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75
775화. 고인물의 인맥 관리법 (1)
스릉!
척!
즉각 무기가 뽑혔다.
이 정도로 가볍게 자신들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긴장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사박.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가 너무나 순수하고 가녀렸기 때문이다.
“우와.”
“애잖아? 그것도 완전 어린애.”
“꼬마야. 길이라도 잃었니?”
“쳇. 마력 자체가 없는 놈이었단 건가.”
허무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런데.
“무, 무엄하다! 꼬마라니! 이 몸은 불법을 설파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자! 바로 삼장법사니라!”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하얀 피부의 소녀가 고함을 질렀다.
나름 들고 있는 법구를 휘두르며 근엄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뭔가 내가 알고 있던 거하고 많이 다른데요?”
“나도 조금 헷갈리려고 하네.”
이태민과 유연화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너무나 흔하게 알려진 서유기.
당연히 삼장법사를 만나게 된다면 나이 지긋하고 근엄한 노인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건만. 그 상식이 완전히 박살나버리는 순간이다.
“미안해. 꼬마… 아니, 삼장법사님. 왜, 이런 외진 곳까지 온 건지 물어봐도 될까? 우리가 알기론 화과산은 이곳과 100km도 더 떨어져 있는 걸로 아는데.”
유연화가 쪼그리고 앉았다.
눈높이를 맞춘 채 차분하고 다정하게 묻는다.
무시하던 분위기가 사라지자, 볼을 잔뜩 부풀리고 있던 삼장법사도 다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가 아프다. 나는 그 치료제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느니라.”
제자라면….
설마, 제천대성이?
“이상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걸로 알았는데. 진혁 오빠 말로는 니알라토텝과 싸웠을 때도 크게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들었어.”
“아프게 될 것이다.”
삼장법사의 눈동자에 이상한 문자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상형문자. 고대 룬어나 태고의 언어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이건….
미래시다.
타케시의 반쪽짜리와는 달리, 완벽하게 미래의 일부를 엿보고 있었다.
“찾고 있는 게… 근두운…맞지?”
단순히 이동수단을 넘어 영혼의 교감을 함께 하는 성유물.
제천대성이 완전해지기 위해선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동반자다.
“그렇다. 잠깐. 아니다. 내가 찾고 있는 건… 그, 그렇지! 바나나니라. 우리 제자가 그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라고 하기엔 얼굴에 티가 너무 나는데?”
“지, 진짜니라! 여기, 날씨가 따뜻해서 아주 맛 좋은 바나나가 자란다. 노랗고. 아무튼!”
삼장법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런 걸로 해줄게.”
유연화가 그런 삼장법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수 접어줬다.
다른 멤버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근두운의 단서.
반신반의하면서 찾고 있던 실마리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니까.
***
우우웅!
공간과 공간 사이에 연청색 균열이 일어났다.
[‘차원 게이트’가 개방됩니다.]저벅. 저벅.
다수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가볍고도 무겁게.
걸음걸이만으로도 얼마나 쟁쟁하고 강한 이들이 몰려오는지가 느껴졌다.
“이럴 수가….”
서리혼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적에 대한 마지막 긍지를 지켜주려고 손속에 사정을 둔 탓에 최악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모든 힘을 쥐어짜내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싶었지만.
―쿠웅!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구속이 전신을 옭아맸다.
하사신에 대한 적대심이 옅어지고.
대신, 놈이 제안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달콤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무리하지 마라. 서리혼령. 더 나아가면 나는 쾌락대신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하사신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리 가루들이 부서지며, 하사신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절망으로 얼룩진 서리혼령을 지나쳐 진혁에게 다가갔다.
“호오. 이런 와중에도 아직 눈빛이 살아 있구나.”
“그럼,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리고 있어야 할까?”
“뭐,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나름 재밌는 싸움이었다. 너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느냐? 승부라는 게 서로의 틈을 찌르는 게 핵심인 것을.”
“아니, 마력의 공백이 있는 건 알고 있었어.”
미세하게 컨트롤 잘하긴 했더라.
서리혼령은 물론, 그 누구라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런 규칙에서 벗어나 있는 고인물이라서 말이지.
하사신이 어떤 스타일로 싸우는지 미리 학습해두고 있던 것도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부러 내가 고대의 등반자들을 불러오는 걸 방관했다는 말이냐? 궁지에 몰리니 헛소리도 아주 장황하게 하는군.”
하사신이 코웃음을 쳤다.
누가 봐도 허세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타이밍이었으니까.
“어디, 인간 놈의 버릇을 좀 고쳐주도록 할까?”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게이트 밖으로 나온 이들이 하나둘 어둠 너머에서 모습을 보였다.
“가지가지하는군. 저 빌어먹을 성유물은 누구도 찾지 못하게 숨겨뒀다고 들었는데.”
“하아. 하필이면 저 음침한 친구가 찾아낸 거였어? 이거 거부권 없는 거잖아?”
“쳇, 전부 다 여기에 온 거냐? 다섯 이상이 모이는 건 100년도 더 전으로 기억하는데.”
“검마는 빠졌다. 나머지 둘도 성유물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군.”
“하하하.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네요.”
“…….”
총 여섯.
성별과 연령이 전부 제각각이다.
갖추고 있는 무장 역시 최상급 성유물들이라는 것만 동일할 뿐. 클래스가 겹치는 건 한 명도 없었다.
“불평은 나중에 듣겠다. 강제하기 전에 우선은 내 명령을 들어줘야겠어.”
“저 인간을 죽이라는 건가?”
전신을 철갑으로 두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죽이진 말고. 반만 병신으로 만들어서 데려와라. 만만치 않은 놈이니까 최소한 둘은 붙어야 할 거다.”
“서리혼령은?”
“그녀는 내버려둬라. 어차피 오래 저항하지 못할 테니까.”
“알겠다. 우선은 여기부터 정리하고 나서 대화를 이어 하도록 하지.”
철컹!
아공간이 갈라지며, 몇 톤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 공성용 해머가 나타났다.
성유물 ‘공명의 망치.’
그레이트 올드 갓들과의 전쟁에서 획득한 50층의 아이템이다.
당연히, 49층 아래에서 최강이라 평가받는 토르의 묠니르보다 몇 단계는 위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등반자들도 각자의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아직도 부릴 여유가 남아 있는 건가?”
하사신이 진혁을 바라봤다.
“아, 미안미안. 나한테 한 말이었어?”
진혁이 딴청을 부리다가 자기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뭘 할 필요는 없어.”
이미 상황은 원하는대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파퍽!
“크아악!”
하사신의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선명하게 생긴 원형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완전히 허를 찌른 기습.
방어하거나 대비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 했다.
진혁이 있는 쪽이 아닌, 등반자들이 있는 뒤쪽에서 가해진 공격이었으니까.
“어, 어떻게?”
하사신이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곳엔 총구에서 연기를 뿜고 있는 총잡이가 서 있었다.
‘사멸자’다.
또 다시 진혁과 인연이 있는 등반자가 나타났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고대의 맹세’로 인해 적대감을 갖는 게 불가능할 터였으니.
“내가 수를 좀 부렸어. 복잡하긴 한데, 10성급 결계 3개 정도 섞으면 성유물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거든. 나랑 한 두명 정도가 한계지만 말이야.”
하사신의 의문에 또 다른 남자가 대신 답했다.
결계술의 시작이자 끝이라 불리는 또 다른 등반자.
오만한 집합소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벨토르’였다.
“그래서 말했잖아. 너한테만 유리한 판이 아니라고.”
진혁이 싱긋 웃었다.
오히려 등반자들을 불러줘서 고맙다.
사멸자나 벨토르를 한 자리에 모으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덕분에 그 수고를 덜게 돼서.
우우웅!
“퍽 힘들어 보이시군. 잠시만 기다려보시게나.”
벨토르의 손에 화려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서리혼령이 제어권을 되찾습니다!]“고마워요.”
서리혼령이 짧게 목례를 했다.
성유물의 강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되자, 쌓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쿠쿠쿠쿠쿠쿠!
다시 한 번 혹한의 냉기가 휘몰아쳤다.
위대한 등반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런 수모를 겪는 게 언제였던가?
태고의 존재들과의 마지막 전쟁 이후로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자, 이제… 너야말로 어떻게 할 거지?”
진혁이 화두를 던졌다.
***
암살 성공확률 100%.
여기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에 한해서만 사냥을 시작하기에, 그리고 압도적인 승률이 보장될 때만 의뢰를 받아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
만약 모든 전투를 피하지 않고 전부 다 임했다면, 승률이 상당히 달라졌을 거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하사신에겐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는 선구안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는 의미기도 하다.
바로 오늘 전까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현실일 리 없어.”
하사신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자신이 준비하는 수 하나하나를 전부 다 예측한단 말이냐?
아니, 단순히 예측하기만 한 거라면 이처럼 당황스럽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 수를 읽는 걸로도 모자라 상황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비장의 카드까지 적재적소에 모조리 꺼내들고 있다는 점이다.
‘서리혼령의 성유물에… 벨토르와 사멸자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이건 인간이라는 범주를 넘어도 아득히 넘어섰다.
이쯤되면 두려움마저 스멀스멀 차오를 지경이다.
과연, 저런 상식 밖에 존재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다.
여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되는데.
이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단 한 걸음만 남았는데!
절대로.
절대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단 말이다!
[성유물 ‘고대의 맹세’가 특수능력 ‘영원의 비원’을 발동합니다!] [소유자의 명령을 따를 경우 각자가 바라던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단, 50층에 관한 소원은 제한됩니다.) 거부 시: 90일간 작열통의 저주가 가해집니다!]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절대 판정의 권한.
하사신이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최후의 승부를 던졌다.
“호오.”
“나쁘지 않네요.”
“다들 지긋지긋하게 오래 보긴 했지. 슬슬 머릿수 좀 줄이기도 해야 하고.”
“좀 빡빡하긴 한데, 뭐 해볼 만은 하겠어.”
하사신의 제약을 받는 등반자들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보상이 꽤나 탐이 나는 모양이다.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도 포기하질 않네.”
진혁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는 등반자들을 향해 양 주먹을 불끈 내쥐었다.
“자,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우리도 파이팅해서 한 번 싸워보죠. 등반자들 사이에도 격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우. 완전히 손해 보는 장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동감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절대로 손해라는 걸 보질 않는군.”
벨토르와 사멸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은 소원까지 들어준다며 유혹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편에 있는 인간은 생글생글 웃으며 당연히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일까?
그 뺀질거림이 완전히 싫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진혁이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저런 제약이 걸려 있는 비원 따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바라는 소망을 이루고 싶다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를 말이다.
철컥!
탄환이 장전되었다.
“서열정리라… 그거 재밌겠군.”
[사멸자가 고유능력 ‘어바웃 타임’ – ‘유령속사’를 발동합니다!]타타타타탙!
녹색 해골의 형상을 한 유령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것을 시작으로 전투가 개시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