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98
698화. 신경전 (2)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팔라조 호텔.
정식 초대권을 받지 못한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은 이곳에 짐을 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박살을 내버린 거 아니야?”
진혁이 엘리스를 보며 혀를 찼다.
어깨빵 좀 했다고 사람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린 걸 보니 솔직히 소름이 돋는다.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다. 미천하고 냄새나는 놈 주제에 감히 짐의 옥체를 스쳤으니까.”
“하여간 성질하고는… 쯧쯧. 우리가 너무 눈에 띄면 안 된다고 한 건 벌써 까맣게 까먹었지?”
“지, 짐도 기억하고 있다!”
엘리스가 소리를 빼액하고 내질렀다.
말은 저리 했어도 상당히 당황하는 기색이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했던 걸 깜빡했으니 당연히 양심에 찔릴 수밖에.
“근데 괜찮을 거겠지? 솔직히 그리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짐이 많이 잘못한 것이냐?”
“됐어. 어차피 그 녀석 너한테 맞았다는 말은 하지 못할 거야.”
랭커들의 자존심과 대형 길드들의 이해관계야 안 봐도 훤히 보인다.
키요프인지 뭔지 하는 유럽의 머저리가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예측이 가능했고.
“조용히 있을 거라는 이야기냐?”
“아니, 그것보다는….”
진혁이 문 쪽을 힐끔 바라봤다.
슬슬 초인종이 울릴 때가 됐는데.
일부러 잔뜩 흔적을 남기며 요란하고 화려한 5성급 호텔을 잡은 이유가 있다.
바로 그때.
띵동!
경쾌한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양반은 못 되는군.’
기가 막히게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와줬다.
“바보 성녀나 바보 검성인가?”
엘리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각자 방에서 쉬자고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타이밍에 이곳에 올 이유는 없을 터.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적어도 엘리스가 생각하기엔 그러했다.
피식 웃은 진혁이 문앞으로 다가갔다.
덜컹.
문이 열리자 잔뜩 죽을 쓰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럽 드레드로어에 소속된 랭커 키요프였다.
그 옆에는 똥 씹은 얼굴을 한 이반코비치도 함께 있었다.
역시나.
이제는 촉이 거의 예언의 경지에 이르렀다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이구.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어쩐 일로 오셨을까나?”
진혁이 너스레를 잔뜩 떨었다.
“제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얼굴이군요.”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테니까. 게다가 거짓말을 수습하려면 이쪽으로 오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어.”
“……정확합니다. 덕분에 저희 목이 위태롭게 생겼어요.”
키요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이어에겐 미국 타이탄 길드의 소행이라고 말해두긴 했으나, 조금만 깊게 파면 곧바로 들킬 거짓말이었다.
기껏해야 기간이 며칠뿐인 임시 방편.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걸 위해선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협력이 필수 선결조건이었고.
“아마 서정희가 있었으니 미국 쪽과 붙었다고 했으려나? 그럼, 우리가 그 녀석들의 끄나풀인 것처럼 행동해주면 되는 거고?”
“…놀랍군요.”
키요프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너무나 예리한 진혁의 통찰력에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쳐버렸다.
“맞습니다. 정확히 그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제가 전달해드릴 테니 거기에 맞춰서 행동해주시기만 하면….”
“에헤이.”
진혁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너희들은 상도덕이라는 것도 없나?”
물에 빠진 놈이 누구고. 구해줄 수 있는 놈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갑질하던 습관 때문인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어림도 없지.
“우선 우리가 도와주면 어떤 걸 제공해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말하는 게 강호의 도의지. 다짜고짜 자기들 마려운 것만 해결하려고 하면 내 입장이 뭐가 돼?”
“어떤 걸 원하시는 겁니까? 돈이라면….”
“그건 차고 넘치게 있으니 필요 없어.”
원하는 건 ‘정보’다.
이번 대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길드의 전력과 랭커들의 특징. 그리고 현재 이해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등등.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파악할 수 없는 고급 정보들이 가능한 한 많이 필요했다.
“큭….”
일방적인 요구에 이반코비치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알겠습니다. 모두 제공하도록 하죠.”
그런 이반코비치를 키요프가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아! 그리고. 계획은 내가 정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도 내가 정할 거야. 너희야말로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고.”
콰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반코비치가 문을 걷어찼다.
콰콰콰콰… 콰콰콰쾅!
반으로 박살난 파편 조각이 거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벽까지 날아가 박혔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군. 애초에 우리는 저 소녀나 천유성이라는 놈에게 제안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머리만 좀 굴릴 줄 아는 너드 놈은 낄 때 안 낄 때를 구분해서 까불라는 말이다.”
이반코비치가 으름장을 늘어놓으며 엘리스와 소란을 감지하고 찾아온 천유성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일전에 존재감을 보여줬던 두 명이 이 멤버의 주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 그랬구나. 내가 제일 아래로 보였던 거였어?”
그런 의미였으면 진작에 말을 좀 해주지.
생긋 웃은 진혁이 천천히 이반코비치에게 다가갔다.
워낙에 체구가 큰 거한 앞에 진혁은 머리통 하나가 더 차이 났다.
그럼에도 진혁의 걸음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멍청한 인간들이로구나.”
“……명복을 빌지.”
심지어 자신들보다 아래가 아니라고 대놓고 했는데도 엘리스와 천유성은 그 발언을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싸아아….
요란하지 않지만 고요한 살기가 개방되었다.
“……커억?”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이반코비치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방심했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다.
만에 하나 일이 제대로 안 풀렸을 경우 실력 행세라도 할 계획이었으니까.
성유물과 고유 아이템 그리고 각종 마력보조제까지.
대규모 레이드에 참여하기 직전처럼 풀세팅을 해왔단 말이다.
허나.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설령 길드 차원의 성유물을 모조리 지원받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내가 쟤들 밑으로 보여?”
당연히 은발의 소녀와 아까 전에 검을 쓰는 천유성이라는 남자가 이 무리를 이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틀렸다.
덜덜덜!
……레벨이 다르다.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예 보고 듣는 차원 자체가 달랐다.
드레드로어를 이끄는 마스터 ‘로어 그레이’.
타이탄 길드의 대마도사 ‘샤샤’.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른 EX급 초인들이었지만….
이반코비치는 그 둘이 저 인간을 이긴다는 그림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키요프 역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미친 듯이 떨리는 몸을 가누기 바빴다.
‘이런 자가 여태까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니.’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은둔생활을 했던 걸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음에도 어째서?
게다가 굳이 이 타이밍에 별들의 전쟁에 참여하려는 의도 또한 예측이 가질 않았다.
뭐가 됐든 EX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강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 같군요.”
키요프가 모든 걸 체념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희 안위만 보장해주신다면, 그 외에는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장기말들이 들어왔다.
***
진혁이 부드럽게 상황을 리드하는 사이.
미국과 유럽의 신경전은 날카롭다 못해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해 기회만 엿보던 두 길드에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을 제공해버린 꼴이었으니까.
이미 탑 안에 있는 다수의 던전과 미궁에서는 서로의 암투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레드 로어 쪽에서 저희가 독점 중인 15층의 마정석 광산을 노렸습니다. A급 한 명과 B급 5명 그리고 C급 이하 26명이 전투 불능입니다. 마정석 광산 역시 당분간 채굴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고요.”
“3개월간 공을 들인 루이스 콜드메인 유적 공략 역시 성패를 장담하기 어려워졌어요. 제3세력인 십이지신 측과 연을 만들려면 그곳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말이죠.”
12마리의 신비로운 힘을 가진 신수들.
그리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대인전 최강 원숭이의 도움을 받기 위한 대전제가 바로 콜드메인 유적이었다.
인류의 앞날을 위해서 꼭 성공해야만 하는 과제 중 하나.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 대업이 이번 한 번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게 생겼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나오는군.”
“대놓고 도발을 하고 있는데 대응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뭐라도 해야 합니다!”
“이 기회에 그레이. 그 미친 놈의 목을 따버리죠.”
타이탄 길드의 랭커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에 있는 흰 턱시도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연신 탁자를 두드렸다.
EX급 중 하나인 코드 네임 ‘샤샤’.
9서클 마법은 물론, 다른 차원의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대마도사로 현존하는 모든 마법 계열 플레이어 중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자’라는 이명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소리다.
“다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진 알겠네. 허나,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게 있는 법. 확실한 물증도 없이 가장 꼭대기를 칠 수는 없어.”
뒤에 있는 드레드로어 놈들을 손봐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 전에 이 사달을 만들어낸 놈들을 처리하는 게 순서다.
의뢰를 받은 놈들을 붙잡아 심문하다 보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터.
모든 게 드러난다면 그때야 비로소 드레드로어 놈들을 향해 갈고닦은 창끝을 겨눌 수 있을 것이다.
화르륵!
화염이 솟구치며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속한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래에는 주어진 정보들을 토대로 만들어낸 개개인의 세세한 신상정보들이 불꽃으로 쓰인 글자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자들이 맞는 겁니까?”
“예. 저놈들이 제 개인 용병들을 전부 죽였습니다. 분명 더러운 수를 쓴 게 틀림없어요.”
서정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는 지독한 살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서정희 이사까지 건드릴 정도면 정말로 드레드로어 같은 거대 길드의 뒷받침이 있다고 봐야할 것 같군요.”
탑 안에서도 아니고 대놓고 밖에서 시비를 걸다니.
절대 순순히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세계 최대 강국을 건드린 대가를 뼛속까지 스며들도록 느끼게 해줄 작정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그자들을 제거하는 거야 샤샤 님의 마음이지만, 딱 한 명만큼은 저희에게 양보해주셔야 합니다.”
그림자 속에 있던 또 다른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새하얀 제복이 유독 눈에 띈다.
현대에 있는 자들 중 가장 이질적이고 대책이 없는 외골수들.
전원이 ‘에덴’의 사도로 구성된 이단심문관들이었다.
“위대하신 대천사 라파엘께서 명하셨습니다. 타락한 성녀 테레사를 심판하라고요. 저희는 그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방해한다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꽁꽁 싸매인 광신도들은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입니다.”
타이탄 길드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길드에서 걸리적거리는 점이 있다면.
그건 로렌시아 가문의 테레사와 유천영의 손녀 유연화였다.
그 중에서 하나를 제거해주겠다는데 타이탄 길드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주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겁니다.”
곧 있으면 별들의 전쟁이 개최된다.
세계 각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다양한 무대와 이벤트들.
수많은 강자들이 참여하는 만큼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날 확률 역시 높을 수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