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20
720화. 대전쟁을 위한 준비 (1)
“와. 누구는 아래에서 사람들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밥을 먹는데, 누구는 이런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네? 이거야 원 서러워서 살겠나. 안 그래?”
진혁이 입을 삐쭉 내민 채 툴툴댔다.
그 뒤를 이어 엘리스와 천유성 그리고 테레사가 들어왔다.
그토록 그레이의 골머리를 썩히던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력 멤버들이 총 집합한 것이다.
“후우.”
그레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두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질대로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상대는 은인.
완전히 망가질 뻔한 거래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준 장본인이다.
이미 모두의 앞에서 적대 행위를 멈추겠노라 공언한 만큼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이곳엔 식사를 하러 온 거냐?”
“응. 우리 꼬맹이가 맛있는 걸 좀 먹고 싶다고 해서.”
“지, 짐은 꼬맹이가 아니다!”
엘리스가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그래봤자 신장 150cm짜리 소녀가 잔뜩 투정을 부리는 꼴로밖엔 안 보였지만.
“어떤 목적으로 왔건. 우리는 너에게 큰 빚을 지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호오.”
이번에는 진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나 마나 온갖 핑계를 대면서 깎아내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레이는 순순히 이번 일을 인정해버렸다.
‘그래도 한 무리를 이끄는 대가리답네.’
‘잿빛 늑대’라는 이명답게. 쿨하게 넘어갈 건 쿨하게 넘어가는 스타일인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네. 보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우리도 살짝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말해봐라.”
“협회에서 이번 메인 이벤트의 보상을 한 곳에 보관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 장소를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뭐, 뭐라고?”
그레이가 마시던 와인을 그대로 뿜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진혁이 하고자 하는 건 그 누가 보더라도 의도가 뻔했으니까.
그레이 입장에선 진혁을 추켜세워주며 적당한 선에서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폭풍을 만난 꼴이 되어버렸다.
“지, 진혁 씨?”
“하아. 도적질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냐?”
“푸하하하! 과연 짐의 계약자니라. 원하는 게 있다면 빼앗으면 되지. 처음부터 상품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건 짐의 취향이 아니었다.”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진혁은 여전히 생긋 미소를 지은 채 그레이를 바라봤다.
“미친 생각이로군. 거기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는 알고 하는 것이냐? 메인 이벤트 장에 설치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다양한 방벽과 결계들이 펼쳐져 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단 말이다.”
“으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무리를 한다면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순 있겠지만,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 내 신조거든. 그런 의미에서 또 한 가지 도와주긴 해야겠어.”
진혁이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레이에게 건넸다.
그곳엔 그야말로 미친 계획이 적혀 있었다.
꾸깃!
종이가 가차 없이 우그러졌다.
“정말로… 내가 이런 정신 나간 일에 동참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물론이야. 성순이랑 관계를 잘 다져두고 싶으면야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걸? 그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리스트는 나만 알고 있거든.”
“내가… 십이지와 접촉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것도 그 중에서 성순을 딱 꼬집어서?”
우뚝하고.
그레이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어떻게 알긴.
오래국 특유의 마력이 찐득하게 묻어 있는데, 이걸 눈치채지 못하면 고인물이 아니지. 더군다나 오래국에서 미식을 좋아하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역할을 담당하는 건 성순. 그 녀석 하나뿐이다.
진혁이 비어 있는 소파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마. 그런 말도 있잖아. 일개 창고를 털면 도적이지만, 나라를 털면 영웅이라고.”
도적질도 스케일이 다르면 낭만이다.
자. 이제 구구절절한 밀당은 그만하고.
선택을 할 시간이다.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느냐 마느냐. 그것은 오롯이 그레이의 선택에 달렸다.
***
10월 30일 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할리우드를 즐기기 위한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퍼퍼퍼펑!
촤아아아….
무수히 많은 불꽃과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퍼레이드는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코스프레 또한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긴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쉬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빨간 뿔이 달린 머리띠. 짧은 검은색 드레스와 악마의 꼬리를 한 테레사가 삼지창 모양의 풍선 창을 흔들었다.
반면 동글동글한 날개와 천사 고리를 쓴 엘리스는 연신 전신 거울로 위아래를 훑으며 테레사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 짐은 언제 원래의 몸을 되찾는 것이냐!”
엘리스가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지 온몸을 부들거렸다.
“쳇. 이런 쓸데없는 것에 낭비할 시간 따윈 없는데.”
곤룡포를 걸친 천유성이 난간에 걸터앉아 두꺼운 의학 서적을 펼쳤다.
자정에 시작될 대규모 도적질을 위해서 계속 대기하고 있긴 한데, 이게 맞는 짓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는 얼굴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메인 이벤트의 보상 중엔 천유성 역시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아이템이 있었으니까.
비열한 도적의 꼬리표를 달지언정 그보다 더 큰 목적을 이루는 것이 지금 당장은 더 중요했다.
같은 시각.
퍼레이드가 개최되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엔 진혁이 야외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장보경과 드레드로어 길드의 이반코비치. 그리고 귀환자인 아델이 서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 역시도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게 각각 코스프레를 한 상태였다.
“약속은?”
“잡아뒀어. 9시까지 호텔 스위트 룸 3501호로.”
장보경이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애써 몸을 가리며 대답했다.
코카콜라를 든 북극곰 코스프레가 아직까지 어색한 게 틀림없었다.
“잘했어. 그럼 바로 가면 되겠네. 이반코비치랑 아델은 다른 애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경비를 맞아주고.”
진혁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귀여운 다람쥐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지금까지 꽤나 길고 긴 악연이 이어졌는데, 이제 그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
까드득. 까득.
화려한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스위트 룸에선 서정희가 연신 손톱을 뜯고 있었다.
‘미치겠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모든 게 꼬여버렸다.
이제 준비했던 카드들은 전부 소모했고. 타이탄 길드 내에서 자신의 입지마저 위태로워진 상태였다.
‘괜찮아. 침착해야 해.’
서정희가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은 일반인과는 다른 신흥 귀족.
앞으로의 세계를 이끌어 갈 핵심 인재다.
고작 이런 일로 모든 게 무너지진 않을 거다. 절대로.
‘장보경이 오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상위 세력으로부터 가호를 받은 걸 확인했었으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게 분명해.’
포기하긴 이르다.
그렇게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장보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콰아앙!
호텔 아래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동시에.
“침입자입니다!”
문을 박차고 경호실장이 뛰쳐들어왔다.
“어떤 놈이?”
신흥 귀족의 거처에 겁도 없이 쳐들어온단 말인가? 이곳에 있는 경호원들의 수만 해도 100명이 넘는데?
하지만, 자신감 넘치게 외쳐야 하는 순간임에도 전신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즉각 vip를 모셔라!”
경호실장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마력탄으로 무장한 사설경호대와 근접 전투에 특화된 플레이어들이 서정희를 중심으로 방어진형을 갖췄다.
여차하면 엘리베이터 자체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설마.
띵! 띵! 띵!
엘리베이터가 고속으로 움직였다.
설마 아니겠지.
띵! 띵! 띵!
멈추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계속해서 층계를 지나치며 위로 올라왔다.
서정희가 있는 30층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렸을 때.
쩌저저적!
엘리베이터부터 복도를 타고 차가운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히이익!”
서정희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인물이 너무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굵직한 도토리가 가득 박혀 있는 뿅망치.
귀여운 다람쥐 가면을 쓴 인물이 킬킬대며 걸어나왔다.
꿈에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다.
“죽여!”
경호실장이 명령을 내렸다.
타타다다다당!
퍼퍼퍼펑!
콰아아앙!
마력탄과 수많은 마법이 빗발쳤다.
좁은 복도에서 화력을 집중시킨 섬멸 공격. 제아무리 날고기는 놈이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큰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킬킬킬… 겔겔겔! 게르겔겔겔!”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소름 끼치는 광소를 내뱉으며 총탄과 마법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했다.
콰앙!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달린다.
엄청난 주파 속도로 내달린 다람쥐 맨이 뿅망치를 휘둘렀다.
“그래봤자 저딴 무기로… 꾸에에엑!”
퍼걱!
씨알 굵은 도토리가 그대로 선두에 있는 남자의 안면을 성형시켰다.
입에서 옥수수와 피가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시련의 탑 14층에서 구할 수 있는 근육 다람쥐의 주식 ‘단백질 근토리’. 치악력 3t 이하는 깨물 수조차 없는 특수 도토리였다.
퍼퍼퍼퍽!
순식간에 경호원들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린 다람쥐 맨 앞에 경호실장이 맞섰다.
스릉!
기다란 장검이 뽑혔다.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귀검(鬼劍)의 최희재.
현재 랭크 AAA.
S급은 아니어도 대인전에서만큼은 S급에 육박한다는 평가를 받는 랭커였다.
카카카카카캉!
검과 뿅망치가 허공에서 어지럽게 교차했다.
“마, 말도 안 돼.”
최희재의 입에서 혼이 빠진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람쥐 따위가 이런 정교한 검술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이 정도 실력은 7대 길드의 최상위 랭커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경지였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손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최희재는 자신이 패배했음을 직감했다.
콰직!
그대로 가슴팍이 움푹 들어갔다.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 났으니 며칠 간은 숨을 쉬는 것도 비명을 지르며 쉬어야 할 것이다.
“으으으으….”
서정희가 유리창에 기대 몸을 덜덜 떨었다.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네. 여기까지 오는 데 나름대로 애 많이 먹었어. 골치도 꽤나 아팠고.”
진혁이 뿅망치에 묻은 피를 후두둑 털어내며 말했다.
이 말은 진심이다.
솔직히 말해 신흥 귀족이니 뭐니 무시했었는데. 직접 상대하고 보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사, 살려다오. 내가 뭐든지 해주겠다. 뭐든지!”
전형적인 생명 구걸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너무 뻔해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래? 정말이야?”
“물론이다! 날 살려만 준다면 100억 아니, 새로운 귀족의 자리를 약속하지!”
“이야. 눈물 나게 고마운데 그것까진 필요 없고. 타이탄 길드의 개인 금고 열쇠만 넘겨주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
길드 마스터인 샤샤의 메인 금고까진 아니어도. 공용 금고의 열쇠라면 간부급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거기에 에덴과의 전쟁을 위해 필요한 재료 몇 개가 잠들어 있지.
서정희가 더듬거리며 품에서 열쇠 한 개를 꺼내 던졌다.
“이거 가지고 가서 안에 있는 걸 싹 다 털어와.”
진혁이 열쇠를 뒤에 있는 장보경에게 던졌다.
그런데.
서정희가 장보경을 본 순간. 비굴하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장보경! 저 놈을 죽여라!”
대형 길드의 랭커들도 인정한 장보경의 고유능력.
그런 장보경이라면 테러를 알아채고 타이탄 길드의 정예들이 오는 동안 충분히 진혁을 막아설 수 있을 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보경은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혁이 시킨 대로 열쇠를 갖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넌 진짜 마지막까지 용서가 안 되는구나.”
재활용도 플라스틱이나 일반 쓰레기나 가능한 거지.
음식물 쓰레기는 역시 태우는 수밖에 없다.
“사, 살려줘. 여, 열쇠만 넘겨준다면 살려준다고 했지 않느냐.”
“흐음.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뿅망치를 어깨에 걸친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조금 절충해주도록 할까.
“알았어. 그래도 그냥 봐주는 건 안 되니까 딱 3대만 때리도록 할게.”
“3번만 버티면 된다는 건가?”
“그러엄. 더도 덜도 말고 딱 3대만 참아.”
콰아앙!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갔다.
참고로 이게 ‘한 대’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