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03
703화. 미궁 ‘람세스 대신전’ (2)
쿠쿠쿠쿠쿠!
마력과 마력이 충돌한다.
숨막힐 듯한 대치가 이어졌다.
“큭.”
마이어가 입술을 깨물었다.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 타케시와 사무라이 길드들 안에 있는 진혁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부분을 들먹이며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지 알려줄 뿐.
“당신이 저 녀석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척을 질 정도로 중요하단 말이냐?”
7대 길드 간에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소모전을 예고한다.
누가 이기든 간에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소리다.
마이어는 그 점을 파고들려했다.
하지만.
“물론입니다. 저희가 가진 모든 걸 내던져서라도 반드시 그 분을 지킬 겁니다.”
타케시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그를 전폭적으로 따르는 사무라이 길드의 랭커들 역시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싸우겠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주겠다.”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검기.
유형화된 푸른 내기가 사무라이 길드 전체를 따라 퍼져나갔다.
완전한 임전태세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진혁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다 못해 베베 꼬이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사무라이 길드와의 전면전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그 이상의 것.
적어도 마스터인 그레이가 직접 오지 않는 한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뭐냐, 저 놈.’
마이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번도 눈에 띈 적 없는 듣보잡 플레이어.
그런데 타케시나 테레사 같은 거물들이 계속해서 주위에 득실댄다.
아델이라 불리는 신성 루키 역시 우연이든 아니든 엮여 있지 않았던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연이겠지.’
혹시나 싶어 탐지 계열 플레이어에게 진혁의 마력을 탐지해보라 시켰다.
“틀림없습니다.”
두 번, 만약을 대비해 세 번. 검증에 검증을 거쳤음에도 역시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이 대신전 안에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주마.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마이어가 콧방귀를 뀐 뒤 몸을 돌렸다.
첫 번째 기세 싸움에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타케시가 진혁에게 다가왔다.
일본에 파견나가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특파원.
반쪽 짜리 미래시이긴 했으나 이 녀석의 능력은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다. 실제로 일본의 영웅이 되기도 했고.
“덕분에 골치 아픈 일을 하나 피하게 됐어.”
“별 말씀을. 위대하신 신격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는 놈들이라면 응당 제가 처리해야죠.”
아… 그러고보니.
아직까지도 타케시는 나를 탑의 주신들 중 하나로 알고 있다.
하긴, 지금까지 보인 행보가 평범한 플레이어가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긴 하지.
“크흠!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응?”
“감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에게 위대한 뜻의 일부라도 알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보잘 것 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타케시의 허리가 90도로 접혔다.
이 자식이.
단순히 도와주는 게 아니라 굽신거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너희 역할은 어디까지나 뉴비를 괴롭히는 걸 막는 정의의 사도 정도란 말이다.
“진정하고. 일단, 허리 좀 펴봐.“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꼿꼿하게 해라.
“허락해주실 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습니다!”
쿠웅!
타케시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여차하면 할복이라도 할 것만 같다.
당연히 우두머리 격인 타케시가 이런 꼴을 보이자 나머지 사무라이들도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쿵! 쿵! 쿠웅!
수백의 정예들이 같은 자세를 하는 건 어지간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것도 명예와 자부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무라이들이.
“아, 알았으니까. 일어나라고! 제발.“
이제는 거의 애원을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그래. 안 그래도 이번에 굉장히 중요한 일을 맡길 인재가 필요했는데, 생각해보니 네가 제격일 것 같아.”
“중요한 일이라니….”
타케시가 감격에 벅찬 듯 울먹였다.
진혁을 처음 만난 이후 줄곧 강해지기 위해 고군분투 했었다. 수많은 구성원 중 일인이 아닌, 탑의 절대자 중 하나에게 인정받는 충성스러운 수하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노력의 보상이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목숨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나이다!”
“그, 그래. 해야 할 일은 여기 적어놨으니 일단은 조금만 떨어져 있어봐.”
광역 어그로도 이런 광역 어그로가 없다.
아주 온 동네방네에 네가 내 부하라고 광고를 하고 다녀라.
진혁이 우직하다 못해 답답한 타케시의 성격에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그래도.
이걸로 지금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 중 하나를 손에 넣게 되었다.
***
탑과 현실의 동기화.
외부와의 연락 두절.
예상을 몇 단계나 상회하는 미궁의 난이도.
이 모든 변수들은 람세스 대신전 안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경계심을 최고조로 자극했다.
“현재까지 입수된 정보들로는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빛의 책’과 ‘어둠의 책’을 각각 확보해 그 안에 있는 단서들을 해석해야 신전의 최심부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격대 보다 먼저 유적이나 미궁 안을 누비며 공략의 핵심 단서를 찾는 ‘탐험가’들. 그들이 지난 몇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알아낸 결과였다.
“그 이후에는요?”
“죄송합니다. 그 다음은 책을 확보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녜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일단은 두 개 팀으로 나눠서 움직여볼까요?”
7대 길드 중 하나인 ‘슈자’.
아프리카 대륙의 전사들로 구성된 흑표범들 역시 이번 레이드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둠의 책인지 뭔지를 맡도록 하지. 다른 놈들의 도움 따윈 필요 없으니까. 나머지 약자들끼리 모여 빛의 책인지 뭔지를 찾으러 가라.”
마이어가 갈림길의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럼, 나도 이쪽으로 가야겠네.”
진혁이 슬그머니 그 쪽에 붙었다.
“이 자식이 방금 내가 한 말을 뭘로 듣고, 우리끼리 움직이겠다고 하지 않았나!”
“너희가 여기 전세낸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갈지 정하는 거야 내 자유 아니겠어? 아니면 뭐야, 설마, 나랑 함께 움직이는 게 무서운 거야? 만약 그런 거면 난 저쪽으로 가고.”
“……사무라이 놈들을 믿고 계속 까부나 본데, 후회하게 만들어주는 수가 있다.”
“걱정 마. 저 친구들은 나랑 반대로 움직일 거니까.”
타케시에겐 따로 임무를 맡겨뒀다.
재료들을 구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도울 틈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죽고 싶어 환장한 게 맞는 모양이군. 좋다. 네놈은 특별히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하지.”
마이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사무라이들만 없다면.
기껏해야 여섯 명인 놈들 따위야 10분이면 전멸시켜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
“과연, 보는 재미가 있다니까.”
슈에뜨가 화면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소수의 집단이긴 했으나, 중, 대형 길드들이 득실거리는 별들의 전쟁에서 가장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평소 앙숙이었던 드레드로어와 타이탄 길드의 전면전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상황을 연이어 연출했으니까.
“골치 아픈 놈들입니다. 탑이 나타난 이후 줄곧 조용했다가 갑자기 나타나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요.”
전체 랭킹 52위의 ‘페르난도 보테로’.
대형 길드에 속해 있지 않은 자유 소속 랭커다.
그저 슈에뜨라는 터무니없는 강자의 매력에 매료되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뭐가 즐거운지 계속 웃고 있던 슈에뜨의 얼굴에서 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슈…에뜨 씨?”
보테로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부드러운 살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슈에뜨의 얼굴 일부분이 형언할 수 없이 기괴한 형태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너무 흥분해서 그런가. 그만 실수를 해버렸군요.”
슈에뜨가 여전히 미소를 가득 띄운 채 보테로를 바라봤다.
[태고의 시선이 대상을 압도합니다!]쿠쿠쿠쿵!
“끄으…으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보라색 촉수들이 그대로 보테로를 휘감았다.
꿈틀거리는 두꺼운 빨판들이 그대로 살점에 늘러붙었다.
“안타깝게 되었군요. 그래도 당신을 곁에 두고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슈에뜨. 아니, 니알라토텝이 어느새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사, 살려 주십….”
“미안하지만, 그건 들어주기 힘들겠네요.”
까딱이는 지팡이의 끝.
그것으로.
퍼퍼퍼퍽!
엄청난 압력에 인간의 육체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으깨져버렸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가 바닥을 가득 적셨다.
“그나저나 이거 약간 판이 꼬이긴 꼬였네요.”
슈에뜨가 화면을 보면서 혀를 찼다.
원래의 계획은 변칙 미궁을 만들어 인간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마지막에 자신이 나타나서 영웅이 되는 것.
시련의 탑에는 감히 인간의 범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변수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으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이라는 걸 각인시켜주는 게 이번 대회의 목적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계획이다.
이후에 치명적인 한 방을 선사하기에도 완벽했고.
유일한 변수는….
‘아직까지도 연민이 있다는 건가요.’
망각의 샘물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인간들로부터 완전히 지워버린 진혁이 꽤나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인류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목적만 이루는 걸로 노선을 틀었을 터.
그런데도 굳이 사람들을 구하며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감수하고 있었다.
헤밀턴이 이끄는 공격대에게 다가간 것만 봐도. 그리고 여차하면 마이어라는 애송이를 포함해 목격자 전원을 죽여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판을 짜는 것만 봐도 말이다.
“흐음.”
슈에뜨의 입에서 흥미롭다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점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으나.
잘만 설계하면 꽤나 재미있는 판을 만들어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파치칙!
슈에뜨의 방에 붉은 색 균열이 일어났다.
“여기 있었군요. 오래 찾아 다녔습니다.”
어깨까지 오는 회색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탁한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었다.
“……!?”
곧바로 보랏빛 촉수들이 솟구쳤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출입하는 순간 즉시 사지를 찢어버리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런데 촉수가 가녀린 여성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
서걱!
보라색 칼날들이 그대로 촉수들을 썰어버렸다.
“이거, 꽤나 성가신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초대장도 없이 말이에요.”
슈에뜨의 입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현 시점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던 자 중 하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