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02
702화. 미궁 ‘람세스 대신전’ (1)
……긴장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반쯤은 축제라 생각했었다.
어쨌거나 탑과는 달리 생명이 위협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빌어먹을.”
그건 착각이었다.
대신전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외부와의 통신이 두절되었고. 실시간 중계 역시 먹통이 되며 완전히 고립되었다.
단순히 그것만이었다면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으나, 최악의 상황은 몬스터들과 조우한 이후부터였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짜라고 생각했던 몬스터들이 완전한 실체와 적의를 갖고 공격대를 노리기 시작했다.
밸런스 패치를 잘못했는지 몬스터 하나하나의 위력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쿠웅!
또 한 명이 쓰러졌다.
아웃된 게 아니라 정말로 목숨을 잃었다.
들어온 지 1시간도 안 돼서 전체 전력의 30% 남짓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최소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안에 들어오는 건 막아야 한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아무리 많은 숫자가 들어와봤자 의미없이 죽어나갈 뿐이다.
적어도 7대길드의 TOP 100위 안에 드는 랭커 다섯 이상이 붙어야 겨우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 난이도가 이 정도라면 어쩌면 EX급 초월자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빌어먹을.’
감히 상상이 안 가는 미궁의 규모.
이 안에 얼마나 더 강한 괴물들이 득실거릴지는 완전히 미지수였다.
“……여기를 포기한다. 모두 입구 쪽으로 가서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도록.“
헤밀턴이 결단을 내렸다.
“예? 하, 하지만….”
“기껏 가장 먼저 이 안에 들어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두 번 다시 1군 공격대에 들어갈 기회가 없을 겁니다.“
힘들긴 하지만, 아직까진 가능성이 있다.
워낙에 큰 보상이 걸려 있기에, 모두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깟 메인 공격대 때문에 다 죽을 셈이냐? 상황이 이상하다는 건 다들 느끼고 있지 않는가! 살아 있어야 다음 기회도 있는 법이다.”
타이탄 길드의 2군 공격대이긴 했지만, 공대장인 헤밀턴은 나름대로 맹수같은 감각을 가진 공대장이었다.
다행히도 그의 공대원들은 자신들의 욕심보다 공대장의 말을 신뢰하는 쪽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퍽! 끝나면 다 같이 보드카나 한 잔 빨자고. 와인이나 맥주 정도로는 쓰린 속을 달릴 수 없을 것 같으니.”
명령이 내려지자 공격대는 최대한 수비 포지션을 유지하며 퇴로를 확보해 나갔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입이 길게 찢어지는 미라들.
입에서 오염된 피를 뿜어내는 저주받은 몬스터들이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10분 전에 쓰러뜨렸던 놈들과 달리 새롭게 등장한 적들은 A급 플레이어들마저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 만큼 강했다.
“쿨럭! 컥!”
“메이슨!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치이이익!
지면을 따라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토해내다 못해 쌓여가는 산성액으로 인해 발을 디딜 곳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조합이 갖춰졌다는 공격대의 이점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후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썩어문드러진 늑대 형상을 한 존재가 등장한 순간부터는 혹시라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쿠쿠쿠쿠쿠쿠쿠!
공기가 급변한다.
차갑게 얼어붙은 실내에는 오직 죽음의 냄새만이 멤돌았다.
“크르르….”
검은색 책과 검은 지팡이를 든 늑대는 검은 그림자들을 연신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릿저릿!
피부 자체가 타버릴 것만 같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다.
저건 아예 격이 다르다는 걸.
네임드인 거야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봤던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인 채 지켜만 보고 있는 건 일종의 유희일 것이다. 자신이 나선다면 만에 하나라도 변수가 없을 테니까.
“젠장.”
피해량이 힐러들의 힐량을 뛰어넘는 시점이 다가오자 헤밀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끝장이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콰!
이변이 일어났다.
한 줄기 황금색 빛줄기가 전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가세하겠습니다.”
줄기줄기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성기사.
테레사 드 로렌시아였다.
이름 있는 가문의 유망했던 랭커. 암스테르담의 아웃브레이크 이후 활약이 눈에 띄게 줄긴 했으나, 워낙에 초반에 화려했던 만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인물이었다.
“지, 지원인가?”
“다행이다! 성기사야!”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미라 같은 언데드 계열 몬스터에게 최고의 효율을 뽐내는 직업이 왔으니 당연히 희망이 샘솟을 수밖에.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저게 끝이야?“
고작 여섯 남짓.
최소한의 조합마저 갖추지 못한 인원과 구성은 공격대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래서야 도움은커녕 시체 숫자만 늘리는 꼴이리라.
그런데.
[테레사가 고유능력 ‘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쿠쿠쿠쿠쿠쿠쿠!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황금색 십자가들은 고작 한 명의 성기사가 보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키에에에!”
“키에에에!”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황금색 운무는 수백 마리의 미라들을 통째로 증발시켜버렸다.
모두가 멍하니 테레사의 전투를 지켜봤다.
전신의 감각이 한 쪽으로 쏠렸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뇌리에 담아두기 위해서.
딱 하나.
네임드 몬스터인 ‘부패한 사제’를 제외하곤 말이다.
“…….”
줄곧 관망을 하던 부패한 사제가 테레사의 존재를 느끼고 손을 꿈틀였다.
그냥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짓밟아버리는 개미들과 달리, 직접 움직여서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적이 나타났다.
화르륵!
검은 증기들이 격하게 날뛰었다.
테레사의 신성력이 일순간에 사라지며 그 자리를 저주받은 기체들이 채워나갔다.
지팡이 끝에 맺힌 검붉은 기운에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이 모여들었다.
바로 그때.
“한창 신나 있는 우리 성녀는 그냥 저렇게 냅두고. 너는 나랑 놀지?”
부패한 사제 앞에 낯선 인간이 나타났다.
검은 머리카락에 한 쌍의 단검을 든 등반자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게 너희 인간들의 특징이긴 하다만,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고작 한 명이서 이 몸과 맞서려 할 줄이야.”
[부패한 사제가 ‘고대의 흑사’를 발동합니다!]콰콰콰콰콰콰콰콰!
검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빛이 일 점을 향해 뿜어졌다.
범위는 훨씬 작지만, 위력 하나만큼은 블랙 드래곤의 에시드 브레스를 연상케 했다.
“미안, 하도 강한 애들하고만 싸우다보니 힘 조절이 살짝 서툴 수 있을 것 같아.”
생긋 웃은 진혁이 단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흑월야(黑月夜)’가 발동됩니다!]쇄도하는 빛과 검은 초승달이 한 점에서 충돌했다.
⁕
같은 시각.
일방적으로 미라들을 학살하는 테레사에게 흠뻑 빠졌던 헤밀턴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맞다. 네임드 몬스터는…!?”
미라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위험한 놈은 늑대 형상을 한 그 괴물이었으니까.
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테레사를 위주로 태세를 정비해 방어에 나서야 한다. 이 정도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성기사라면 어쩌면 본대의 지원이 오기 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가장 문제였던 늑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처음 뵙겠습니다. 요즘 사막 여행이 대세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들 마주치게 되네요.”
그림자 속에서 진혁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 그 방향에는 네임드 급 몬스터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쪽에서 올 수 있던 겁니까?”
“네임드요?”
진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렇습니다. 공격대 전체를 쓸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저희도 그 괴물 때문에 도주를 반쯤 포기하고 있었던 건데….”
“글쎄요. 그런 놈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특별히 위협이 될 만한 적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는 길에 이상한 지팡이 하나를 주운 것 빼고는.
***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소식이 끊긴 선발대를 찾기 위해 각 길드에서는 랭커들로 구성된 추가 공격대를 파견했다.
명분상으로는 소중한 동료들의 생사를 확인해야한다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대신전 안에 있는 보상들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모인 7대 길드의 공격대.
뿔뿔이 흩어져서 안으로 들어온 공격대는 신전 안에서 살아남은 선발대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들 곁에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진혁 역시도.
“너 이 새끼…!”
드레드로어의 랭커, 마이어가 대번에 진혁에게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칼부터 뽑아들 것만 같은 기세다.
진혁으로 인해 길드 전체가 태풍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생겼으니 당연히 화가 솟구칠 수밖에.
그를 따르는 드레드로어의 랭커들 역시 흉흉한 살기를 내뿜기는 마찬가지였다.
“겁도 없이 우리를 사칭하다니. 자살하고 싶은 방법도 참신하군.”
“저 자식 때문에 개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아주 갈아 마셔주지.”
스릉!
철컹!
각종 무기들이 뽑혔다.
이미 외부와의 연락이 모두 차단된 상태였기에,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불문율에 부쳐질 것이다.
“성질 한 번 급하네.”
진혁이 쯧쯧 혀를 찼다.
하여간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환장하는 게 전형적인 뉴비들 답다.
아니지. 그래도 이 정도면 뉴비 티는 벗었다고 해야 하려나?
어찌됐든 첫인사 정도는 나누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진혁이 슬쩍 티본과 월영을 향해 눈치를 주려고 할 때였다.
“그건 가만히 들어주기 힘든 말이군요.”
익숙한 음성과 함께 다수의 마력이 개입했다.
척. 스윽.
워낙에 기척을 잘 갈무리 해뒀기에 지척에 접근할 때까지 제대로 눈치 채지 못 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끼어드는….”
말을 하던 마이어가 멈칫했다.
시비를 건 이가 그저그런 떨거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케시.
그는 미래를 읽는 능력으로 일본이 여러 차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라를 구원했다.
특히나 현재 최고의 랭커인 슈에뜨와 함께 한 아판도스의 서식처 레이드에서는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사무라이 길드의 인지도를 올려놨다.
[네임드 몬스터 셋과 게이트 가디언 그리고 약 70,000 마리의 개미들을 쓸어버리면서도 희생자는 고작 20명 남짓.] [가장 까다롭다는 3루트를 가장 적은 피해로 공략해낸 것은 모두 사무라이 길드 덕분!]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영웅의 일대기 공개]언론과 매체에서는 모두 일본의 업적과 말도 안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낸 타케시의 판단력을 칭송했다.
그 결과 사무라이 길드는 7대 길드 중 한 축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감히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근접계 최강의 무투파 집단이 된 것이다.
“더 이상 함부로 지껄인다면 저희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타케시가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드레드로어 쪽 랭커들이 곤란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자신들을 사칭한 죄가 무겁다고 하더라도 계획에도 없던 대형 길드와의 충돌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벌하기 짝이없는 검귀들이 득실거리는 사무라이 길드라면 더욱더.
“……라고 하네? 이야, 이거 아까워서 어쩌나. 나도 진짜로 꼭 싸워주고 싶었는데, 진짜로. 어쩔 수 없네.”
진혁의 이죽임에 속이 타들어가는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