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53
753화. 진명(眞名)
십이지 중 하나.
사왕(蛇王) ‘백희(白戱)’.
매혹적인 여성의 몸에 기다란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팔다리는 모두 인간의 것이었지만, 뒤에 달린 꼬리는 화려하면서도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미스티 님께서 1:1을 하시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끝장을 내라는 게 저희가 맺은 협약이었으니까요.”
“뭐…라고? 지금 그 말. 충분히 생각을 하고 지껄인 거겠지?”
미스티의 동공이 험악하게 찢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선 상대가 그 누구든 죽여버리겠다는 경고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물론입니다. 충분히 생각해서 결론을 내린 거예요. 미스티 님이야 말로 지금 하시는 협박. 충분히 생각하고 하신 말씀인가요?”
백희의 표정에선 압도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왕 백희를 이곳에 보낸 건 다름 아닌 우마왕.
제천대성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십이지다.
제 아무리 고대룡이 두려울 게 없는 존재들이라지만,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대놓고 척을 지기엔 껄끄러웠다.
제천대성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아직은 때가 아니야.’
십이지라는 잇속에 낀 이물질 같은 놈들 역시 진혁과 마찬가지로 없애버려야 할 세력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최적기는 우마왕을 통해 49층의 정보를 모두 뽑아낸 후 제천대성을 제거했을 때.
더 이상 걸기적거리는 놈들이 없어지는 시점이 본색을 드러낼 순간이다.
그 전까지는 협약을 지키는 시늉을 해줘야겠지.
“쳇!”
미스티가 어쩔 수 없이 살기를 거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자도 토끼를 사냥할 때 전력을 다하는 법인데, 하물며 늑대를 사냥하는데 있어 전력을 분산시킬 이유는 없겠죠.”
백희가 혀를 낼름거렸다.
찢어진 동공이 정확히 진혁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묘족이랑 한 편을 먹으셨던데, 덕분에 아주 잘 됐습니다. 토끼는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거든요.”
“취향 한 번 고약하네. 그러니 다른 신화에서도 불길함의 상징이 된 거 아니야?”
“어머나. 상위 종이 하위 종을 포식하는 거야말로 자연의 섭리 아니던가요? 오히려 함께 공존하고 있던 지금까지가 이상한 일이었죠.”
대놓고 까도 웃으면서 받아친다.
말로 성질을 건드리는 건 통하지 않을 듯 싶네.
그렇다면 당근을 좀 써볼까.
“저 정신나간 단발이 뭘 제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쪽에서 더 좋은 걸 제안해줄 수도 있어. 예를 들어 너희가 마시는 ‘이석수(利石水)’가 대량으로 있는 곳이라든가….”
이석수라는 말에 백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고마운 말씀이네요. 허나, 이미 당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을 것 같네요.”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건가.
결코 깰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판돈이 오고간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마왕 본인이 직접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희라면 그래도 공략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죽여.”
미스티가 옆에 있는 드래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1이라는 여건이 사라진 이상, 합격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파츠츠!
화르륵!
본신으로 돌아간 드래곤들의 입에 각기 다른 브레스가 맺혔다.
수많은 마법진과 용언이 진혁을 말살하기 위해 발동되었다.
……온다.
진혁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세계의 기억’에서 다수의 능력들을 불러왔다.
‘괴력난신’을 사용해 제3의 팔을 소환했다.
이어서 ‘트리플 매직’과 ‘만다라’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방벽을 펼쳤다.
이어진 것은 빛의 폭발이었다.
콰아아아앙!
“크으읍!”
진혁의 이마에 힘줄을 돋아났다.
그냥 피했으면 간편했을 일이지만, 고구마에게 마력을 전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흐름을 끊을 수 없었다.
우우웅!
한 쪽 손은 여전히 초점을 잃고 서 있는 고구마에게 향하고 있었다.
쩌저적!
방벽에 균열이 생긴다.
[‘페이즈 2’가 발동됩니다!] [‘툼 그레이브의 왼팔’이 발동됩니다!]진혁의 몸이 한 차례 변했다.
강력한 적의 폭격에 대응하기 위해 그에 걸맞는 육체로 재구성되었다.
“흐음. 잘 버티네요.”
“이제 시작일 뿐이야. 건방지게 마력 흐름을 끊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주지.”
백희와 미스티가 본격적으로 공격에 가세했다.
[‘청염의 브레스’가 발동됩니다!]미스티가 다른 드래곤들과는 차원이 다른 푸른 불꽃을 토해냈다. 양 쪽 머리에 완전히 자란 뿔을 한 상태에서 발동한 브레스였다.
이건 ‘페이즈2’로도 버틸 수 없다.
우우웅!
‘세라핌’을 발동하자 두 개의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거기에, ‘만상공유’를 통해 불러온 ‘개벽의 계시록’까지 더해졌다.
검은 날개 위로 붉은 고리가 드리웠다.
마력이 폭주하며 신경들이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때.
취릿!
녹색 운무가 유형화되어 뱀의 형상을 갖췄다.
지면을 스치듯이 다가온 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송곳니를 드러냈다.
콰콱!
왼쪽 다리를 파고든 송곳니.
찐득한 독액이 혈관으로 주입되었다.
시큰한 통증이 뇌수까지 파고들었다.
곧바로 ‘포이즌 로드’와 ‘멸천만독’을 통해 독의 해독이 이어졌다.
하지만, 브레스 방어와 고구마에게 마력을 전달해주는 탓에 응급치료를 하는 게 고작이다.
어지럽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고 안주할 수는 없었다.
방어만 하고 있는 데 활로가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어떻게든 반격을 해야….
진혁이 남아 있는 마력을 쥐어짜냈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 ‘사수자리’가 깨어납니다!] [‘만상공유’ – ‘별들의 부름’이 발동됩니다!]별빛을 화살로 만들어 쏘아내린다.
콰콰콰콰콰콰!
무수히 쏟아지는 빛줄기가 드래곤들의 마나 실드를 두드렸다.
1초. 2초… 5초.
아무리 짧은 찰나라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 1초 1초가 모여서 성공을 알리는 결과물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호오….”
“괴물…이네요. 완전히.”
미스티와 백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력을 다한 브레스에….
사왕의 독을 맞고도 버티다니.
반쪽을 묶어두고 하는 싸움에도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물며 상대는 그 와중에 반격까지 가하고 있지 않은가?
별자리에서 가해지는 폭격은 드래곤들도 방어하기에 급급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이지만 대단하다.
어째서 지고지순한 존재들이 모두 강진혁이라는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스티가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콰콰콰콰콰콰!
붉은 직선이 별로 만들 화살들을 박살내며 쇄도했다.
“크하하하! 어디 이것도 받아 보거라!”
불사룡 아스카람이 던진 창이 방벽을 꿰뚫었다.
심장 쪽.
진혁이 몸을 뒤틀었다.
퍼걱!
가까스로 치명상은 면했다.
물론, 그 대가로 옆구리에 창이 스치는 건 허용해야만 했다.
울컥!
깊숙이 파인 상처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방금 한 방으로 갈비뼈 두 개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흐릿하고.
의식의 일부가 날아갔다.
진혁이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바로잡았다.
“하아…. 하아.”
여기서 기절이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끝이다.
***
무채색 세계.
황폐함을 넘어 허무함마저 느껴지는 공간 속, 고구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노란색 눈동자엔 묘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구마가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세월을 짐작하기도 힘든 고목들. 그 사이에 있는 건 수백 미터에 이르는 드래곤이었다.
무언가에 구속되어 반쯤 누워있는 자세였으나, 그 크기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만큼 거대했다.
짙은 안개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유희는 아직인 건가?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만.”
안개 속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쿠쿠쿠쿠!
단순히 음성을 내뱉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얼마나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단층의 바깥에는 수많은 고대룡들이 현현해 있었지만, 안개 속 드래곤은 그 중에서도 격이 달랐다.
“모기이이….”
고구마가 낮게 울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단순히 바깥을 구경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거지?”
“모기.”
“저 인간을… 구하고 싶다고?”
일렁이는 한 쪽 벽.
그곳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진혁이 서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위태로워 보인다.
몇 분만 더 지난다면 생사를 장담하기 힘들어보였다.
돌아가는 전황 역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고.
“무의미한 짓이군.”
자신의 생명을 소모시켜….
…누군가를 지킨다니.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한낱 유희에 그 정도의 희생을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시간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 그 아픈 기억마저 무뎌졌단 말이냐?”
두려운 존재였다.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자신의 동족이라고 하는 자들에게마저도.
너무나 강대한 힘은 동경을 넘어서 공포가 되었고. 결국엔 적대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봉인되었다.
탑의 어딘지 모르는 곳에 가둬져 끔찍한 제약의 굴레를 짊어지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헤츨링 시절의 모습을 가지고 탑을 돌아다니는 것 뿐.
그마저도 자아를 나누는 희생을 감수해서 겨우 얻어낸 자유였다.
공허하고 허무한 삶이다.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선은 우루보로스의 뱀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억겁의 시간마저도 가장 아픈 기억을 흐리게 만들 순 없겠지.
그래. 분명 그럴 진데.
마음에 그어진 쓰라린 상처는 영원히 달라붙어 있어야 할진데.
“모기!”
고구마는 활짝 웃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다. 거기엔 이해관계나 저울질 따위는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에게 곁을 내어준 존재를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이.
“…….”
저런 웃음을 봤던 게 언제였더라?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도 그리웠던 웃음이었다.
안개가 조금씩 옅어졌다.
감정이.
기억이.
그리고 추억이 공유된다.
-장난도 치고 울고 웃으며 티격태격 해대던 시간들.
-마정석을 먹으며 따스한 햇빛 아래서 진혁의 품에 안겨 낮잠을 자고.
-전장에선 함께 서서 싸웠다.
-‘고구마’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것도 잊지 못한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함께 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료이자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 한 사람에 대한 편린들이 떠올랐다.
한 점 티끌 없는 호박색 눈이 서로를 마주 본다.
마치, 거울을 앞에 둔 것처럼.
시간을 초월한 하나의 존재가 과거와 현재를 관조했다.
“아무래도 너는 바보천치인가 보구나. 그 경험을 하고도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다니.”
자조 섞인 중얼거림.
그런데 어째서일까.
드래곤은 그게 마냥 싫지는 않은 듯 보였다.
“그게 너의…”
아니.
“우리의 소망이라면….”
아쉬움은 없다.
그거면 된 거다.
촤르르륵!
몸을 일으키자 황금색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말려올라갔다.
그것도 잠시.
우두둑!
콰드득!
몸을 구속한 쇠사슬들이 전부 박살났다.
파아아앙…!
무수히 오랜 세월을 억눌렀던 구속구가 풀어졌다.
[금제가 해제됩니다!] [전체 생명력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현현하는 1분당 생명력이 추가로 소모됩니다.]고대 룬어들로 이뤄진 경계에 금이가며 하늘을 뒤덮는 두 개의 날개가 펼쳐졌다.
게이트 같은 매개체는 필요 없다.
[진명(眞名)이 개방됩니다.]공간과 공간이 강제로 갈라지며….
“크오오오!”
[공허룡(空虛龍) ‘에테리온’이 현현합니다!]짧은 문구가 시작과 끝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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