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35
735화. 달이 비치는 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거대한 구덩이.
거기에는 천 명이 넘는 거주자들이 모여 있었다.
날개가 없거나 아주 작은 날개를 가진 이들. 바로, 최하급 천사들이었다.
‘신성석의 틀이 될 마정석을 캐고 있군.’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일반적으로 푸른 빛이 도는 마정석과 달리 순백의 빛을 띤 원석.
오직 저 안에서만 신성력을 담을 수 있었다.
이 마을에 온 목적 중 하나도 저 신성석에 관련된 것이었다.
카앙! 캉!
곡괭이질을 하루종일 한 걸까?
비틀거리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빨리 빨리 움직여라!”
“다 죽고 싶은 것이냐? 버러지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관리자로 보이는 천사들의 채찍질엔 일말의 자비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피가 튀고 살점이 뜯겨저 나간다.
중세 노예들을 부려먹는 것마냥 참혹하기 짝이 없다.
“잔인한 놈들…. 천사란 것들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다니.”
“…….”
진혁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엘리스는 그런 진혁을 빤히 쳐다봤다.
“크흠! 큼. 일단 저기로 섞여 들어가자. 노동자인 것처럼 하면 마을 안에 진입하는 게 쉬울 거야.”
진혁이 ‘인피면구’를 이용해 두 개의 껍데기를 만들어냈다.
채찍을 맞아 생긴 상처와 최하위 천사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옅은 금색 눈썹이 눈에 띄었다.
이미 몸에선 희미한 신성력까지 뿜어내고 있었으니 의심을 받지 않고 섞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워낙에 숫자가 많기도 하고.’
족히 1,500명이 넘는 인파 속에 2명 정도 더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진혁과 엘리스가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구덩이의 외곽으로 접근했다.
“허억. 허억….”
“물… 조금만이라도….”
“차라리 그냥 끝났으면.”
반쯤 죽어버린 시체들.
초점을 잃어버린 동공에선 그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좀비 같은 놈들은 안 된다.
조금 더.
아주 약간이라도 생기가 도는 놈을 찾아야 하는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진혁의 눈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이긴 했으나, 두 눈에는 불씨가 살아 있었다.
잔불.
몇 번이고 꺼졌지만, 그 불씨는 분명 남아 있었다.
게다가 소년의 눈동자와 눈썹 색.
다른 이들과 달리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날개 역시 한 쪽만 자라나 있었고.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이런 곳에서 희귀종을 만날 줄이야.
좋아. 저 정도면 충분하지.
제대로 적임자를 찾았다.
카앙!
코인 거래소에서 미리 구매해둔 곡괭이를 들고 그 옆에 섰다.
“…….”
낯선 이가 옆에 다가왔지만, 소년은 게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이어나갔다.
진혁이 말 문을 뗀 건 그때였다.
“유다의 날개 쪽에 생존자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툭하고 던진 말.
“……!?”
관심이라곤 손톱 만큼도 없었던 소년의 표정에 다채로운 감정이 터져나왔다.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눈이랑 날개.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존재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유다의 날개는 아주 오래 전 에덴과 마계의 전쟁 때 루시퍼의 편에 선 이들이다.
일종의 배신자들.
관련자들은 모조리 숙청당한 뒤, 그 존재마저 역사에서 삭제되었다.
적어도 에덴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생존자는 늘 있는 법이지.’
진혁이 흥미롭다는 듯 소년의 반응을 기다렸다.
“말할… 생각인가요?”
이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배신자는 모두의 공적.
정체를 발설한다면 그 즉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처형될 수밖에.
“글쎄. 굳이 그래야 하나?”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에도 이 마을에 온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태고의 존재들과 에드온까지 개입한 터라. 에덴의 사정이 꽤나 달라져 있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와 현실간에 간극이 생겼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내부 상황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가 반드시 필요했다.
바로 그때.
“이것들이 미쳤나?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뭘 그리 떠들고 있는 것이냐?”
주위를 순찰하던 천사 한 명이 두 눈을 부라렸다.
곧바로 손에 쥔 채찍이 번개처럼 뻗어왔다.
촤아아악!
진혁이 그 벌을 대신 맞았다.
“막아?”
감독관이 재차 채찍을 휘두르려했다.
“적당히 하시죠. 저희가 다치면 공급량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요? 안 그래도 전쟁 때문에 할당량이 늘었을 텐데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
당장이라도 후려치려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그 말대로 평소보다 곱절로 늘은 할당량 때문에 골치가 아프려던 참이다.
다른 거대 세력들과의 전쟁엔 신성석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다 죽어가는 버러지들 하나 둘이 없어졌다고 채굴량이 바뀔 것 같진 않군.”
촤아악!
채찍이 재차 내려쳤다.
진혁의 등에 붉은 선이 한 줄 생겼다.
“네놈들 따위가….”
촤악!
“감히…!”
촤아악!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란 말이다!”
채찍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티가 나면 안 됐기에, 방어마법이나 스킬은 일체 사용할 수 없다.
간만에 시큰한 고통이 전신을 두드렸다.
빌어먹을.
넌 얼굴 기억해놨다.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레고처럼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애써 잠입을 하려는 시도가 무산된다.
큰 일을 위해서는 이런 시련도 견뎌야 할 터.
훌륭한 연기자의 삶은 언제나 고달픈 법이다.
정작 큰 문제는 이쪽의 인내심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스 쪽이었다.
“감히….”
진혁이 상처입는 걸 보는 엘리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츠츠츠….
혈액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한다.
진혁이 손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지만, 엘리스의 이성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1초만 더 있다면 마을 전체가 증발해버릴지도 몰랐다.
다행이도.
“그만해라. 그러다 정말 죽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또 다른 감독관이 동료를 말렸다.
“쳇!”
나름대로 분이 풀렸는지 채찍질을 하던 천사도 못이기는 척 물러섰다.
그렇게 6시간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 되어서야 길고 긴 노동이 끝났다.
“작업 끝!”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해라. 조금이라도 더 자려면 빨리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굼벵이 같은 것들아!”
노예들은 오와 열을 이뤄 마을로 이동했다.
쿠쿠쿠쿵!
묵직한 문이 열렸다.
역시나.
‘이 안에도 잃어버린 언어가 각인되어 있어.’
방어용이라기 보다는 알람용.
일부러 마을 자체의 경비에 빈틈을 만들고 누군가 침입할 경우 즉시 에덴의 수뇌부에 소식이 전달되는 형태다.
만에 하나 무력으로 침입했다가는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쪽의 노림수가 고스란히 노출될 뻔 했다.
도착한 곳은 노예들이 모여 있는 숙소.
말이 좋아 숙소지. 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훤히 뚫린 철장 안에 지푸라기들이 깔려 있는 게 전부였다.
언제 씻었는지 모르는 그릇들에는 꿀꿀이 죽이 엉겨붙어 있었다.
“먹고 자라. 5시간 뒤엔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
미량의 신성력이 녹아 있는 성수와 죽.
식사는 그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먹겠다고 난리였지만.
걸신들린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거의 모든 이들이 곯아떨어졌다.
육체에 쌓인 피로와 다시 시작될 노동을 감당하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만 했다.
⁕⁕⁕
밤이 깊었다.
에덴에서 처음 보는 초승달이 유독 시린 빛을 내뿜었다.
“……괜찮느냐?”
어느새 엘리스가 진혁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모기한테 좀 물린 정도야.”
“상처가 깊어보인다.”
엘리스의 손길이 닿았다.
“이까짓 거 별 거 아니….”
피식 웃으려던 진혁이 말꼬리를 흐렸다.
몸에 닿은 엘리스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
“계약자도… 다치는 것이구나.”
언제나 태산처럼 버텨주며 승리로 이끌던 든든한 존재.
그런 이가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다.
부서지고 망가지고 최악의 경우엔 죽을 수도 있겠지.
‘인피면구’가 지워진다.
희미한 달빛만이 남은 밤.
엘리스의 두 눈이 진혁에게 향했다.
평생을 바라던 소원은… 이미 이뤘다.
배신한 가주들을 처단하고 아타락시아의 이름과 의미를 되찾았으니까.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고 그것만 이룬다면 여한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이제는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소중한 이와의 내일을 그려나가고 싶다는.
“짐은 불안하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함께 하고 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보답받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이.
그리고.
그 소중한 존재가 점점 더 위험하고 어두운 곳으로 향하고 있는 미래가.
“그대는 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그게… 무슨 말이야?”
“짐이 그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않느냐? 단지, 더 큰 목적을 위해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이지.”
“나는….”
진혁이 무겁게 입을 닫았다.
그 누구보다 가깝게 있으면서 엘리스의 감정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엘리스의 말대로 지금은 더욱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었다.
“굳이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니라. 그저. 짐은 계약자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살아남아서 이 탑의 마지막이 도래하는 그날에도 내 곁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는 건 단지 그 하나.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엘리스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무 바라만 보는 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으니 약간만 욕심을 부려볼까나?”
동시에.
진혁의 입술에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니알라토텝과 싸웠을 때도. 아자토스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탑의 정상을 처음 올랐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진혁이 움찔했지만, 엘리스는 더욱더 몸을 밀착해왔다.
양 손으로 진혁의 어깨를 감싸고 그대로 넘어뜨렸다.
실타래처럼 늘어진 은발이 진혁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피부의 감촉과 입술의 감촉.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붉은 눈동자가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는 듯 천천히 감겼다.
감정이 전해진다.
그토록 추웠던 감옥 안인데도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진혁도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
그날 밤은 유독 푹 잔 것 같다.
새벽이 밝았을 무렵.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는 엘리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진혁이 그런 엘리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더 정리된 것 같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살아가야 할 목적도 더욱 확고해졌다.
‘지면 안 되겠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반드시 넘어서보이겠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지켜야할 소중한 이들이 생겼으니까.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혁은 묵묵히 주어진 과업들을 처리하며 신성석을 채굴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틈틈이 마을 내부를 돌아보며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유에 적신 횃불은 확보했다. 헤라클레스와 토르는 남쪽 성채 2곳을 함락시켰고.
-일주일 뒤면 기계화 군단 배치도 거의 끝나요. 놈들이 소규모 강습공격을 계속 퍼붓고 있긴 한데, 연화 누나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구요.
-진혁 씨. 저는 가브리엘님과 함께 동쪽 포로수용소 탈환에 성공했어요. 대부분 부상이 심하긴 하지만, 조금만 회복하면 저희 측 전력으로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뼈로 만든 까마귀들이 흩어져 있는 다른 동료들의 소식을 전해왔다.
모두가 맡은 임무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4일째가 되었을 때.
“무슨 꿍꿍이인건가요?”
소년이 진혁에게 다가왔다.
좋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