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1인 군단 (4)
이곳에 온 플레이어는 단 한 명뿐.
허나, 고작 한 명이 수만에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잎’이 발동됩니다.] [부패의 효과가 가미된 석상들이 빠른 속도로 약화됩니다.]클라이맥스를 가속화하기 위해. 마지막 카드까지 사용했다.
검게 물든 석상들의 표면.
무적을 자랑하던 병력들이.
불패를 자랑하던 부하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무혼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녀석이 타고 있는 석상 또한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녀석을 보호해 주던 수많은 석상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빴으니까.
무엇보다 소환수들이 성가신 거지, 무혼 본신의 힘은 일개 네임드 몬스터에도 미치지 못했다.
[Lv3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쿠쿠쿠쿠쿠!
얇은 얼음벽이 무혼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제부터 재밌어지려 하는데, 벌써 퇴장하려고 하면 쓰나?
적어도 결말은 보고 가야지.
“인정할 수 없다. 소환수들의 명령 체계에 간섭하는 능력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단 말이다!”
무혼이 고함을 질렀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목소리가 떨린다.
하긴, 녀석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
“현실 부정을 하는 거야 자유지만, 그럴수록 너만 추해지는 거야.”
진혁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손끝을 타고 황금색 운무가 일렁였다.
‘만다라’가 발동되려 하는 것이다.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걸까?
무혼이 다급히 석상의 머리에서 뛰어내렸다.
“막아라! 저 녀석을 막아!”
어떻게든…….
어떻게든 만다라가 완전히 개화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그오오오!”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석상이 양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진혁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콰아아앙!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하지만 석상이 내려친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궁지에 몰리면 부하에게 떠넘기고 도망만 치려는 습성 또한 여전하구나.”
하늘 높게 솟구친 몸.
어느새 진혁의 손엔 ‘빙하조형’으로 만든 활이 쥐어져 있었다.
물론, 화살은 얼음이 아니다.
완전히 만개한 만다라의 빛으로 만든 금색 화살이 당장이라도 시위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빙하조형(氷河造形)과 만다라(曼茶羅)가 공명합니다!] [‘파마(破魔)의 화살’이 발동됩니다!]한 줄기 섬광이 뿜어졌다.
콰콰콰콰콰콰콰!
직선으로 가로지른 빛이 무혼의 심장을 꿰뚫었다.
치이이익!
가슴 한복판에 생긴 바람구멍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빌……어먹을!”
무혼이 허무함과 절망감이 뒤섞인 얼굴로 상처를 내려다봤다.
허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 어떤 생명체라도 심장을 잃은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비틀거리던 무혼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3층의 보스 몬스터 ‘무혼(無魂)’이 쓰러졌습니다!] [시련의 탑 4층이 개방됩니다!] [다음 층을 정복할 때까지 남은 시간: 89D 23h:59m:59s]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하늘에 황금색 상태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드디어 3층을 정복한 것이다.
게다가 레벨도 한꺼번에 5개나 올랐다.
갈수록 경험치 상승폭이 커지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스탯이야 마력에 투자하면 되겠고…….”
다음은 이번 레이드의 보상을 획득할 시간이다.
진혁이 멈춰 버린 석상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무혼의 시체 앞에 떨어져 있는 상자가 보였다.
“이건?”
진혁의 동공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상급 성유물이나 3층의 보스 몬스터를 처리한 뒤 얻을 수 있는 보물의 등급을 나누는 7가지 색깔을 일컫는다.
그런데.
‘설마, 주황색 등급이 나올 줄이야.’
10층 이내에서 나오는 등급은 전부 ‘빨강색’.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주황색’ 등급이었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홀로 사냥을 했을 때 가장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독식’의 효과 때문이겠지.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역시, 가장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은 바로 고생에 대한 보상을 확인할 때다.
[‘알 수 없는 보물 상자’가 열립니다!]눈부신 빛과 함께, 상자 안에 있는 아이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총 7개입니다.] [핑크 다이아몬드 4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우선 거점 지정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말랑말랑 낱알 1kg’을 획득하셨습니다.] [‘천연수 50L’를 획득하셨습니다.] [‘솔라의 씨앗’ 5마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불을 토하는 달팽이’ 3마리를 획득하셨습니다.]붉은색 상자였으면 기껏해야 3개 정도 들어 있었을 터.
과연, 주황색 등급은 주황색 등급이다.
‘이야, 두둑하게도 줬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보상이다.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헉?”
마지막 아이템 목록을 확인한 진혁은 터져 나오는 함성을 가까스로 삼켜야만 했다.
[태양을 가리는 돌]하하.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무혼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게 나왔다.
‘100번 잡으면 1번 나올까 말까 한 확률로 알고 있는데.’
미쳤다.
‘독식’의 효과가 엄청나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거 어쩌면…….
‘4층 공략하는데도 꿀이란 꿀은 잔뜩 빨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진혁은 머지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계획을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
[4층이 개방되었습니다.]시련의 탑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에게도 이 메시지가 전해졌다.
“뭐, 뭐야?”
“4층이 열렸다고?”
“보스를 잡았단 말인가!”
탑에서 활동하던 플레이어들이 기함했다.
그토록 애를 먹었던 3층의 보스 몬스터가 쓰러지다니.
지금까지 계속해서 실패했던 걸 생각하면,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심지어 지금 대형 길드의 스케줄 또한 텅텅 비어 있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을 본 이상 언제까지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정말로…… 성공했군요.”
올림포스 길드의 패트릭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가면을 쓴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조합을 갖춘 공격대조차 보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의심은 지금 이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것도 솔플로 말이죠.”
유럽의 랭커 마리아의 얼굴 또한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압도적인 실력 차에서 오는 자괴감.
그 두 가지 감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영웅의 탄생이구만.”
“그래도 다음 층을 공략할 때까지 90일이란 시간을 벌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번엔 착실하게 준비해야겠어.”
다른 랭커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반면, 못마땅한 기색을 잔뜩 머금은 텐웨이는 세차게 혀를 찼다.
“다행? 다행이라고? 멍청하긴! 이번 레이드의 성공이 과연 우리한테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앞으로 저 녀석이 조회수를 몽땅 빨아먹을 텐데?”
“……!”
“…….”
모두가 멈칫했다.
확실히, 그 말 대로다.
현재 커뮤니티는 온통 언노운이란 플레이어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체적인 보스 레이드에 관한 하이라이트 영상이 올라온 뒤엔 그 현상이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탑신병자: 천수관음 저거 오지게 센 네임드 아니었음?
-동학개미운동: 괜히 별명이 믹서기겠냐? 가는 족족 갈려 나갔잖어.
-내게 축구는 살인이다: ㅇㅇ. 그래서 대부분의 공격대도 저놈 피하려고 다른 쪽으로 갔음.
-킹덤3: 와. 근데 그걸 개박살낸 거야? 그것도 혼자서?
-봉무게는 조상님이 들어 주냐?: 게다가 보스몹 잡을 때 체스말들 소환수로 부린 것도 미쳤더라.
-새영언환: 앞으로 채널 ‘언노운’ 많은 구독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언노운이 미래다!
-백수 위에 트수: 5252 믿고 있었다구!
-고인물만 보면 짖는 개: 왈! 아르르르! 왈왈왈! 와르르르! 깨갱!
-다람이S2: 대형 길드란 놈들은 홍보만 잔뜩 하고 정작 실속은 없던데ㅋㅋㅋ
-시바는 시바시바: 차라리 길드 전부 언 형한테 넘기는 게 어떰?
융합 스킬이나 엘리스의 존재 등은 진혁이 편집해 둔 터라 개연성 부분이 미흡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영상은 모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인기다.
이쯤 되면 경계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흠. 우리 입지가 약해질 수 있겠군.”
“마냥 좋아할 게 아니었네요.”
웅성거리는 실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안도의 한숨은 이내 시기와 질투로 변질됐다.
바로 그때.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테레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가 말이지?”
텐웨이가 즉각 되물었다.
“저희는 모두 저분 덕분에 살아남은 거예요. 솔직히 말해 여기 있는 분들 중에 그 누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죠? 아직 실전 경험도 제대로 쌓지 못한 신입들을 데리고 어느 분이 저 지옥에 갈 수 있냔 말입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는커녕 자기들 밥그릇을 걱정하는 게 먼저라니.
물에 빠진 놈들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꼴이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대놓고 비난하고 있는 텐웨이였다.
“하. 꼴에 지인이라고 저 녀석 편을 드는 건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테레사가 선을 그었다.
“그리고 만약 나머지 분들도 모용황 씨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 거라면……. 저는 더 이상 이 연합의 일원으로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서, 설마…… ‘회담’을 탈퇴하시겠다는 겁니까?”
깜짝 놀란 패트릭이 다급히 되물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전 세계에서 날고 기는 랭커들과 유망주들조차도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려고 하는 게 바로 이곳이다.
당연히 아무나 뽑지도 않을뿐더러 부와 명예가 보장된 만큼, 나가려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테레사의 표정은 확고했다.
“그 정도로 믿는 겁니까? 그 남자를?”
“네. 믿고 있어요.”
그 누구보다 믿고 있다.
만약, 탑의 끝을 보게 될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그리고 그 사람과 나머지 모두를 저울에 올려야한다면.
당연히 골라야 할 쪽은 하나 뿐이라고.
테레사는 확신했다.
***
같은 시각.
보상을 모두 챙긴 진혁은 시련의 탑을 나왔다.
본격적으로 4층에 가기 앞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으니 사치 좀 부려 볼까?’
5성급 호텔을 잡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 뒤 풀코스 식사를 즐겨야겠다.
‘BJ 했을 때는 월세에 공과금도 내다보니 하루 한 끼 챙겨 먹는 것도 힘들었지.’
그나마도 먹방 때 쓸 음식들을 시키기 위해 이틀을 쫄쫄 굶은 적도 부지기수였다.
허나, 더 이상은 아니다.
조금 전에 얻은 핑크 다이아몬드 하나만 팔아도 족히 3억은 벌 수 있었으니까.
생전 처음 제대로 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기대에 진혁의 위가 요동쳤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우우웅!
안주머니에 넣어 놨던 스마트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발신자: 유연화]화면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한 진혁이 통화 표시를 드래그했다.
“여보세요?”
“오빠……!”
유연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게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