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81
681화. 귀환자 메드레이 (3)
-정신이 없어지면 자리에서 빠져나가 이걸 사용해 주세요.
진혁이 건넨 건 오래된 토큰이었다.
언노운과의 전쟁 이후 수리부엉이에게서 받은 운영자와의 비상 연락망. 여기엔 외부에서 활동 중인 아군 측 운영자 한 명을 불러올 수 있는 특수 능력이 붙어 있었다.
페시스는 진혁으로부터 이 토큰을 받은 후 타이밍을 엿보다 즉시 자리에서 이탈해 협곡 깊숙이 파고들었다.
정확히는 그레고리와 겐스케가 네크로노미콘의 단서를 찾던 바로 그 장소였다.
“이쪽입니다.”
페시스가 신중하게 표식들을 따라갔다.
길을 읽어내는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이야. 확실히 냄새가 나.”
1인2닭.
이제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함께 하기로 한 여성 운영자가 페시스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협곡에서 가장 중요한 제1차 목적.
그것은 요정들이나 정령수들을 구하는 것도. 협곡이 어둠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혹은 라이볼트나 나머지 정령왕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도 아니었다.
네크로노미콘의 핵심 단서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책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모두가 그걸 간과한 채 당장 눈앞에 닥친 적들만 상대하고 있으니 누가 진짜 유리한 지를 모를 수밖에.
전투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페시스와 2닭은 네크로노미콘의 핵심 단서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좋아.’
진혁이 퍼스트 블레이드를 쥐었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든과 마도서를 없애는 거지만, 그게 리스크가 높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것도 나쁘지 않다.
촤촤촤촤촤촤!
길게 나뉜 칼날이 허공 위에 떠 있는 함선과 행성들을 향했다.
우우웅!
곧바로 실드가 펼쳐졌지만, 보랏빛 성유물의 쇄도를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직경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함선들이 하나씩 추락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현실감이 없었다. 그게 단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더더욱 어이가 없었고.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클레망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전까지도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뽐내온 진혁이었지만, 조금 전을 기점으로 족쇄라도 풀린 듯 몇 배는 더 강력해진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눈으로 따라가는 것보다 더 많은 함대들이 잘려나가며 부서진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키에에에!”
“케에에엑!”
언데드 병력들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여러 개의 고유성창들을 동시에 발현시키는 걸로도 모자라 검술과 근접 격투 마법과 총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진혁은 천재지변 그 자체였다.
일반 병사로는 어림도 없고. 태고화가 70% 이상 진행된 병사들만이 그나마 약간이라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조금 조금씩 덤비지 말고 한꺼번에 찍어 눌러라! 아군까지 같이 쓸어버릴 생각으로 퍼부으란 말이야!”
클레망스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게 말이 쉽지. 저 녀석이 얼마나 빠른 줄 아는 거냐?”
“쳇!”
귀환자들이 혀를 차며 포위망을 좁혔다.
앓는 소리를 내긴 했어도 이미 회심의 한 방 하나씩은 준비해뒀다. 근접 계열과 마법 계열이 적절하게 포지션을 선정했다.
콰콰콰콰콰!
사복검이 격하게 날뛰고 다시 회수된 다음 생기는 약간의 공백. 워낙 작고 미세해 파고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패턴이 7번씩 반복될 때 공백의 틈이 가장 커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걸 노리는 게 최선이다.
“크오오오!”
10m에 이르는 대형 마수가 칼날에 휘감겨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정확히 7번째 공격이 끝난 시점이었다.
……지금!
귀환자들이 자로 잰 듯 동시에 움직였다.
[특수 스킬 ‘긍지를 건 부름’이 발동됩니다!]가장 먼저 움직인 건 탱커였다.
도발기가 펼쳐지자 진혁의 몸이 움찔했다.
광역이 아닌 단일 타겟인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정신계열 능력이 아닌 본능에 호소하는 타입의 도발기인 터라, 진혁으로서도 꽤나 생소하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다.
공백의 틈을 찌른 한 수.
[공간압축 ‘수축하는 구슬’이 발동됩니다!]그 주위로 반경 100m에 이르는 반투명한 구슬이 떠올랐다.
[특수 스킬 ‘화염의 길’이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무한의 왜곡장’이 발동됩니다!]화르륵!
불의 기운이 더해지자 구슬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따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부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거 나름 단단하게 만든 자신작이거든요.”
그 말대로 사복검을 휘두른 것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멀리 날아간 칼날은 허무하게 되돌아왔다.
‘황야의 무법자’를 통해 속사도 사용했었지만, 탄환이 관통한 것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압축뿐 아니라 몇 개나 되는 고등 술식과 마법들이 중첩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조금 전 또 다른 언데드 군단을 소환했던 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묵빛 갑주를 입은 네 명의 데스 나이트들이 네 방위에서 검을 뽑은 채 구슬을 향해 마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부에서 파괴할 수 없도록 뭔가 장난질을 한 건가.
진혁의 시선이 다시 한 번 구슬로 향했다.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구슬은 앞으로 몇 초 이내에 육체까지 압축시켜 버릴 것이다.
바로 그때.
[묵색 애벌레가 ‘산성액’을 뿜어냅니다!] [자색 나무가 ‘모토레인 황사’를 흘려보냅니다!]“미안하지만, 그대들 마음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아.”
치이이익!
돌마저 가볍게 녹여버리는 산성액과 서서히 대상의 신체 자유를 빼앗는 황사. 구슬에 마력을 쏟아붓던 데스나이트들이 그 운무에 집어삼켜졌다.
“크으….”
“커억.”
구슬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이 큰 부상을 입고 비틀거렸다.
우우웅!
자연히 구슬에 가해지던 스산한 빛이 약해졌다.
진혁이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번개처럼 뽑힌 사복검이 안쪽을 길게 훑고 지나갔다.
카카카카칵!
조각조각 쪼개져 부서지는 파편들.
콰아앙!
“크아아악!”
빙하조형으로 만든 날카로운 얼음이 마법사를 실드째 꿰뚫어버렸다.
……쩌저저적!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이 마법사가 있는 장소 일대를 통째로 얼려버렸다.
다수라는 이점마저 상쇄시켜버릴 만큼 진혁과 메드레이의 합은 완벽했다.
*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겉으로 보기에 매우 화려하고 압도적인 전투임에도 묘한 위화감이 흘렀다.
앙헬리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유리한 상황에서 한 걸음 더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치고 들어오긴 하지만 리스크가 약간이라도 높아지는 지점을 미꾸라지처럼 피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펼치는 중이었다.
승리가 절실하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어째서 불리한 쪽에서 시간을 끄는 거지?’
분명 둘이 보여주는 힘은 1+1=2라는 공식을 초월한다. 3이나 4 혹은 10에 이르는 말도 안 되는 시너지를 낳고 있는 게 사실이리라.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열세인 상황을 뒤엎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해서 소환수들에게 마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족쇄가 걸려 있는 데다, 기습의 주력으로 내세웠던 요정과 정령수들 역시 절반 이상이 전투 불능인 상황이었으니까.
당연히 날카롭게 기세를 올렸을 때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게 정석이고 순리였다.
그런데도 오히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건….
설마.
앙헬리스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낯익으면서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화르륵!
앙헬리스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타들어간 살가죽. 내부를 꽁꽁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다.
“뭐, 뭐야?”
바로 옆에 있던 클레망스가 화들짝 놀랐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앙헬리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으니까.
***
일종의 유희.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서 미물들이 아등바등대는 걸 보는 건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리고 태고의 존재이자 위대한 아우터 갓 중 하나인 ‘요마간토’ 역시 길고 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나름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쓴 채, 다양한 세계로 떠나가 그 세계를 멸망시키거나 복속시킨 뒤 돌아오는 귀환자로서의 삶을 말이다.
나름 즐거웠다.
기만하고 유린을 하다 보니 시간 떼우기도 좋았고.
그래서 이번 일도 느긋하게 관망하는 자세로 즐기려고 했건만.
감히.
“감히 뒷구녕으로 그딴 꼼수를 부리려고 했단 말이냐!”
오직 네크로노미콘만을 노리고 있을 줄이야.
목숨을 걸고 싸워도 모자란 판에 딴 짓을 한다는 사실이 묵직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
[요마간토가 고유능력 ‘세 개의 불꽃’을 사용합니다!]불길들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갈라진 지면 사이로 수십 미터의 불줄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난데없이 나타난 재앙으로 인해 귀환자들 역시 혼란에 빠졌다. 같은 귀환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가 태고의 존재라는 현실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진위 여부 따위가 아니다.
적아를 가리지 않는 불길은 맹렬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고. 보이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첫 번째 불꽃이 ‘갈증’을 불러일으킵니다!]순간, 공기 중의 수분이 모조리 사라졌다.
……메마르다.
1초 전까지만 해도 격렬한 전투로 인해 땀에 젖은 피부가 건조해지다 못해 쩍쩍 갈라져 피가 흘렀다.
안구 역시 뻑뻑해지며 시야를 빼앗기기 시작했고 폐는 신선한 공기와 수분을 구하기 위해 연신 펄떡댔다.
“날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 모양이구나. 아무리 너라도 내가 태고의 존재라는 건 몰랐을 텐데?”
“아니, 꽤 놀라긴 했어. 자존심 높은 태고의 존재가 한낱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거든.”
단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지 않은 건 네크로노미콘에 환장한 태고의 존재들이 모든 걸 귀환자들에게만 맡기지 않았을 거란 확신 덕분이었다.
사실상 그들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금단의 서적.
고대의 존재들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힘을 방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누군가 하나 정도는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마간토라….’
진혁이 바싹 마른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꽤나 까다로운 놈이 튀어나왔다.
협곡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화력에 몰빵한 적은 극도로 위험했으니까.
그나마 니알라토텝이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로스를 소멸시키고 툴챠 역시 네놈에게 크게 당했다지.”
요마간토가 진혁을 바라봤다.
“그쪽 일가가 워낙 날 못살게 굴어야 말이지.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 머저리들과는 다르다. 인간들과 지내오면서 너희들의 삶 자체를 관찰해 왔었으니까.”
앙헬리스는 한 가지 편린에 불과할 뿐.
수천이 넘는 거주자로서의 굴곡을 넘어오면서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을 파악했다.
이제 본신으로서 완전히 현현한 이상….
……네크로노미콘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