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36
736화. 신성석의 비밀
차분하게 침착하게.
티를 내지 않고 미끼를 뿌려둔 결과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자는 척을 하던 진혁이 눈을 떴다.
“무슨 말이야?”
“처음에는 제 정체를 가지고 무언가 협박을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소년이 입을 열었다.
채찍까지 대신 맞아가며 지켜준 비밀.
당연히 그 대가로 앞으로의 음식이나 성수 등을 요구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키거나.
하지만 3일이 다 지나도록 진혁은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유다의 날개가 에덴에 큰 죄를 진 건 사실이야. 사실 뭐, 멍청하게 타락 천사인 루시퍼에 붙어 버린 건 변명할 여지가 없지.”
“그건…!”
“하지만.”
진혁이 소년의 말을 끊었다.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
억울함.
그래. 소년은 그저 억울할 뿐이다.
그 모든 일들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들로 인해 단지 배신자의 혈통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죽어야 하는 건 나도 잘 모르겠거든.”
그래서 모른 척 해준 거다.
정확히는, 그런 컨셉을 잡기로 했다.
“…….”
소년이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무언가 결심한 듯 소년이 진혁을 바라봤다.
“제 이름은 이스마엘입니다. 낯선 이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동시에 제 편협한 시각으로 따뜻한 호의를 오해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꿀꿀이 죽이나 먹는 처지끼리 사과는 무슨. 넣어둬.”
“그래도….”
“정 그리 미안하면 신성석이나 몇 개 넣을 수 있게 도와주든가. 나는 괜찮은데, 내 동료가 저급 성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서 말이야.”
진혁이 옆에 있는 엘리스를 가리켰다.
끙끙.
“죽…겠느니라. 진짜로. 죽겠단 말이다.”
엘리스가 창백한 얼굴로 앓아 누워 있었다.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 아픈 거다.
진조의 몸으로 매일 같이 싸구려 신성력이 든 물과 음식을 섭취하고 있으니, 몸이 쇠약해 질 수밖에.
최대한 결계로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스마엘은 별 다른 의심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처음 오는 분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죠. 알겠습니다. 신성석이 보관되고 있는 창고를 알고 있으니 거기서 몇 개를 가져와드리죠.”
“그게 가능해?”
“예. 들키지 않는 뒷구멍을 한 개 알고 있거든요.”
역시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한 짬이 나오네.
신성석을 캐기 위해서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보던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는데. 그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게 생겼다.
이래서 내부조력자가 있으면 편하다는 거다.
“아니, 혼자 보내면 위험하니까 나도 같이 갈게. 뒤를 봐줄 천사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으음. 그래 주시면 저도 좋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에서는 탈옥한 게 걸릴 경우 즉결 처분입니다.”
“괜찮아. 이래봬도 나름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에 자신 있거든.”
진혁이 강력하게 동행을 밀어붙였다.
신성석이 보관되어 있는 곳엔 반드시 직접 가야 한다.
그걸 위해서 이 똥통 같은 곳에서 꾹 참고 있던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창고에만 갈 수 있다면 그 안에 있는 신성석 제조의 숨겨진 ‘진짜 면모’도 볼 수 있을 터.
이제야 본격적으로 잠입을 한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
“감독관들은 포도주를 먹느라 정신없을 테니 안전할 거야.”
“30분 안에는 와야 하는 거 알지?”
“항상 고생이 많구만. 미안하네.”
천사들 중에서 그나마 눈빛이 살아 있던 이들이 이스마엘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무래도 이스마엘이 신성석을 빼돌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모양이다.
물론, 개인의 이익이 아닌 다른 아픈 이들에게 먹일 목적으로.
그 증거로 이스마엘이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걸 여러 명이 돕고 있었다.
‘꽤나 신임을 받고 있나보네.’
천사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으응. 알겠다. 그런데 너무 어지러워서 이러다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구나.”
엘리스가 목적성이 다분해보이는 손동작을 했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무얼 원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알았어. 대신 한 입만이야.”
고생하는 게 저리 보이는데 마냥 거부할 수만도 없는 노릇아닌가.
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엘리스가 진혁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쭈욱.
정확히 한 입.
몸에 있는 혈액과 마력이 뭉텅이로 뽑여나간 게 느껴졌다.
임시방편이긴 해도 흡혈을 해뒀으니 당분간 버티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진혁이 이스마엘을 따라 철장 밖으로 나갔다.
휘이잉!
몰아치는 눈보라.
급격히 떨어진 기온 덕에 감독관들이 마시는 포도주의 양 또한 늘어날 것이다. 눈보라가 시야를 가려주는 거야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쪽에 배치된 놈들은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상대적으로 허점을 파고들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고작해야 노예들을 관리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이쪽이에요.”
이스마엘이 미로처럼 얽힌 판자촌 사이사이로 진혁을 인도했다.
중간중간 중무장한 천사들을 마주쳤지만, 그때마다 샛길을 이용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도착한 곳은 다른 판자집 보다 수십 배는 크고 거대했다.
다람쥐처럼 창문을 타고 넘어간 이스마엘이 안쪽을 살폈다.
“호오.”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새하얀 돌.
신성석 무더기였다.
안에 희미한 기체가 갇혀 있는 걸 보니 신성력 주입까지 끝난 게 틀림없었다.
‘저게 다 얼마냐.’
최소한 군단급 병력을 한 달이상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양이다.
물론.
철컹! 철컹!
그에 걸맞게. 여기까지 왔던 것과 달리 중갑 천사 수십 명이 우글대고 있는 건 덤이었다.
“여기서 누가 저 뒤쪽으로 오는지만 봐주시면 돼요.”
이스마엘이 기어갈 자세를 취했다.
대놓고 경비들 사이로 가는 건 불가능했지만, 쌓이다 못해 넘쳐서 흘러내린 몇몇 신성석을 노리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니.”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고작 신성석 몇 개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여기 있는 것들에 약간의 장난질을 칠 거야.”
신성석은 천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 하나다.
인간으로 치면 공기나 물 혹은 식량 같은.
그렇다면….
만약 이걸 모조리 오염시켜버린다면 어떨까?
아마 꽤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전쟁의 한 축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릴 만큼 말이지.
진혁이 품 안에서 검붉은 색의 액체가 담겨 있는 유리병을 꺼냈다.
‘타락한 성녀의 피’.
제조되는 성수에 이걸 떨어뜨린다면 신성석 전체에 ‘타락’ 속성이 강제로 부여될 거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테레사처럼 타락을 하진 않겠지만….
……복통과 설사 고열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고 말고.
“당신은 대체….”
이스마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진혁을 노려봤다.
두 눈에선 경멸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제가 아무리 노예의 신분으로 갇혀 있다고 한들, 모든 천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성석을 더럽힐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 있는 신성석이 대부분 전사들에게 사용된다고 해도?”
“그 중에는 무고한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그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호오.
이것봐라?
저 지옥 같은 구덩이에서 구르고 구르다보면 삐뚫어지는 게 보통인데.
이런 신념까지 남아 있었던 건가.
채찍 몇 대를 막아주는 것만으로 설득하기엔 아직까지 신뢰도가 부족했다.
진혁의 시선이 힐끗 허공으로 향했다.
이스마엘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한 조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
[복사조건: 이스마엘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서는 종족의 ‘배신자’라는 죄책감을 덜어줘야만 합니다. 단순히 죄책감을 덜어줄 경우 ‘고유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으며, 만약 그걸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성까지 제시해줄 경우 이스마엘이 가진 고유성창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이스마엘의 고유성창 ‘검은 혈통’과 고유능력 ‘피묻은 은화닢’.
모두 신성력을 파훼시키는데 특화된 능력이었다.
테레사의 ‘타락’과도 잘 어울릴뿐더러. 가지고 있으면 에덴의 천사들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약간의 충격요법이 필요할 수밖에.
“따라와. 네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신성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여줄 테니까.”
그걸 보고서도 지금의 대답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진혁이 멋대로 몸을 날렸다.
“잠깐. 길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가다간 위험….”
채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연합이 승리를 위한 퍼즐조각을 맞추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사이.
탑의 다른 곳에서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쿵! 쿵! 쿵!
엄청난 대군이 드래곤 레어에 접근했다.
“꽤나 고생했군.”
에덴의 대천사 ‘라파엘’이 짜증 섞인 불만을 내뱉었다.
이곳에 오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기습을 해야 한다는 이유 탓에, 직선으로 가야 할 길을 빙빙 돌고 도는 것은 물론. 경계 마법 역시 최대한 세심하게 파훼하며 접근해야만 했다.
철퇴로 찍어누르던 평소의 시원시원한 스타일과는 정 반대의 임무였단 뜻이다.
하지만.
고생은 이제 모두 끝났다.
“후후후. 우리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놈들은 낯선 에덴 안에서 거점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정보전에서 승부 자체가 안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크하하하!”
얼핏보면 적들이 에덴을 공격하고. 천사들과 천세의 연합이 이를 막아내는 형국이라 생각할 수 있었으나.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거점 점령전은 말 그대로 서로의 거점을 공격하는 것.
공격하는 쪽 역시 언제든지 역으로 자신들의 본거지가 공격받을 위험을 안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거점 전에서 적의 거점을 무너뜨릴 경우 적의 모든 스탯과 능력치가 +1%만큼씩 감소합니다. 단, 거점의 중요도가 올라갈수록 하락하는 스탯과 능력치의 퍼센테이지가 상승합니다.]드래곤 레어는 진혁의 메인 거점.
여기만 박살낼 수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 쐐기를 박을 수 있으리라.
“적의 방비는?”
“거점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수준입니다. 마력 반응은 많아야 몇 십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드래곤 레어의 크기는 굉장히 넓고 복잡했다.
그런데.
고작 몇십이 전부라니.
“인간의 수명 상 이런 대규모 전쟁 경험이 부족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너무 안일하군.”
천세의 주신 무루간은 선봉전에서 쓴 맛을 봤었지.
그 수모를.
위대한 에덴의 이름으로 씻을 기회가 왔다.
“환수들을 보내라. 적이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부터 보도록 하지.”
라파엘이 가볍게 시작을 알렸다.
“예!”
즉시 천사들이 쇠사슬을 풀었다.
촤르르륵…!
피에 굶주린 짐승들이 먹잇감을 포착했다.
‘소르사’.
신성력을 화염 속성의 마력으로 재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투형 환수다.
에덴에서도 꽤나 공을 들여 조련한 것들로 공수의 밸런스는 물론, 기동성까지 뛰어난 특이종이었다.
콰앙!
쾅!
10마리가 넘는 소르사들이 일제히 제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제대로 된 방어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는 거점은 너무도 쉽게 이들의 침입을 허용해버렸다.
“끝이군.”
라파엘이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일단 안으로 들어간 이상 소르사들을 막을 방법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주인 없는 그림자 식물’들이 깨어납니다.]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퍼퍼퍼퍽!
검보라빛을 머금은 나무 줄기들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