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08
708화. 숨어 있는 뱀 (1)
“야야, 안 죽어. 죽이진 않는다니까? 자꾸 짜증나게 하면 진짜 죽일 수도 있어!”
“꾸에에에엑!”
“난 살거다. 절대로 살아 남을 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정령수들을 잡는 건 예상 외로 쉽지 않았다.
다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성장해버린 탓이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함께 다니며 진혁의 공격 패턴에 대해 숱하게 보왔던 터라, 기습이 아니라면 틈을 만들어내기 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진혁은 포획 작전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추가 동료를 모집했다.
“엘리스.”
“……?”
“다양한 피 맛을 보고 싶지 않아? 헌혈하고 남은 건 좀 나눠주도록 할게. 협력해.”
“……!”
심드렁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있던 엘리스의 눈에 처음으로 흥미가 생겼다.
그야 그럴 수밖에.
뱀파이어에게 있어 혈액은 힘의 근원이자 가장 선호하는 기호식품.
특히나 구하기 힘들고 희소한 생명체의 피일수록 그 향과 깊은 맛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귀찮아.”
엘리스에겐 다른 이들의 피 맛은 그리 매혹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이미 최상급에 해당하는 피의 맛에 매료되어있기 때문이었다.
“키이이….”
“크르르.”
이 와중에도 벌레들은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제 아무리 ‘태양의 성역’이 발동되고 있다 한들 영원히 저들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마력 소모 효율이 나빠져 응.”
‘인형 놀이’를 통해 벌레들을 막아서고 있는 프레이의 부담이 가중되어갔다. 아무리 한참이나 떨어지는 적들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싸움이 끝난 마당에 소모전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없었다.
……어쩔 수 없나.
진혁이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히든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 피도 줄게.”
“약속 한 거다?”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엘리스의 등 뒤를 따라 붉은 고리와 한 쌍의 날개가 생겨났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여주는 전력(全力).
한정된 공간에서 엘리스의 권역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고, 고귀한 이 몸의 피는 안 된다. 안 된단 말이다!”
“조용히 해.”
푸욱!
엘리스의 빨대가 말랑흑두루미의 목 깊숙한 곳에 꽂혔다.
“모기이이!”
그리고 최후까지 저항하던 고구마의 피까지 뽑히고 나서야 유리병의 피가 완전하게 꽉 찼다.
쿠쿠쿵!
제단이 격렬하게 흔들리다 무너졌다.
[‘어둠의 책’을 획득하셨습니다!]입수난이도: S
내용: 람세스 대신전의 최심부로 가기 위한 조건 중 하나. 책에 적힌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최소 7성 이상이거나 S급 이상의 ‘해석’ 능력이 요구됩니다.
[원하는 지점으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원하는 곳은 이미 정해두었다.
바로 그때.
“……그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조각상 중 하나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진혁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무슨 소리지?”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순 없다. 소중한 사람과 바라는 목적. 그리고 그 이상의 바람까지. 마지막 순간에 그대에겐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종용될 것이다.”
“…….”
“계약자. 시간이 없다.”
엘리스가 진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개방된 게이트의 크기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나가지 않는다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챙겼어요. 중상이 많긴 하지만, 제가 치료한다면 살 수는 있을 거예요.”
테레사가 황금색 수레 위에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물론, 최대한 오랫동안 의식을 잃게 해달라는 진혁의 부탁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까앙! 깡!
방패에 맞아 더욱더 깊은 잠에 빠지는 희생자들의 수가 늘어만 갔다.
“…….”
진혁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조각상을 잠시 더 바라봤다.
그리고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우우웅!
일렁이는 표면을 통과하자 순간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웅성이는 소리와 그에 걸맞는 인파.
몇 시간 전 만났다가 헤어진 대형 길드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보아하니 빛의 책도 손에 넣었나보네요.”
테레사가 가장 먼저 성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실력들이 꽤 오르긴 했나보네요. 생존자도 많은 것 같고요.”
“그거야 저기엔 계약자 같은 악마가 없으니까 당연히… 아얏! 왜 꼬집느냐?”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은 자제하는 게 좋아.”
“짐은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난 진실을 말하는 걸 싫어한다고.”
왜 옛 폭군들이 충신의 목을 쳤는지 이해가 된다. 사탕발림하는 간신들만 남겨둬도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천지일 텐데, 굳이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을 곁에 둘 이유가 없다.
바로 그때.
지독한 살기가 진혁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콰아아앙!
검과 검의 충돌이 일어났다.
아예 통째로 베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오러와 강기가 한 점에서 격돌했다.
파츠츠…! 파치칙!
사방으로 튕겨나가는 스파크.
그 사이로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드레드로어를 이끄는 마스터 그레이였다.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로렌시아의 수치.”
“그럴 순 없습니다.”
테레사가 정면에서 그레이의 검을 받아냈다.
교착이 이어졌지만, 우열은 가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세하게나마 테레사 쪽의 신성력이 더욱 짙은 색을 뿜어냈다.
콰아아앙!
그레이가 그대로 거리를 벌렸다.
“…….”
희미하게 떨리는 손을 잠시 바라보던 그레이가 재차 진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마이어는… 어디 있지?”
“아! 그 검을 다루던 친구?”
진혁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러면서 뒤쪽에 있는 수레를 가리켰다.
“걱정 마. 죽진 않았으니까.”
단지 1900금 소설을 봐서 정신이 좀 이상해져버렸다. 그래도 테레사가 열심히 돌봐준 덕분에 침을 질질 흘리는 수준에서 목숨만은 건질 수 있게 되었다.
“으베에….”
동공이 풀려버린 마이어가 날아가는 파리를 잡으려 했다.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자초지종을 들으려해봤자 소용없다는 소리다.
나머지 길드원 역시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 보였다. 이 부분은 테레사의 방패 탓이 조금 더 클 것 같긴 하다.
“소중한 부하들이 다쳐서 기분이 안 좋은 건 이해하겠는데, 우린 저런 부상자들까지 힘들게 챙겨서 나와준 거야. 그냥 무시하고 책만 챙겨서 나왔어도 됐는데 말이야. 무엇보다 우린 이 지옥에서 함께 탈출해야 하는 동료라는 걸 인지해줬으면 좋겠어.”
적대관계지만 인류애를 저버리지 않는다.
거기에 공과 사를 구분하는 절제력까지.
나머지 대형 길드들의 민심이 누구에게 호의적일지는 안 봐도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콰콰콰쾅!
그레이에게 대의나 명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히 자신에게 반항을 한 벌레를 짓눌러 죽여버리는 것. 그것 외에 나머지 일들이야 사소할 뿐이었다.
“닥쳐라! 우리 길드를 사칭해 장난질을 한 것만으로도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후우. 정말 안 되겠네.”
길게 한숨을 내쉰 진혁이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듯 무겁게 입을 뗐다.
“사실, 너희 명예를 생각해서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저 안에서 우리가 마이어 씨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어. 너희 쪽 공대원들과도 꽤나 친해졌지. 마지막에 가서는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우리를 죽이려고 하던 일을 사과까지 했다니까?”
“거짓말…은 죽어서야 멈추겠구나. 살아 있으면 계속 헛소리를 지껄여 대겠어.”
그레이의 검이 다시 한 번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테레사와 프레이가 대응하려던 찰나 진혁의 몸에서 낯익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글쎄. 거짓말 아니라니까.”
[고유능력 ‘공간 발도’가 발동됩니다!]너무나 익숙한 마력의 흐름.
파츳!
지면을 가르는 궤적도.
카가가각!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3번의 가속이 이어지는 고유한 특성도.
모두 마이어가 즐겨 사용하던 그것이었다.
“이럴 수가….”
그레이가 자신의 바로 옆 지면에 새겨진 검상을 바라봤다.
위력과 속도는 몇 분의 일에 불과하긴 했어도 한 치도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마이어식 발도였다.
“은혜를 갚는다고 하긴 뭐하지만, 그 대가로 발도술을 배웠어. 아직 초짜라서 그를 따라가려면 한참이나 멀었지만 말이야.”
“…….”
그레이의 살기가 한층 옅어졌다.
그 누구에게도 발도술을 공유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긍지로 여겼던 부하다. 그런 마이어가 검을 가르쳐줬다면 저들 사이에서는 상상 그 이상의 사건이 있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진혁에게 공격을 이어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
같은 시각.
베리엘과 이집트의 연합은 수많은 격전을 치르며 마계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3번의 전면전과 수십 번의 국지전을 이겨내며 전진해온 것이다.
“대체 얼마나 계획이 미뤄진 건지.”
오시리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얼음 주머니를 올렸다.
“그 망할 놈이 우리 정예를 죄다 빼돌려서 굴려댔으니까.”
“덕분에 재정비를 하느라 적들에게 대비할 수 있는 시간만 더 줬어.”
“크하하하! 그래도 그 당돌한 맛에 다들 그 인간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거야 아누비스 네가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 동류끼리 끌리는 걸 보고 정상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집트의 신격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아무리 호의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라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혁은 자신들을 상위 신격이 아니라 동네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 내 사도를 타박하는 거야 나중에 얼마든지 할 기회를 드릴 테니, 일단은 이쪽에만 모든 신경을 써주시죠.”
베리엘이 잔뜩 흥분해 있는 이집트의 신격들을 다독였다.
이미 마계 전체의 절반 이상을 굴복시킨 상황.
남은 건 마계 서열 2위인 루시퍼가 있는 중심성을 함락시키는 것뿐이었다.
만만치는 않은 일이다.
고대의 악마들과 상위 마족들을 거느리고 있는 루시퍼는 워낙에 오랫동안 가장 거대한 세력을 구축해놨기 때문이다.
사실상 에덴에 맞서 마계라는 거대 세력을 유지해온 것도 모두 루시퍼라는 절대자가 존재해온 덕분이었다.
하지만.
저 녀석만 제거한다면 모든 마계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베리엘과 동맹을 맺은 이집트 역시 상층부 전체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쇠락하고 있는 천세의 신격들을 넘어설 수 있을뿐더러, 탑의 최상층 부근에 있는 드래곤들과 괴물 원숭이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
‘에덴과의 전면전을 치루기 전에 사실상 내부 정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이제 곧 진혁과 그를 따르는 일행들이 상층부에 합류한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총력전이 끝나면 누가 이기든 간에 당분간 전쟁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터.
마계를 정복하려면 오직 지금뿐이었다.
“적들은?”
베리엘이 옆에 있는 레미아에게 물었다. 엘리스의 본가에 취직해 있던 메이드는 겸직허가를 받고 이번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모처럼 본래의 요염하고 매혹적인 복장을 한 레미아가 생긋 웃었다.
“성에 틀어박혀서 농성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철옹성이다보니 버틸 생각이겠죠.”
한때 대천사들의 공격에도 100년을 버텨낸 천혜의 요새.
일반적인 수성전도 공격하는 측이 수비하는 측의 3배에 달하는 병력이 필요했으나, 이 요새는 10배에 해당하는 병력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하물며 현재 두 세력의 전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야 어느 쪽이 애가 타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성유물의 확보는?”
베리엘에겐 이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몇 시간 전에 간신히 손에 넣었습니다.”
레미아가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든 성유물을 꺼냈다.
베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충분히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퍼퍼퍼퍽!
“크아아악!”
“커억!?”
연합 측 주신들의 거점에 낯선 마력이 개입했다.
순식간에 피보라가 몰아치며 경비를 맡은 마계의 전사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손님 대접이 뭐 이래?”
목소리의 주인이 몸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마계의 존재가 아니다.
마력의 종류가 완전히 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