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93
693화. 걷잡을 수 없는 전화의 불씨 (1)
쿠쿠쿠쿠쿠!
격변하는 미궁.
정원사가 망부석마냥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까무러칠 만한 포인트가 너무나 많았다. 의문점 역시 넘쳐났고.
‘미, 미궁주가 아니면 절대 미궁 변화를 습득할 수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수로 저 능력을 가지게 된 걸까?
가지고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이유는 또 뭐고?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다.
가정과 가정이 꼬리를 물며 평화로웠던 정원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미궁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변하는 걸 막는 게 급선무다.
[정원사가 ‘미궁변화’ – 비명을 지르는 정원을 발동합니다!]진혁이 발동한 능력에 맞서 정원사가 사력을 다해 대응했다.
그러나.
“이, 이럴 순 없어.”
같은 능력이 아니다.
더 고차원적이고 창의적인.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미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변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창조.
그래. 기존에 없던 걸 구현하는 영역에 가깝다.
아직 어설픈 부분이 있었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더 윗줄의 능력을 보유한 게 틀림없었다.
“재밌었어. 나름대로.”
진혁이 점점 사라지는 시야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발세테르는 진혁이 있는 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으, 으아아아아!”
정원사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끝으로.
쿠쿠쿠쿠쿵!
넝쿨과 식물들이 둘 사이를 완전히 차단시켜버렸다.
*
진혁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팽팽했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살려주는 건가?”
찌릿.
진혁이 발세테르를 노려봤다.
어디서 미궁설계자 따위가 반말인지.
순간 이곳에 시체가 하나 더 늘어날 뻔 했다.
진득한 살기를 감지한 발세테르가 황급히 태도를 바꿨다.
“저, 저는 살려주시는 겁니까?”
“이제야 좀 듣기 좋아졌네. 앞으로는 잘 하자. 응?”
“조심… 또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세테르가 즉시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 밥은 제법 있다.
예로부터 실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눈치가 빠르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법.
“마침, 앞으로 거점 전에서 관리를 맡아줄 인재가 필요한데, 어떻게. 생각이 좀 있어?”
이건 흔하지 않은 인턴 제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절은 곧 죽음이고 망설이거나 싫은 티를 내도 자동 퇴사다.
“추,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쿠웅!
발세테르가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애지중지하던 가면에 금이 갈 정도로 진심이 느껴지는 절이었다.
진혁의 손끝에 화염이 맺혔다.
[‘염혼의 낙인’이 발동됩니다!]치이익!
“큽!”
넌 특별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붉은 볼따구에 새겨주마.
거점 전에 필요한 인재로 철저하게 부려먹을 운명인 건 덤이었다.
볼을 어루만지며 일어난 발세테르가 아직까지 자욱히 피어오르는 폭심지를 바라봤다. 조금 전 격퇴의 심판관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있던 곳을 쓸어버린 바로 그 지점이었다.
“생존자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한 번 찾아볼까요?”
말도 안 되는 공격에 휘말린 이상 무사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긴, 아직까지 불바다가 된 지옥을 보며 누가 살아있을 거라 상상하긴 힘들겠지.
그러나.
진혁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한 쪽 부분만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것을.
화르륵!
[‘유수화류검’이 발동됩니다!]유검(柳劍)의 창시자 페인 폰 아델.
천유성과의 승부를 갈구하던 백발의 소년이 개입한 것이다.
저벅.
진혁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강하긴 강하네.’
귀환자 아델이 검수들이 넘쳐나는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광기에 찬 검귀이기 때문이 아니다.
특유의 유검으로 강자들의 공격을 모조리 파훼하는데 특화되었기 때문이지.
백발의 소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큰 공격을 흘려보내느라 전신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형은… 내가 죽일 거야. 그러니 다른 놈의 손에 당하는 건 절대 안 돼.”
언제 미궁까지 쫓아 왔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집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은 천유성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젠장.”
천유성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욕지거리.
앞으로의 일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건 그 누구보다 천유성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혁 입장에선 그 모습을 보는 게 사이다 100개를 원샷한 것마냥 짜릿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고작 저 정도 가지고 뭘 앓는 소리를 내?”
“고작이라니. 이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면 함부로 말도 꺼내지 마라.”
“야야. 모르기는 개뿔. 정확히 내가 딱 그런 심정이었어. 자나깨나 창 밖에서 눈을 희번득거리는 스토커가 있는 그런 기분.”
“닥쳐라! 내가 뭐가 저 징그러운 놈이랑 똑같이 굴었다는 말이냐!”
천유성이 눈을 부릅떴다.
거울치료 제대로 한 번 하네.
뭐,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꽤나 재밌을 것 같다.
“계약자는 괜찮은 것이냐? 그 놈은 또 뭐고?”
엘리스가 진혁과 발세테르를 번갈아 바라봤다.
“말하자면 긴데,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줄게. 그보다 다들 괜찮은 거야?”
“예. 저희보다는 진혁 씨가 어려운 일을 다 해줬죠.”
테레사가 생긋 웃었다.
페시스와 메드레이 그리고 프레이와 월영도 저마다 활짝 웃으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훈훈한 광경이다.
무엇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바로 그때.
우우웅!
한 쪽에서 차가운 화염이 몰아쳤다.
격퇴의 심판관이 뿜어냈던 화염과는 권역 자체가 다른 불길이다.
태고의 신격들과 50층을 양분하는 최강의 신격.
엘더갓 중 하나인 ‘오릭스’였다.
“크으음….”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신음.
인간의 형태를 한 오릭스가 비틀거리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요마간토와 엄청나게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남아 있는 마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엔드리스 웨이포트’를 통해 현현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릭스 님께서 그 괴물을 맡아주신 덕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책은?”
“확보했습니다. 아공간에 안전히 보관해 뒀죠.”
“훌륭하군. 역시, 그대를 믿길 잘했어. 그럼, 이제 책을 넘겨주게.”
오릭스가 떨리는 손을 뻗었다.
약속한 대로 요마간토를 막아주는 대신 네크로노미콘은 엘더 갓 측에서 소유하기로 하기 위함이었다.
멤버들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저 놈이 순순히 넘겨줄 리가 없을 텐데.’
‘어림도 없는 일이죠.’
‘짐도 그리 생각하느니라.’
‘도주확률 62.5%고 공격할 확률도 22.8%야 응.‘
’태고의 신격을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니. 정말 흥미로운 인간이라니까.‘
특히 당한 게 많은 천유성은 이미 칼자루에 손까지 닿은 상태였다.
여차하면 오릭스를 베어버릴 생각으로.
그런데.
“물론입니다. 엘더 갓 분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드려야죠. 게다가 전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거든요.”
진혁이 망설임 없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그대가 명예를 아는 자여서 다행이군. 이번 일은 모두에게 알리겠네.”
오릭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태고의 존재들과도 싸운 적이 있는 강자. 그런 이가 작정하고 도주를 택한다면 지금 몸 상태로 추격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으음. 어디보자.”
진혁이 아공간에 손을 쑥하고 집어넣었다.
뒤적뒤적.
으음.
이게 잘 안 찾아지네.
워낙 아공간이 넓어서 그런건지 통 어디뒀나 기억이 안 난다.
“잠시만요. 분명 이쯤 어디인데.”
진혁이 혀를 빼꼼 내민 채 아공간을 뒤적였다.
[‘엔드리스 웨이포트’의 통로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빠, 빨리… 서두르거라.”
오릭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요곳도 아니고. 조곳도 아니고.”
“빨리!”
“아! 찾았습니다!”
진혁이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은 책인데 네크로노미콘이 아니었다.
상급 네크로맨서가 되는 개념원리책.
지은이는 귀염둥이 뼈다귀인 티본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부터 이미 글러먹을 대로 글러먹긴 했지만, 나름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책이었다.
“이건 안 되겠죠?”
“당연한 소리를 뭐 하러 하고 있나!”
오릭스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폭발했다.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원하는 금서는 나오지 않았다.
[’엔드리스 웨이포트‘가 소멸합니다!]스르륵….
오릭스의 몸이 가루가 되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진짜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것 같아요.”
진혁이 팔을 잔뜩 밀어 넣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손 끝에 무언가 걸릴 듯 말듯했다.
“그래. 빨리.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하지만.
애달픈 목소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찾았어요!”
진혁이 네크로노미콘을 꺼냈을 때 이미 오릭스의 몸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하, 진짜 주려고 했었는데. 아깝네.”
이 말은 진심이다.
절대로 엔드리스 웨이포트가 소멸하는 시점과 책을 찾아낸 순간이 동일 했던 건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다.
크흠! 큼!
진혁이 잔뜩 헛기침을 내뱉으며 뒷짐을 지었다.
***
시련의 탑 50층.
아자토스의 궁전에선 탑의 균형을 완전히 바뀌어버릴 만한 이변이 일어났다.
우우웅!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켜지지 않던 성소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50층의 모든 존재들이 새로운 변화를 인지합니다.]이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의 유일한 약점인 네크로노미콘이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을 때 뿐이다.
꿈틀하고.
아자토스의 본체가 움직였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쿠쿠쿠쿠쿠쿠쿠쿠!
50층은 물론, 시련의 탑 전체와 그 외부에까지 파장이 퍼져나갔다.
당연히, 관리자들과 태고의 존재들 사이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다, 당장 결계를 최대치로 펼쳐라!”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인 건지.”
“시스템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탑의 중심부에 위치한 관리국에서 중급 관리자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벤디비아를 비롯한 상급 관리자들 역시 최악의 사태까지 가정한 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시스템의 억제력을 최대한 활용해 탑 자체가 붕괴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7번째 방벽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탑의 규칙에 다수의 오류가 발생합니다.]시시각각 떠오르는 붉은 상태창.
이 일이 어떤 파급력을 만들어낼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깨어나시려 하고 있어.”
“결국, 그 망할 인간 놈이 해선 안 되는 일까지 저질러 버리는군.”
“……기어이 50층에까지 도달할 생각인 건가.”
태고의 존재들 또한 이 이변이 최악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자토스는 현재 깊은 잠에 빠져 그 잠재 의식에 투영된 분신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
헌데, 만에 하나라도 아자토스의 본신이 깨어났다가는 이 차원 자체가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었다.
유일하게 단 한 명.
“와, 이게 이리 되네. 토X라도 걸었어야 했는데, 이놈의 관리자들은 그런 것도 안 만들고 뭐하나 몰라.”
나무로 만든 의자에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있는 남자를 제외하곤.
“넌… 뭐가 그리 즐거운 거지? 모든 일이 최악으로 향하고 있는데, 일말의 책임감마저 느끼지 못 하고 있는 것이냐?”
툴차가 으르렁댔다.
긴장감 자체가 없는 남자의 행동이 심기를 거스른 탓이다.
“글쎄. 일이 이렇게 된 정확한 원인은 요마간토까지 동원해놓고도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너희들 탓이 아닐까?”
“뭐…라고?”
쿠쿠쿠쿠쿠쿠!
보랏빛 촉수들 사이로 녹색 독운무가 일어났다.
이 일대 전부를 녹여버리겠다는 듯, 숨막힐 듯한 살기가 덧씌워진 건 덤이다.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발끈해하진 말라고. 게다가 이미 너희들은 언노운의 뒤를 이을 다음 카드를 준비해 두 지 않았나?”
언노운이 실패한 시점에서 태고의 존재들이 대반격을 위해 준비한 한 수.
이건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대비하는 게 불가능했다.
시련의 탑이 갖고 있는 절대 조건 중 하나를 최악의 형태로 이용하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