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19
719화. 세인트 레팔레스 레스토랑
‘세인트 레팔레스 레스토랑’.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생긴 비교적 역사가 짧은 레스토랑이지만, 천재 쉐프의 요리 솜씨와 적절한 마케팅 덕에 단숨에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 핫플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도 단순히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순조롭게만 흘러가는 꽃길이었건만.
이곳의 쉐프인 피에고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 이걸 음식이라고 내놓은 겁니까?”
손님의 컴플레인은 합당했다.
음식 맛이 변했으니까.
자신이 만든 요리인 건 맞았지만, 묘한 불쾌감이 혀끝에 여운을 남기며 맴돌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으리라.
“…죄송합니다. 바로 다시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피에고가 즉시 머리를 숙였다.
상대는 악명 높기로 유명한 미식가.
여기서 어설프게 변명을 했다가는 오히려 독이 된다. 잘못은 인정하고 더욱 완성된 요리를 가져오는 것만이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문제는….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여기가 요즘 제일 평이 좋다고 해서 기껏 와봤건만. 아니면. 내 비평 따위는 그냥 우습게 넘어가도 괜찮다는 뜻인가? 아예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느냔 말일세.”
미식가 ‘파블로’가 나이프를 세차게 내려놨다.
타앙!
탁자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원인을 파악해 올 테니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마지막이야. 명심하게.”
“물론입니다.”
또다시 가져온 요리 역시 맛이 이상하게 변하긴 마찬가지였다.
피에고가 다시 주방에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어떤 게 잘못되었는지 눈치챘다.
식재료들이 변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기존에 알고 있던 맛과 향이 전부 다 미묘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불협화음.
고도의 조화를 추구하는 코스 요리에 있어 작은 균열들은 결국에 요리 전체를 망쳐버리게 만든다.
당연히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어, 어떡하죠 쉐프?”
“이대로라면 다른 손님들도 곧 맛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릴 겁니다.”
“vip룸에서… 쉐프님을 직접 보자고 요청이 왔습니다.”
이곳에는 현재 각종 기업의 고위 임원들과 셀럽 들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주최자인 드레드로어 길드의 마스터 그레이 역시 vip룸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피에고의 얼굴이 흙빛으로 굳었다.
동시에. 시선이 자신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2층 vip룸으로 향했다.
짙게 선팅 처리가 되어 있는 유리창 너머에선 또 다른 존재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레이의 눈매가 왈칵 구겨졌다.
메인 이벤트에서 대량의 희생자들이 나온 탓에 안 그래도 뒷수습을 하느라 골치가 아픈 상황. 그런 와중에 이번 연회는 지금까지 골칫거리들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였다.
꿈의 에너지원이라 알려진 ‘그린 마정석 광산’.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시련의 탑 최상층의 거주자들과의 연줄.
이 두 개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뿌드득.
그레이가 어금니를 세차게 갈았다.
하필 이곳에 온 대리인은 십이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에 소속된 자. 더군다나 식(食)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부러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흐음. 자신 있게 이곳을 추천하길래 약간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봅니다.”
그레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존재가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십이지의 대리인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오래국’의 ‘성순’이었다.
탑의 균형이 격동함에 따라 쓸 만한 카드들을 모으기 위해 일부러 현대까지 왔건만,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마음에 드는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작은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오래국에서는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에게 중책을 맡기진 않는답니다.”
성순은 지금 이 사달이 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에스트라파의 포자’에 ‘새벽의 이슬’.
탑에 있는 재료들을 섞어 장난질을 쳐놓은 것이다.
‘타이탄 길드라는 곳이겠군요. 그쪽도 루이스 콜드메인 유적을 통해 우리와의 연줄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누가 장난질을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일을 얼마나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지.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으니까.
웅성웅성!
여러 손님들도 이변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소란이 일어났다.
바로 그때.
“이야, 쉐프님이 많이 곤란하시겠네요.”
새로운 인물이 개입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진혁이었다.
***
‘설마 여기 쉐프가 드레드로어 길드와 연줄이 있을 줄이야.’
진혁이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식당 한 켠에 걸려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번뜩인 영감. 이번 일을 꾸민 상대와 서로의 이해관계들이 파악되면서 차근차근 계획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지금 저기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놈이 스쳐지나가듯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정희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지.’
신라호텔의 근사한 식사를 즐기고 있을 당시 서정희 일행 중엔 저 남자가 끼어 있었다. 당시에는 워낙 존재감이 옅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주력이 요리 쪽이었나.’
다양한 곳에서 인재들을 모집한다고 하더니. 김희웅으로부터 서정희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필요한 패는 전부 손에 들어왔다.
진혁의 시선이 힐끗 2층으로 향했다.
느껴지는 마력은 둘.
하나는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레이일 테고. 나머지 하나는 십이지 특유의 마력이 물씬 느껴지는 놈이었다.
마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베리엘과 이집트 측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둘 필요가 있으리라.
“무슨… 일이십니까 손님?”
피에고가 다가오는 진혁을 보며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불평을 늘어놓으려는 손님이 한 명 추가됐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다른 건 아니고. 제가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좀 도와드릴까 해서요.”
“예?”
피에고가 눈을 거북이처럼 끔뻑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피에고는 평생을 요리로 업을 삼아온 자다. 그런 피에고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있는 문제를. 난데없이 손님 중 하나가 해결해주겠다고 하니 당연히 황당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부주방장과 나머지 요리사들도 단번에 곤란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하기야 이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리라.
“이거 아쉽네요. 일본산 와규에 시련의 탑 ‘하얀 새싹’과 ‘멜론 감귤’을 섞어 쓰는 조합이 굉장히 창의적이라 느꼈었는데.”
중얼거리듯 던진 말.
“…그걸… 어떻게?”
그 무심한 한 마디에 피에고가 헛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너무도 정확히 자신의 비밀 레시피를 간파해버린 탓이다.
“어차피 쉐프님께선 이러나저러나 잃을 게 없지 않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저 한 번 믿어보시죠.”
“…….”
피에고의 입술이 일자로 굳게 닫혔다.
확실히.
이대로라면 자신에게 남은 건 파멸뿐이다.
이것이 썩은 동아줄일지 구원의 동아줄일지 알 수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피에고가 고개를 숙였다.
“쉐프!”
“아니, 진심이십니까?”
“대체 얼마나 더 최악이 되려고요!”
반대가 이어졌지만, 이미 헤드 쉐프의 결정은 내려진 뒤였다.
곧바로 진혁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화르륵!
불길이 일어나며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부패를 상쇄시키기만 하면 돼.’
아니, 오히려 어설프게 ‘새벽의 이슬’을 사용해준 덕에 더욱 풍미를 끌어올려 줄 방법이 생각났다.
[Lv77 ‘이세계 식당’이 발동됩니다!]공격 스킬만큼이나 탑의 안팎에서 자주 사용한 게 바로 ‘이세계 식당’이다. 거대한 전투가 끝날 때마다 대규모 연회를 홀로 소화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미 요리 솜씨는 시련의 탑 전체를 통틀어도 탑급.
올림포스의 주신들마저 입고있던 팬티까지 던져버리고 달려오게 할 만큼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란하고 화려한 손놀림이 이어졌다.
‘아무리 우리를 우습게 봐도 그렇지.’
‘평생 고급 요리를 먹기만 해온 놈들이 만드는 법을 알기나 하겠어?’
‘햄버거나 내오지 않으면 다행일 거야.’
불신에 가득했던 요리사들의 표정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요리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무렵. 불만에 가득 찼던 헛기침 소리는 침 넘어가는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꼴깍.
꿀꺽….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상해가는 재료들로 이런 요리를 만들어냈는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마, 맛이라도 좀…. 아얏!”
따악!
가차 없는 젓가락질이 손등을 두들겼다.
“손님들부터 드리고. 그 다음에 드세요. 쯧.”
혀를 찬 진혁이 요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가장 먼저 노려야 할 건 역시나 시커먼 속셈을 가지고 이곳에 온 타이탄 길드의 파블로였다.
“새로운 요리입니다. 한 번 드셔보시죠.”
“크흠!”
파블로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냄새는 그럴듯하다만, 단지 그것뿐이겠지.”
절대로.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 비밀스러운 장난에 대해서 알아낼 리 없다. 전투에만 능숙한 각성자들이 고풍스럽고 은밀한 요식의 본질에 대해 알 수 있을 리 없단 말이다.
아니, 만에 하나 맛이 어느 정도 그럴싸하더라도 절대로 좋은 평을 내릴 생각 자체가 없었다.
각본에 쓰여진 대로만 움직일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물.
음식을 한 입 머금은 순간 파블로의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달싹였다.
“어떤가요?”
진혁이 물었다.
“…….”
파블로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것도 잠시 그렁그렁한 눈물이 뜨거운 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한 업종에 대한 자긍심이 높을수록. 범접할 수 없는 격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새롭고도 감탄스러운 솜씨에 감탄하며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훌륭…합니다.”
파블로가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
“크하하하!”
동시에 요리 맛을 보게 된 vip실의 성순 역시 같은 반응을 내보였다.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나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건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레이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으신 겁니까?”
“음식 맛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것보다도… 저 인간이 당신들을 돕는다는 건. 그레이 씨와 강진혁이 호의적인 관계라고 봐도 될까요?”
누가 보더라도 성순이 진혁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
그레이가 답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이입니다.”
길드 마스터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드레드로어 길드는 더 이상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순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구경거리를 준 보답으로 광산에 대한 채굴권과 당신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서둘러 윗분들에게 보고를 해야 될 것 같으니까요.”
성순의 몸이 하얀 구름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찰나.
똑똑.
vip실에 누군가 노크를 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고 있다.
“들어와라.”
그레이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덜컹.
문이 열리고 진혁이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얼마나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철저하게 뜯어낼지. 그리고 얼마나 거머리 같은 고인물로부터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볼 수 있을지.
서로가 서로의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춘 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