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67
767화. 암스테르담의 유물 (1)
약속 시간이 되어 돌아갔을 땐 낯선 인물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바티칸 소속 1급 사제. ‘아센시오’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자들은 2~3급 사제들로 이번 일을 돕기 위해 함께 왔습니다.”
금발의 호리호리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경을 쓴 채 검은 양복을 입은 게 꽤나 눈에 띄었다.
남녀로 구성된 열 댓명 남짓한 사제들이 짧게 고개를 까딱였다.
아센시오를 제외하면 고만고만한 마력을 지닌 자들이다.
그나저나 1급 사제라….
대부분의 랭커들이 다 죽었는데 1급이나 되는 인물이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건가.
진혁의 표정이 다소 싸늘해졌다.
“…….”
언제나 따뜻했던 테레사 역시 살짝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아센시오는 사무적으로 자기가 할 말을 이어나갔다.
“요청하신 곳은 저희 바티칸에서도 특급 위험지역으로 선정된 곳. 최근까지도 다수의 실종자가 나왔으니 각별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48층이 공략된 이후. 이곳에 묘한 이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심에 짙은 안개를 토해낸다거나. 해가 한창 떠 있는 정오에도 그림자가 스멀스멀 영역을 넓힌다거나 하는.
바티칸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자들이 태반이었다.
원인불명. 목적 또한 불명이다.
어쩌면 시련의 탑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진혁이 저 안쪽에서 일어나는 희미한 마력파장을 응시했다.
‘최초의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
여기에 앞으로의 공략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게 잠들어 있다.
“얼마나 위험한지 기대되네요.”
진혁이 손마디를 꺾었다.
그리고 폭심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처음은 평범한 거주구역과 관광지였다.
암스테르담에 발생한 아웃브레이크는 이미 오래 전 상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고문구가 쳐져 있는 철문을 통과해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일종의 위화감.
이질적이고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허파에 늘러붙는 것만 같다.
숨을 쉴 때마다 메스꺼움이 올라오는 건 덤이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48층이 공략되면서부터 이곳의 마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
아센시오의 말에서 긴장감이 뚝뚝 배어나왔다.
49층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될 경우에 한해 발생하는 히든 이벤트.
보상이 달달하긴 했지만, 그에 걸맞게 리스크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에 진혁 역시 이 히든 이벤트에 도전했다가 몇 번이고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테레사를 비롯해 여러 동료들이 함께 하고 있긴 하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종잡을 수 없는 변수가 몇 개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평범한 건물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뼈대만 남은 폐허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녹아버린 철골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구덩이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알 수 없는 몬스터들의 파편들까지.
당시 아웃브레이크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쪽 골목입니다.”
아센시오가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어두운 곳을 가리켰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을 따라 조금 전 느꼈던 위화감이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불길한 곳이네요.”
[테레사가 ‘천상의 성호’를 발동합니다!]쿠쿠쿠쿠쿠!
하늘에서 황금빛 십자가가 떨어졌다.
골목을 잠식했던 어둠이 상당 부분 물러갔다.
“앞장서겠습니다.”
어느새 입고 있던 연푸른 빛 원피스는 사라졌다.
대신, 순백의 갑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신성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당당히 선두를 지키는 게 꽤나 든든하다. 이러니 성녀가 괜히 성녀라고 불리는 게 아니겠지.
하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르지오 사제가 사라졌습니다.”
“콘스탄틴 사제도 조금 전부터 보이지 않아요.”
분명 이 안에 들어온 성직자들의 수는 15명 이상.
하지만,
대체 언제 어디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절반이 없어졌다.
죽었거나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테레사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카아아앙!
허공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른 건 그저 본능 덕분이었다.
인지한 게 아니라 휘둘러야만 살 수 있다는 강한 직감이 손을 움직인 것이다.
빙그르 회전한 암기가 그대로 땅에 꽂혔다.
……드디어 온 건가.
테레사를 보호하려다가 멈춘 진혁이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놈은 꽤나 특별하다.
주신이 아니면서도 그들을 상회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고대의 등반자 중 하나.
‘하사신’.
암살에 관해서 만큼은 탑 전체에서 견줄 자가 없는 괴물이다.
그리고 성유물을 손에 넣기 위해선.
반드시 놈을 이곳에서 제거해야만 한다.
***
시련의 탑 50층.
‘혼돈의 저장소’라 불리는 장소엔 다수의 그림자들이 모여 있었다.
쿠쿠쿠쿠쿠!
엄청난 마력이 요동쳤다.
한쪽에 끔찍한 화상을 입은 니알라토텝이 그 원한의 주역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분신체인 ‘슈에뜨’. 그걸 잃었을 뿐만 아니라 슈에뜨가 파괴되었을 때 생긴 여파로 인해 본신에까지 영향이 끼쳤다.
그 결과가 이거다.
억겁의 세월 동안 빼앗고 농락하며 짓밟기만 하던 삶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단 말이다!
당연히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구칠 수밖에.
우두둑!
부러진 나무 파편이 즉시 포로에게 향했다.
보라색 나무줄기에 묶여 있는 익숙한 얼굴들.
바로 거대 세력의 주신들과 엘리스 그리고 천유성이었다.
“당신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깨닫게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분풀이로 몇 놈은 죽여야 이 화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큭.”
“빌어먹을.”
엘리스와 천유성이 온몸을 마구 비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력을 갉아먹는 나무줄기에 묶여 있는 이상 아무리 날고기는 괴물이라 해도 헛수고였다.
하지만, 나무파편이 닿기 바로 직전.
우뚝.
허공에 멈췄다.
“미안하지만, 이들은 내 포로야. 네 분풀이나 하자고 잡아 온 게 아니라고.”
남자가 끼어들었다.
“하아. 지금 이 분위기를 보고도 저 놈들을 지키려고 하는 겁니까?”
니알라토텝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어지간해선 남자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흘린 피의 대가를 받아야 해요. 놈들도 비슷한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툴차 역시 으르렁거렸다.
그로스에 이어 카알루트까지 소멸한 건 너무나 치명적이다. 엘더 갓들과 10,000년간 전쟁을 치렀을 때도 이 정도 피해를 입진 않았다.
슈브니구라스의 분신체와 요그 소토스의 분신체 역시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마력을 뿜어대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자칫하다가는 최악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물론, 여러분들의 상심은 깊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군요.”
“몇 놈 상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거라는 거지?”
“강진혁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자들입니다. 저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 실패만 하던 분은 여기서 빠지시죠. 그게 아니라면….”
스릉.
남자가 검을 뽑았다.
보라색에 맞서 검고 흰 음양(陰陽)의 색(色)이 뿜어져 나왔다.
“힘으로 말해 보시던가요.”
“기어코….”
남자의 도발에, 니알라토텝의 마력이 달라졌다.
이곳은 니알라토텝의 영토.
말 그대로 차원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력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외눈 그림자의 권역’이 발동됩니다!]여러 눈알들이 꿈틀거렸다.
공간이 뒤틀어지고 그 자리에 기괴한 만화경이 펼쳐졌다.
바로 그때.
“그만.”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던 슈브니구라스가 입을 열었다.
검은 염소들이 일제히 명령이 떨어진 방향을 바라봤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날뛰려고 했던 니알라토텝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그거면 된다.”
“설마, 미래를… 보신 겁니까?”
“그래. 꽤나 재미있더구나.”
슈브니구라스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간드러졌다.
주위에 있던 염소와 양들이 ‘메에에’ 거리는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주인이 느끼는 기쁨과 흥분의 감정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와는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아. 심연의 끝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을 찾아낼 수 있겠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그때야말로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하던 미물이 그 끝을 고하리라.”
요그소토스 역시 한 마디 거들었다.
“…….”
니알라토텝의 분노가 조금씩 옅어졌다.
슈브니구라스와 요그소토스.
위대한 태고의 정점들이 그리 결정을 내렸다면, 더 이상 그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무엇보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발동된 이상 이 길을 따라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동족을 잃은 아픔은 조금 더 뒤에 보상받도록 하죠.”
“대충 합의가 된 거면 잠시 우리끼리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
검을 거둔 남자가 싱긋 웃었다.
“하아. 마음대로 하십쇼.”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태고의 존재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방해꾼들이 사라지자, 남자가 천천히 엘리스에게 다가갔다.
서걱.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을 베었다.
또옥또옥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
“뭘…하려는 것이냐?”
엘리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불쾌하고 불길한 냄새.
과연, 이게 생명체 속에 흐르고 있는 피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뭐긴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
남자가 가차없이 손바닥을 엘리스의 입에 갖다 댔다.
“우웁!”
“거부하지 마세요. 그래봐야 소용없으니까.”
꿀꺽.
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넘어갔다.
역하고 화끈한 감각이 몸 전체를 따라 퍼졌다.
그것도 잠시.
쿠웅!
엘리스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날뛰면서 완전히 이성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아아아악!”
엘리스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크윽! 멈춰라! 당장 멈추란 말이다!”
옆에 묶여 있던 천유성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어떻게든 속박을 풀고 남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모든 건 헛된 발버둥에 불과했다.
“하하하. 동료를 구하고 싶은 건가요? 허나, 무리입니다.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약하거든요.”
“닥쳐라! 그리 자신만만하면 이걸 풀고 당당하게 나와 승부해라. 비겁하게 입만 나불대지 말고!”
“흐음. 그럴까요?”
“뭐?”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다고요. 그 승부인지 뭔지를 해서 수준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드리죠.”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천유성을 구속하던 줄기들이 반쯤 풀렸다.
“대신, 먼저 이걸 복용하는 조건입니다.”
남자의 반대 손이 펼쳐졌다.
“그건….”
천유성이 말꼬리를 흐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