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84
684화. 세 개의 불꽃 ‘요마간토’ (3)
[보스 몬스터를 선택했습니다.]짧은 문구와 함께 붉은 상태창이 점멸했다.
“……여기는.”
모습을 드러낸 건 부드러운 은발을 가진 미남자였다.
미하엘.
데카서스의 사냥개였던 베르티온, 오필리아와 함께 얼음 호수에서 진혁과 싸웠던 뱀파이어다. 엘리스와 협공으로 인해 죽은 후 잊혀졌던 데카서스의 혈족은 진혁의 고유성창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안녕?”
진혁이 미하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처음이라고.
최대한 상냥한 미소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미해줬다.
“너…!”
미하엘의 붉은 동공이 가늘어졌다.
자신을 죽인 원수를 만났으니 당연히 반응이 격해질 수밖에.
하지만 피로 만든 꼬챙이가 진혁에게 채 닿기 전 붉은 핏방울들이 공격 궤도를 모조리 차단해버렸다.
[‘혈폭(血爆)’이 발동됩니다!]퍼퍼퍼퍽!
너무나 허무하게 꼬챙이들이 박살나버렸다.
미하엘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가볍게 주고 받은 한 번의 공방전이었지만, 그 한 번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격차를 느껴버린 것이다.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지?”
“네가 죽은 다음에 시간이 꽤 많이 흘렀거든.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그때와는 노는 물이 달라졌다고 봐야 할 거야.”
다시 말해.
복수심이든 모든 백날 덤벼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소리다.
“……하! 그래서 그 잘난 실력으로 날 농락하기 위해 또 다시 지옥에서 끄집어냈다 이런 거냐? 그때 한 분풀이로는 모자라서?“
무슨 애도 아니고,
누굴 그렇게 치졸하고 야비한 사람으로 보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너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어서 불렀어.”
“기회…라고?”
“그래. 너는 모르겠지만 엑센시온은 죽었고 나머지 가주들도 전부 몰락했거든. 짧은 버전으로 요약하자면 엘리스가 아타락시아의 가주 자리를 되찾은 것으로 모든 싸움이 끝난 셈이지.”
“엑센시온…님께서 아니, 다른 가주들 역시 죽었다는 말인가? 전부? 그리고 엘리스 님께서 결국에….”
미하엘이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렸다.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빠져버린 탓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겠지.
분명, 미하엘은 엘리스가 유배를 당하기 전의 모습을 동경했었다.
아름답고 강하며 고고했던 순혈의 여제. 언젠간 뱀파이어들을 더욱 높은 층계로 올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단지 엘리스에 대한 동경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그 기대가 깨졌을 때의 배신감이 더욱 컸을 뿐.’
그렇다면 이제는 후회로 얼룩진 잘못된 선택을 고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나와 함께 한다면 너에게 다시 한 번 위대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데카서스 가주 자리가 비어 있으니 여차하면 그걸 줘도 좋고.”
“…….”
미하엘의 얼굴이 진중하게 변했다.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데카서스 가주 자리가 탐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미끼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건 확실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한 때 증오로만 가득 했던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새로운 이해관계와 이루고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는 한 배를 탈 시간이리라.
[뱀파이어 ‘미하엘’이 당신과 함께 하기로 결정합니다.]미하엘이 진혁의 곁에 섰다.
“이미 함께하기로 한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뭐하긴 하다만,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 거냐?”
아직 많은 것들이 낯설긴 했지만, 지금 있는 이곳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했다.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진혁도 진혁이지만, 저 멀리서 보이는 소름끼치는 기운은 어떠한 가주들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불길함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도저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는 믿기지 않는 마력이다.
미하엘의 질문에 진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가 잘 하던 거 있잖아.”
‘블러드 웨이포트’.
제물들을 통해 만들어진 괴물들을 탑 밖으로 보내려고 했던 대형 공간이동 마법이다.
“그걸 다시 한 번 발동시켜줘. 술식은 내가 새롭게 만들어놨으니 넌 거기에 맞춰 제단만 제대로 만들면 돼.”
***
피를 이용한 대규모 술식.
본래라면 여러 가지 철저한 밑준비가 요구되는 일이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이상 최대한의 재량과 꼼수를 발휘해야만 한다.
그 예시로 어느새 미하엘 옆에는 오필리아까지 붙어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엘리스가 아타락시아의 혈족들을 붙여준 것이다.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다.
테레사를 끌어안은 일에 이어 미하엘까지 튀어나왔으니 위대하신 여왕님의 눈초리는 따가워질 수밖에.
“나, 나는 무슨 죄인데 이게.”
오필리아 역시 진혁과 옛 상사인 미하엘 사이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 되었다.
“집중해라 오필리아.”
“응… 아니, 넵! 미하엘 님!”
오필리아가 손끝을 물어뜯어 핏방울을 흘려보냈다.
바로 그 순간.
[블러드 웨이포트의 기초 술식이 구현됩니다!]우우웅!
피로 만들어진 붉은 마법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응집되었다.
진혁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 술식에선 말 그대로 이 싸움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화르륵!
…쿠콰콰콰콰콰!
“끄아아아!”
레드 드래곤과의 혼혈로 태어난 하프종 ‘미샤’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불을 다루는 데 특화된 레드일족의 피가 섞여 있었지만, 요마간토의 불은 드래곤의 화염 내성으로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후두둑.
검게 타들어간 잿가루가 그대로 흡수되었다.
요마간토의 불꽃이 한층 더 강렬한 색을 띠게 되었다.
저벅.
요마간토가 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마저 느껴지는 느릿한 발걸음에선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노라고 말하는 듯 했다.
“지독하군.”
“버티는 것도 쉽지 않겠어요.”
정령왕들이 최후의 거점을 만들었다.
요정들과 정령수들 그리고 숲에 있는 신수들이 몇 겹이나 되는 벽을 만든 뒤, 다시 한 번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가소로운 종이벽이로구나. 앙헬리스라는 몸뚱어리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쓸려나갔던 놈들이 감히 지금 이 상태에서의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
덜덜덜!
하급 요정들과 정령수들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일부는 입에 게거품을 문 채 쓰러지거나 정신이 나가버리기도 했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그럴진데 싸우겠다는 의지가 남아 있을까?
가벼운 공격 한 번에도 전의가 박살이 날 게 불 보듯 뻔했다.
‘먼저 움직여야 해.’
선수를 허용하면 미래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정령왕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정령왕들이 특수 스킬 ‘정령의 시대’를 발동합니다!]협곡의 나무와 풀들이 모조리 일어섰다.
우르르르… 콰콰콰쾅!
먹구름이 모여들어 벼락을 내리쳤고. 넝쿨들과 흙이 파도가 되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층계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다가오는 재앙에 맞섰다.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
[요마간토가 ‘만화의 검’을 발동합니다!]붉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검들이 지평선을 가로지르자 모든 저항이 무위로 돌아갔다.
계곡이 통째로 잘려 산사태를 일으켰고 잘린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다.
스윽.
자잘한 것들을 쓸어버린 요마간토가 천천히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천천히 검을 아래로 내렸다.
슬로우모션을 보는 것만 같다.
허나, 그 느린 일검에는 천지를 베어버릴 만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흙의 정령왕 ‘마드문타’가 망치를 휘둘렀다.
무게만 몇 톤에 크기가 5m에 이르는 전투용 망치였다.
콰아아아앙!
검과 망치가 부딪친 순간 암석이 원자 단위로 쪼개졌다. 방어수단을 잃은 마드문타의 심장을 향해 검이 계속해서 궤적을 이어나갔다.
“위험해요!”
바람의 정령왕 윈그라시아가 반투명한 방패를 꺼냈다.
냉병기를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성유물이었다.
그런데.
우두두둑… 콰콰콰콰콰!
만화의 검은 ‘공격을 흘려보낸다’라는 대전제를 그대로 뒤틀어버렸다.
쩌저적!
방패에 생기는 균열.
상대가 되질 않는다.
이건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마드문타와 윈그라시아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몇 초 이내에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직감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개벽의 계시록 – ‘순혈의 여제’가 발동됩니다!] [레인보우 브릿지 ‘이색 민달팽이 껍질’이 소환됩니다!]메드레이와 엘리스가 가세했다.
보랏빛과 은색 빛이 섞인 기묘한 방패는 요마간토의 검을 견뎌냈고. 엘리스의 선홍빛 레이피어는 요마간토의 불꽃을 꿰뚫었다.
“그래. 너희 둘이 있었지.”
요마간토의 걸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하찮은 벌레들만 상대하느라 심심할 지경이었는데, 모처럼 검에 쌓인 불똥을 털어낼 만한 적들이 나타났다.
특히나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는….
니알라토텝 뿐 아니라 그 남자라 불리는 녀석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팔다리를 다 잘라도 좋으나,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그게 이 싸움에 걸려 있는 유일한 제약이라면 제약이었다.
“어디, 그 유명한 진조가 어느 정도인지 내 친히 확인해보지.”
“짐에게 그딴 망말을 지껄인 놈 치고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놈이 없다.”
자존심이 하늘까지 닿아 있는 두 괴물이 검을 교차했다.
콰콰콰콰콰쾅!
불꽃과 핏방울이 폭발했다.
위력과 스피드는 요마간토가 몇 단계는 위였으나, 진혁에게 틈틈이 배운 레이피어 특유의 기교로 그 간극을 메웠다.
애초에 단순한 피지컬만으로도 모든 적들을 압도하는 요마간토로서는 따로 검술을 배울 필요 자체가 없었던 것도 크게 한몫했다.
또 중간중간 들어오는 치명적인 일격은 메드레이와 나머지 귀환자들의 도움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저 둘을 최대한 지원해라.”
“소원을 이루려면 협력해야 해.”
“쳇! 나도 알고 있다고.”
닳고 닳은 귀환자들이 자존심도 내버려둔 채 생존과 목표에 집중했다.
요마간토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깨달은 순간부터 영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였고. 이제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호흡에 맞춰 서포트를 하겠다는 생각만이 팽배했다.
“성가시구나.”
화르륵!
요마간토가 겁화를 끌어모았다.
메드레이의 방패까지 녹여버릴 순 없을 테지만, 녀석이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을 터.
그 외에 것들이라도 전부 재로만들어버리고 나서 나머지를 정리할 생각에서다.
“누구 마음대로!”
[엘리스가 ‘블러드 이클립스’를 발동합니다!]퍼퍼퍼퍼펑!
겁화와 피보라가 정면에서 충돌했다.
고속으로 회오리치는 두 개의 기운이 지면을 끝도 없이 파고들었다.
완벽한 상쇄.
아니, 완벽하긴 했으나 동수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는 엘리스에겐 남아 있는 마력이 얼마 없었다.
“과연, 최강의 순혈이라 불릴 만 하구나. 내 공격에 이 정도로 대응한 건 네가 처음이다.”
요마간토가 가감없는 감상을 늘어놨다.
동시에 왜 몇몇 이들이 엘리스에게 그토록 관심을 갖는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때였다.
움찔하고.
엘리스에게 집중하고 있던 요마간토의 시선이 전장과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꿔버릴 만큼 심상치 않은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이동…? 아니면 봉인진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언가를 소환하려는 걸 수도 있겠군.’
어느 쪽이든 간에 꽤나 성가신 장난질이 시작되려는 듯 싶었다.
요마간토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마력이 꿈틀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