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
7화 미궁 리바린토스 (1)
진혁이 거대한 건축물 앞에 섰다.
기존의 상식과 법칙을 무너뜨린 불가사의.
인류의 미래가 걸린 관문.
시련의 탑.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 될 장소가 바로 여기다.
아직 내부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꽤 많이들 모였네.’
탑 주위엔 이미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층 ‘고블린 동굴’부터 가야 해. 거기서 자리 잡고 사냥하는 게 최고야.”
“알고 있어. 무조건 레벨업부터 빨리 해야지.”
“이번엔 반드시 탑을 끝까지 올라 보자고.”
팀을 이뤘거나.
아니면 솔플이거나.
다들 남들보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19:00] [‘시련의 탑’이 개방됩니다.]전 세계에 나타난 탑들이 동시에 개방됐다.
“열렸다!”
“빠, 빨리 들어가!”
“서둘러!”
기다리던 사람들이 물밀 듯이 게이트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진혁도 움직일 채비를 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빛 속으로 걸어갔다.
***
우우우웅!
탑의 내부로 들어가자,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가 펼쳐졌다.
드넓은 초원과 푸른 하늘.
그리고 지평선 너머로 맞닿아 있는 푸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시련의 탑 1층이자, 한국에서 온 플레이어들이 모이는 스타팅 포인트다.
“오오오!”
“드디어 왔다!”
“예전에 했던 거랑 완전히 똑같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흥분과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뭐랄까.
마치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뉴비들 같았다.
물론,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된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감회가 새롭긴 하네.’
진혁이 손끝으로 허리까지 자라 있는 풀을 쓰다듬었다.
향긋한 풀내음과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
햇볕의 따스함까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게임하곤 다르다.
이건 현실이었으니까.
‘죽으면……. 그걸로 끝이겠지.’
다시 부활해서 시작하는 것 따윈 없다.
진혁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띠링!
[시련의 탑에 입장하신 걸 환영합니다.]눈앞에 푸른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시작되는군.’
진혁이 이어질 내용을 기다렸다.
[탑 입장 기념으로 100코인이 지급되었습니다.] [코인은 탑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입니다.] [플레이어분들은 자신의 업적을 영상으로 남겨 업로드할 수 있으며, 10,000 조회수당 100코인이 지급됩니다.] [단, 수수료는 플레이어의 등급에 따라 차등화됩니다.] [탑 외 거주자 분들이 본 영상은 최초 1회만 조회수로 카운팅 되오니. 영상을 시청하시기 전에 신중한 선택 부탁드립니다.] [생방송은 오직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보스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켜실 수 있습니다.] [조회수 조작이나 기타 부정행위 등이 적발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그래.
바로 이것이다.
탑을 오르는 자들과 탑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이어 주는 연결다리가.
플레이어는 최대한 다양하고 참신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시청자들은 탑의 끝을 볼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들의 영상을 보며, 조회수를 올려준다.
시련의 탑 설정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게 바로 이 시스템이었다.
‘유명 BJ가 될수록 코인을 독식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앞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콘셉트의 영상을 업로드할 것이다.
그러나 진혁은 당분간 동영상을 올릴 생각이 없었다.
‘코인 따위보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공개되는 게 훨씬 더 손해야.’
나중에 다 쓰고 단물이 빠진 정보들 위주만 편집해 올려도 반응은 폭발적일 터.
벌써부터 방송에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 있는 생방송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진혁이 숲의 한쪽을 바라봤다.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 뒀다.
남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길을.
***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사냥터는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던전, 미궁 그리고 유적으로.
던전은 보스몬스터와 양산형으로 구성된 소형 사냥터다.
가장 무난하고 가장 많이 퍼져 있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주로 애용했다.
반면, 미궁은 굉장히 넓은 크기를 자랑하며 몬스터의 강함보다는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한 달 이상.
심지어 상위층에 있는 미궁은 6개월 이상 공략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적은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난이도가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드래곤, 거인, 정령수나 영물 등 최상위종이 주로 보스를 맡고 있는데다, 까다로운 함정들과 결계들까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선택지 중에서 진혁이 찾은 곳은 1층 정중앙에 위치한 미궁 ‘리바린토스’였다.
[이름: 리바린토스종류: 미궁
난이도: B
내용: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크레타의 미궁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미로와 다양한 종류의 함정들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평범한 고블린 던전이 F급인 걸 감안하면, B급 미궁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제 막 시련의 탑에 들어온 초보가 미궁으로 들어간다?
그냥 자살하고 싶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진혁이 이곳을 고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6년 전이었던가.
탑의 30층 초반을 공략하고 있었을 당시, 진혁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미친 듯이 해결책을 찾았다.
아래층을 뒤져 숨겨진 히든 피스를 모으기도 하고, 지나온 길을 일일이 되새김질하기도 했다.
허나 모두 소용없었다.
소용없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기초부터 부실했었으니까.
문제점을 알았을 땐 패닉에 빠졌었다.
눈물을 머금고 키운 계정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키워야 했을 땐, 접을까 고민도 많이 했었고.
그러나 이를 악문 채 계속했기에, 결국 10층의 한 유적에서 고서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탑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1층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관해 적혀 있는.
-1층 유적 ‘타락한 자들의 회랑’을 공략하는 방법은 처음 탑에 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유적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처음 왔을 때 그대로.
다시 말해, 1레벨인 상태로 보스한테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진혁의 눈앞에 있는 미궁은 그걸 가능케 하기 위한 수련 장소……라고 할까?
음…….
단순히 수련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폐가 있다.
이 미궁 안을 배회하는 괴물에게 ‘살살해 준다’라는 선택지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설마, 내가 이걸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진혁이 미궁을 보며, 쓰게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다시 오지 않겠다고 가래침 뱉으며 나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왜, 군 생활 하면서 ‘그래도 한 번은 해 볼 만했지’라고 생각하며 제대했는데 다음 날 눈 떠 보니 신병 교육대인 기분.
그게 딱 지금 심정이었다.
그래도.
‘혼자서 들어가는 건 아니니 심심하진 않겠지.’
진혁의 시선이 힐끗 뒤쪽으로 향했다.
처음 시련의 탑에 입장했을 때부터 따라오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름대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완벽하게 미행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설프다.
전형적인 뉴비들답게.
‘귀엽네.’
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쎄……. 그게 마음처럼 되려나?’
***
멀찍이서 진혁의 뒤를 밟던 대여섯 명의 남녀가 혀를 찼다.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따라왔더니. 미궁이었잖아?”
“흐음. 이런 데 미궁이 있는 줄 몰랐는데.”
“빌어먹을.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고블린 사냥이나 하면서 광렙이나 하자고!”
“내가 일부러 그랬냐? 고인물 포스를 풀풀 풍겨서 히든 피스라도 먹으러 온 건가 했지.”
“싸우지 말고 그만 돌아가자. 지금이라면 아직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이 있을 거야.”
여러 개의 목소리가 오갔다.
대부분은 시간낭비였다는 내용이었지만.
그때.
“쉿! 기다려 봐. 저 인간 하는 것 좀 보고.”
가장 앞쪽에 있던 여자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왜?”
“잘 봐. 저 남자, 미궁 입구에 문자를 그려 넣고 있어.”
여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진짜다.
처음 보는 문자가 푸른색으로 빛나는가 싶더니.
쿠쿠쿠쿠쿠!
이내 땅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미궁이 개방되고 있는 것이다.
“미친!”
“실화냐 이거?”
“열쇠도 없이 미궁을 열었다고?”
지켜보던 이들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미궁에 입장하려면 열쇠나 재료 따위가 필요할 터.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입구를 열 줄이야.
상식이 완전히 깨져 버린 상황 속에서 모두들 입을 쩍 벌린 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가자. 저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우리도 가야 돼.”
침묵을 깬 건 가장 앞쪽에 있던 여자였다.
“뭐?”
“들어가자고? 무슨 종류인지, 얼마나 큰지도 모르는데?”
“박하나. 너, 지금 제정신이야?”
“조용히 하고 생각해 봐.”
박하나라 불린 여자가 답답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도 시련의 탑에서 초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거 아냐?”
“그거야…….”
“알고는 있지.”
난이도가 극악일수록, 초반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특히나 [시련의 탑]을 한 번이라도 플레이해 봤던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박하나가 말을 이었다.
“열쇠도 구하지 않았는데, 미궁이 열렸어.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아?”
경험치, 아이템 등등.
얻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1레벨짜리가 들어갈 정도면 난이도도 그리 높지는 않을 거야.”
믿는 게 바로 이거다.
그 흔한 아이템 하나 없는 플레이어가 홀로 미궁에 들어간다?
미궁의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하긴, 1층에 있는 미궁이니…….”
“혼자서 가려는 걸 보면 확실히 네 말이 맞긴 하겠네.”
모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문제는 하나.
“그런데 저 녀석이 아이템을 순순히 나누려고 할까?”
바로 미궁에서 얻는 보상들에 대한 분배 문제다.
“물론, 나누려고 하지 않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나눌 생각은 이쪽도 없었으니까.
“미궁을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영원히 미궁 속에서 머물게 해 주자고.”
박하나가 품속에서 예리하게 생긴 철침을 꺼냈다.
‘자이언트 애호박벌의 침’.
1mg이라도 주입되면 1분 이내 사망하는 맹독을 지닌 아이템이다.
“그, 그게 아까 말했던…….”
“맞아. 우리 오빠가 어제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구해 온 아이템이야.”
박하나의 말에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거기 완전히 피바다였다는데…….”
“끝내준다. 그 지옥에서 당당히 아이템을 가져왔다는 거잖아?”
“하나 오빠가 이 게임 꽤 오랫동안 했다고 하더니, 고인물이었나 보네. 진짜로.”
박하나의 친오빠인 박하진은 [시련의 탑]을 플레이할 당시 ‘검은 까마귀’ 길드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나름 이름이 알려진 중견 길드 중 하나로 그때의 길드원들이 고스란히 모여 현재도 이곳 1층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너희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박하나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미궁 앞에 있는 진혁을 바라봤다.
바뀌어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살인조차 정당화해야만 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었으니까.
박하나는 이미 그 법칙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
부스럭!
풀숲 사이로 여섯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나오는 건가.’
기척을 숨기는 게 너무 어설퍼 하품이 나올 정도였지만.
그래도 모른 척 하는 게 예의겠지.
“당신들은 누굽니까?”
진혁이 경계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안 하던 걸 하려니 안면 근육이 욱신거렸다.
어우, 턱이야.
“아! 저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앞쪽에 있던 박하나가 재빨리 양손을 들어올렸다.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걸 어필하듯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저희는……. 음. 적당한 사냥터를 찾으려고 이 숲에 왔어요. 그러다 우연히 그쪽 분을 발견하게 됐죠.”
우연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입에 침이나 좀 바르고 말해라.
뭣보다 첫 소개가 나쁜 사람들 아니라는 건 또 뭐냐? 80년대 나오는 뇌가 텅텅 빈 악당들도 그런 말은 안 하겠다.
[Lv1 ‘진실의 눈’이 발동됩니다.] [박하나의 말은 ‘거짓’입니다.]이미 진혁의 눈엔 참과 거짓의 경계가 보였다.
그럼에도 이 뻔한 연극에 어울려 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박하나라…….’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 여자. 꽤 재미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복사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고유 능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