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87
687화. 엔드리스 웨이포트 (2)
아자토스와 슈브니구라스, 니알라토텝이나 요마간토 등을 ‘아우터 갓’이라 칭한다면.
그들과는 상극에 있는 또 다른 세력들을 ‘엘더 갓’이라는 이름으로 칭한다.
같은 50층을 공유하지만 절대 친해질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
비록 자신들의 영역에 안주하며 외부와의 개입을 꺼리긴 했으나, 그렇다 해서 그들이 결코 호전적이지 않거나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하엘…님?”
오필리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미하엘이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엘리스를 구한다는 선택을 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뒷일을 부탁한다.”
미하엘이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학살과 살육만을 자행하던 과거와는 다른. 훨씬 더 편안하고 차분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함께 해서 영광이었어요.”
오필리아가 그런 미하엘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 순간.
[엘더 갓 ‘오릭스’가 현현합니다.]시력을 멀게 하는 빛이 뿜어졌다.
쿠쿠쿠쿠쿠쿠쿠!
흔들리는 지축.
요마간토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겁화라면.
오릭스는 광휘로운 겁화. 순백과 보라색의 화염으로 불타오르지만, 결코 뜨겁지 않고 차가운 불을 다루는 존재다.
“엘더…갓.”
요마간토가 허공을 올려다봤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겁화가 요동치며 전신에 형언할 수 없는 압박이 가해졌다.
“부름에 응해 왔다. 날 소환한 자가 그대인가?”
거대한 빛이 의식을 잃은 진혁을 향했다.
엔드리스 웨이포트를 가동한 건 미하엘이었으나, 그 술식의 근원이 되는 것들이 전부 진혁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절해있던 진혁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약자. 괜찮은 거였어?”
“응…이 아니라, 때마침 눈이 너무 부셔서 정신이 들었어.”
엘리스와 메드레이의 한계돌파를 감상하는 게 너무나 취향저격이었지만, 엔드리스 웨이포트가 개방되었으니 휴식 시간이 끝난 셈이다.
‘미하엘이 큰 역할을 해주긴 했네.’
솔직히 저 정도까지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씁쓸한 뒷맛이 혀를 가득 채웠으나, 그를 추모하는 건 이번 일이 전부 마무리된 이후의 일이다.
태고의 존재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또 하나의 카드.
엘더 갓들과 처음으로 접점이 생긴 순간이었으니까.
“예. 제가 당신을 불렀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터 갓과 싸우는 인간이라니 흥미롭군. 게다가 날 부를 수 있는 술식을 아는 자가 이 차원에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거야 그렇겠지.
본래 엘더갓들과의 접점이 생기는 건 48층에 도달한 이후였으니까.
한 번 탑을 등반한 경험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리라.
“방해하지 마라. 오릭스. 만약 선을 넘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요마간토가 불길을 뿜어냈다.
화르륵!
분노를 머금은 겁화가 무거운 경고를 보냈다.
“소환식에 의해 불러온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는 게 우리들의 규율. 나는 단지 그 신성한 의무를 따를 뿐이다.”
오릭스가 담담히 있는 사실을 고했다.
그러자 요마간토의 목소리가 더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리와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냐?”
태고의 전쟁.
시련의 탑은 물론, 수많은 차원들이 먼지가 되어버릴 수 있는 서막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는 그대야말로 고작 인간 한 명을 찍어누르기 위해 모든 걸 감내하겠다는 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오릭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
요마간토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대답을 한 건 진혁이었다.
“그거야 이번 싸움엔 네크로노미콘이 걸려 있으니까요.”
“……!?”
이번에는 오릭스가 놀랄 차례였다.
아우터 갓을 위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50층을 제외하곤 극소수만 알고 있는 금서의 이름이 한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니 당연히 경악스러울 수밖에.
이제야 어째서 요마간토가 인간 한 명에게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동시에.
엘더 갓의 일원으로서 이번 일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런 거였나.”
오릭스가 광휘가 한 층 더 짙어졌다.
“듣지 않아도 되는 걸 들었군.”
요마간토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선택지가 전부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네크로노미콘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오릭스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터.
다시 말해 이제는 전쟁 외엔 답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게 진혁이 의도한 그대로였다.
***
화르륵…!
무자비한 불길이 협곡을 넘어 층계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가 태고의 신격이 미물들을 찍어누르기 위한 여흥에 불과했다면, 앞으로는 동등한 적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쩌저적…!
[오릭스가 ‘얼어붙은 불꽃’ – ‘멈춰버린 심연’을 발동합니다!]오릭스 또한 그 기세에 걸맞은 차가운 불길을 뿜어내며 요마간토와 대치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어지간해서 싸우지 않는 50층의 존재들이 격돌하기 직전이었으니 당연히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을 수밖에.
“네크로노미콘은 제가 확보하겠습니다. 그 동안 이쪽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그건 상관없다만, 그 책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그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책을 회수하는 것에서 끝났으면 좋겠군. 이해하겠나?”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확보한다면 책을 넘겨라’라고 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물론.
속마음과 달리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그런 위험한 물건은 어차피 제가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전 그저 제가 소중히 여기는 곳을 지키는 게 목적이지. 50층과는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일부러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낸 건 덤이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알겠다. 저 녀석은 내가 막을 터이니, 넌 반드시 책을 확보해야만 한다.”
“맡겨 주세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인간적으로 슬슬 인정을 해주긴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띠링!
[선함의 기준을 충족했습니다.]이곳에 온 또 다른 목적 하나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메드레이의 고유성창 ‘레인보우 브릿지’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레인보우 브릿지]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자신의 신체를 포함한 사물에 색(色)을 입힐 수 있습니다, 단 입힐 수 있는 색의 종류는 능력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며 최고 경지에 이를 경우 색과 색을 혼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색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정령들을 위해 자신마저 희생하려는 마음가짐.
거기에 진혁을 위해 목숨마저 내던지는 수많은 이들까지.
진정 선함이 극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적어도 메드레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이걸로 태고의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카드 하나가 더 늘었다.
“엘리스.”
“응.”
엘리스가 진혁에게 다가왔다.
오릭스가 뒤를 맡아주기로 했으니 이제 네크로노미콘을 찾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만상공유 ‘개벽의 계시록’이 발동됩니다!]이미 너덜너덜해진 엘리스의 날개 위로 진혁의 날개가 포개졌다.
“꽉 잡아. 빨리 갈 거야.”
“지, 짐을 뭘로 보는 것이냐.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 해도 고작 비행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각자 갈까?”
“…….”
엘리스가 말없이 진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딜!”
화르륵!
요마간토의 검이 앞으로 뻗었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무수히 많은 운석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직경이 수백 미터에 이를 정도로 무식한 크기다.
그게 수천 개의 군무를 이루며 진혁과 엘리스를 노렸다.
하지만, 압도적인 광역기는 목표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
“말했을 텐데, 이 자를 방해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오릭스가 얼어붙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장막을 펼쳤다.
콰콰콰콰쾅!
퍼퍼퍼펑!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운석과 푸른 불꽃이 충돌했다.
운석이 부서지며 대량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요마간토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끝까지 방해하겠다면 이 층계 자체를 소멸시켜서라도 네크로노미콘이 넘어가는 걸 막겠다.”
“해볼 수 있을 테면… 얼마든지.”
태고의 신격들 간에 본격적인 전투가 펼쳐졌다.
***
최고 속도를 유지하며 얼마나 달렸을까?
오싹…!
전투 반경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왔지만, 바로 뒤에서 살기가 쫓아오는 것만 같다.
“아직 멀었냐? 너는 몰라도 나머지는 슬슬 한계다.”
어느새 합류한 천유성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요마간토와 오릭스의 전투가 본격화됨에 따라 그곳에 있는 것보단 진혁을 쫓아 네크로노미콘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판단했다.
그 결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모든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거의 다 온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왔다고는 하기 뭐하네.”
“그건 무슨 소리냐?”
“페시스 씨와 2닭이 찾는 단서를 먼저 확인해야지만, 책이 있는 최종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거든.”
일종의 선결 과제.
마지막 파편이 맞춰졌을 때 비로소 금서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 저희도 먼저 그쪽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테레사가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앞에 걸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뒤는 아무 의미가 없을 터. 그렇다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마지막 단서를 찾는 게 합리적일 테니까.
“물론, 책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목표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함께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프레이와 월영이라는 추가 카드까지 쓴 이상 그쪽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힘으로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달그락.
진혁이 품 속에 넣어둔 낡고 부서진 보석상자를 꺼냈다.
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상이 이어지며 복잡하고 난해한 지도가 떠올랐다. 얼핏 봐서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단 한 명.
진혁을 제외하고는.
‘이번엔 이쪽 지점인가.’
하필이면…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위치가 걸렸다.
과거 탑을 오를 때도 네크로노미콘을 찾기 위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경우의 수가 3가지 정도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 중에 하나다.
툭.
거대한 절벽 앞에 진혁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절벽이다.
“……?”
“급하다더니 여기는 왜?”
“막다른 길이잖아요.”
모두의 머리 위에 ‘?’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에 의문사는 곧 감탄사로 바뀌었다.
[히든 루트 ‘사건의 지평선’에 입장합니다.]보라색 파장이 일어나며 절벽 한 가운데 폭이 5m 정도 되는 통로가 생겨났다. 진혁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루트가 최악인 이유는….
통로의 군데군데가 50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로 조심해야 돼.”
자칫 잘못하다가 50층의 어딘가로 떨어진다면….
……그 때는 정말로 ’50층에서 살아남기’ 같은 책이라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