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84
784화. 절망의 왕관의 주인 ‘페르무트’ (3)
“모기이이!”
고구마가 날아오르자. 먼저 떠난 운디네를 제외한 나머지 정령수들이 발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대장! 같이 가!”
“꼬리! 꼬리를 잡아야 해!”
“히이익! 서둘러! 비행 능력을 오래 사용하면 힘 금방 빠진단 말이야.”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혹시라도 놓칠새라 재빠르게 살라맨더가 고구마의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줄줄이 사탕처럼. 나머지 정령수들이 앞선 정령수들의 볼을 붙잡았다.
“……!?”
계속해서 느긋하게 관망만 하던 페르무트가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야 그럴 수밖에.
지금 자신이 꺼내든 카드는 무려 ‘언약’에 해당하는 필살기.
보통이라면 자신들이 가진 전부를 다 동원해서 막아야 하는 대재앙이다.
그런데, 그런 분초를 다투는 와중에 미약한 마기의 흐름까지 살필 여유가 있다고?
“이거. 아직까지 그 정도 여유가 있을 줄은 몰랐군.”
페르무트가 지팡이를 높게 치켜올렸다.
[멸성마법(滅星魔法) ‘우둔한 선택’이 발동됩니다!]쩌저저적!
하늘을 따라 벌어지는 균열.
그 틈에서 쏟아지는 뼈로 만들어진 창들이 즉시 고구마와 정령수들을 노렸다.
[고유성창 ‘플레어 이클립스’가 발동됩니다!]화르륵!
콰콰콰콰콰콰…!
뼈들이 지척에 접근하기도 전에, 거대한 화염이 몰아쳤다.
태양의 권역을 그대로 재현하는 능력이 펼쳐지자, 뼈들이 순식간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누가 그쪽에 신경 써도 된다고 했지?”
진혁이 생긋 웃었다.
고열로 만들어진 방벽이 하늘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에 고구마와 정령수들은 완전히 전장에서 이탈해 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방해만 하려 하는군. 나는 기회를 주는 거야. 저 녀석들까지 전부 떠나가면 네놈 혼자서 대체 무얼할 수 있겠나?”
“글쎄. 쟤네들 없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오랜만에 마신 탈하사를 봐서 살짝 두근두근거렸는데, 잠재력의 10%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 녀석을 데려다 두고 무식하게 검이나 휘두르게 하는 게 말이 되나?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과 기대감이 반토막이 나려고 하네.
“너무 자만하지 말거라. 네놈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페르무트가 고구마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마력을 뿜어냈다.
쿠쿠쿠쿠쿠쿠!
“크오오오!”
온통 검게 물든 탈하사의 입 부근이 길게 찢어졌다.
동시에 검을 다시 한 번 높게 치켜들었다.
그런데.
파앙!
구름을 가르며 서서히 속도를 싣던 일전과는 다르다.
검이 사라졌다.
진혁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서걱!
자를 대고 자른 듯한 날카로움.
지면에 그어진 깔끔한 선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속도가….’
올랐다.
그것도 말도 안 되게.
게다가. 그걸 시작으로 엄청난 수의 언데드 군단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슈브니구라스의 정수’가 개방됩니다!]힘의 근원이 되는 건 50층의 절대자.
무한에 가까운 마기가 넘실거리는 전장은 네크로맨서에게 있어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다.
“키에에에!”
“크르르!”
대형급 마수들을 시작으로.
달그락.
저벅.
2m에 가까운 데스 블레이드를 발현시킨 데스나이트와 고위급 리치들까지.
만만치 않은 힘을 지닌 놈들이 개미떼처럼 달라붙었다.
하나하나만 놓고 본다면 일격에 베어버릴 수 있었으나, 집단의 효율을 극대화한 전력은 단순히 1+1, 그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피부 한 꺼풀. 피 한 방울.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체력과 마력이 무한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까딱.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점으로. 한 명을 대상으로 한 사냥이 개시되었다.
***
시련의 탑 50층.
엘더갓들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스트라티마’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피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네… 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서걱!
쿠웅!
목이 떨어진 그레이트 올드 원들의 시신이 사방에 뒹굴었다.
“…….”
차갑게 식은 얼굴.
감정이 사라진 눈동자에선 수많은 죽음들을 목도하고도 작은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스윽.
천유성이 얼굴에 튄 핏방울을 훔쳤다.
온통 폐허로 변한 전장에서 서 있는 건 오롯이 천유성 하나였다.
바로 그때.
저벅.
새로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천유성이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예리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 일검이다.
뻗어난 궤적이 목표에 도달한 순간, 일곱 갈래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급소를 노렸다.
카카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레이트 올드원들마저 쩔쩔매던 맹공이 처음으로 완벽하게 상쇄된 것이다.
“자네가 천유성이로군.”
목소리의 주인은. 중절모를 쓴 신사.
탑의 설계자, 릭 헤네시.
정확히는 릭 헤네시의 분신 중 하나였다.
천유성의 눈동자가 천천히 릭에게 향했다.
이 공허하고 텅 빈 세게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일면식이 있는 인물을 만났기 때문.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툴툴대긴 했으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따뜻한 감정은. 더 이상 천유성이라는 개체에게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척.
검을 잡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새로운 검로를 개척한다.
검마의 독문무공이 변형되며 천유성의 식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
유형화된 기운이 검은 눈송이들로 변해 흐드러졌다.
“예전과는 많이 변했군.”
릭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고 자각했다면.
거대한 어둠이 깔리기 전에 미리 눈치챘다면.
상황이 이토록 어렵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천유성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강해지는 것에 의미란 없네. 부디 그 더러운 유혹에 자신을 잃지 말게나.”
릭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했다.
그러자.
“수단과 방법을 신경 쓴다면. 언제까지고 그 굴레에 얽매여서 뒤에만 머물러야 한다면, 그걸 누가 인정하고 기억해 준다는 말이지?”
천유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환멸과 모멸이 느껴지는 음성.
그것은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떠한 말로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게 느껴진다.
감히, 그 누구도 천유성이 걸어온 길을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오게 해주겠네.”
릭의 양손에 각기 다른 마력이 맺혔다.
[‘시스템’이 재구성됩니다!]설계자의 고유권한.
‘시스템 조작’을 넘어서 시스템 자체를 재배열하고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발동되었다.
천유성의 주위로 아름다운 입자들이 떠올랐다.
물방울 모양의 마력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향긋한 향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건 무리다.”
끝없는 동굴 속에서 울려퍼진 듯한 음성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콰!
수천 개의 검격이 물방울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악의와 집념으로 가득 찬 칼날들이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마력을 같은 색으로 물들여 버렸다.
“어설프게 이해하고 동정하려고 하지 마라.”
베고 베고 또 베어버릴 거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가차 없이 짓밟고 올라설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없는 탑의 정상에서.
“내가 바라는 소원을 이룰 것이다.”
남자란 놈도. 운영자나 설계자나 태고의 존재들 따위도 막을 순 없다.
검이 노래를 한다.
슬프게.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는 선율로.
[검마유성검]수많은 시행착오와.
무수히 많은 실전경험을 끝으로 만들어 낸 궁극의 초식.
제 1식.
반짝이는 하나의 점.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붉은빛이 점멸했다.
‘적 – 북극성(赤. 北極星)’
별빛이 꺼졌다.
동시에.
“쿨럭!”
릭 헤네시의 심장이 있는 부분이 세계로부터 도려내졌다.
삼라만상을 뒤틀어 버린.
그리고.
시스템마저 넘어서 버린 검의 극치.
이것이.
지금 보이는 이 영역이.
“내 검이다.”
[50층의 존재 100명을 처리했습니다!] [위대한 설계자의 분신을 처리했습니다!] [플레이어 ‘천유성의 격’이 극상합니다!]이어지는 상태창과 함께.
탑에 새로운 초월자가 탄생했다.
***
일당백(一當百).
수없이 몰려드는 대군을 홀로 상대하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현실적이었다.
퍼퍼퍼펑!
눈앞을 가득 메운 흑마법이 원의 형태로 모여들더니 해골형태를 이루며 폭발했다.
녹색 구름이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저주와 독이 배합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16가지 독이 해독되었습니다] [3개의 저주가 파훼됩니다]진혁이 녹색 운무에서 나왔을 땐, 저주와 독을 사용한 흑마법사들이 모조리 반토막이 난 뒤였다.
‘하나같이 수준들이 높네.’
‘신속의 왕관’을 역소환한 진혁이 주위를 훑었다.
일전에도 몇 번이고 언데드 계열 몬스터나 흑마법을 사용하는 놈들과 싸웠었다.
나름대로 수많은 세월동안 각자만의 능력을 갈고닦은 강자들도 여럿 있었지.
그러나, 지금 상대하고 있는 페르무트는 그들과는 결과 격이 달랐다.
이질적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제3의 언데드들을 창조해 낸 것은 물론, 새롭게 만들어낸 흑마법을 기존의 것과 녹여내는 센스와 실력도 남달랐다.
과연.
‘놈이 최종병기 중 하나로 고른 심복답네.’
시련의 탑에는 문헌에만 기록된 태고의 강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 녀석은 그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고유성창 ‘뇌신’이 발동됩니다!]파츠츠측!
번개와.
[고유성창 ‘풍신’이 발동됩니다!]휘이잉!
폭풍의 힘을 불러온다.
거대한 허리케인 사이로 황금색 벼락이 내려쳤다.
‘연화와 태민이가 장로들의 군대를 저지하고 있어.’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
운디네와 말랑흑두루미가 멤버들을 찾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그리고. 원정을 보냈던 멤버들이 이 근방에 있다는 건 주어진 임무를 달성했다는 뜻이겠지.
다시 말해.
“여기만 돌파하면 49층의 전황을 완벽하게 뒤흔들 수 있다.”
모아둔 마력이 한꺼번에 해방되었다.
콰콰콰콰콰콰!
허리케인이 성소의 측면을 따라 움직였다.
제대로 탄력을 받으면 수천의 대군을 모조리 집어삼킬 만한 크기와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걱우걱!
중앙에 있던 거대한 시체덩어리가 주위에 동족을 가차없이 잡아먹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기다란 팔다리를 움직이며 그야말로 보이는 것들을 입에 쑤셔넣은 뒤 우적우적 씹었다.
그것도 잠시.
“우웨에에에엑!”
먹어치운 것들을 게워내자 잘개 으깨진 육편 대신, 울부짖는 얼굴로 가득찬 검은색 액체를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양의 액체로 만들어진 벽이 태풍을 가로막았다.
“저런 식으로… 막는다고?”
진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툭.
가벼운 착지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파팟!
진혁의 어깨에 작은 핏줄기가 튀었다.
“반응이… 빠르군요.”
“사냥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존의 육중한 중갑주를 걸친 데스 나이트가 아니다.
얇은 옷에 창백한 피부.
그리고 회색에 가까운 탁한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들.
대영웅급에 해당하는 여전사들의 시체들로 만들어 낸 데스나이트였다.
카가가가강!
검격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엘더갓의 심장’이 60% 소모됩니다!] [‘태고의 가호’가 내려집니다!]대량의 마력을 끊임없이 공급받으며, 각종 버프들이 중첩된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형국이다.
게다가.
이 모든 건 메인이 아니다.
[멸성마법 진혼(鎭魂) – ‘앙그라 마이뉴’가 캐스팅됩니다!] [마신, ‘탈하사’가 고유성창 ‘심판의 날’을 발동합니다!]탈하사의 검에 죽은 언데드의 원혼들이 빨려들어 갔다.
우우웅!
진혁의 몸 역시 그 방향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당겨졌다.
엄청난 인력(引力)이다.
마치, 작은 블랙홀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층계를 소멸시킬 수 있는 두 개의 능력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저거에 피해를 입었다간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단순히 페르무트를 넘어.
커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스 이디크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사용할 수밖에.’
진혁이 아껴두었던 첫 번째 히든 카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