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고인물이 디펜스를 하는 법 (1)
“크아아아아!”
“케에엑!”
피부가 벗겨지고 짓물러 피가 흐르는 외형.
오직 인육만을 탐하는 좀비들이 밀려왔다.
엄청난 수다.
게다가 속도까지 빨랐기에, 좀비들은 순식간에 경기장 코앞까지 도달했다.
“형. 정말 이런 걸로 막을 수 있는 거예요?”
이태민이 경기장 입구에 솟아난 식물들을 불안한 듯 바라봤다.
태양의 모양을 본 떠 만든 ‘솔라 식물’은 크기는 제법 컸지만, 전투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오빠. 설마, 예전처럼 스릴 즐긴다면서 일부러 이상한 거 고른 건 아니지?”
유연화도 한 마디 덧붙였다.
고인물인 두 사람조차도 4층에서 식물을 방어하는 데 주력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걱정하지 마. 이 녀석들 보기보다 꽤 쓸 만하니까.”
진혁이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
“온다!”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동시에.
쿵! 쿵! 쿵! 쿵! 쿵!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좀비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넝쿨들을 넘어 거침없이 경기장 안으로 진입하려는 좀비들.
하지만, 첫 번째 좀비가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솔라 식물이 Lv1 ‘태양의 빛’을 발사합니다!]크게 부풀어 올랐던 식물이 직경 2m 크기의 구체를 토했다.
콰아아아앙!
태양의 에너지를 담아 날리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좀비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작렬했다.
“키에에에!”
“크아악!”
전신에 불이 붙은 좀비들이 비틀대다 쓰러졌다.
“헉?”
“무, 무슨 위력이……!”
“이거 화염 타워나 빙계 타워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은데요.”
“…….”
지켜보던 네 사람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한 방에 오십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증발해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말했잖아. 거점으로 경기장을 골라도 상관없다고.”
3층의 보스를 잡고 첫 번째로 4층에 도착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긴 했으나.
일단, 준비만 확실하게 해 놓으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이 식물형 타워다.
‘물론, 내가 아니면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할 테지만.’
식물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선, 운이 아닌 경험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실전 경험이.
“다음 태양의 빛을 사용하기까진, 1분 정도 시간이 필요해.”
“그동안 좀비들을 막아 달라는 거군.”
천유성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검을 움켜쥐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빨라서 좋다.
“너무 무리하다가 좀비한테 물리거나 하진 말고. 바이러스에 감염돼 변해 버리면 뒤처리하기 귀찮아진다.”
“어이가 없군. 내가 좀비 따위한테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조금 전에도 무림 애들한테 그 말 하다가 개박살나지 않았어?”
전부 다 쓸어버려 준다더니.
간신히 3분을 버티고 목숨이 간당간당하던 모습…… 아주 잘 봤었다.
진심으로 그 장면 녹화라도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상연회라도 열었어야 했는데,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 그건! 밑에 놈들과 싸우다가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다. 나 혼자서 몇 명을 상대하는 지 보지 않았나!”
“어유 아무렴 그러셨겠죠. 이번에는 부디 체력 안배 자아알해 주길 바랍니다.”
“크윽.”
천유성이 분노에 찬 신음을 삼켰다.
어떤 말을 해도 어차피 구차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토라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 주마.”
끝까지 자존심 세우는 건 잊지 않았다.
“형. 저는 중앙을 맡을게요.”
‘기계 군주’의 능력으로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이태민이라면, 중앙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조절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드론을 띄울 수 있는 스킬은 사기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 부탁할게.”
“으음. 그럼, 난 북쪽으로 가면 되려나?”
“저는 남쪽 입구를 맡도록 하죠.”
유연화와 테레사도 식물들을 서포팅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제 남은 건 동쪽.
‘간만에 스킬 연습 좀 제대로 해 볼 수 있겠군.’
진혁이 유천영으로부터 받은 ‘쌍룡검’을 꺼냈다.
눈이 시릴 정도의 맑은 칼날이 예기를 발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조용히 고동쳤다.
현실에서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성유물급 아이템.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부터 시험해 볼 시간이다.
‘먼저 검의 무덤부터…….’
진혁이 검은 강기를 발현시켰다.
우우우우웅!
다루기 힘든 거친 기운이 너무나 부드럽게 칼 위로 덧씌워졌다.
‘과연…….’
이토록 이질적이고 제멋대로인 능력을 완벽하게 수용할 줄이야.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몸이었던 것처럼 검과 강기가 하나의 형(形)을 이뤘다.
“크아아아악!”
“케에엑!”
좀비들이 인육을 먹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피가 섞인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본데, 아주 실컷 먹게 해 줄게.”
비록 놈들이 원하는 살코기는 아니지만, 강기를 듬뿍 먹다 보면 두 번 다시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예토(穢土)가 되어 버린 경기장 위로.
[흑월야(黑月夜)가 발동됩니다!]검은 초승달이 드리웠다.
***
[첫 번째 웨이브를 막으셨습니다.] [3시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2h:59m:59s]짧은 상태창과 함께. 승리를 알리는 문구가 나타났다.
각기 다른 거점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허억. 허억.”
“젠장, 너무 갑작스럽게 와서 그런가 첫 번째부터 더럽게 빡세네.”
“내 말이. 이렇다간 마지막 웨이브는커녕 중간만 가도 위험할 것 같은데?”
“이 악물고 버텨. 추가 보상 받으려면 어떻게든 비벼야 돼.”
4층에서는 웨이브를 막아야 하는 것뿐 아니라, 몇 가지 업적을 달성할 경우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졌다.
가장 많은 좀비를 죽인, 다시 말해 거점당 주어지는 최다 킬 보상.
얼마나 다양하고 화려하게 방어에 성공했는지 전 세계 구독자들에게 투표를 받은 인기상 보상.
이렇게 두 가지다.
A급 랜덤 박스는 물론, 코인 거래소에서 비싸게 팔리는 희귀 아이템들과 재료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선 반드시 저 둘 중에 하나를 달성해야만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이라이트 영상이 방송됩니다.]또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구독자들의 인기투표를 위해, 각 거점의 활약상을 편집한 3분짜리 영상이었다.
“역시, 중국 쪽이 강하긴 강하군.”
하이라이트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건 중국 길드인 삼합회가 있는 마트였다.
메인인 화염 타워와 신성 계열의 보조 타워로 이루어진 조합.
수백 명의 인원은 물론, 강력한 랭커로 보이는 플레이어들로 인해 첫 번째 웨이브를 꽤나 수월하게 막았다.
시원시원한 연출과 내공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스킬들을 봤을 때, 인기투표에서 꽤나 높은 점수를 받을 게 틀림없었다.
몇 초 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 거점 중 가장 넓고 방어하기 힘든 ‘상암 경기장’이었다.
“저 넓은 곳을 다섯이서 막는다고?”
“어떤 머저리들이 저길 골랐나 했는데, 진짜로 있긴 있구나. 머리가 빈 놈들이.”
“장담한다. 다음 웨이브에서 전멸이야 저긴.”
“푸하하. 저 녀석들이 선택한 방어 타워 봐. 식물이야. 게다가 보조 타워도 없어.”
곧바로 플레이어들의 조소가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디펜스에서 위력이 뛰어난 화염 타워나 공격력과 군중 제어기를 모두 갖춘 빙계 타워를 고르는 게 상식 중에 상식이었으니까.
성장시키기 어려운 데다 발을 묶는 게 고작인 식물 따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이 이어짐에 따라 비웃음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뭐, 뭐야?”
“이럴 수가…….”
감탄은 이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식물이 보약이라도 처먹었나. 뭐 저렇게 강해?”
“믿을 수가 없군. 키우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지?”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마치, 다른 타워들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놀라운 건 다섯 명의 실력이었다.
“다섯……이서 막아내고 있어.”
한 명이서 입구 하나를 방어하고 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이리라.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동쪽 입구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동양인이었다.
“강기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같은…… 플레이어라서 다행이야. 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으으.”
그야말로 좀비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격이 다른 능력과 적절한 힘의 배분.
심지어 그 많은 수를 혼자서 상대하고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인간의 수준이 아니다.
“누굴까?”
“랭커 같긴 한데…….”
“중국이나 일본이겠지. 요즘에 그쪽 대형 길드들의 활약이 대단하던데.”
추측과 예상이 오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외쳤다.
“아! 저 플레이어, 강진혁이야. 한국의 랭커 강진혁!”
“이번에 S급 받은 그 사람?”
“그러고 보니 한국에도 대형 신인이 나왔다고 했었지.”
“S급을 받을 만하네. 저렇게 강하니 그럴 수밖에.”
대형 루키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 다른 나라에 있는 플레이어를 기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4층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엔 하나의 이름이 똑똑히 새겨졌다.
한국에 있는 강진혁이란 플레이어에 대해.
그리고 그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특별함에 대해서도.
***
같은 시각.
진혁은 식물들에 대해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이게 ‘분갈이’와 ‘가지치기’야. 내가 직접 만든 흙이 있으니까 분갈이는 여기다 해 주면 되고 가지치기는 지금 당장은 6, 7번째 가지만 쳐 주면 돼. 14번째는 음…… 1시간 뒤에 해 줘. 그것만 해 주면 그 이후부턴 알아서 잘 클 거야.”
거점을 강화하기 위해선 식물들을 역시 키워야 한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식물의 수를 늘려주는 것과 동시에, 쓸데없이 영양분을 잡아먹는 부분을 쳐냄으로써 성장 속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어때. 간단하지?”
“가, 간단하다고? 이게?”
태연하게 말하는 진혁 때문에, 유연화가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진짜로 무슨 식물학자였어?”
“형, 대체 예전에 [시련의 탑] 했을 때 무슨 짓을 했던 거예요? 이 정도면 거의 탑에 관해 논문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진혁 씨, 진짜 대단하네요. 와아.”
“내가 이기기 힘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군. 상식을 벗어난 폐인을 상대로 경쟁을 하려 한 게 실수였어.”
음?
칭찬 사이에 어째 이상한 게 끼어 있다.
마지막 그 발언.
굉장히 상처 받는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하면 되니까. 다음 웨이브까지 식물들 관리 잘하고 있어 줘.”
“잘 관리하고 있으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너는 어디 가려고?”
천유성이 두 눈을 치켜떴다.
중요한 방어전에 있어 핵심 전력이 자리를 비운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옆 거점에 좀 놀러 갔다 올게.”
아까 하이라이트 영상 보니까 제법 잘 막아내던데.
이대로 가면 최다 킬 보상을 두고 경합을 펼쳐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4층에서 라이벌은 필요 없다.
이건 협력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림 녀석들은 그냥 존재 자체로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나와 내 동료들한테 칼을 들이민 놈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 한다.
감히 다시는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