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74
774화. 고대의 등반자들 (4)
콰아아앙!
콰콰콰콰!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격.
잔영에 잔영을 남기며 이동하는 하사신은 이미 암살자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빠르다.
뿐만아니라 공격 하나하나에 터무니없는 마력이 실려 있었다.
콰앙!
측면에서 날아온 반월검과 곡도를 쳐내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아래에서 검은색 천으로 만들어진 가시들이 튀어나왔다.
퍼퍼퍽!
빙하조형으로 만든 가짜가 박살났다.
뒤를 잡은 진혁이 ‘빙하조형’으로 만든 화살들을 발사했다.
목과 심장 그리고 척수와 다리를 각각 노린 일격이었다.
[‘흑둔술’ – ‘아랑흑아’가 발동됩니다!]늑대의 아가리가 튀어나왔다.
콰지직!
얼음 화살들이 늑대의 이빨에 산산히 박살났다.
동시에. 허공에서 수많은 송곳니와 어금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진혁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우적!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이 그대로 도려졌다.
환수 ‘무르 펜리르’의 권능이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펜리르의 원조격으로. 태고의 존재들이 거주하는 50층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분명, 게임 상에서 하사신은 저 능력까지 개화하지 못 했다.
고대의 맹세를 발동시켜 탑 밖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까지 놈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저걸 손에 넣었지?’
아랑흑아는 오직 50층에 가서만 획득할 수 있는 기연 중에 기연인데. 아무리 하사신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그 미지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또 그놈인가.’
변수로 상정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 뿐이었다.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짜증이 난다거나.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짜릿함과 기대감.
언제나 일방적으로 승리를 구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예전 처음 탑을 올랐을 때 느꼈던 긴장과 고민을 할 수 있음에 고마웠다.
무엇보다.
하사신이 강해진 건 나쁘지 않다.
복사조건만 달성할 수 있다면….
‘저 능력 또한 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진혁이 힐끗 게이트를 바라봤다.
게이트의 형상이 거의 다 갖춰졌다.
이제 곧 고대의 등반자들이 넘어오겠지.
시간으로 치면 많아야 10분 정도 남았을 것이다.
“…….”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완벽하고 깔끔한 승리를 할 수 있을지 계산하면서.
그렇게 10초 가량의 공백이 흐른 후에.
이번엔 진혁이 먼저 움직였다.
[고유능력 ‘빙결 혈폭’이 발동됩니다!]곡도에 베인 상처에서 흐른 핏방울. 중간중간에 떨어져 있던 피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빙하조형’과 적절하게 섞어둔 덕에 하얀 핏방울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퍼퍼퍼퍼펑!
흰색 피가 시야를 가렸다.
“이제 와서 잡수를….”
하사신이 속도를 올렸다.
혈폭이 광역기인 데다 공간형 스킬이긴 했으나, 암살자를 잡아낼 정도로 빠르진 않았다.
밤하늘을 수 놓듯 새하얀 폭죽이 연이어 허공을 물들였다.
물론.
하사신에게 유효타를 가한 공격은 없었다.
“상관없어.”
화려한 건 오롯이 시각을 속이기 위함이었을 뿐.
진정한 수는 뒤에 있었다.
[일시적으로 ‘고대의 맹세’의 지배력이 약화됩니다.]서리의 의지를 잇는 동질감.
‘만상공유’의 효과는 엘리스나 다른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떨어졌지만.
주도권을 잃어가는 서리혼령에게 생명같은 한숨을 벌어줄 정도는 된다.
거기에 ‘황도십이궁’의 물병자리가 이를 뒷받침한 덕에, 강력한 한 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
아랑흑아의 숙련도를 보아하니. 최근에. 그것도 아주 불안정하게 습득한 것 같은데.
그런 어중간한 걸로는 어림도 없을 거다.
그 말을 증명하듯.
“그 더러운 성유물을 사용하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서리혼령이 고유능력 ‘얼어붙은 궁전’을 발동합니다!]쩌저저적.
아랑흑아로 만들어진 송곳니와 어금니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차갑게 식은 공기가 서막을 알렸다.
“컥?”
하사신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혈폭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공간 전체를 집어삼키는 얼음의 권역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되었다.
꾸구국.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서리냉기’로 인해 이동속도가 30%만큼 감소합니다!] [‘서리냉기’로 인해 공격속도가 25%만큼 감소합니다!]자랑하던 저주가 통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대인전일 때의 이야기. 이처럼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광역기에는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네…년. 그냥…순리대로 복종하면… 될 것을. 기어이 마지막까지 나를 방해하겠다는 건가?”
“타의로 구속하려 하면서 말이 많군요. 성유물을 얻기 전까지는 감히 우리들에게 정면 승부도 하지 못했던 분이 말이에요.”
그늘 뒤에 숨어 있던 암살자.
은밀하게 가하는 암습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대놓고 싸우는 1:1 승부에서는 결코 서리혼령의 적수가 될 순 없었다.
서리혼령은 고대의 등반자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강자였으니까.
파츠츠츠!
기온이 한 단계 더 급감했다.
궁전에서 몰아치는 눈보라는 한층 더 거세졌다.
그 하얀 폭풍 속.
[‘성명절기’가 개방됩니다!]휘날리는 푸른 머리카락 위로 주위에 있는 서리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왕국에서 펼치는 서리혼령의 극의.
[에아 드 마라드카라서 – ‘황혼의 가지’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그 외형은 마치,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10m에 이르는 얇고 긴 창끝이 하사신을 향했다.
파아아앙!
얼음을 남겨둔 채 사라진 창.
부드러운 U자형의 궤적을 그린 창이 하사신의 옆구리에 닿았다.
속도가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전신이 다 얼어붙어가는 덕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빠르게 체감되었다.
[특수 스킬 ‘사신의 방패’가 발동됩니다!]하사신이 반월도와 곡도를 교차해 방어했다.
팔 하나를 내어주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이 이어졌다.
궁전의 바깥까지 튕겨나간 몸은 완전히 새우마냥 꺾여 있었다.
“휘유.”
진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까 전 비실비실한 상태에서 사용했던 ‘천년결빙’하고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일시적이나마 전력에 가까운 상태로 날린 성명절기를 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암살자.
방어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친구다.
당연히 평범한 클래스보다 피해가 크면 곱절로 클 수밖에.
역시나.
“쿨럭. 크으으….”
하사신의 입에서 굵은 피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된 공격을 허용한 탓에, 회복이 쉽지 않았다.
‘이러면 나가린데.’
진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서리혼령의 힘을 본 것까진 좋았는데, 저 상태를 보아하니 능력 복사는 물 건너갔다.
다음 일격으로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릴 테니까.
저벅.
서리혼령이 걸음을 옮겼다.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발걸음이다.
그리고 하사신의 앞에선 서리혼령이 아까보다 훨씬 더 굵고 짧은 얼음 창을 소환했다.
“마지막은 명예롭게 가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창을 심장에 꽂아 넣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법이었다.
그런데.
“킥! 크크…크하하하!”
죽음을 앞에 둔 하사신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공포와 절망에 실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저열한 감정이 실려 있는 웃음이었다.
“……!?”
진혁이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
“분신…들을 다 불러온 게 아니었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성유물에 여성의 형상을 한 또 다른 하사신이 서 있었다.
모두가 전투에 집중하고 있을 때 힘을 나눠 성유물의 발동에 매진하고 있던 것이다.
“네 말대로 암살자는 특정 조건을 잃어버리면 이점이 완전히 사라지지.”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들과 싸우려면 여간 머리가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 같은 놈들을 상대하려면… 내 자신의 목숨 정도는 미끼로 걸어야 하지 않겠나?”
철저하게 수를 읽고 앞서 나가야만 살아남는다.
상대의 허를 찌르며 완벽하게 함정을 설계해 왔기에. 지금의 하사신이라는 암살자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대의 맹세’가 활성화됩니다!] [게이트가 개방됩니다!]결국, 거대한 문이 열렸다.
서리혼령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고대의 맹세의 영향력으로 인해 하사신에게 상당한 호감과 친밀도가 형성된 이들이 넘어오는 것이었으니까.
***
타다다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이 길고 긴 달리기를 멈췄다.
“하아하아. 다 온 건가요?”
“아뇨. 마력의 흐름이 여기서 끊겨서 잠시 쉬면서 흔적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유연화의 질문에, 페시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이들은 현재 진혁으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받고 49층에 잠입한 상태.
십이지신의 영역에서 들키지 않고 돌아다니기 위해선 신중에 신중을 더할 필요가 있었다.
[이태민이 기계군주 ‘정찰 드론’을 내보냅니다!] [‘비가시화 모드(invisible mode)’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반경 3km 내에 거주자 반응은 없어요.”
‘전장의 눈’이라 불리는 옵저버.
거기에 착실하게 거점에 기계군단을 배치해 두었으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퇴로까지 확보해놨다.
소규모 공격대에서 이보다 더 든든한 개인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는 거의 납치되다시피 끌려오긴 했는데, 상황 설명이라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페시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자는 사이에 유연화에게 납치당했다.
억지로 끌어왔다 이런 수준을 넘어. 보따리에 넣어서 그대로 49층으로 직행했다는 뜻이다.
“하하하. 미안미안. 나도 마음 같아선 느즈막한 오후쯤에 케이크라도 사서 찾아가고 싶었는데,오빠가 이 타이밍에 십이지신의 왕들을 포섭하려는 놈이 나올 거라 해서 말이야. 놈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전에 우리도 대비책을 마련해놔야 한다고 했거든.”
제천대성이나 청하를 비롯해 비교적 이쪽에 호의적인 왕들이 있다.
허나, 페르무트를 비롯해 최상층에서 등장하는 성가신 놈들이 개입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흐름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진혁은 그걸 내다보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보냈다.
“조심해야 합니다. 왕들 중에서는 타층계의 존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들이 많으니.”
귀환자 메드레이.
그리고.
“하아. 뭐든 마주치면 다 베어버리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 잘난 색깔놀이 능력은 뒀다가 엿이라도 바꿔 먹으려고?”
마찬가지로 귀환자인 아델이 이번 원정에 합류했다.
천유성과의 생사결을 약속했건만, 천유성이 적들에게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일주일간 앓아 누워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교묘한 가스라이팅과 희망 고문으로 인해 울며 겨저먹기로 또 다시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라면 최선을 다해봐야죠.”
“응. 이곳은 외진 곳이라 왕들과 마주칠 확률은 3.85%야.”
“주군의 뜻이라면.”
안드리아와 프레이 그리고 월영까지.
주신들은 대부분 사로잡혔지만, 아직까지 진혁에게 귀속되어 있는 강자들은 건재했다.
숫자는 적으나.
하나하나가 탑의 보스급에 해당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란 뜻이다.
페시스가 신중하게 지형과 지물을 살폈다.
나머지 멤버들은 각자 경계를 서고 목을 축이며 다시 한 번 움직이기 위한 힘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달콤한 휴식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 그대들은 누구냐!?”
갑자기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무슨?”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기감을 끌어올리던 월영도.
드론들을 부리던 이태민도.
심지어 감각의 극을 달리는 아델까지도.
그 누구도 지금 접근하는 존재의 기척을 간파하지 못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