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고인물이 디펜스를 하는 법 (2)
간단한 주의사항을 알려 준 진혁이 허공을 힐끗 바라봤다.
이제 슬슬 나타날 타이밍이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띠링!
[첫 번째 웨이브에 대한 ‘솔라 에너지’가 정산됩니다.]역시, 때맞춰 나타났다.
진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총 1500의 ‘솔라 에너지’를 획득하셨습니다.]좀비들을 죽이고 얻은 태양의 힘.
이걸 이용해서 더 다양하고 강력한 방어 식물들을 재배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투사체 식물만으로 끝까지 갈 수는 없지.’
첫 번째 웨이브를 막은 투사체 식물은 강력하긴 하지만, 딜레이가 있어 대규모 난입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웨이브가 거듭될수록 신체가 비약적으로 강화된 좀비나 심지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특수 좀비들도 나타났으니까.
당연히 그에 맞춰 식물들도 또한 다양화할 수밖에.
좀비와 식물 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층을 공략하는 핵심 열쇠였다.
[놀라운 양의 에너지를 획득하셨기 때문에 ‘식물학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식물학자]입수 난이도: 4층에 한해 SS
내용: 모든 식물 방어 타워의 성능이 10%만큼 상승합니다. 통상 식물들은 지능과 감정이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건 틀린 말입니다. 식물들은 식물학자의 마음에 동조하고 감응하며, 그의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첫 번째 웨이브에서 얻을 수 있는 솔라 에너지는 통상 300에 불과하다.
식물의 개화 속도와 키우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식물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상암 경기장이라는 넓은 거점을 선택했고 또 엄청난 수의 좀비를 처리했기 때문에 무려 5배에 이르는 솔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육탄 식물 / 파괴형 / 필요한 솔라 에너지: 300] [얼음꽁꽁 식물 / 빙계형 / 필요한 솔라 에너지: 350] [바위 식물 / 방어형 / 필요한 솔라 에너지: 250] [폭주 식물 / 광폭형 / 필요한 솔라 에너지: 600]2번째 웨이브에 선택할 수 있는 식물의 종류는 총 넷.
물론, 어디에 어떤 식물을 배치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 뒀다.
“동쪽과 남쪽에 육탄 식물을 하나씩 심고 중앙에 얼음꽁꽁 식물을 배치할게. 바위 식물은 서쪽에 하나면 충분해.”
마지막으로 폭주형 식물 씨앗은 따로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좋아. 그럼 다음은…….’
진혁은 코인 거래소에서도 필요한 아이템들을 추가로 구매했다.
‘메마른 고원의 암소 똥 10kg’, ‘마지막 낙엽 5포대’, ‘펜텔라스 쇠똥구리 100마리’, ‘회색 지렁이 100마리’.
모두 비료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료라고 다 같은 비료가 아니다.
무궁무진한 조합 중에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은 오직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식물들의 떡잎이 파르르 떨립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달콤함에 입맛을 다십니다.]식물의 속마음이 들리는 건 식물학자의 특성 때문이겠지.
“그래, 그래. 많이 먹고 쑥쑥 크렴.”
진혁이 비료들을 듬뿍 뿌려 주며 중얼거렸다.
반면, 킬킬대는 진혁을 보는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게 일그러졌다.
“누나. 아무래도 형이 미친 것 같은데요?”
이태민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보고 있어. 탑에 얼마나 오래 박혀 있었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저, 저도 무서워요. 진혁 씨 마치 식물이랑 대화가 통하는 것 같지 않아요? 설마, 제 착각이겠죠? 제발 착각이라고 말해 줘요.”
유연화와 테레사도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이라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니까.”
심지어 천유성조차 두려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모두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후후. 아나스타샤. 그래.그래 너도 꼭꼭 씹어서 먹으렴. 크리스티나.”
진혁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식물들을 쓰다듬었다.
***
약 5분 뒤, 네 사람에게 거점을 맡긴 진혁은 곧바로 경기장 밖을 빠져나왔다.
“식량부터 챙겨. 골목마다 있는 편의점 싹 다 털어야 돼. 알았지? 식량이랑 물이 최우선이야.”
“우린 약품이랑 필수재를 맡는다. 갈수록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질 테니 초반에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둬야 해.”
“가능하면 다른 길드들과의 싸움을 피해야 하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전부 재껴 버려라.”
거리는 꽤나 많은 플레이어들로 붐볐다.
다음 웨이브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거리에서 파밍을 하며 다음 웨이브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쯧쯧. 그런 거 대비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진혁은 그 사이를 느긋하게 가로지르다 혀를 찼다.
애초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왔는데, 장기전을 대비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후반까지 가기 전에 거점이 함락당할 확률이 훨씬 높을 텐데?
차라리 갖고 있는 코인들을 모조리 쏟아 부어서 각자의 방어 타워를 강화하는 게 그나마 1웨이브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긴, 그런 걸 알고 있는 놈들이라면 애초에 3층에서 그리 쩔쩔매지도 않았겠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 입장에선 탑에 관한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다.
거의 처음 부딪쳐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수밖에.
‘내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자꾸 까먹는단 말이야.’
진혁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덧 마트 바로 옆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무림과 삼합회가 지키는 마트와 달리, 이곳은 그 누구도 거점으로 삼지 않았다.
딱히 방어의 이점도 없고 그렇다고 물자가 풍부한 곳도 아니었기에 인적이 끊겨 있는 건물.
진혁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점 ‘괴짜의 고미술품 보관 장소’에 입장하셨습니다.]철로 만든 중세시대 갑옷과 도자기 따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진열장은 대부분은 박살난 상태였고. 바닥은 오랫동안 사람이 출입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인 상태다.
멸망한 현대와 잃어버린 역사가 겹쳐진 장소.
‘진짜 오랜만이네.’
거의 8년 전인가?
몇 만에 이르는 좀비들로부터 얼마나 오래 도망 다닐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느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찾아낸 장소다.
진혁이 벽에 걸려 있는 수십 개의 그림을 바라봤다.
미술관 한켠을 장식한 색이 바랜 풍경들.
무기마저 잃어버린 채 막다른 길에 몰려 죽기 바로 직전 액자를 뜯어 좀비 뚝배기라도 깨자는 생각으로 손을 뻗었었다.
진혁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액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우우우우웅!
손이 그림을 통과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던 벽은 어느새 옆에 있는 마트로 이어지는 통로로 변했다.
‘이럴 줄 알았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일종의 버그.
게임상에서도 고쳐지지 않은 버그가 현실에서도 재현되었다.
진혁이 재빨리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보초를 서는 놈은 없군.’
예상대로다.
좀비들이나 침입자들은 모두 입구로 올 테니 당연히 모든 전력을 입구에 집중할 수밖에.
설마, 이 뒤쪽으로 숨겨진 통로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진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식량과 물자들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최소한 몇 백 명이서 2, 3주는 족히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이래서 마트가 좋긴 좋다.
“덕분에 우리 귀염둥이가 아주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겠어.”
거점에 심지 않고 가져온 마지막 식물.
[폭주 식물]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미 이곳엔 넘치고 남을 만큼 식량이 쌓여 있지 않은가?
어차피 내 것도 아닌 이상 조금도 아까워 할 이유는 없었다.
[폭주 식물이 입맛을 다십니다.]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식량 창고 깊숙한 곳에서.
우걱! 우걱! 우걱!
붉은빛을 띤 식물이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
“우아아악! 빌어먹을 새끼. 내가 반드시 씹어 삼킬 거야. 그 자식 절대 살려 둘 수 없다고!”
제갈천이 분노 섞인 욕설을 내뱉었다.
아직까지 시퍼렇게 물든 얼굴은 꽤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콰아아앙!
생수통이 잘게 찢어지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저도 천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탑의 위로 가기 위해서라도 관리하기 힘든 녀석까지 품을 필요는 없잖아요?”
당소하 또한 제갈천의 말에 맞장구쳤다.
“…….”
황보군악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다 옆에 있던 남궁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현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나…… 나는.”
남궁현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황보군악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뭐냐? 설마 너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내, 내가 겁을 먹었다고?”
“그래. 완전히 꼬리를 만 게, 겁을 집어먹은 승냥이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황보군악이 일부러 도발과 자극이 섞인 말을 했다.
차라리 욱하기라도 하면,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
허나 남궁현은 그 말에도 별 다른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강진혁이란 인물 때문에.
‘그 정도였단 말인가.’
관망하는 제3자가 아닌 맞서 싸운 당사만이 느낄 수 있는 벽.
어쩌면, 자신들은 감당할 수 없는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건지도 몰랐다.
“다들…….”
황보군악이 입을 뗐을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트 전체가 흔들렸다.
“우와아아악!”
“끄아아악!”
“사람…… 사람 살려!”
동시에 여기저기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냐!”
황보군악이 검을 뽑은 채 문을 박찼다.
분명, 두 번째 웨이브까진 시간이 남아 있을 터.
따라서 지금의 충격은 좀비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하이라이트 영상까지 공개된 마당에 감히 이곳에 쳐들어올 정신 나간 놈 또한 없었다.
현재 4층에서 가장 탄탄한 거점이 어디인지 모두가 똑똑히 봤을 테니까.
아니.
딱 한 명이 있었다.
그런 짓을 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이.
“설마…….”
당소하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차…… 창고에 대형 식물이, 엄청나게 큰 식물이 나타났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모조리 잡아먹히고 있어요! 으으으…… 저, 저희로는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틀림없다.
그놈이다.
“빌어먹을! 내 거점이!”
황보군악이 절망적인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두 번째 웨이브가 밀려오기 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지금 거점을 잃는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해야 했다.
어떻게든 이곳을 잃는 것은 막아야만 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쿠쿠쿠쿠쿠!
천장이 무너지고 기둥이 박살났다.
마트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으음. 집들이 선물을 좀 가지고 왔는데, 우리 앵두가 먹성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정말로 미안하게 됐어.”
진혁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은 채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