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27
727화. 50층 ‘아자토스의 궁전’ (4)
꿀렁! 꿀렁!
검은색 진흙이 솟구쳤다.
“큭!”
빠르게 이동하던 엘리스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 마력.
이 느낌.
틀림없다.
니알라토텝에게 따라잡혔다.
꿀렁이던 진흙이 곧 기괴한 형태를 이뤘다.
“흐음…. 이번에는 정답이려나요.”
니알라토텝이 진혁과 엘리스를 바라봤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있어 가장 핵심 인물 중 하나.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가짜와 보냈을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적어도 니알라토텝이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짐이 있는 곳이 곧 정답이거늘. 무엇을 떠보려고 하는 것이냐?”
엘리스가 조금도 그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고고하게.
한 일가를 이끄는 진조로서 태고의 존재에게 맞섰다.
“순순히 포기하면 크게 다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책과 저 인간이니까요.”
“각하한다. 짐의 계약자는 오롯이 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니까.”
[고유성창 ‘개벽의 계시록’ – ‘진홍의 날개’가 발동됩니다!] [‘순혈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파츠츠!
희고 붉은 깃털을 가진 날개와 핏빛을 머금은 왕관.
모두가 진조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조합이었다.
물론, 이건 전투를 위한 안배가 아니다.
암묵적인 합의.
니알라토텝과 엘리스 모두 제대로 전력을 사용할 순 없었다.
아자토스가 깨어날 정도의 충격이 일어날 경우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어이 힘든 길을 가려는 거군요. 절 상대로 도망치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도전해보거라. 짐이 친히 시험해줄 터이니.”
그렇기에 이건 술래잡기다.
콰앙!
츠츠츠…!
모두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한정된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졌다.
⁕⁕⁕
우우웅!
착용하고 있는 ‘브라함의 반지’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니알라토텝이 다음으로 노린 곳은 엘리스와 또 다른 분신이 있는 ‘태고의 기억 보관소’ 쪽이었다.
드디어 가장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물었다.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한 시간이다.
“잘 버텨줘.”
진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든든하면서도 불안한 심정.
시련의 탑에서 고른 최강의 동료이지만, 워낙에 상대하는 놈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고. 지금 당장은 엘리스가 벌어준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태초의 불꽃’이 발동됩니다!]화르륵!
다수의 불덩이들이 내부를 밝혔다.
그러자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와….”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면서 봤던 수많은 광경들. 그리고 실제로 탑을 오르면서 보고 경험한 수많은 일들로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지간한 일에는 만성이 되어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하지만, 아자토스의 성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특수 공간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였다.
‘마음 같아서는 죄다 가져가고 싶네.’
이 성유물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일이 얼마나 수월할까? 모르긴 몰라도 에덴과의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끝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
그런 마음이 굴뚝 같긴 한데.
문제는 여기 있는 성유물에는 각각 아자토스 특유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주워담았다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를 터.
다시 말해. 맛있어 보이지만 먹을 수 없는 신포도라는 뜻이다.
‘욕심내지 말자.’
진혁이 애써 자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성유물의 습득이 아닌 봉인을 위해 움직였다.
기다란 통로를 따라 달리길 몇 분.
수많은 성유물들 가운데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눈이 보였다.
화르륵!
검붉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길게 찢어진 동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자토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9개의 성유물 중 하나.
3번째 ‘부유하는 흑안(黑眼)’이다.
드디어 찾았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뱀자리의 주인’이 현현합니다!]퍼스트 블레이드의 칼날을 통해 두 마리의 뱀이 성유물을 휘감았다.
그르르르….
‘부유하는 흑안’에 뱀이 지나간 궤적이 그려졌다.
[봉인이 시작됩니다!]만약 이 녀석이 깨어 있었다면 눈이 떠진 즉시 생명체는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흩어져버렸을 일.
그로스의 ‘원 아이 문’과는 차원이 다른 광역기를 보유한 게 바로 이 흑안이었다. 제아무리 많은 병력들을 거느리고 있어 봐야 이 눈 하나 앞에서는 개미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해버린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눈을 사전에 봉인시켜 두는 건 수많은 병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집중하자.
최고 난이도의 융합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만 하는 일. 더군다나 시간이 매우 제한되었기에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마력 접속이 이어집니다.] [상위 결계들이 눈의 시신경들에 접목됩니다.]진혁의 얼굴에는 금방 식은땀들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다른 장소에서 엘리스를 추격하던 니알라토텝이 아자토스의 창고에 이변이 생긴 걸 감지했다.
*
“……!?”
거칠게 엘리스를 압박하던 니알라토텝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완벽하게 허를 찔렸다는 사실에 분노와 허탈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감히… 나를 상대하면서 그런 추잡한 짓을 하려고 했단 말입니까.”
도주에만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텐데.
오히려 더 깊은 곳에 있는 창고를 노리고 있다니.
자존심에 상처가 나도 보통 나는 게 아니다.
“자존감이 높은 것도 이 정도면 병이구나. 아무렴 너 하나 만났다고 꼬리를 내릴 거면 굳이 이런 곳까지 찾아왔겠느냐?”
엘리스가 그런 니알라토텝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말 조심하세요. 당신을 생포해야 하긴 하지만, 그 조건에 팔다리가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짐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리 자신만만하다면 계속 쫓아오기나 하거라.”
엘리스가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쳤다.
그런데.
꿀렁….
니알라토텝은 엘리스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지금 더 중요한 건 네크로노미콘을 가지고 있는 진혁을 쫓는 것. 하물며 그 본체가 아자토스의 성유물이 있는 곳에 있다면 더 이상 재고 말 것도 없다.
콰콰콰콰콰콰!
하지만, 뿌리를 통한 공간이동이 채 이뤄지기 직전 엘리스의 꼬챙이들이 날아왔다.
퍼퍼퍼퍽!
“큭!”
니알라토텝이 몸에 박힌 꼬챙이들을 보며 엘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친 겁니까? 기회를 줄 때 계속해서 도망이나 치시죠.”
“짐은 짐 앞에서 한눈을 파는 자를 용납할 수 없는 것뿐이니라.”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이제는 그 대상과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
20분은 훌쩍 지났을 무렵.
3번 부유하는 흑안을 봉인한 진혁이 15번 ‘차원 브레이커’의 봉인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에 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신중하게 접근한다.
[뱀자리의 주인 – ‘백사(白蛇)의 자취’가 발동됩니다!]창고 한가운데 꽂혀 있는 길이만 100m가 넘는 기괴한 검에 새하얀 뱀들이 기어다녔다.
잃어버린 언어를 기반으로 한 수십 개의 봉인식.
‘무한의 마법’과 ‘황도십이궁’을 통한 결계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두 개의 성유물을 연이어 봉인하려는 시도는 정신을 밑바닥까지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바로 그때.
꿀렁! 꿀렁!
진혁의 앞에 진흙이 솟구쳤다.
여기저기에 엘리스의 꼬챙이들이 꽂혀 있긴 했지만, 결국에 그 추격을 피해 이동에 성공한 모양이다.
“결국 왔냐.”
진혁이 입맛을 쓰게 다셨다.
“술래잡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 말대로다.
봉인식은 거의 마무리 단계이긴 했지만, 모든 마력이 바닥나기 직전인 지금 상태로는 니알라토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추하게 발버둥치다가 잡힌 뒤 책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리라.
“과연, 이런 꿍꿍이였군요. 정말 이쯤 되면 당신의 창의력에 박수까지 쳐주고 싶은 게 지금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유물을 봉인시킬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니알라토텝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보라색 그림자들이 방 안을 서서히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퇴로를 완벽하게 봉쇄한 뒤. 독 안에 든 쥐를 잡아내기 위함이었다.
진혁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차원 브레이커’에 대한 봉인이 성공했습니다.]이건 그나마 다행이다.
다행이긴 한데.
니알라토텝의 포위망 역시 방금 전에 막 완성되어버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더 이상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을 텐데 말이죠.”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약 10m.
한 걸음의 도약만으로도 좁혀질 수 있는 간격이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됐는데….’
진혁이 초조하게 1초 1초를 세어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락.
진혁의 손가락 끝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
같은 시각.
아자토스의 침실에는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하, 할 수 있어! 그치?”
“그, 그럼요!”
청하의 말에 안드리아가 주먹을 꼭 쥐었다.
자신들이 받은 임무는 단 하나.
아자토스의 방에 잠입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진혁은 엘리스를 미끼로 내세워 니알라토텝을 유인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이 아자토스의 궁전에서는 니알라토텝의 추격을 뿌리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그렇기에. 진혁은 자기 자신마저 미끼로 삼아 니알라토텝을 유인한 뒤.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룰 판을 만들었다.
바로 청하와 안드리아를 통해서 말이다.
‘청구 여우구슬’을 사용하는 안드리아는 본인의 기척을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지울 수 있을 터.
무엇보다 가장 위험도가 떨어지는 안드리아와 청하는 니알라토텝에게 있어 최후순위 추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파티원이 아자토스의 침실에 무사히 진입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피지 못 하는 꽃’과 ‘8개의 물방울’을 획득하셨습니다!]성공을 알리는 메시지.
안드리아와 청하가 목적을 달성했다.
“됐어!”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지자 진혁이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쩌저적!
지팡이가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며 반으로 잘린 출입권과 합쳐지기 시작했다.
[융합에 성공하셨습니다!]이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완벽하게 역전된 상황.
여유를 되찾은 진혁이 니알라토텝을 향해 한 마디 덧붙였다.
“넌 그게 항상 문제야. 약자들을 깔보는 버릇. 이번에 크게 수업료를 냈으니 화만 내지 말고 자아성찰의 시간을 좀 가졌으면 해.”
싱긋 웃어주며 상처에 소금을 뿌려주는 건 덤이었다.
“강… 진혁!”
니알라토텝의 입이 비이상적으로 길게 찢어졌다.
실낱같이 이어져온 이성의 끈이 방금 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어져버린 탓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 와서 공격을 퍼부으려 해도 아이템이 발동되는 게 훨씬 더 빨랐으니까.
[50층 출입권의 기간이 강제 종료됩니다.] [공간이동이 이루어집니다.]그것으로 50층에 왔던 이들의 모습이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