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탑의 거주자 (2)
유천영의 반응을 본 진혁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군.’
아무리 시련의 탑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강하다 한들 유천영 정도 되는 사람이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탐식의 눈’을 통해 확인한 스탯과 스킬들만 봐도 톱클래스 수준의 랭커였으니까.
그렇다는 건.
‘유천영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 중에서 유천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말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는 오직 시련의 탑에 거주하던 자들뿐.
진혁은 그러한 가정들을 토대로 하나의 대전제를 만들었다.
유천영은 거주자와 이미 만났었다는 대전제를.
“허허. 자네는 정말로 사람 놀래키는 데 재주가 있군. 대체 어디까지 늙은이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할 생각인가?”
유천영이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제 예측이 맞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자네 말이 맞아. 탑이 처음으로 나타나던 날, 나한테 찾아온 사람이 있었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거주자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는 몇 층에 있는 놈이 왔냐는 건데…….
“구체적인 특징 같은 걸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외모라든지 무장 상태나 싸움 방식이라든지. 아무거나 좋습니다.”
“검은색 긴 머리와 흰색 옷을 입은 동양인이었네. 무기는 칼을 사용하는데…… 아주 매섭더군. 그렇게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 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검을 쓰는 동양인이라면?
누군지 알겠다.
‘……무림에 소속된 놈이군.’
탑의 21층에 있는 거대한 세력, 무림(武林).
21층 전체를 지배하는 주도 세력으로 탑의 상층부로 가기 위해 굉장히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다.
‘탑을 플레이할 당시에도 저 녀석들 때문에 굉장히 골치 아팠지.’
자신들의 행보에 위협이 되면 가차 없이 제거하고.
필요하다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유하는.
정말이지 치가 떨릴 정도로 거머리 같은 놈들만 골라 모은 집단.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가장 골치 아픈 놈들이 기어 나왔다.
“알고 있는 놈들인가?”
“대충은요.”
“허허, 역시 그렇군. 역시 알고 있었어.”
유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차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물론입니다.”
“나도 한국의 고위 관료나 상위 길드들과 알고 지내고 있지만, 자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네. 한국 최고라는 자들조차도 탑에서 나온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거든.”
그렇겠지.
무림은 21층에 존재하는 곳이었으니까.
당연히 그곳에 가 본 플레이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딱 한 명.
‘날 제외한다면…….’
진혁이 긍정도 부정하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했다.
“아, 캐물으려는 게 아닐세. 그저 앞날이 캄캄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을 뿐이야.”
“제가 그 대상이란 말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나이 먹도록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싫어도 한 가지만큼은 좋아지더군.”
유천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사람 보는 눈.”
누가 입만 살았는지.
속은 텅텅 비었는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지.
세월과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걸 식별하는 안목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저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네요.”
“과대평가라고 생각하나? 내가 볼 때 과대평가를 받는 건 현재 세상에 있는 플레이어들이야. 고작해야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단순히 마력량이니 고유 능력이니 하는 걸로 등급을 나눈다고? 그거야말로 웃기는 소리지.”
한 분야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계가 변하고 능력 하나 얻었다고 자신들이 강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다니.
유천영은 이 모든 게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자네는 달라. 뭐랄까. 수없이 닳고 닳은 느낌이랄까?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맛본 승패의 쓴맛. 그리고 그걸 극복해낸 노련함까지 엿보이더군.”
“그 정도는 아닙니다.”
“푸하하! 겸손하기까지 하군. 허나,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여유는 숨길 수 없는 법이네.”
유천영이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네에 관한 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건 사실이겠지.
유천영이 어딜 가서 함부로 입을 떠벌릴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말한다고 해 봤자 믿어 줄 사람도 없을 테고.
“그건 그렇고. 내 생명을 구해 준 데다 귀한 엘릭서까지 사용했으니,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데……. 혹시 원하는 게 있나?”
유천영의 말에 진혁이 멈칫했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무술가.
세계 대회를 휩쓴 건 물론, 그에게 배우는 무도인들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갖고 있는 돈이나 보물들도 상상을 초월할 터.
“사실, 필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뭐든지 말씀드려도 되는 겁니까?”
“걱정하지 말고 말해 보게.”
분명, 본인 입으로 ‘뭐든지’라고 하셨습니다?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지만, 기회가 왔을 때 예의부터 차리고 싶진 않았다.
배고프면 밥이 먹고 싶다고 말해야지, 체면 차리다가 굶어 죽는 선비 이야기 따윈 단연코 사양이었으니까.
“어르신이 소장하고 있는 ‘쌍룡검(雙龍劍)’을 받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유실되었다가 기적적으로 되찾은 이순신 장군의 검.
탑에 존재하는 성유물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은 전설적인 무기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싸, 쌍룡검을?”
이번엔 유천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그걸 요구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설마, 곤란한 부탁을 드린 건 아니겠죠?”
진혁이 생긋 웃었다.
천진난만하면서 화사한 미소가 얼굴을 따라 퍼져 나갔다.
“크흠. 곤란하긴! 나도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야.”
유천영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상대는 생명을 구해 준 은인.
쌍룡검이 아니라 전 재산을 달라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었다.
“연화를 시켜 내일쯤 보내도록 하겠네. 더 필요한 건 없나?”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필요한 건 모두 챙겼다.
이제 여기서 떠날 시간이다.
그런데, 진혁이 몸을 돌리려던 바로 그때.
“이건 어디까지나 비공식 루트로 들은 이야기네만.”
유천영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탑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중국 쪽 플레이어들과 접촉했다는 정보가 있네.”
“……!”
“조심하게.”
인류가 걱정해야 하는 건 단순히 탑 안에 있는 것들만이 아닐 수도 있다.
유천영은 조심스럽게 최악의 상황을 경고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천영과의 일을 끝낸 진혁은 곧장 롯데 시그니엘로 향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들이 계획한 대로 흘러갔다.
엄청난 액수의 돈과 새로운 정보 그리고 유천영의 심법과 쌍룡검까지.
그야말로 가장 맛있는 것들만 쏙쏙 뽑아먹었다.
‘주머니도 두둑하니 제대로 된 휴식을 즐겨야겠어.’
평소였다면 사치는 엄두도 내지 못할 사치다.
1박에 200만 원이 넘는 스위트룸은 과거의 한 달 생활비보다 많았으니까.
하지만, 힐러들에게서 수백억을 얻은 지금은 더 이상 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아예 멤버십으로 1년짜리 숙박권을 끊은 진혁은 시그니엘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들을 들으며 위층으로 향했다.
덜컹!
문이 열리자 호텔 스위트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과 화려한 샹들리에.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입한 각종 가구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물론, 화룡점정은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이다.
“크으.”
진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래서 돈이 좋긴 좋구나.
웰컴 드링크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대로 자고 싶었다.
따뜻한 감촉의 구스 이불이 너무나도 폭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호캉스를 잠으로만 보낸다면 4층에 갔을 때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뻔했다.
‘가볍게 샤워부터 하고 식사를 해야겠어.’
진혁이 룸서비스를 부른 뒤, 샤워실로 향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흘렀을까?
거실로 나온 진혁은 다시 한번 놀라야만 했다.
트러플이 가미된 최고급 스테이크와 두툼한 연어 회는 물론, 로브스터와 캐비어, 유럽산 치즈들이 테이블 가득 차려져 있었다.
5명이서 달라붙어도 먹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진혁이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잘랐다.
살짝 탄 겉 부분이 갈라지며 분홍빛 속살이 나타났다.
한 입 가득 베어 물자 육즙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여기에 신의 물방울이라 일컫는 와인 ‘샤토 라 플뢰르도’를 곁들였다.
“와……!”
……미쳤다.
오래돼 눅눅해진 쌀밥과 신김치,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된장찌개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맛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런데 한창 만찬을 즐기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켜 둔 TV에서 익숙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은석 씨는 그럼, 탑을 오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시련의 탑과 관련된 특집.
여자 아나운서와 눈웃음이 인상적인 남자가 탑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한국 최강이라 평가받는 ‘단군’ 길드에 소속된 랭커 장은석이었다.
[음, 시련의 탑에서 강해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들을 갈고닦거나 레벨을 올리는 방법이죠.] [마치, 게임처럼요?] [맞습니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더 어려운 던전과 미궁들을 클리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거죠?] [바로 코인을 이용하는 겁니다.] [시련의 탑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바로 그 화폐 말씀이군요.] [예. 더 좋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랭커가 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달러라는 기축 통화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었다면, 미래는 코인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축 통화가 될 겁니다. 저 역시 앞날을 보고 지금까지 모은 코인을 모두 방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투자하고 있고요.]가만히 듣고 있던 진혁이 코웃음을 쳤다.
‘방송 시스템에 코인을 투자한다라…….’
현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더 많은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개인 채널의 방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었다.
물론, 웃기는 뻘짓이다.
백날 홍보를 하고 화려한 썸네일을 걸면 뭐 하나?
정작 가장 중요한 내용이 텅텅 비어 있는데?
‘화면 상단에 노출이 안 되더라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널이라도 상관없어.’
퀼리티.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연출만이 구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었다.
[4층이 개방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4층에 입장하지 않은 상태인데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아나운서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거야, 4층은 그 층계의 문을 연 플레이어가 공략을 하겠다고 선언해야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입장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약 열흘이 지나도 최초 공략자가 도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입장할 수 있지만요.] [아하. 그런 조건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왜 그분은 탑을 오르지 않는 걸까요?] [하하. 당연합니다. 4층은 대규모 좀비 웨이브가 몰려오는 지역으로, 거점을 지켜야만 클리어가 가능하죠. 게다가 4층 자체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뿐이에요.] [설마,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끝이라고요? 다음 기회도 없이?] [게임에서는 실패할 경우 1레벨로 초기화되는 걸로 끝났지만, 현실에선 그 즉시 인류가 멸망하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기회가 한 번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럴 수가….] [예. 언노운이란 플레이어도 대형 길드들과 손을 잡지 않는 이상 공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두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최소한 그 정도 준비 기간은 있어야 필요한 인원과 자원을 모을 수 있거든요.] [그 이하로는 힘들다는 말씀이신가요?]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하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간 괜히 좀비 웨이브의 난이도만 비약적으로 올리는 꼴입니다. 일찍 갈수록 보상이 좋으면 뭐 합니까? 5 웨이브도 견디지 못 하고 거점이 박살날 텐데요.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이어지는 메시지에,
[플레이어 ‘언노운’ 님께서 4층 공략을 선언하셨습니다.]유쾌하게 방송을 진행하던 아나운서도.
[4층을 도전하실 모든 플레이어는 준비를 해 주십시오.]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하던 장은석도.
[앞으로 8시간 뒤,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모든 시청자들도.
[총 100번의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합니다.]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