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80
780화. 49층 ‘십이지의 세계’ (1)
새벽 5시 50분.
[시련의 탑 49층에 입장하셨습니다!]따사로운 바람과 부드러운 햇살이 모두를 반겨주었다.
시련의 탑에서 가장 폐쇄적인 층계 중 하나인 십이지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쿠쿠쿠쿠쿠!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서 강력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이건….”
“싸우고 있어요. 그것도 굉장히 강한 자들이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곧바로 마력을 감지했다.
그 말대로 십이지신에 소속된 특유의 기운들이 격돌하는 중이었다.
벌써, 세력전이 시작된 건가.
하기야, 우마왕이 확실하게 노선을 정했으니, 본격적인 혈투가 시작됐겠지.
그 호전적인 놈이 수 싸움을 할 성격도 아니고. 자신에게 반기를 든다면 닥치는 대로 짓밟아버릴 것이다.
“일단 조심하면서 이동하자.”
괜히 오자마자 다른 세력과 부딪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조금만 더 가면 청하 쪽에서 마중 나오기로 했으니까.
“여길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서리혼령이 추억에 빠진 듯 주위를 살폈다.
일단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겠다는 사멸자와. 현대에 남아서 고대의 맹세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벨토르는 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진혁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서리혼령만이 49층에서도 함께 하기로 한 상태다.
태고의 존재와 1:1로 붙어도 30분은 버틸 수 있는 전력.
그녀가 와준 것만으로도 팀 전체에 부담이 상당히 덜어졌다.
물론.
“…….”
“…….”
엘리스와 테레사의 뚱한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바로 그때.
탓!
갑자기 모두의 앞에 묘족 한 명이 뛰어들었다.
“하아. 하아.”
상처투성이의 몸.
거친 호흡은 당장이라도 끊길 것만 같았다.
“토끼 녀석. 발 하나는 더럽게 빠르군.”
“하지만, 도망가 봤자지. 킥킥.”
“이 고생을 시켰으니, 편하게 죽을 생각은 마라. 팔다리부터 잘근잘근 씹어삼켜주지.”
곧바로 그 뒤를 따라 개의 형상을 한 이들이 나타났다.
술(戌)족.
온순함과 충직함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어느새 피에 굶주린 사냥개로 변해 있었다.
기다란 낫을 든 개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나둘 수풀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러다가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을 발견했다.
“인간?”
“다른 층계 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어 들어와?”
“하필이면 재수도 지지리 없군. 다른 때였으면 조금 더 살았겠지만, 보이는 족족 다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받아서 말이야.”
[‘술왕의 비호’ – ‘사냥의 시간’이 발동됩니다!]장로급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일족의 고유 특성.
’만상공유‘와 비슷한 이치로. 술족들이 단체전에서 뛰어난 힘을 보일 수 있는 이유였다.
“강…진혁 님! 하아. 청하 님께서… 만나기로 한 곳에….”
토끼 귀를 한 여인이 한 마디 한 마디를 쥐어짜냈다.
단편적인 정보들이지만, 무얼 말하려는 건지 알겠다.
아무래도 일이 좀 꼬인 모양이다.
“처리할까?”
엘리스가 손톱을 세웠다.
“아니, 내가 할게.”
진혁이 한 걸음 나섰다.
이왕 묘족과 손을 잡기로 한 거. 그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
“크하하하! 둘이서 무슨 헛소리를 나누는 거냐? 다 덤벼도 모자를 판에, 서로 나설지를 논한다고?”
“여기가 몇 층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래층에 사는 떨거지들아!”
“너무 뭐라하지 마라. 팔팔한 게 씹는 맛이 좀 있어보이니까.”
비웃음이 섞인 조롱들이 쏟아졌다.
이거 참.
이런 반응도 신선하긴 하네.
태고의 신격들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다가오는 게 일상이 된 와중에, 귀여운 댕댕이들이 주제 파악 못하는 게 퍽 귀엽다.
“여기 처박혀 있느라, 다른 층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나 본데.”
[스킬 ‘아랑흑아’가 발동됩니다!]콰직!
가장 앞에 있던 술족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쩌어억!
허공을 찢고 나온 어금니와 송곳니들.
검은 배경 위로 붉은 눈동자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뭐, 뭐야?”
“히이익?”
남은 두 녀석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다섯 장로 중에서 가장 약한 ‘아카악’의 권능을 빌려왔다곤 하나, 아카악 역시 엄연한 술족의 장로다.
49층에서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강자란 말이다.
헌데, 가벼운 손짓 한 방에 손도 쓰지 못할 줄이야.
오랜 본능이 자신들이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판단은 빠르게 내려졌다.
콰앙!
쾅!
여기서 벗어나 위험한 적이 49층에 왔다고 알려야 한다.
즉시 전력을 다해 도약한 사냥개들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빙하천결’이 발동됩니다!]쩌저저적!
하늘을 가득 메운 눈송이들은 그 어떤 것의 탈출도 허락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얼음으로 뒤바꼈다.
“세, 세상에나….”
묘족의 여인이 현실감 없다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술족의 전사들은 묘족으로서는 감히 대적하기 힘든 포식자였다.
12개의 부족 중에서도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힘과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하나하나가 엄청난 호전성을 지녔던 것.
하지만.
묘왕이 조력자라며 알려주었던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버린 괴물이었다.
‘밑에 층에 있는 인간이 도와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오판이었다.
“괜찮으세요?”
진혁이 그런 묘족에게 다가갔다.
“예? 아… 예. 예!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 제 이름은 ‘서아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저희가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술족의 장로와 친위대가 기습을 했습니다.”
술족의 장로와 친위대라고?
“기습이라도 청하가 그 정도에 당했을 리는 없을 텐데요.”
청하가 덤벙덤벙거리고 허술한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이곳은 49층. 십이지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본래 층에서 전력을 해방한 묘왕은 49층 전체에서 20위 안에 들어가는 힘을 가진 강자 중에 강자 일 터.
술족의 장로 전원이 덤빈다고 해도 청하 하나를 감당하긴 힘들었다.
“해골…이 있었습니다. 술족의 장로와 함께 대규모의 언데드 병력이 왔는데, 너무 이상한 힘을 써서 대응이 안 됐어요. 묘왕께서도 저희를 대피시키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황금 왕관을 쓴 해골이라면….
페르무트.
‘절망의 왕관’을 가지고 있는 놈이다.
49층이 개방됨에 따라 히든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그 전까지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유배되어 있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부터 꽤 성가신 놈이 개입했네.’
고대의 등반자들과 마찬가지로.
탑의 정상 정복과 관련된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 중 하나였다.
특히나.
군단급 언데드 병력을 부릴 수 있다는 건 절망의 왕관을 절반 이상 컨트롤 하게 되었다는 뜻.
예상보다 더 빠르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랑 함께 가보도록 하죠.”
청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가장 급선무.
그 이후에 묘족의 영역을 통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과 접선해야 한다.
“절 따라오세요.”
서아리가 앞장섰다.
***
영역 전쟁.
오랫동안 하나의 층계에 갇혀 있던 12종족은 한정된 영토와 자본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해 왔다.
만약, 제천대성과 우마왕.
그 누구도 거역하기 힘들어하는 두 절대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49층은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해(亥)족과 술(戌)족의 전사들이 동쪽 연못으로 진입했습니다.”
“급보! 축(丑)족의 제1 장로 ‘육각수(六角獸)’가 자신의 정예들을 이끌고 정문으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사왕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국경 쪽으로 대군을 집결시키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화과산에서 연신 울려퍼지는 고함 소리.
우마왕이 태고의 존재들과 손을 잡음에 따라 오랫동안 유지되던 평화가 박살났다.
작은 대립이 있을지언정, 전면전을 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왕이시여.”
“…이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 이상 지체하다가는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당하게 될 것입니다.”
장로들이 제천대성을 바라봤다.
“…….”
왕좌에 앉은 제천대성이 고심에 빠졌다.
1:1로도 호각을 다투는 우마왕. 그런데 그 곁엔 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스 이디크’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라 불리는 50층의 악귀들과 함께 현현한 태고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49층 전체의 전력을 넘어섰다.
심지어 일전에 최후통첩을 한 페르무트 역시 여러 지역을 유린하면서 피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여섯 일족이 놈들의 휘하에 들어섰고.
중립이던 왕들도 하나둘 결단을 내리려 하는 중이었다.
“백성들을 화과산 안쪽으로 대피시켜라.”
“말씀인 즉슨….”
“감히, 내 영토에 이빨을 들이민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알려주지.”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적어도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한 거래가 완전히 가능성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오오오!”
“전투다!”
“전사들에게 일러라! 왕께서 친히 나서신다고!”
엄청난 환호성이 일어났다.
설령 그 앞이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제천대성의 명령이라면 웃으면서 달려들 수 있는 정예들.
화과산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쿠쿠쿠쿠쿠쿠!
구름이 모여들며 유형화된 마력이 산맥을 따라 퍼져나갔다.
“결국, 대세를 거스르는 결정을 하는군.”
여섯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황소.
육각수가 다가오는 병력을 정면에서 마주했다.
저릿저릿.
요동치는 천지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간 사기가 매섭다.
이토록 모든 것을 다 건 싸움을 하는 게 얼마 만일까?
혹시라도 자존심을 접고 협상을 하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제천대성은 제천대성.
절대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
소의 형상을 한 전사들이 불안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고쳐잡았다.
잠시 뒤에 과연 몇 명이나 살아서 서 있을 수 있을지.
아니, 저 분노한 제천대성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하나라도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틴달로스의 사냥개 중 하나.
‘바르어비스’가 느긋하게 손을 휘저었다.
인간형의 날카로운 외모.
검은색 긴 장발을 한 미남자의 형상을 한 자다.
“그나저나 이번 전쟁에서 놈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말 궁금하군.”
위대한 계획의 일부.
그 잔혹한 예언에 따르면, 49층에서 강진혁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누굴 살리고 누굴 죽일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골라야할지에 대한.
킥킥.
바르어비스가 자신도 모르게 조소를 흘렸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란 집단도 그렇고. 눈앞에 있는 제천대성도 그렇고.
긴 시간동안 자극적인 일이 없어서 따분했는데. 모처럼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