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73
773화. 고대의 등반자들 (3)
하사신의 고유성창 ‘검은 밤의 초대’.
그 시작은 자신들의 분신들을 하나로 모은 것부터다.
우우웅!
각지에서 싸우다 죽은 분신들이 빨려들어왔다.
동시에.
[‘최초의 암살자’의 권능이 발현됩니다!]“후우우….”
하사신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었다.
훨씬 더 날렵하고 차갑게.
번뜩이는 안광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각종 디버프 효과가 걸렸다.
‘불신자의 눈’.
‘탐식의 눈’과 마찬가지로 탑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눈이다. 서로 다른 양쪽 눈에는 각기 다른 능력이 깃들어 있는데, 하나같이 파훼하거나 대응하기가 까다로웠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저 사기적인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복사조건: 검은 밤의 군주라 불리는 하사신. 그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선 가장 완벽한 ‘암살’을 선보여야 합니다. 암살의 본질. 그 근본을 꿰뚫는 일격을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하사신이 보유한 고유성창과 고유능력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탐식의 눈’이 이미 하사신의 상태창을 간파한 상태였다.
‘완벽한 암살이라.’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요구사항이다.
하기야 이런 적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도 예전의 괴랄하고 엽기적인 복사조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단순히 그냥 싸우는 거라면 등반자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겠으나….
‘쉽진 않겠네.’
서리혼령의 능력을 복사하려면 빙계 위주로 능력을 사용해야하니. 한쪽 팔을 묶고 싸워야 하는 셈.
여러 가지로 험난한 싸움이 예고된다.
게다가.
이 일대에 펼쳐져 있는 마력에는 하사신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확인을 좀 더 해보긴 해야겠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그것까지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진혁이 양쪽 눈에 마력을 다르게 공급하면서 몰려오는 어지러움에 저항했다.
“호오. 보통이라면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야 하거늘. 정말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로구나 네놈.”
하사신의 입에서 묘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서리혼령보다도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정신방벽’과 ‘서리혼령의 반지’의 효과가 있다고 한들, 저 눈의 특이성에 영원히 대응할 순 없다.
“오드아이 눈깔이랑 처음 싸워본 게 아니라서. 거대한 눈깔이랑 외눈깔이랑 기타 등등 별 희한한 놈들하고도 놀아봤지.”
“입은 여전히 살아있는 걸 보니, 꽤나 즐거운 싸움이 될 것 같군.”
“글쎄. 목에 바람구멍이 생기면 별로 즐겁진 않을걸?”
젠장.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워낙 오랜만에 저 눈을 상대해보는 거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럴 시간 자체가 없다는 게 쓰디쓴 현실이라는 거지.
콰아아앙!
측면에서 느껴지는 태산 같은 충격.
곡도가 목덜미에 바로 닿기 직전 퍼스트 블레이드에 막혔다.
카가각!
칼날의 측면을 긁으며 내려온 곡도가 옆구리를 노렸다.
진혁이 모른 척 허용하면서 카운터를 준비했다.
바로 그때.
[‘간격의 저주’가 활성화됩니다!] [‘시간의 저주’가 활성화됩니다!]피이잉―!
거슬리는 이명이 고막을 찔렀다.
다시 한 번 곡도가 움직였다.
이미 몇 번 상대해봤기에 알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서걱!
옆구리에서 굵은 핏줄기가 뿜어졌다.
“크읍.”
시큰한 통증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마지막에 본능적으로 몸을 빼서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허리가 두 동강이 날 뻔 했다.
“얕았군.”
하사신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곡도에 묻은 피를 핥았다.
[‘식별의 권능’이 스며듭니다.]벤 상대의 피를 마심으로써 전투방식을 파악하는 힘. 거기에 일전에 두 개의 능력은 각각 간격과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다.
“……!?”
피를 음미하던 하사신의 눈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의 감정이 여과없이 전신에서 뿜어져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 뭐냐, 대체 정체가?”
꽤나 강한 인간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엄청난 전투 센스와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괴물. 어지간한 고대의 등반자들은 이 자 앞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다.
위험하다.
하사신이 그리 결론을 지었다.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이런 괴물 같은 스팩은 50층의 괴물들 이후 처음이다.”
그렇게 사냥감에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적으로 지위가 격상했다.
‘이래서 베이기 전에 끝을 냈어야 했는데.’
간격과 시간이란 두 개의 디버프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역시나 만만치 않다.
탑을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간다니까. 진심으로.
더 이상 인간 나부랭이 취급받지 않는 건 좋은데, 대신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바로 그때.
[서리혼령이 ‘천년 결빙’을 발동합니다!]쩌저저적!
얼음 기둥들이 솟구쳤다.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쏟아지며 하사신의 주위가 온통 극저온의 감옥으로 변했다.
탓!
하사신이 크게 거리를 벌렸다.
“쯧. 쓸데없는 반항을…!”
다 쓰러져가는 서리혼령의 공격이야 한 번 피하면 그걸로 끝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쿠쿠쿠쿠쿠!
몰아치는 얼음 폭풍이 계속해서 그 뒤를 쫓았다.
무시무시한 정신력으로 옥죄어 오는 정신지배를 떨쳐내며 얼음의 권역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괜…찮으세요?”
“전 괜찮습니다만, 서리혼령 님이 훨씬 더 힘들어 보이시네요.”
“예. 아까…부터 정신이 좀… 몽롱해요.”
서리혼령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고대의 맹세로 인한 여파 때문.
시간이 갈수록 그녀 역시 점점 더 하사신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어 있었다.
⁕⁕⁕
시련의 탑 49층.
50층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별칭이 붙은 장소답게, 이곳은 탑의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일종의 중립지역이었다.
50층과 가장 가깝게 붙어있기에.
그리고.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정상급 두 괴물의 힘이 너무도 강대했기에.
굳이 침략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태고의 존재들 역시 훌륭한 방파제가 되어주고 있는 십이지신을 겁박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많은 변수들로 인해 균형이 무너지면서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십이지신 중 최강으로 평가받는 제천대성의 본거지인 ‘화과산’에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
좌우로 도열해 있는 원숭이들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무겁고 무겁다.
침을 삼키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심해와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왕인 제천대성의 불편한 심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바로 제천대성을 찾아온 자의 기괴함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화려하기 짝이 없는 황금 왕관.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그걸 쓰고 있는 이는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앙상한 해골이다.
“끌끌끌. 가벼운 제안이었다만, 그게 그리 고민할 일인가? 화과산의 왕이여?”
해골의 텅 빈 눈동자가 제천대성을 바라봤다.
그 주위로는 불길한 검은 가루들이 계속해서 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갑자기 내 영토에 찾아온 걸로도 모자라 무례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한 번 죽은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건가?”
제천대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쿠쿠쿠쿠쿠!
가뜩이나 험악하던 공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살기.
49층의 지배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노여움은 아직 이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감히 받아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커억.”
“끄으읍.”
“케엑. 케에엑….”
3,000년 이상을 수련한 친위대들 마저 입에 게거품을 물거나, 그대로 혼절했다. 장로에 해당하는 원로들만이 간신히 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굉장하군. 대미를 장식할 절대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격이로다.”
해골은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도 하염없이 태연했다.
마치, 마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보통이라면 이쯤에서 제천대성의 여의봉이 강림했을 것이다. 건방진 놈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리기 위해서.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던 게.
놈의 머리에는 절대자들이라면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 씌워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 위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베일에 쌓인 왕관.
‘절망의 왕관’.
수많은 세력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작은 단서마저 찾지 못한 왕관을 쓰고 왔으니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부하들이 없는 곳이라면 또 몰라도.
상대의 정체와 힘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날뛸 수 없었다.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 탓에 수많은 동포들이 죽어나가던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이미 세 명의 왕들이 나와 함께 하기로 하였다. 그대가 좋으나 싫으나 태고의 존재들 역시 이번 전쟁에 필연적으로 끼어들 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테니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우리의 영토에서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하려는 거지?”
“크하하하! 원한 같은 게 아니다. 원래 이 싸움은 이곳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을 뿐.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걸 어찌 사사로운 감정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해골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강진혁이란 인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허나, 그자는 지금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고대의 등반자들과 싸우느라 여력이 없다. 지금 당장 그대의 도움이 되어줄 순 없다는 소리다.”
에덴과 천세 그리고 루시퍼의 몰락.
그것은 평화와 단결을 상징하는 서막이 아니다.
더욱더 큰 혼란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셈이지.
[‘아공간이 개방됩니다.]쩌어억!
두 개의 해골이 튀어나와 허공을 위아래로 길게 찢었다.
[‘엔티티의 모래시계’가 발동됩니다!]사르륵.
수많은 종족의 해골로 만들어진 거대한 모래 시계에서 검은색 알갱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한은 3일이다. 그때까지 결정을 내려라. 아니라면, 이 화과산은 격전의 최심부가 될 것이다.”
최후통첩.
기한이 정해진 마지막 제안이 건네졌다.
제천대성이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난 몇 달간 십이지신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무엇보다 우마왕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잃어버린 근두운을 찾으려함은 물론, 태고의 존재들과 그 외에 세력들과도 접촉했었지. 허나,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지.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해골이 몸을 돌렸다.
3일 뒤에 다시 찾아올 거란 말을 남긴 채.
“잠깐.”
제천대성이 그런 그를 불러세웠다.
“그러고보니 나는 네놈의 이름을 모른다. 거래를 한다면 그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우뚝.
거침없던 걸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페르무트.
“한때는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페르무트가 잠시 과거를 곱씹었다.
표정 따위는 존재할 리 없는 해골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온갖 감정이 흘러나왔다.
허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