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33
733화. 순백(純白)의 격류 (2)
천세에 존재하는 여러 주신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기상을 개변시키고.
자연의 섭리에 개입하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분쇄시키는 그런 능력들을 말이다.
하지만.
무루간은 그런 괴물들에 비교했을 땐 오히려 빛이 바랬다.
정확히 상위 세력의 주신급에 맞는. 딱 그저그런 정도의 힘만 지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루간이 전쟁에 있어 압도적인 신뢰를 받는 건. 적의 장단점을 파악해 궁지로 몰아넣는데 특출난 덕분이었다.
-모든 행동과 말을 의심해라.
그리고.
-상대가 보는 것보다 한 수를 더 내다봐라.
무루간은 지금까지 정보들을 토대로 진혁을 완벽하게 분석했다.
어떤 식의 전술과 전략을 즐겨 쓰는지.
위기에 몰리거나 변수가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기지를 발휘하는 지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말이다.
‘단순한 무력이라면 네놈을 이길 순 없을 테지만, 이건 힘자랑이나 하는 싸움이 아니다.’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상황을 연출해야만 비로소 먹잇감이 완벽하게 탈출했다고 착각할 터.
이를 위해 ‘함선전단’과 ‘쇼거스’. 심지어 ‘알테라와 아덴’이라는 두 드래곤의 브레스까지도 마지막 한 수를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해버렸다.
너무 과하지 않냐고?
그럴 리가.
수많은 주신들을 몰락시킨 저 인간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이걸로도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전장의 메아리’가 태고의 존재를 부릅니다.]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그림자.
“크르르.”
“크오오!”
흩어져 있던 쇼거스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쿠쿠쿠쿠쿠!
거대한 존재가 그 힘을 드러냈다.
오싹하고.
대기가 얼어붙었다.
“여유를 부릴 틈이 없네 틈이 없어.”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심장을 옥죄고 뼛속을 굳게 만드는 기운.
알고 있는 마력이다.
사실, 태고의 존재들쯤 되면 단 한 번만 마주해도 온 몸이 그 위압감과 격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서서히 솟구치는 존재를 바라봤다.
[태고의 신격 ‘카알루트’가 현현합니다!]거대한 애벌레의 모습을 한 놈이 구름 아래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다!”
“산개해라!”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쐐기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게 오히려 독이 됐다.
하지만, 배가 퍼지는 속도보다 카알루트가 솟구친 게 더 빨랐다.
콰콰콰콰콰쾅!
불기둥이 휘몰아쳤다.
“으아아악!”
“아아악!”
흰색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워낙에 거대한 놈이 날뛰는 데다, 광역기를 난사해대는 탓이었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활로를 찾아 이동했다.
원래의 목적지로 가는 건 더 이상 무리였지만, 바로 옆쪽으로 새로운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구름 너머로만 갈 수 있다면….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바로 그때.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진혁이 무언가를 눈치 챘다.
카알루트는 무작위로 날뛰는 게 아니다.
얼핏보면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름의 흐름을 미묘하게 바꾸면서 몰아넣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저 구름 지대는 활로가 아닌 막다른 길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대응이 느렸다.
이대로라면….
“유성아!“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서리혼령의 창을 꺼낸 진혁이 천유성을 불렀다.
“쳇. 가지가지하는군.”
천유성이 검을 뽑으며 툴툴댔다.
그 역시도 흐름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콰앙!
탓!
진혁과 천유성이 동시에 움직였다.
“모기이이!”
“주인!”
고구마와 실피드에 각각 탄 진혁과 천유성이 구름 위를 날았다.
파츠츠!
검을 타고 흐르는 푸른 강기.
중요한 건 아군을 최대한 지키는 것.
어그로를 끌면서 카알루트가 이쪽에 집중하게 해야만 한다.
*
“크오오오!”
다행히 카알루트는 대번에 진혁의 존재를 알아챘다.
섬뜩한 살기가 진혁에게 향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수많은 태고의 존재들을 약올리고 얼마 전엔 감히 자신도 함부로 갈 수 없는 아자토스의 궁전에 발을 디딘 자 아니던가?
그 건방진 인간을 씹어삼키는 것만이 자신이 이곳에 현현한 이유였다.
구름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지독한 극독으로 인해 대기의 색마저 원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안 됩니다! 저 두 녀석보다는 다른 놈들을 먼저…!”
무루간이 다급히 카알루트를 만류했다.
어느 게 우선 순위인지 알려주기 위해 무례를 무릅썼다.
그러나 태고의 존재에게 있어 사사로운 숫자 놀음이나 전략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애벌레의 입에서 산성액이 비산했다.
좋아. 걸려들었다.
진혁이 저공비행을 하며 최대한 카알루트와의 거리를 좁혔다.
퍼퍼퍼퍽!
치이익!
꽤나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그대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을 거다.
서걱!
천유성 역시 검의 강기를 이용해 가까스로 젤리가 되는 신세에서 벗어났다.
검마의 절기를 익히지 않았더라면 제 아무리 추혼검을 펼쳐도 소용없을 것이다.
[천유성이 고유성창 ‘백야’를 발동합니다!]새하얀 눈보라가 검에 깃들었다.
“야! 굳이 싸워줄 필요는 없….”
“도망만 치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
천유성이 카알루트의 몸에 올라탔다.
“키에에!”
“케에엑!”
카알루트의 등에 기생하고 있던 벌레들이 먹잇감에 반응했다.
예리한 집게에 3개의 턱.
낫처럼 생긴 꼬리에선 카알루트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독액이 잔뜩 묻어 있었다.
[검마일식 – ‘해(解)’]천유성의 칼날이 그대로 사라졌다.
눈송이 사이로 새하얀 선이 나타났다.
겨울마저 베어버린다는 검마의 정수.
순백의 검격이 대기를 갈랐다.
투툭….
투투둑.
수십 조각으로 잘린 벌레들의 몸이 좌우로 떨어졌다.
일격에 일곱 마리.
쇼거스 급에 해당하는 기생충들이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휘유.”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제법이네.
정말로 천유성이 강해진 게 실감되었다.
문제는 지금 죽인 기생충의 숫자는 전체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일곱을 잃었지만, 그보다 10배는 많은 숫자가 순식간에 그 자리를 채웠다.
“키에에에!”
“취리리르라!”
그때 나선 게 바로 엘리스였다.
“천한 것들은 짐이 맡을 테니. 한 방 먹이거라. 바보 검성.”
하늘 위에 떠 있던 엘리스가 꼬챙이들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퍼퍼퍼퍼퍼퍽!
쏟아지는 붉은 비에 기생충들이 모조리 꼬치구이로 변했다.
정말로 1초 남짓 생긴 틈.
천유성이 양 손으로 잡은 검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유형화된 검은 강기가 3m가량 뻗었다.
콰드득!
그대로 카알루트의 외피가 잘려나가며 속살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오오오!”
카알루트의 입에서 길고 긴 포효성이 뿜어져나왔다.
생소한 통증 때문도 때문이었지만, 감히 벌레가 주제 파악을 못했다는 점이 가장 신경을 건드렸던 것이리라.
곧바로 몸에서 가느다란 실들이 솟구쳤다.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얇고 가는 실들.
하지만, 그 실들은 다음 순간을 기점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의 채찍이 되었다.
카카가가강!
“무슨….”
천유성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숫자를 가늠하기 힘든 실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탓에 숨을 가다듬을 틈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싸우지 말라니까. 저 자식 화만 잔뜩 돋궜잖아.”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말을 좀 하던가!”
말을 해봤자 듣지도 않았을 거면서.
하여간 저 다혈질 같은 성격은 언제쯤이면 고쳐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천유성이 날뛰어준 덕에 상당수의 병력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워낙에 카알루트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부숴대는 탓에 무루간의 함대들마저 접근하지 못 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됐어.’
한 방씩 주고 받았으니 무승부 정도로 치면 될 터.
다음에는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겠다.
“빠져나가자.”
“쳇. 알겠다.”
진혁과 천유성이 몸을 뺄 준비를 했다.
엘리스가 엄호를 해주고 있는 동안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카알루트는 순순히 도주를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촤아아아….
8개의 다리가 구름 위로 올라왔다.
날개가 펼쳐지려 한다.
에덴 끝까지라도 쫓아오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벌써부터 너무 힘빼지 말자고. 이제 첫 날이야.”
진혁이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네크로노미콘’이 펼쳐집니다.]촤르르….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아직 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에 카알루트를 물러서게 만들 순 없었지만.
“키에에에?”
“크르르?”
쇼거스 정도를 혼란에 빠뜨리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얼마든지 가능하고 말고.
낯선 명령이 주입되자 쇼거스들이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도 잠시 쇼거스들이 카알루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카알루트와 그 몸에 붙어 있는 기생충들. 그리고 쇼거스까지.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훌륭하군.”
천유성이 쇼거스와 카알루트의 전투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럼, 앞으로 저 쇼거스라는 놈들은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이번 건 특정 명령체계에 있는 틈을 찾은 것 뿐.
다음에는 그 신경회로가 있는 부분을 아예 통째로 도려낸 채 올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저 괴물을 공략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지.
⁕⁕⁕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분전해둔 덕에 백색의 격류를 최소한의 피해로 넘어올 수 있었다.
에덴으로서는 적들이 꽤나 성가신 전략적 요충지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선악과가 있는 에덴의 중심부에서는 수많은 신격과 대영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반드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 큰 소리를 치더니.”
“성과라도 좀 있었으면 말이나 안 해. 병력도 거의 못 줄였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가 갈 걸 그랬군.”
천사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닥쳐라!”
“우리 잘못이 아니라 카알루트께서 돌발행동을 했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까. 태고의 신격 잘못이라는 건가?”
“그런 말이 아니라….”
천세와 에덴 사이에 언쟁이 오갔다.
표면적으로 한 배를 탔지만, 이들은 서로의 뱃속에 칼을 숨기고 있었다.
상대가 몰락해야 자신들이 부흥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
그렇기에 기회만 생기면 어떻게든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에드온 님은 어디에 계시는 거죠?”
보다못한 사미엘이 물었다.
태고의 존재야 원래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예측 불가의 전력.
그 다음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대룡인 에드온 쪽이었다.
뼈아픈 패전으로 인해 분열되고 있는 세력을 결집시키려면 그가 필요할 터.
하지만.
“배신자를 처단하러 가셨다.”
“며칠 간은 자리에 안 계실 거야.”
골드 일족인 알테라와 아덴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곤란하군요.”
가장 필요할 때 부재라니.
저 지독한 강진혁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걱정하진 마라. 그분께선 놈들이 강을 건넜을 때의 상황도 대비해두고 가셨으니까.”
이건 전쟁이다.
서로의 거점을 뺏고 뺏는.
다시 말해.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도 지켜야할 곳이 있다는 뜻이다.
“보아하니 주요 전력을 거의 다 데리고 온 것 같은데….”
과연. 본인의 거점은 무슨 수로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