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95
695화. 엘리스의 안식처 (1)
마계의 위대한 존재인 마왕을 보필하는 기둥.
일선에서 전투를 치르는 발록과 데스나이트 그리고 리치들이 마계의 철퇴를 상징한다면….
……후방에서 적을 교란하고 수뇌부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는 서큐버스들은 암기를 뜻했다.
그리고 그 서큐버스들의 정점 ‘레미아 셀트릭’은 한 때 마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장미라고 불렸었다.
그래.
“후후후. 내가 바로 지옥의 푸른 독장미라고.”
메이드복을 입은 채 대걸레를 들고 킥킥대는 광인.
그 누가 이걸 보면서 마왕의 최측근 중 하나라 예상할 수 있을까?
피식!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 있던 거였어?”
진혁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혹시 몰라서 꺼내두었던 한 쌍의 단검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도 안 보여서 죽었나 싶었는데,
생존을 대가로 엘리스의 노예가 되어 이곳에서 머무는 중이었나보다.
“직장도 잃고 갈 곳이 없다고 하도 애걸복걸하길래 특별히 거둬들였느니라. 계약자를 본 받아서 월급은 한 달에 생쥐 3마리와 박쥐 5마리로 했고.”
엘리스가 양 손을 허리에 갖다 댔다.
작은 소악마를 보는 것만 같다.
뿌듯하면서도 두려운 감정이 동시에 드는 건 기분탓이겠지.
“그, 그래. 열심히 하는 걸 보니 보기 좋네.”
“별 말씀을요. 아, 그리고 여주인님. 준비하라 하신 건 모두…으읍? 읍!”
레미아가 한 마디 덧붙이려 하는 걸 엘리스가 황급히 제지했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조금 있다가 따로 말해.”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모기이이….”
진혁이 불안한 듯 고구마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
시련의 탑 21층.
거대한 폭포 아래에 위치한 동굴 안에선 두 명의 인물이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천 공자. 오랜만이네요.”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추혼사영과 천유성이었다.
“후후. 저야 항상 평온하게 지내고 있죠. 거대한 전운이 탑의 중층부가 아닌 상층부로 몰려가기도 했고요.”
무림맹과 천마신교 그리고 그 외에 사파들이 잠잠한 지금, 무림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제국마저 자신만의 부흥과 안정을 꾀하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시비를 걸 세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추혼사영은 이 평화가 아주 잠시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스승의 안부를 여쭈고자 천공자가 이 먼 곳까지 온 것 같진 않고. 어떤 일일까요? 그 수려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할 만한 일이?”
추혼사영의 질문에 천유성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미 천 공자의 실력은 경지를 넘어 벽까지 허물었어요. 제가 가르쳐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랍니다.”
“…….”
천유성이 검을 꾹 쥐었다.
추혼사영이 그런 천유성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더욱 짙은 미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랍니다. 진심으로 강해지고자 한다면 그 다음으로 가기 위한 길은 존재하는 법이죠. 물론, 그 만한 위험을 감수해야겠지만요.”
“놈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곧 있을 별들의 전쟁.
천유성은 거기에서 진혁과 나란히 설 생각이 없었다.
거대한 나무의 그늘에 가려져 거기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11년 전 처음 이 탑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단 하나의 소망은 진혁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확고하다면야….”
카카카카칵!
추혼사영이 동굴 안쪽에 있는 바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고 거대한 바위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한 검로가 바위의 표면을 훑어나가자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구음검마’의 영혼석이 개방됩니다!]검마(劍魔).
지금까지 무림의 역사상 수많은 강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천하제일인을 한 명만 꼽으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인물이 있다.
초대 천마와 무림맹주를 모두 죽인 최강이자 최악의 검귀.
신격으로 추앙받는 신선들마저 베어버렸다 알려진 무림의 절대자가 바로 ‘구음검마’다.
그리고.
이 바위 아래엔 구음검마가 무림에 남긴 몇 안 되는 흔적이 잠들어 있었다.
“검의 무덤….”
천유성이 조용히 그 이름을 곱씹었다.
자신의 라이벌인 진혁이 사용하던 능력 중 하나.
‘검의 무덤’을 만들어낸 창시자에 대해서는 그 역시 몇 번인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죽었다고 알려져 있긴 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이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가 무림을 벗어나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갔다고 하기도 합니다.”
서리가 유독 짙게 깔린 밤.
하얀 설녀를 만났다는 기록이 구음검마가 무림에 남긴 마지막 목격담이었다.
“지금부터 그의 잔념을 깨워서 천공자와 싸우게 할 겁니다.”
파츠츠….
흙더미들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오싹!
천유성의 몸이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엄청난 위압감이다.
일전의 요마간토도 격이 다른 괴물이었지만, 이건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절망적이었다.
“만약 천 공자가 구음검마의 잔념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면 또 다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구음검마의 잔념과 싸워서 살아남은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답니다.”
추혼사영이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얼굴로 천유성에게 물었다.
단 하나의 소원.
닿지 못할 별에 닿기 위해선.
그리고 그 별을 넘어 나아가기 위해선.
목숨이라도 내던질 각오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스릉!
천유성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바라던 바입니다.”
*
한편.
탑의 또 다른 층계에선 테레사와 가브리엘이 만나고 있었다.
“의외네요. 당신이 혼자 절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요.”
가브리엘이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사도를 보는 것에 따뜻함과. 이질적인 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혼재되어 있었다.
테레사 역시 가브리엘이 어째서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인격.
신성력과 대비되는 어둠이 언제든지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인격을 완전히 다루고 싶어요. 그리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건 가브리엘 님 외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들에게 위험이 되는, 양날의 검 같은 외줄타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인격을 제어해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것.
그게 테레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우리들은 여러 사도들을 잃었습니다. 뭐, 말이 좋아 여러 사도지.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에덴은 고대종 에드온과 우리엘이 이끄는 세력에 점령당했다.
당연히 기존에 있던 가브리엘과 미카엘의 병사들은 대부분 축출당했고. 살아남은 소수는 적들의 편으로 전향해버렸다.
전력 차이가 말도 안 되게 벌어졌다는 뜻이다.
“평소라면 당신처럼 위험한 카드는 손에 넣지 않았을 테지만… 마침 운이 좋네요.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가브리엘의 등을 따라 순백의 날개가 펼쳐졌다.
“당신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정말로 힘든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견딜 수 있습니다.”
테레사가 굳건한 표정으로 가브리엘의 기세에 맞섰다.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성녀의 의지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쿠쿠쿠쿠쿠!
신성력과 신성력이 충돌했다.
화르륵!
가브리엘이 불타는 창을 꺼내들었다.
더 이상 대화 따위는 필요없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탑의 다른 층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아홉 꼬리의 혼을 찾으러 왔습니다.
정신병동의 안드리아.
-혹한의 평원에 전사들을 결집시켜라.
서리칼날 부족의 카라칼.
-다 먹어치워서 강해져주지. 그래야 이 빌어먹을 회사에서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아포칼립스의 베헤모스.
-누나. 도착했어. 여기가 미궁 ‘귀곡의 계단’이야.
-크으. 좋아좋아. 여기를 끝까지 다 오르면 우리가 찾던 성유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거지?
이태민 유연화 등.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각 멤버들은 이후에 있을 전쟁을 대비해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성장을 도모했다.
***
블랙 캐슬에서는 엘리스와 레미아가 침대에 앉아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혹의 기술 1장. 으른의 연애]“너… 아니, 위대하신 가주께서 항상 허탕만 치는 이유는 남자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레미아의 혀를 차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유혹에 특화된 서큐버스 앞에서 엘리스는 순진무구한 어린애나 다름없는 수준. 철벽같은 진혁을 꼬시려면 그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바로 이것이다.
촤아악!
레미아가 엘리스의 앞에 작전이 세세하게 적혀 있는 종이를 펼쳤다.
[작전명: 살콤달콤! 대상의 심장을 움켜쥐어라!]일명 흔들다리 효과!
공포와 충격으로 인한 두근거림을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과학적인 이론이다.
“오오오! 과연, 뇌가 텅텅 빈 서큐버스 다운 묘안이로구나.”
“야이….”
레미아가 눈을 부라렸지만,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는 엘리스에게 그 표정이 보일 리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서큐버스의 대작전.
총총총!
토끼 걸음으로 뛰어간 엘리스가 진혁의 옷깃을 붙잡았다.
“계, 계약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최대한 다급한 목소리를 자아낸 건 덤이었다.
“엘리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렇게까지 흐트러진 엘리스의 모습에 진혁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서, 성에 귀, 귀신이 나타났느니라.”
“귀신…. 겨우?”
잔뜩 기대했던 진혁이 콧방귀를 뀌었다.
가끔 이런 폐허엔 보물을 가득 가지고 있는 이벤트성 몬스터들이 나타나곤 한다.
일명 황금 고블린.
난이도에 비해 사냥이 손쉬운 놈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정신계 몬스터인 유령이라면 그 중에서도 가장 빈약한 보상을 줄 확률이 높았다.
“진조나 되어가지고는 귀신 앞에서 벌벌 떠는 게 말이 돼? 보상도 제대로 안 주는 하위 몬스터한테.”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짐이 무서워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 그리고.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귀신은 무섭단 말이다!”
“그래그래. 하여간 손은 많이 가서는. 어디 있는데, 그 귀신이라는 놈은?”
진혁이 혀를 차면서 나가려던 바로 그때.
[레미아가 ‘몽마의 맹세’ – 옥죄여오는 악몽을 발동합니다!]공포스러운 환경을 연출해 대상의 정신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능력. 레미아의 고유능력이 발동되자 갑자기 문 밖에서 스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것도 잠시 연기가 곧 끔찍한 해골의 형상을 이루었다.
“네놈이냐.”
진혁이 단검을 꺼냈다.
확실히 생긴 것 자체는 제법 흉흉하게 생겼다.
물론, 고인물 앞에서는 귀여울 뿐이었지만.
하지만, 모두가 진혁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꺄아아악!”
흔들다리 효과를 노린 건 진혁이었지만, 정작 계획을 한 엘리스가 이성을 잃어버렸다.
워낙에 심장을 옥죄어 오는 레미아의 능력에 제대로 당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공포에 질린 엘리스가 자신도 모르게 진혁을 끌어안았다.
“…어?”
자연스럽게 균형을 잃은 진혁과 엘리스가 그대로 뒤엉켜버렸다.
풀썩!
자세가 무너지며 진혁이 엘리스의 위에 위치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창 밖의 달 빛이 두 명을 고요하게 비췄다.
“계, 계약자?”
엘리스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콩닥콩닥!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었다.
어느새 둘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엘리스….”
진혁이 작게 속삭였다.
“으. 응?”
“할 말이 있어.”
“뭐, 뭔데?”
엘리스가 숨을 참은 채 진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