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12
712화 움직이는 흉수(兇手) (2)
이집트의 혼을 계승하는 특수 미궁.
거기에 적합한 능력이라면 마침 딱 어울리는 게 있다.
파츠츠… 치치직!
강렬하게 일어나는 푸른 스파크.
[네 개의 능력이 융합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조합 공식으로 인해 융합의 성공률이 떨어집니다.]역시 이집트 쪽 신격들과 거주자들로부터 더 많은 능력들을 복사하지 않는 한, 원하는 능력을 온전히 손에 넣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스를 좀 치면 되지.’
어느 정도 오차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라면 이미 보유하고 있다.
[고유능력 ‘시스템 조작’이 발동됩니다.]스파크가 한 층 더 격렬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고유성창 ‘아누비스의 화신’]입수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이집트의 격에 도전하는 자들에 한해 아무 조건 없이 발동할 수 있습니다. 대전자는 아누비스가 역대 가장 아꼈던 존재가 선정되며 다양한 이집트의 가호와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상대가 가진 능력 중 2개를 랜덤으로 봉인시킵니다. (제한시간 15분).
[융합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책이 펼쳐지며 곧바로 새로 얻은 능력이 발동되었다.
우우웅!
세탄 머미의 앞에 황금색 세계가 펼쳐졌다.
하얀색 모래사장과 좌우로 펼쳐져 있는 야자수. 중앙에 위치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에서는 황금색 물결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엔 아누비스와 똑같은 투구를 쓴 존재가 서 있었다.
“……이…건?”
세탄 머미가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익숙하면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태양의 힘이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전투를 펼치던 플레이어들 역시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인식했다.
“누구…지?”
“무슨 능력인가?”
“저런 건 처음 보는데….”
“플레이어가 아니야. 거주자다.”
“사도다! 이집트 세력의 사도가 이 중에 있어!”
어째서인지 이집트의 신격들은 자신의 사도를 모집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인연이 있는 거주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미 정해놓은 제0 순위 후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
그렇기에 이집트의 가호를 받는 이들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미궁 공략이 더욱더 절망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중에 희귀종이 있을 줄이야.
[아누비스의 화신이 자신의 적을 바라봅니다.]콰콰콰콰콰콰!
사막의 모래바람이 미궁 전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아누비스의 화신이 움직였다.
콰앙!
모래를 밟고 도약한 몸체가 순식간에 세탄 머미의 지근까지 파고들었다.
몸체는 180cm에 불과했지만, 순간 가속력과 파괴력은 대형 몬스터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퍼퍼퍼퍽!
풍압만으로도 중형급 크로커다일이 그대로 찢겨나갔다.
손에 쥐고 있는 두 개의 반월검이 살벌한 예기를 토해냈다.
“왕가의 적을 멸한다.”
짧게 내뱉은 말엔 그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고했다.
“…인간 따위에게… 복종하는 가짜가…!”
세탄 머미가 황금색 창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금속과 금속이 한 점에서 맞부딪쳤다.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방이 오갔다.
푹! 푹! 푸푸푹!
세탄 머미가 5m가 훌쩍 넘는 기다란 창으로 사정없이 찌르기를 시전했고. 아누비스의 화신은 짧은 반월검으로 일점 찌르기를 쳐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세탄 머미가 스킬 ‘제사장의 비급’ – ‘사막의 모래폭풍’을 발동합니다!]우우우웅!
수십 미터의 이르는 모래 회오리가 소환되었다.
[아누비스의 화신이 ‘에메랄드 풍뎅이의 맹독’을 발동합니다!]그에 맞서 보라색으로 만들어진 원형 칼날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수준급의 근접전에 이어 마법전까지 이어졌다.
퍼퍼퍼펑!
콰아아앙!
형형색색의 불꽃이 시야를 가렸다.
툭.
아누비스의 화신이 폭풍 틈에서 튀어나왔다.
[스킬 ‘제사장의 비급’이 봉인됩니다.]갑자기 세탄 머미를 보호하던 모래 바람이 사라져버렸다.
훤히 드러난 맨몸.
“크으…으아아!”
세탄머미가 반사적으로 모래로 만든 병사들을 소환해 돌진시켰다. 수십 개의 창날이 아누비스의 화신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스스슥….
“신…기루.”
초근접 거리에서 자유자재로 신기루를 다루는 힘은 아누비스의 화신이 근접 전투에서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이유였다.
서걱!
반월검이 깨끗한 궤적을 그렸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
목이 반쯤 잘린 세탄 머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치명상이다.
그런데.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세탄 머미의 상처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죽음의 저주가 발라져 있는 반월검에 당했다고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신성과 재생에 특화된 대천사 급이 아니고서야 저건 불가능하다.
‘뭔가 더 있어.’
진혁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새롭게 익힌 능력이라도 아누비스의 화신이 보유한 힘은 절대적. 세탄 머미 역시 강한 건 사실이었으나 1:1로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애초에 세탄 머미의 진짜 힘은 10개의 저주를 비롯한 휘하의 군단이 모였을 때 발휘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호각을 이루는 이유는 새로운 힘이 개입했기 때문.
우우웅!
잃어버린 언어를 습득한 진혁의 눈엔 필드 전체에 걸쳐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 세력 ‘엘더 갓’의 성흔이 흩어져 있습니다.]탐식의 눈에 걸린 정보의 일부.
나머지는 전부 접근이 제한되었기에 이마저도 간신히 알아낸 거다.
‘장난질을 심하게 쳐두긴 했네.’
성흔이 남아있다면 아무리 애써봤자 세탄 머미를 쓰러뜨릴 수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쪽의 마력과 체력만 소모된다는 것이다.
“엘리스.”
“응.”
“지금부터 돌아다니면서 우리 멤버들을 찾아서 이 지도에 적힌 장소에 가달라고 해줘.”
“여기에 뭐가 있느냐?”
“그냥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
성흔이 새겨진 장소는 총 일곱 군데.
크고 작은 규모의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반드시 파괴해야만 했다.
진혁이 여섯 개의 얼음 조각을 꺼냈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언어가 적혀 있는 결정이 들어 있었다.
“이걸 사용하면 성흔이 보일 건데, 그걸 파괴해주면 돼.”
“짐을 고작 심부름꾼 따위로 쓰려고 하다니. 심기가 썩 편안하진 않구나.”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테레사 씨!”
“누, 누가 안 하겠대! 왜 싸우느라 정신없는 바보 성녀를 찾고 난리야. 난리는! 쟤 지금 정신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고마워. 믿고 맡길 만한 애가 너 말곤 없어서 그래.”
진혁이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길길이 날뛰던 콧대 높은 여왕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사나운 고양이가 그릉그릉 대는 걸 보는 기분이다.
“알겠어! 나만 믿거라!”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엘리스가 전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멤버들에게 접촉했다.
여기 어딘가에는 유천영 어르신과 이태민 그리고 유연화도 있을 테니, 꽤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타케시가 이끄는 사무라이 길드와 임시 동맹을 맺은 슈자 길드 역시 흔쾌히 작전에 참여할 것이고.
“프레이.”
“응.”
“아누비스의 화신 혼자서는 저 보스를 감당하기 힘들 거야. 너가 티본과 월영을 데리고 저 녀석이 1:1 승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줘.”
“적의 재생력을 보건대 승산이 있을 확률은 1.253% 정도야 응.”
“알고 있어. 그러니 시간만 끌어주면 돼.”
진혁이 프레이를 믿고 있다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
프레이가 고장난 듯 멈춰버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엔 언제나 감정 없는 인형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자 홀로 남은 진혁이 마지막 남은 얼음 조각을 움켜쥐었다.
제일 커다란 성흔이 새겨진 장소는 격전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
약 10분 정도 흘렀을까?
고속으로 이동한 진혁이 마침내 성흔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얼핏 봐서는 여러 사구들이 모여 있는 사막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콰직!
쥐고 있는 얼음 조각이 부서졌다.
[‘다듬어지지 않은 얼음 조각’이 엘더갓의 성흔을 간파합니다!]우우웅!
보라색 파장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성흔을 식별했다. 이제 저걸 부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역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올 줄 알았지.”
모래 언덕 옆에서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박…. 사사삭….
무너지는 모래와 함께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서정희의 의뢰를 받고 온 하이 랭커 장보경이었다.
그녀 옆에는 같이 의뢰를 받은 세 명의 하이 랭커들과 바티칸에서 파견온 다수의 이단심문관들 역시 함께 있었다.
“……너희도 참 징그럽긴 징그럽다. 임무 수행에 충실한 건 알겠는데, 조금만 미뤄도 될까? 지금 중요한 걸 하고 있어서 말이야.”
진혁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내가 여기에 올 줄 알고 있었다고…?”
격전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곳으로?
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가장 확률이 높은 건 그 붉은 십자가쟁이들이거나 아델이 아닐까 했었는데. 너였나. 엘더 갓의 사도가?”
피식.
장보경이 대답 대신 웃었다.
저건 긍정의 의미리라.
“인간이 욕심에 눈이 멀어 멍청한 짓을 하는 거야 동서고금을 통틀어 변하질 않는다지만, 너는 그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거다. 하다하다 그런 음흉한 놈들의 말을 들어?”
아무리 아우터 갓들보다 낫다곤 하지만, 엘더갓들 역시 쉽게 믿어서는 안 되는 종족이다.
완벽한 협상거리와 안전 장치들을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승산이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아직 햇병아리인 뉴비가 덥석 놈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3년 전에 먹은 고구마가 목구멍 위로 등반하는 것만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 우리는 그냥 널 제거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야.”
장보경이 어깨를 으쓱였다.
보아하니 아직 다른 놈들은 장보경의 정체나 엘더갓의 존재에 대해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약속했던 대로 성유물은 준비해뒀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예요.”
대장격인 이단심문관이 장보경을 향해 무언가를 건넸다.
“물론,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자 장보경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알 수 없는 게이트가 개방됩니다!]허공에 벌어진 균열.
여러 개의 물방울들이 보글거리는가 싶더니. 금발의 소녀가 툭하고 떨어졌다.
쿠웅!
“어머?”
테레사였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들로부터 선두를 지키던 성녀는 아직까지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혁 씨?”
모래에 엉덩방아를 찧은 테레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진혁을 발견했다.
굳이 이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테레사를 여기에 불러온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테레사를 제거하기 위해서겠지.
실제로 이단심문관들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눈으로 테레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척….
진혁이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았다.
“호오. 그 마녀를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겁니까? 아무리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 성서의 율법이라고 하지만, 타락한 성녀를 돕고자 하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 글자 수대로 맞고 싶지 않으면 거기서 더 움직이지 마. 내가 숟가락으로 사람은 패봤어도 십자가로 패 본 적은 없는데. 네가 처음이 될 수도 있어.”
“건방진….”
진혁의 도발에 한껏 예의를 차리던 미남자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도미닉 경. 저자의 처분은 이 실비오에게 맡겨주십시오.”
실비오란 이름을 가진 거한의 기사가 검을 뽑았다.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실비오가 진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실비오가 ‘신성의 검’을 발합니다!]쿠쿠쿠쿠쿠쿠!
묵직한 신성력이 퍼져나가며 주위의 공기가 완전히 변했다.
“워낙 겁을 먹어서 피할 생각도 못하는군.”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진혁은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하긴, 이단심문관이라 하면 랭커들마저도 싸우기를 꺼려하는 지독한 사냥개들이었으니까. 당연히 제대로 힘을 개방한 성기사 앞에서 약소국 따위의 플레이어는 상대가 되질 못할 수밖에.
나머지 인원들도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진혁이 반으로 쪼개지길 고대했다.
“신성 모독이다. 애송이.”
황금색으로 물든 장검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