 제대로 된 한 방을 사용해야만 하리라.
[클레망스가 ‘흑색 왜성’을 발동합니다!]검보랏빛 구체가 나타났다.
공간을 통째로 도려내는 스킬이 계산해둔 티본의 움직임과 맞물려 떨어졌다.
이제 좌표대로 흑색 왜성을 쏘기만 하면 될 터.
‘끝이다.’
클레망스의 입이 기괴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쿠쿠쿠쿠쿠!
난데없이 엄청난 수의 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들은 뭐지?”
클레망스의 시선이 새롭게 나타난 적을 향해 움직였다.
***
돌로 만들어진 석상들.
육중한 방패로 무장한 병력이 진형을 갖췄다.
“아름답지 못한 외형을 가진 자들이로군요.”
“강한 적을 박살 냈을 때만큼 보람찬 일은 없지.”
다비드상과 대예적금강을 비롯해 무혼의 친위대 격인 네임드 몬스터들이 모조리 모였다.
“일어…나라. 내 아이들아.”
한쪽에서는 펜다리엘이 움직였다.
“크르르.”
“끄륵…크우오아아아!”
좀비들로 이루어진 대군이 행진을 시작했다.
양산으로 이루어진 최하급 몬스터들이었지만, 숫자 하나만큼은 클레망스의 언데드 군대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클레망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도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적의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마력이었다.
‘포가튼 엠파이어.’
자신의 고유성창이다.
아니,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아 온 고유성창보다 조금 더 이질적이고 완성도 높은 새로운 능력이 펼쳐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
그 독한 습득 과정들을 통과할 수 있는 미친 놈이 자신 말고 또 있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없애버릴 순 없었다.
클레망스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진혁 역시 새로 얻은 고유성창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고유성창의 효과로 ‘식물의 씨앗’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뿅! 뿅!
바닥에서는 식물들이 자라났다.
태양의 기운을 머금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저마다 다양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앵두 잘 있었어?”
진혁이 반갑게 빨간 식인 식물을 바라봤다.
오래 전 중화 길드의 거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주역.
마트를 송두리째 날려버린 귀염둥이를 보고 있자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태양의 성역’으로 인해 ‘솔라 에너지’가 최고조의 충전율을 확보합니다!]“키에에에!”
“케에에!”
식물들의 표면에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셋으로 수만의 대군을 상대해야만 했던 불리한 상황.
하지만 일방적으로 몰리던 싸움은 끝났다.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대폭 늘었네.’
든든한 아군을 확보한 진혁이 손마디를 꺾었다.
“역시, 계약자구나.”
“승률이 42.55%까지 올랐어. 응.”
엘리스와 프레이 쪽도 싸움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리 압도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제한된 마력 하에 저 많은 수의 병력을 감당하긴 벅찼을 터.
그런데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틈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콰앙!
진혁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
클레망스가 즉각 반응했다.
동공이 검게 물들며 묘목의 넝쿨들이 지면을 갈랐다.
콰콰콰콰콰콰!
천재지변을 방불케 하는 광역기. 자신의 언데드 병사들까지 함께 쓸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진혁이 요리조리 몸을 날렸다.
콰콰콰쾅! 퍼어엉!
아슬아슬하다.
클레망스라는 대마도사가 어떤 식으로 적을 사냥하는지. 그리고 포위망을 구축하는 습관과 타이밍을 외워둔 게 빛을 발했다.
거리가 한 번 더 좁혀졌다.
안전한 영역을 확보한 뒤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대마도사 입장에서 근접계 딜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건 꽤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디 계속해서 피하기만 할 수 있는지 보마!”
[클레망스가 특수 스킬 ‘공허의 틈’을 발동합니다!] [라이볼트가 특수 스킬 ‘빛의 성흔’을 발동합니다!]두 개의 빛이 한 점으로 모였다.
대마도사의 마력과 태고의 권능 그리고 정령왕의 가호가 합쳐진 섬멸 마법이다.
표적을 단일 개체로 한정한 대신 속도와 위력을 극대화한 필살기.
그 위로 조금 전에 완성시켜둔 흑색 왜성이 떨어졌다.
쿠쿠쿠쿠쿠쿠!
[인과율이 뒤틀립니다.]맞았다간 그대로 끝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게 이미 라이볼트의 성흔이 목표를 포착한 상황이었다.
진혁이 손등에 떠오른 낯선 각인을 보며 혀를 찼다.
상쇄까지는 무리더라도….
어느 정도 위력을 최소화시키는 수밖에.
[고유성창 ‘잔류월광’이 발동됩니다!]진혁의 분신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고유성창 ‘크로노 스피어’가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세라핌’이 발동됩니다!]다수로 나뉜 진혁의 총구에서 거대한 빛이 점멸했다.
펼쳐진 날개가 축이 되어 탄환의 위력을 강화시켰다.
거대한 빛줄기와 다수의 빛줄기들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이어진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이었다.
하얀색 얇은 빛줄기들이 저마다의 파동을 만들며 퍼져나갔다.
욱씬! 욱씬!
전신에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거의 다 막았다.
하지만, 전부 다 막은 것은 아니었다.
쪼개진 마력의 파편들이 진혁의 주위로 쏟아졌다.
메인 공격은 아니더라도 위협적인 건 변함이 없다.
그 순간.
퍼퍼퍼퍽!
“크아아!”
“쿨럭!”
무혼의 석상병들과 펜다리엘의 좀비들이 방패가 되었다.
진혁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린 병사들의 몸이 그대로 보라색 화염에 휩싸여 타들어갔다.
“빌어먹을 뭐 저리 강한 거냐? 내 부하들이 1초도 버티지 못하다니.”
“내 쪽도 마찬가지야. 우릴 몇 층으로 소환한 거냐 인간?”
무혼과 펜다리엘의 표정에서 절망감이 뚝뚝 묻어나왔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층계.
나름대로 한 층계를 지배하면서 힘에 관해서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저 괴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나름 업그레이드를 시킨 건데도 어쩔 수 없나 보네.’
진혁이 절반 가까이 사라진 병력을 바라봤다.
역시나 탑의 초반부의 보스로는 상층부와 싸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다수를 갈아넣으며 벌어준 1초 1초가 쌓여간다.
앞으로 한 번.
좁혀진 거리만큼 라이볼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라이볼트를 이쪽으로 되돌려야만 한다.
“어딜!”
진혁의 의도를 깨달은 클레망스가 다시 한 번 스킬들을 난사했다.
우우우웅!
하늘이 검게 물들며 수백 개의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유성을 소환하고 공허의 소환수들을 불러오는 고서클 마법들이 연이어 발동되었다.
쿠쿠쿠쿠쿠콰콰콰콰!
쏟아지는 스킬들.
그 지옥 같은 폭우 속에서 한 줄기 바람이 가로질렀다.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돌파한 진혁이 라이볼트의 몸에 박혀 있는 파편 조각 앞에 도달했다.
“크르르….”
라이볼트의 검붉은 눈이 진혁을 꿰뚫어봤다.
파치칙!
코앞에 다가온 적을 제거하기 위해 빛의 정령 마법이 재차 모였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이번에 실패한다면 뒤는 없다.
“우와아아아!”
진혁이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