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16
716화. 제약회귀(制約回歸)의 굴레 (3)
띠링!
상태창과 함께 나타난 문자.
[거주자 ‘하스팅’에 의해 히든 복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난데없는 메시지에 이번엔 진혁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사 조건이 상대를 통해 충족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고유성창 ‘회귀자의 시간'(한정)]입수난이도: 측정 불가.
내용: 당신이 지금까지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직업의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3번뿐입니다.] [3번의 사용 후에 능력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과거 시련의 탑을 오르면서 수많은 직업을 경험해봤다. 당연히 각각의 고유능력과 고유성창들 역시 무수히 많이 습득했었지.
하스팅의 고유성창은 그 모든 걸 재현시킬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비록 제한이 3번 걸려 있긴 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보다도 몇 단계는 더 상위 버전의 카드가 손에 들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복잡한 심정이 교차했다.
이제야 비로소 하스팅이 무얼 하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네 능력을 나한테 주기 위해서?”
“쿨럭! 컥….”
하스팅이 붉은 각혈을 토했다.
한 눈에 봐도 치명상이다.
아무리 상급 관리자라 하더라도 방어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소를 관통당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하스팅에겐 마지막 공격을 막을 의지 자체가 없었다.
“후후. 쿨럭! 이 능력을 넘겨주려면 조건이 꽤나 골치가 아프거든요. 하지만, 너무 고마워 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중간에 부러질 거라 확신했었으니까요.”
수천 번의 죽음을 반복하고 기억한다면 꺾이기 마련.
하스팅은 진혁이 이 시련을 통과할 가능성이 1%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강한 인내심을 지닌 존재라도 죽음의 반복이라는 절망적인 상황과 그것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좌절감이 겹쳐진다면….
……반드시 정신이 붕괴될 테니까.
그러나 진혁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마지막에 본 눈빛.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좌절하는 이의 눈빛이 아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과는 다르다.
타협하고 포기하고 안주하던 삶과는 다른 길을 걸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스팅은 마지막 배팅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다시 진혁을 만난 순간부터 그러한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괜찮겠어? 어쩌면 당신이 원래 하려던 대로 태고의 존재들과 붙는 편이 탑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이 높을지도 모르는데? 무엇보다. 그렇게 할 경우 당신이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보장되잖아.”
회귀의 회차가 반복될수록 생명의 무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며 오히려 그 지긋지긋한 권태감에 스스로의 생명마저 가볍게 던져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불멸의 삶을 허락받은 이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과연. 그들은 권태로움을 끝내고 안식을 바랄까?
아니.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면 더욱 생명에 집착할 것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그리고 영위하는 삶이 길수록. 생존에 대한 욕구는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하스팅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후회가 없을 리 없을 것이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하스팅의 동공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숨이 끊어지기 전 하스팅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듣고 있어.”
“만약 당신이 탑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면…. 그때에는 당신 개인이 아닌 탑을 위한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최상위 존재들에게만 알려진 루머.
탑의 정상을 보게 된다면 탑이 그 등반자를 위해 한 가지 소원을 이뤄준다는 말이 있었다. 하스팅 역시 그걸 알고 있기에 진혁에게 최후의 부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 했을 당시 탑의 정상을 봤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메시지나. 난데없이 신 같은 게 나타나는 일도 없었지.
그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광경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걸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 고블린에게 있어 시련의 탑은 자신의 삶보다 무거운 것. 모든 걸 내던지고서라도 반드시 지키고 싶은 목적 그 자체였다.
굳이 이 순간에 그걸 위태롭게 하는 진실을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만약 내가 탑의 정상에 도달하더라도 탑의 안위를 해치는 소원은 빌지 않을 거야. 나 역시 너처럼 이 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거면 됐다.
이 말이면 충분하다.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많은 회차를 반복…했었나 봅니다.”
하스팅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파스스….
부서진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
아공간 밖에서도 전투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강진혁은… 어떻게 한 거지?”
“진혁 씨를 어디로 데리고 간 거죠!”
천유성과 테레사가 동시에 외쳤다.
아공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건 장보경 하나뿐. 같이 사라졌던 진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오빠는 지금 안에서 면담 중이야. 아마 그 잘난 콧대가 박살이 난 뒤에야 다시 올 테니 애써 찾을 필요는 없어.”
“어이가 없군. 그 녀석의 콧대를 꺾겠다는 바보가 있을 줄이야.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뒈지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놈을 뱉어내는 게 좋을 거다.”
“글쎄. 그거야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그보다 너희 둘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
스슥.
척.
암살자들이 포위망을 굳혔다.
이단심문관들 쪽은 테레사를 둘러쌌다.
그런데.
콰아아앙!
서걱!
한꺼번에 달려든 암살자들 사이에서 피보라가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검강이 사방으로 피어오르자 천유성을 중심으로 검의 영역이 전개되었다.
압도적인 위력이다.
그 범위에 들어온 자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베이는 걸 피할 수 없었으니까.
숫자라는 이점 자체가 무색하게 될 정도로 천유성의 기세는 차원이 달랐다.
“으으으….”
“뭐, 뭐야 이 괴물은?”
“이런 놈이 존재했다고?”
랭커들도 숱하게 사냥해오던 암살자들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
더 이상은 싸워봤자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역시, 이런 상태에서는 안 되나 보네. 그렇다면 조금 조미료를 추가해주도록 할게.”
장보경이 손가락을 튕겼다.
[‘내장을 파먹는 씨앗’이 발동됩니다!]이변이 일어난 건 그러한 문구가 뜬 이후였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천유성을 공격하던 암살자들 사이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자신의 몸속에서 낯선 무언가가 장기를 통째로 들쑤시는 듯한 감각에 뇌수가 모조리 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잠시. 암살자들의 외형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시벅컬의 전투병’이 현현합니다!]몸을 양분 삼아 태고의 전사가 되는 능력.
장보경이 그토록 자신만만해 할 수 있는 건 이런 밑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구구국….
완전히 달라진 전투병들이 재차 천유성을 향해 덤볐다.
씨앗을 통해 만들어낸 모조품들이긴 했지만,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랭커들은 한 끼 먹잇감 삼아 잡아먹을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천유성과 테레사를 포로로 잡고. 강진혁으로부터 네크로노미콘과 교환을 요구하면 돼.’
저 지옥 같은 회귀 공간에 갇혀 있다면 정신이 아주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나오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강진혁이 대단하다고 해도 하스팅의 권능은 생명체가 견뎌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장보경의 심기를 건드는 건 고작 한 명을 위해 이 정도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냐는 것이었다.
‘그 놈이 대체 뭐길래 다들 이리 호들갑인 거야.’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고위 존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상층부의 거대 세력도 아니고. 말 그대로 이 세계의 끝판왕인 태고의 존재의 사도가 된 자신보다 강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오히려 여기 있는 이 녀석이 훨씬 더 강한 것 같은데….’
장보경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아직 1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천유성은 이미 시벅컬의 전투병들을 수십이 넘게 베어버린 상태였다.
오싹! 오싹!
살갗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우두둑! 서걱!
가차 없이 목을 비튼 다음 베어버리는 천유성의 모습은 악귀 그 자체였다.
설마… 씨앗을 먹인 이들로도 시간 벌이조차 되지 못하다니.
저 녀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물이다.
“이제 너 하나 남았군.”
천유성이 성킁성큼 장보경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무래도 그런가보네.”
장보경이 아공간에서 창을 꺼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사정거리에 들어간 순간.
카카가가강!
창과 검이 엄청난 속도로 교차했다.
전후좌우.
인지를 초월한 살수와 허초들이 허공에 수천 개의 궤적을 만들어냈다.
“휘유!”
장보경이 휘파람을 불었다.
눈앞에서 상대하고 있는 천유성의 검술에 그야말로 몇 번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대단하네. 이 창이 아니었다면 벌써 10번은 넘게 죽었겠어.”
장보경이 창대부터 날까지 모든 게 새하얀 창을 만지작거렸다.
외우주의 특수한 금속으로 제작된 뒤 그레이트 올드원의 영혼을 집어넣은 에고(ego) 아이템.
‘야크세달의 창’이었다.
어린 아이한테 쥐어줘도 달인을 이길 수 있다고 알려진 50층의 성유물.
시벅컬한테 받은 그런 사기적인 무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승기를 잡지 못하는 이 상황은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 엉성한 창술로 내 검을 견뎌내다니. 분에 넘칠 정도로 과분한 무기로군.”
“어머. 칭찬 고마워. 신상이야.”
장보경이 생긋 웃었다.
“그 이죽거리는 걸 보면 짜증나는 누군가 자꾸 떠올라서 말이다. 넌 곱게는 못 죽을 줄 알아라.”
파츠츠…!
천유성의 검이 흉흉한 궤적을 그렸다.
지금까지도 패도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검에 짙은 마기가 끼어 있진 않았다.
검마일식(劍魔一式).
추혼사영을 통해 검마의 검을 계승했다.
궤적과 궤적이 검은색 잔영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흑련(黑蓮)’
그 첫 번째 초식이다.
콰콰콰콰콰콰콰!
“……!?”
장보경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
같은 시각.
이단심문관들을 상대하는 테레사 역시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큭!”
도미닉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바티칸에서 최정예로 구성된 정예 이단심문관들. 혹독한 훈련과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이 자리에까지 올라온 게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이 만한 인원을 전부 데리고 왔음에도 고작 타락한 성녀 한 명을 포획하지 못할 줄이야.
자존심이 상해도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당신들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서세요.”
테레사의 저런 역겹고 가식적인 발언이 더욱더 자존심을 건드렸다.
[‘별의 가호’ – ‘대천사의 휘광’이 발동됩니다!]쏴아아아.
금빛 물결이 테레사의 등 뒤로 오로라를 이루었다.
넘실거리는 파도는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올리고 적들의 투기를 꺾어버렸다.
“멍청한 것들!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도미닉이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아끼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다.
아공간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아이템이 나타났다.
성기사에게 있어 독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유물이다. 신성력이 강한 대상일수록 정신을 붕괴시키는 힘은 테레사에게 있어 최악의 상성을 발휘했으니까.
“아아아악!”
테레사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이성을 한 번에 날려버릴 것만 같은 격통이 머리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털썩.
그대로 무장을 버린 채 무릎을 꿇었다.
“손이 많이 가게 하는 년이군.”
도미닉이 혀를 찼다.
꽤나 힘들긴 했지만, 어찌됐든 목표한 일은 달성했다.
이어지는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분명 그리 생각했다.
[인격이 바뀝니다.]테레사의 마력이 완전히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