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04
704화. 미궁 ‘람세스 대신전’ (3)
엘더 갓.
니알라토텝이 속한 아우터 갓들만큼 거대한 세력은 아니나, 시련의 탑 전체에서 유일하게 아우터 갓들과 싸움이 될 수 있는 세력이다.
고고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지금까지 전면에 나서 탑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으나 한 가지 이변으로 인해 그들의 대원칙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후두둑.
잘린 촉수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대가 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뭐, 워낙에 호기심이 많은 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여인의 손에 무수히 많은 칼날들이 생겨났다.
하나하나가 상위 고유능력에 해당하는 말도 안 되는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탑 밖에서 장난질을 하는 건. 저희가 한 협정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요?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해서. 니알라토텝. 그대가 그걸 까먹었을 리는 없을 텐데요.”
“하! 끝까지 고고한 척은. 먼지가 쌓일 대로 쌓인 협정 따위 들먹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듣기에 역겨울 지경이니까.”
니알라토텝이 지팡이로 지면을 내리쳤다.
쿠쿠쿠쿵!
그러자 몇 미터에 이르는 균열이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꿀렁꿀렁!
갈라진 틈을 따라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굵고 거대한 촉수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네크로노미콘. 그 책이 결국에 제3자의 손에 넘어가서 구덩이 속에 처박혔던 당신들이 기어나올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역겨운 엘더갓 ‘시벅컬’이여.”
“…….”
니알라토텝의 말에 시벅컬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큭큭. 맞아요. 드디어 이 지긋지긋했던 균형을 깨뜨릴 수 있게 된 거죠.”
평화 때문에? 아니면 균형이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전부 개소리다.
엘더갓들이 지평선의 저편에서 잠자코 있던 건 그저 자신들의 힘이 아우터 갓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네크로노미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충분히 부족한 열세를 메우고 그 다음을 노릴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이곳에서 장난을 하는 걸 멈추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껍데기뿐인 화신체 따위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순순히 포기할 것을 권유드리죠.”
칼날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태고의 권역으로 펼쳐진 공간 전체가 흔들린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의 얼굴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대신 검지를 세워 부드럽게 입술에 갖다 댔다.
“여기서는 그 이름이 아닌 슈에뜨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가 많다.
무엇보다.
엘더갓은 자신들이 개최한 연회장에 시끄러운 불청객에 불과하다.
그림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늘어졌다.
빛나는 무수히 많은 칼날들을 모조리 가려버릴 정도로.
“쉽게 갈 생각은 없다는 뜻이로군요.”
시벅컬 역시 범람하는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은 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쿠쿠쿠콰콰콰콰콰…!
보라색 스파크가 온 시야를 물들였다.
그렇게.
태고의 신격들 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
“멍청하긴.”
“대놓고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사무라이 길드의 호위마저 마다한 건 실수하는 거라고.”
“메인 이벤트 참가권을 따냈다고 해서 약간은 기대했는데, 역시나 생각이 없던 것 같네요.”
“하긴, 그것도 본인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라 아델이라는 자 덕분이긴 했지.”
웅성이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진혁의 선택을 두고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딱 한 명.
검은 피부에 긴 창을 지닌 남자를 제외하곤.
7대 길드 중 하나인 ‘슈자’의 하이 랭커인 은크루마.
이 중에서 유일하게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가는 정상급 플레이어였다.
‘이상하군. 헤실거리는 모습과 달리 한 마리의 맹수 같은 기세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가 비웃고 있었지만, 은크루마의 눈엔 진혁이 길가에 널린 돌멩이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이질감을 느꼈었다.
‘뭔가 숨기고 있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진혁이 결정한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굳이 여기서 초를 쳐서 가뜩이나 열받아 있는 드레드로어의 플레이어들을 자극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으니까.
그렇게 양 갈래로 갈라진 공격대는 각각 ‘빛의 책’과 ‘어둠의 책’을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쪽입니다.”
탐험가의 안내를 따라 얼마나 아래로 들어갔을까?
텅 빈 거대한 공간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공격대를 휘감았다.
“이런 데 책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진혁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를 툭하고 걷어찼다.
굴러간 돌멩이는 한참이나 튕겨나갔지만, 반대쪽 끝에 닿지 않았다.
“책은 2번째 내리막이 아니라 3번째 오르막길 쪽을 선택했어야 했다.”
“알면서도 엉뚱한 곳으로 온 걸 보면 보통 심각한 길치가 아닌가 봐? 쯧쯧. 그러니 맨날 그리 죽을 쑤고 있지.”
“……이해가 안 가나 본데, 네놈들을 전부 죽인 다음 책은 우리끼리 찾을 목적으로 이곳에 데리고 왔다는 소리다.”
“에헤이. 구차하게 변명하는 걸 보니 길치 맞네. 뭐, 형은 이해해. 애들 앞에서 쪽팔리겠지.”
“이 새끼가…!”
듣다 못한 드레드로어의 플레이어 하나가 암기를 던졌다.
부우웅!
“으아악?”
거침없이 날아간 도끼에 진혁이 화들짝 놀라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어찌어찌 막긴 했다.
그런데, 방향이 완전히 틀어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퍼억!
“끄으…억?”
거칠게 회전한 도끼가 킬킬대면서 구경하던 다른 플레이어의 가슴팍에 박혔다.
뿜어진 피가 순식간에 바닥을 붉게 적셨다.
채. 힐러가 손을 쓰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앤더슨!”
“주, 죽었어.”
“잔인한 놈들. 어떻게 자기 편을 죽이냐? 우리 쪽에도 천유성이라고 너랑 비슷한 애가 있긴 한데, 거의 동급이네. 동급이야.”
진혁이 양 팔로 어깨를 감싸며 오한을 털어냈다.
“무슨 개소리냐! 네놈 때문에 죽은 건데!”
“난 그냥 방어만 한 거고. 던진 건 쟤야.”
장난 삼아 던진 도끼에 사람이 죽는다고.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 느끼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됐다. 계속 대화해봐야 우리만 손해인 것을. 그냥 치워주마.”
마이어가 아공간에서 2m에 이르는 긴 장검을 꺼냈다.
드레드로어 길드 중에서도 대인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뽐내는 랭커.
게다가 워낙 잔혹하게 사람을 죽여버리는 성향 탓에 ‘Butcher(도살자)’라는 이명까지 붙어 있었다.
“주군.”
“달그락. 마스터. 명령을.”
월영과 티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냐. 힘 빼지 말고 그냥 있어.”
“직접 상대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지금 당장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진혁의 시선이 드레드로어의 뒤편에 있는 어둠 속으로 향했다.
‘미궁 안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이유 없이 있을 리는 없지.’
누가 장난질을 쳐놨는진 모르겠지만, 이 미궁의 설계엔 기존 시련의 탑의 설정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처음 오는 곳이지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콰콰콰콰콰쾅!
굉음이 울려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마이어 님!”
“무, 무슨 일이냐!”
검을 휘두르려던 마이어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엔 네 개의 다리가 달린 거대한 곤충류가 있었다.
“키에에에에!”
약 10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
낫과 같은 두 개의 다리에선 방금 전에 베어버린 플레이어들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 ‘샤레이크’가 깨어납니다!] [여왕의 특수 효과와 군락지의 추가 버프가 중첩됩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능력치가 10%만큼 감소합니다!]연이어 나타나는 붉은 상태창.
난데없는 네임드 몬스터의 등장은 불행 중에 불행이었지만, 최악의 문구는 샤레이크의 등장이 아니었다.
‘군락지’.
플레이어들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는 단어다.
끝을 알 수 없는 데다, 피 튀기는 난전이 벌어지기 일쑤였기에 피해는 예측 자체가 안 되었다.
부디 너무 큰 군락지는 아니기를.
거의 애걸하는 심정을 담아 마이어가 고함을 질렀다.
“시야 확보해!”
“예, 예!”
화르륵!
여러 개의 불덩이가 피어오르면서 주위를 밝혔다.
지금까지 벽인 줄만 알았던 곳엔 직경 30cm 크기의 구멍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뚫려 있었다.
“설마….”
“아, 아니지?”
절망이 현실이 되었다.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도 최상위 수준의 군락지가 틀림없었다.
고작 100명 남짓한 공격대로는 1시간을 버티기도 힘들다는 뜻이다.
츠츠츠츳!
치치치칫!
녹색 외피를 가진 풍뎅이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옵니다!”
“진형 갖춰! 젠장.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더 이상 고인물 코퍼레이션은 문제가 아니다.
생존하는 것.
그리고 책을 확보해 나머지 길드와 합류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야 한다.
콰콰콰콰콰쾅!
마법과 각종 스킬들이 집중되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대형 길드의 정예공격대답게 탱커 진형이 든든하게 1열을 받쳐주었다.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무작정 버티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쪽에도 저희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지원이 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겁니다.”
키요프와 이반코비치가 마이어의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진혁과 타이탄 길드의 유착 관계를 처음으로 찾아냈다는 공 때문에, 이 둘은 마이어의 최측근의 자리에서 이번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빛의 책을 찾으러 간 쪽에 지금 상황을 전달한 상태. 하지만, 그쪽 역시 또 다른 네임드 몬스터와 싸우느라 여유 자체가 없었다.
이곳에 남아있다가는 고립되어 전멸하게 될 뿐이라는 소리다.
“그럴 수는 없지. 개죽음을 당하는 건 사양이다.”
마이어가 미친 듯이 몰아치는 벌레들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는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허무하게 끝을 맞이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 잘 들어라!”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내면 된다.
“나는 별동대를 이끌고 어둠의 책을 찾으러 가겠다. 소수로 움직여야 되는 만큼 훨씬 더 위험하겠지만, 모두가 살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 나도 목숨을 걸 테니, 너희들도 최선을 다해 버텨라! 이건 공대장으로서의 마지막 명령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더해주면서.
***
“흐음. 자기들끼리만 몰래 빠져나가겠다?”
그런 마이어의 행패를 보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예측하면서 느긋하게 지켜봤는데, 마이어는 공대장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수를 둠으로써 자신의 인성까지 밑바닥임을 증명해보였다.
‘그럼 나도 그에 걸맞은 인성으로 나가줘야겠네.’
타케시를 통해 얻은 첫 번째 과제물.
진혁이 장인이 만든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달칵.
뚜껑이 열렸다.
그 안에는 일본의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우’의 조각이 새겨진 오래된 열쇠가 들어 있었다.
[‘위대한 공물의 열쇠’를 사용합니다!]은원관계가 있는 자에 한해 서로의 보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성유물.
‘이전에 그 대상을 소유한 적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꽤나 쓸 만한 아이템이긴 해.’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나에게는 말이다.
우우웅!
균열이 일어나며 익숙한 장소가 보였다.
[대상은 ‘릭 헤네시의 개인 컬렉션 보관소’입니다.]대도서관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궁무진한 컬렉션들이 나타났다.
평범한 플레이어들이라면 평생 한 번도 보기 힘든 진귀한 것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 중에서 선택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