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94
694화. 걷잡을 수 없는 전화의 불씨 (2)
거대한 이변이 일어난 이후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관리자들이 정신없이 움직여준 덕에 탑이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건 아자토스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전제가 성립되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리고 현재.
시그니엘 상층부에 위치한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주주총회를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폭풍전야라는 게 딱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가보네.”
네크로노미콘을 빼앗겼음에도 태고의 존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탑의 안팍은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거대한 피바람이 몰려오기 바로 직전인 것처럼.
‘엘더 갓 측에서 손을 쓴 건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려나.’
예측은 하되 손을 쓸 수가 없는 영역. 할 수 있는 건 상대의 수에 맞춰서 최대한 철저하게 대응을 하는 것 뿐이다.
진혁이 평화로운 한강을 바라봤다.
부우웅!
빠앙! 빵빵!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출퇴근을 반복하며 쳇바퀴처럼 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적어도 이들이 보기에는 탑은 순조롭게 공략되고 있으며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시나리오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구나. 계약자라는 존재가 망각의 샘물로 인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이상 저토록 확신을 갖는 게 말이 안 되긴 할 텐데.”
엘리스가 꽤나 신빙성 있는 말을 내뱉었다.
신흥 귀족이니 신생 대형 길드들이니가 아무리 날뛰더라도 현재 인류가 공략중인 층계는 39층.
랭커들이 날뛴다고 해서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각 신화의 사도들이 등장해 주신들과 계약을 맺은 덕에 상층부에서 버틸 여력이 남아 있는 것이지만… 고작 그것만 믿고서 저럴 수 있을까?
“넌 뭐 좀 아는 것 없어?”
“관심 없다.”
벽에 기댄 천유성이 차갑게 내뱉었다.
진심으로 저 감정없는 로봇 같은 놈을 나중에 누가 좋다고 데려갈지 궁금하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감당 자체가 안될 텐데.
쯧쯧.
진혁이 혀를 차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을 때였다.
띠잉…!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했다.
가장 앞에 있는 건 검은 까마귀 길드의 임시 마스터 김희웅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길드 사무실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서 제가 모든 걸 다 관리하느라 얼마나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지…. 제발 좀 들으십쇼! 사람이 말을 하면!”
귀를 막고 있는 진혁을 향해 고함을 지르던 김희웅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체념한 듯, 진혁이 요청한 자료를 건넸다.
“후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죽는다면 홧병으로 죽을 겁니다. 울화병으로요.”
“누가 우람하다고요?”
“으으으… 됐고! 서정희에 관한 정보는 여기에 따로 정리해 뒀습니다.”
김희웅이 자세한 내용이 담긴 테블렛 pc를 건넸다.
잭 이든을 포함해 스윙뱃의 사냥개들을 보낸 원흉.
거대한 괴물들이랑 싸우는 와중에도 진혁은 서정희에 관한 건 잊고 있지 않았다.
은혜는 0.2배만. 그리고 원수는 50,000배로.
그것이 진혁이 평소 세상을 살아가고자 다짐한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희웅이 말을 이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몇 가지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유연화 님과 이태민님이 자리를 비우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주주총회에 원년 멤버인 태민이와 연화가 오지 않았다.
조금 늦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건가.
귀를 막고 도리질을 치던 진혁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말씀해 보세요.”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한 플레이어와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상태입니다. 뜨거운 감자가 된 인물의 이름은 ‘슈에뜨’. 이름 외 국적은 물론 과거 자취가 전부 블라인드 처리되어 있습니다.”
김희웅이 한 쪽에 걸려 있는 스크린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던전 안의 수많은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는 공격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레이드 영상이야 수천, 수만 개가 가볍게 넘는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으나 이 영상 속에 있는 인물은 무언가 달랐다.
백발의 남자.
얼핏 보면 뱀파이어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다.
허나, 그의 몸에서 뿜어진 마력과 능력들은 뱀파이어의 능력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콰콰콰콰콰콰!
이질적이면서 아름다운 궤적.
남자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강하다.
단순히 신체 스팩 자체도 굉장할 뿐 아니라,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퍼포먼스와 연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져 있었다.
“못 보던 친구네요.”
“예. 얼마 전 각성자 테스트에서 압도적인 수치로 S급 판정을 받아 데뷔한 루키입니다. 이후에 일주일 만에 30층대 유적 3개와 미궁 7개 던전 15개를 공략했는데. 특히 유적 중 하나는 공격대의 무덤이라 불리는 27층 ‘아판도스의 서식지’였습니다.”
아판도스의 서식지라는 말에 진혁의 눈썹이 흔들렸다.
중층부에 위치해 있지만,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유적.
27층의 후반부에 있는 대량의 ‘그린 마정석’ 광산으로 가는 요충지이기에 여러 가지로 노른자라 불리는 장소였다.
상온 초전도체와 동일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그린 마정석은 탑 밖에서 그야 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기 때문이다.
거길 우리 말고 공략이 가능한 전력이 있을 줄이야.
재밌네.
진혁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슈에뜨의 영상을 꼼꼼하게 살폈다.
“제법이구나. 이 인간.”
“강하네요.”
엘리스와 테레사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슈에뜨를 인정했다.
“현재 인류의 영웅이자 희망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슈에뜨가 이끄는 공격대라면 탑의 정상까지 공략도 얼마든지 가능할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죠.”
그 말대로 이런 힘을 보유하고 있다면 상층부에 도전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긍정적이고 걱정이 없어보였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일단 예전에 활동하던 고인물 중 하나는 아닌데….’
뉴비 중에서도 얼마든지 괴물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상은 넓고. 재능이 넘치는 인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법이었으니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확실한 건 이후 탑 후반부를 공략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카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해드릴 소식은 이거입니다.”
김희웅이 키보드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넘어갔다.
그러자 화려하게 치장된 포스트가 나타났다.
[시련의 탑 랭킹전]내용: 각국의 대형 길드들과 솔로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여 최강을 가리는 별들의 전쟁에 참가할 지원자들을 모집합니다! 총 일주일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우열을 가르는 대난투! 부와 명예 그리고 인지도까지. 탑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인류의 앞날을 위해.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보상.
총 상금 1,000,000,000달러 (1~10위까지)
총 코인 50,000,000코인(1~10위까지)
개별 성유물 목록
개별 아이템 목록
특수 재료 목록
그 외에 총 27개국에 있는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 항공 및 미슐랭 최우선 예약권.
엄청난 양의 텍스트와 그림들이 두 눈을 어지럽혔다.
“…….”
“……호오.”
“와아.”
지켜보던 멤버들의 눈동자에 탐욕이 스쳤다.
일일이 확인하기에도 벅찬 양이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물론, 보상으로 건 성유물들과 아이템들은 꽤나 훌륭한 종류였고. 나름대로 애써서 모았다는 티가 나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눈이 하늘까지 닿아 있는 진혁을 만족시키기엔 하나같이 부족….
……응?
보상 목록을 대충 살피던 진혁이 갑자기 크게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11년 간의 플레이를 통틀어봐도 단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보상이 섞여 있었으니까.
저게 여기서 나온다고?
세계 각성자 협회에서 무슨 수로 저걸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저것 하나만으로도 이 대회에 참가해야 할 이유가 충족되었다.
“어떻게, 강진혁 플레이어님께서도 흥미가 좀 생기시는 겁니까?”
김희웅이 어깨를 한껏 폈다.
자신이 탑 밖에서 놀고만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듯이.
“아주… 고생이 많으셨어요. 정말 알토란 같은 황금 정보들만 모아 주셨네요. 앞으로도 큰 역할 믿고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진혁이 그런 김희웅의 어깨를 꾹꾹 눌러줬다.
동시에 앞으로는 검은 까마귀 길드를 키우는 것도 아주 조금은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이 한 몸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분골쇄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뭘 당연한 소리를 그리 하시나.
농땡이는 곧 퇴사인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양반이.
“이제 대충 일은 마무리 됐고. 그럼, 대회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각자 쉬면서 개인 정비를 하면….”
진혁이 주주총회의 폐회를 알리려고 할 때였다.
“설마, 짐과의 약속을 잊진 않았겠지?”
엘리스가 눈에 불을 켰다.
……오싹하고.
요마간토와의 전투 때보다 차가운 살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생각하자.
여기서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사망엔딩이다.
분명 무언가 바라고 있는 눈빛이 틀림없다.
그러고보니 엘리스가 이번 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뭔가 요구했던 것 같긴 한데….
진혁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세포들이 옹기종기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총알은 단 한 번.
뇌세포 구석구석 스며들어있는 기억을 모조리 끄집어내 정답을 도출해야만 한다.
“휴…가. 가기로 했었지? 네가 살던 곳으로.”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구나.”
엘리스가 환한 미소를 자아냈다.
***
시련의 탑 39층.
한 때 위대한 진조 가문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엔 유독 떨어져 있는 고성이 하나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보이는 성.
저곳이 바로 엘리스의 보금자리인 ‘블랙 캐슬’이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거점에 들어왔습니다.]“엣헴!”
엘리스가 자랑스레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관리가 안 돼 거미줄이 잔뜩 쳐 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말이 좋아 귀족의 성이지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으음. 조, 좋네.”
진혁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가는 거 멤버들 다 같이 집들이를 가자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엘리스의 살기가 10배는 더 지독해진 걸 보고서야 내뱉은 말을 도로 주워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단 둘이 보내는 휴가가 시작된 것이다.
“흐응. 흥. 흥.”
뭐가 그리 행복한지 엘리스가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모기이이….”
유일하게 허락을 받은 고구마가 불안한 듯 몸을 떨었다.
진혁이 복슬복슬한 고구마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구마야. 나도 느낌이 영 좋지 않아. 그래도 내가 위험해지면 우리 귀엽고 충성스러운 구마가 대신 싸워줄 거지?”
“모기…?”
고구마가 진혁의 품에서 바둥거리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텅 비어 있는 줄만 알았던 고성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적?
진혁이 즉시 아공간을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