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68
768화. 암스테르담의 유물 (2)
진혁만큼은 아니어도.
천유성 역시 시련의 탑을 오랫동안 플레이한 고인물 중 하나였다.
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험과 업적을 달성했고. 탑 안에 숨겨진 많은 비밀들을 찾아냈다.
게다가 탑이 현실이 된 이후엔 더욱더 미친 듯이 탑에 빠져들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렇기에.
남자의 손바닥에 있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날 장기말로 쓸 셈인가.”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성유물 ‘욕망의 이정표’가 계약을 기다립니다.]그리스 로마 신화 속 큐피트의 화살.
그래.
비교하자면 그게 가장 비슷할 것이다.
한 번 꽂히면 이성이 마비되어 버리는 큐피트의 화살처럼, 욕망의 이정표는 대상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이성이라는 명목 하에 꽁꽁 감춰둔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오직 가장 바라던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움직이는 괴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유성이 가장 원하는 것은 탑의 정복이나 부귀영화 따위가 아니었다.
강진혁.
최강의 고인물을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서는 것만이 평생을 염원하던 일이었다.
“당신의 소원을 이뤄드리겠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어차피 당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어요. 거절한다면 포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이건 독이 든 성배다.
거절할 수 없지만, 마셨다간 최악의 악몽이 확정될 터.
“안 된다.”
“저 자를 상대로는….”
“무리야. 함정이다!”
뒤쪽에 묶여 있는 주신들이 애타게 외쳤다.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두가 뼛속까지 체감한 상태. 설령, 구속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승산 자체가 없었다.
그럼에도.
“크윽…. 읏.”
가냘프게 몸을 떠는 엘리스를 보며, 천유성은 그 잔을 받았다.
“닥치고. 내놓기나 해라.”
“하하하! 과연,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남자가 욕망의 이정표를 천유성의 심장에 새겨넣었다.
화살 모양의 뱀과 전갈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투두둑.
나무줄기들이 완전히 풀렸다.
자유롭게 된 천유성이 검을 돌려받았다.
스릉.
검광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흐음. 진정한 강자는 역시나 검을 다루는 법이죠.”
남자도 마찬가지로 검을 뽑았다.
부드럽게 원을 그린 새하얀 칼날이 서서히 그 형을 지워나갔다.
한 번 상대해봤지만, 터무니없이 부드럽고 무거운 검이다.
날고 긴다는 대영웅들이 손도 못 쓰고 무릎을 꿇을 만큼.
“후우.”
천유성이 깊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알고 있다.
컨디션이 온전했던 에덴에서도 넘어서지 못 했던 적을….
……포로로 잡혀서 쇠약해진 지금 상태에서 꺾을 수 없다는 것쯤은.
그러나 모든 걸 쏟아붓는다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혼신일체’가 발동됩니다.]이건 강진혁을 위해 아끼고 아껴두었던 한 수다.
추혼사영과 동굴에서 죽음의 문턱에 도달했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얻은 기연.
그 씨앗이 지금 막 발아했다.
[‘구음검마의 극의’가 주입됩니다.]초대 천마를 죽인 고대의 등반자.
검에 관해서 만큼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절대자의 기억과 능력이 빨려들어갔다.
쿠쿠쿠쿠쿠!
무시무시한 투기가 솟구친다.
지켜야 하는 것과 넘어서야 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도달하고 싶은 곳이 있다.
“네놈 따위에게….”
천유성의 동공이 검게 물들었다.
하얀 빛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멈춰 설 정도로 내가 선택한 길이 가볍지 않단 말이다!”
파츠츠! 파치칙!
검붉은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격.
“호오.”
남자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릿저릿.
피부에 전해지는 날카로운 감각에 온몸이 난도질 당하는 것만 같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서슬 퍼런 살기는 이미 상위 주신들조차 넘어선 경지였다.
[제1 식.]검신을 따라 피어오르는 검은 꽃잎.
[‘흑련’이 발동됩니다!]모든 것이 어둠 속에 집어삼켜졌다.
⁕⁕⁕
푹!
암기가 땅에 꽂힌 직후, 그림자가 꿀렁이며 움직였다.
슉! 슈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암기들이 번개처럼 폭사되었다.
워낙에 어두운 탓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주 미세한 마력의 잔향까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큭!”
[테레사가 ‘잔다르크의 성역’을 발동합니다!]새하얀 깃발이 동서남북 네 방향에 꽂혔다.
그 즉시 순백의 격류가 사방으로 범람했다.
결계의 일종으로 일정 간격 안에 들어오는 모든 해로운 것들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퍼퍽!
“커억?”
“쿨…럭.”
테레사의 뒤에 있던 사제들의 심장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비웃기라도 하듯 암기는 너무도 손쉽게 잔다르크의 성역을 파훼해버렸다.
상처 부위에선 피가 단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테레사가 순간 방패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고작해야 1cm 가량.
인지하기도 쉽지 않은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다.
초승달을 그린 암기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갑주와 갑주가 연결되는 부분을 정확히 노린 한 방이었다.
완벽한 암습이다.
만약.
카아앙!
방해하는 자가 없었다면.
순식간에 테레사 앞으로 끼어든 진혁이 비수를 쳐냈다.
마치, 언제 어떤 식으로 노릴지 읽고 있었다는 듯한 움직임이다.
“지, 진혁 씨?”
“괜찮으세요?”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테레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에덴의 사도로서 가브리엘로부터 직접 가호까지 받았건만.
거기에 구멍이 생길 줄이야.
아직까지도 상대가 무슨 수를 쓴 건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반면, 공격을 한 상대 역시 방금 전 암습이 간파당한 게 적잖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것 봐라? 그걸 막았다고?”
어둠 속에 녹아 있던 그림자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드디어 그 면상을 좀 구경할 수 있겠군. 워낙에 오랜만이라 심장이 찌르르 떨려온다.
동시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란색 눈동자에 면도날처럼 뾰족한 이를 가지고 있는 외형.
검은 넝마 쪼가리를 뒤집어 쓴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녀석이 바로 하사신이다.
정확히는 하사신의 일부 중 하나라고 해야겠지.
“조사한다고 온 놈들은 여태껏 죄다 가지고 놀기 좋은 먹잇감들에 불과했는데, 이상하군. 저 금발의 성기사도 그렇고 특이하게 강한 놈들이 기어들어왔어.”
“그래도 보는 눈이 아예 없지는 않네. 그런데, 나랑 놀려면 그런 암기로는 안 될거야.”
“우습구나. 고작 한 번 막은 걸로 기고만장해 하는 꼴이라니. 하기야, 이 몸이 워낙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니 누군지 모를 수밖에.”
피식 웃은 하사신이 손에 쥔 비수를 지면에 꽂았다.
[암둔술 ‘낮과 밤의 역전’이 발동됩니다!]우우웅!
태양과 달의 문양이 하나로 합쳐졌다.
보름달 위로 붉은 화염이 타올랐고.
태양은 흰색으로 변하며 그 열기를 잃어버렸다.
사제들이 긴장한 얼굴을 한 채 각종 버프와 신성마법을 펼쳤다. 겹겹이 중첩된 고유능력과 스킬들은 어떤 공격이 오든 방어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쿠웅…!
“이, 이건?”
“말도 안 돼.”
“다들 신성력을 풀어라!”
아센시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하사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땐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신성력이 폭주한다.
“크아아악!”
“끄아아악!”
살아남은 사제들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이 터져나왔다.
특히나, 1급 사제인 아센시오는 두 눈에서 얇은 핏줄기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항상 자신들을 보호해주던 신성력이 어느새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덜덜덜!
테레사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철컹.
무릎이 꺾이고 방패는 땅에 떨어졌다.
완전히 무장이 해제되어 버린 모습.
“신성력을 다루는 것들을 처리하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사제와 성기사를 전부 처리한 뒤에 네놈과 천천히 놀아주도록 하마.”
하사신이 30cm가 넘는 혓바닥으로 비수를 핥았다.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중요한 걸 한 가지 간과했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 성녀께서는 신성력만 다룰 줄 아는 게 아니거든.”
[‘타락’이 발동됩니다!] [인격이 교체됩니다!]“순딩이랑 교대야.”
남색빛을 띤 대검이 단숨에 하사신을 노렸다.
콰아앙!
벽 한쪽이 통째로 사라졌다.
“무슨…!?”
하사신이 깜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180도 달라진 테레사의 기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넝마 안에 감춰두었던 비수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카가가강!
테레사가 가차없이 날붙이들을 쳐냈다.
어둠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무형의 공격이었지만, 오히려 그 어둠이 더욱 익숙하다는 듯 검을 놀리는 손에 거침이 없었다.
“성기사가… 아니었단 말이냐?”
“그런 갑갑한 규율에 갇혀서 재미없이 살아가는 삶은 우리 순딩이 한테나 어울리는 거고. 난 베고 싶으면 베고. 취하고 싶으면 취하고. 그런 식으로 사는 게 취향이야.”
[‘흑요검’ – 커럽션 블레이드가 발동됩니다!]무수히 많은 참격이 소나기처럼 몰아쳤다.
비수로는 저 코뿔소 같은 돌진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하사신이 크게 거리를 벌렸다.
툭.
막다른 골목 쪽으로 몰렸다. 그래도 테레사와의 간격을 충분하게 확보했으니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 생각했는데.
“지금이야!”
진혁이 소리쳤다.
“응!”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 새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청하가 특수 스킬 ‘래빗 풋’을 발동합니다!]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쇄도한 청하가 하사신이 막 이동을 마친 타이밍을 노렸다. 테레사의 공격에서 막 빠져나간 터라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콰직!
가속도를 이용한 돌려차기.
“크아악!”
하사신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하지만, 통증보다 더욱 황당했던 건 공격을 한 상대의 정체였다.
십이지신 중 하나인 묘족의 마력.
그것도 그냥 묘족이 아니라 왕에 해당하는 격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층계에 처박혀 있는 놈들이 탑 밖에, 그것도 인간 따위를 따라 다니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었다.
“네놈!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구나.”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런 암기로 장난질하는 걸로는 어림없을 거라고.”
진혁이 두 자루의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흑월야’.
짙은 어둠이 더욱 짙은 초승달에 의해 지워졌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십자를 이룬 두 개의 초승달이 하사신의 몸을 가로질렀다.
“커억?”
헛바람이 새어나오는 것도 잠시.
서걱!
깔끔하게 잘린 신체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
“그 기분 나쁜 놈. 해치운 거야?”
테레사가 다가왔다.
“움직이진 않는 것 같아.”
청하 역시 귀를 쫑긋거리며 넝마쪼가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니. 본체가 아니라서 죽은 건 아니야.”
그래도 인사는 충분히 한 셈이지.
놈이 성유물을 흡수하는 걸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시작이 나쁘진 않다.
진혁이 미로의 중심부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쿠쿠쿠쿠쿠!
검은 아지랑이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사신의 심기를 제대로 건든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앞은 놈의 영역.
암살자를 상대하려면 그에 걸맞는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