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786
786화. 왕관 쟁탈전 (1)
“……!?”
제천대성의 분신으로 인해 멍하게 서 있던 페르무트가 한 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더 황당한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검은 넝마에 몸을 감싼 언데드 몬스터 ‘리치’.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놈이었으나, 문제는 눈앞에 있는 리치가 자신의 권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통제권을 잃어버린 건가?’
허를 찌른 기습에 평소의 냉정함이 약간은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뭐, 이거야 가볍게 해결할 수 있겠지.
마력을 조금만 재배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대상은 당신에게 종속된 몬스터가 아닙니다.]다가오는 메시지는 또 다시 예상을 벗어난 종류였다.
‘설마….’
다른 곳에서 온 리치란 말인가?
페르무트의 시선이 리치 바로 옆에 서 있는 진혁에게 향했다.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
리치가 저 인간과 한패라는 것.
게다가.
‘힘을 가늠할 수 없어.’
언데드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기의 양과 질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마력이 티끌에 불과하거나.
혹은.
‘나보다 위라는 건가.’
페르무트의 지팡이가 움찔였다.
만에 하나라도 일개 리치가 자신보다 위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시련의 탑이란 워낙에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세계.
자신이 알지 못하는 50층의 봉인된 고대 등반자라든가. 아니면, 태고의 신격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저 리치를 불러온 게 진혁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큰 위협으로 느껴졌다.
‘대체 웬 놈이냐….’
저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전신을 스멀스멀 잠식해 나갔다.
***
[‘하사신의 넝마쪼가리’를 사용합니다!]암살자의 필수라 할 수 있는 덕목이 자신의 기척과 힘을 숨기는 능력이다.
여기에 ‘시스템 조작’을 이용해 장난질을 살짝 더 쳐놨으니, 적어도 겉보기에는 페르무트가 베이로둠의 수준을 파악할 순 없을 것이다.
덜덜덜.
정작 베이로둠은 압도적인 적을 눈앞에 두고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야. 쫄지 말라니까.”
“그, 그게 말처럼 쉽지. 저 놈이 얼마나 괴물인지 알고는 있는 건가?”
“음.”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상대 쪽에서도 마찬가지일걸?”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 여기까지 훤히 보인다.
그러니. 근엄하게 무게 잡고 연기나 잘 해라.
복사조건을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멸성마법’
굳이 베이로둠을 선택한 것은 페르무트가 가진 능력을 복사하기 위함이었다.
[복사조건: ‘과대 포장’을 통한 종의 하극상! 언데드 몬스터에 대해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훨씬 더 약한 동족의 힘을 이용해 좌절감을 맛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 그가 가진 고유성창과 고유능력 그리고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의 종류와 숙련도는 페르무트를 얼마나 당혹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이기는 거야 당연한 거고.
훨씬 더 약한 베이로둠이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는지 상황을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허장성세(虛張聲勢).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껍데기 뿐인 놈에게 당한다면 꽤나 재밌는 일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
페르무트의 경계심은 이전보다 몇 단계는 더 올라간 상태였다.
“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당황하지 말고. 내가 하라고 한 것들만 순서대로 하면 돼. 적절하게 서포트해 줄 테니까.”
시나리오는 이미 작성해뒀다.
급조한 거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꽤나 마음에 든다.
뭐, 그래도 주연 배우가 좀 더 연기에 몰입할 수 있게 러닝 개런티를 좀 챙겨주는 게 좋겠지.
진혁이 당근 모양 깃발을 흔들었다.
“이것만 잘 해결하면, 페르무트의 마법공방을 통째로 넘겨줄게. 마계에 있는 온갖 재료들도 마음껏 사용하게 해주고.”
“……지, 진심이냐?”
베이로둠의 안광이 격렬하게 타올랐다.
리치이기 전에 가지고 있는 마법사로서의 본능과 욕망.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탐구하는 것은 베이로둠으로서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진혁은 그 목마름을 끝없이 채울 수 있는 우물을 제공해주겠노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거부하기 힘들 수밖에.
“나는 한 말은 반드시 지켜. 원한도 잊지 않지만, 도움을 준 것도 잊지 않는 성격이거든.”
“훗!”
베이로둠이 손가락 뼈로 텅 빈 코 부분을 훑었다.
“믿고 맡기거라.”
펄럭!
망토를 크게 젖힌 베이로둠이 한 손에는 마도서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은색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네크로노미콘에 그럴듯해 보이는 껍데기를 씌워놓은 것이다.
파츠츠!
마력이 맺혔다.
페르무트와 비교했을 때 정말로 한 줌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씨익.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로스의 부산물’을 써먹을 때가 왔네.‘
단순히 마력의 양과 질을 떠나서. 정확한 주문과 그에 걸맞는 재료만 준비되어 있다면….
……놈들을 불러오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바로.
[‘공허의 쇼거스’가 소환됩니다!]지금처럼.
콰콰콰콰콰콰콰!
열 마리가 넘는 쇼거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에에!”
“키키킥!”
수많은 눈알이 달린 혐오스럽고 섬뜩한 외형.
일전에 에덴에서 상대했던 것들과 달리 조금 더 작고 외소한 형태다.
위력만으로 따지면, 5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거면 충분하다.
“쇼, 쇼거스!? 쇼거스라고?”
페르무트가 기함했다.
50층에 서식하는 완전한 형태의 쇼거스는 아니었어도. 그 열화판에 해당하는 것을 부릴 수 있다니.
네크로맨서들이 본다면 그 자리에서 눈알이라도 튀어나왔을 만한 광경이다.
“꼴을 보아하니, 네놈도 네크로맨시를 익힌 자인가 보군.”
베이로둠의 목소리는 어느새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여유와 오만까지 느껴졌다.
암스테르담을 공포에 몰아넣은.
아웃브레이크를 주관하던 그때처럼.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미물에게 말할 이름 따윈 없다.”
“미, 미물이라고? 나, 나보고 한 말이냐?”
“여기에 그대 말고 또 다른 약자가 있단 말인가?”
“감히!”
쿠쿠쿠쿠쿠쿠쿠!
페르무트의 몸에서 흉흉하다 못해 지독한 살기가 뿜어졌다.
유형화된 해골 형상의 운무가 하늘까지 닿았다.
[멸성마법 – ‘칠흑 언덕의 군대’가 발동됩니다!]데스퀸들과 엘더 리치들의 마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절망의 왕관’으로부터 공급받은 녹진한 마력은 언데드 군대의 능력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엄청난 수의 대군이 당장이라도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하나하나가 최강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괴물들이었다.
“어떠냐? 아직도 이 몸이 미물로 보이더냐? 이 군세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냔 말이다!”
“흐음.”
베이로둠이 느긋하게 군단의 처음과 끝을 훑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내가 없는 동안에 많은 것이 변했나 보구나. 저런 벌레들을 일컫어서 ‘군세’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면 말이야.”
하늘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압도적인 절대자의 시선에는 조금의 동요도 엿보이지 않았다.
딱 한 명.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진혁을 제외한다면.
넝마가 가려지지 않은 뒷부분이 보인다.
달달달달달.
이야. 뼈들이 아주 탭댄스를 추고 있다.
주위에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었다면, 뼈들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해도 될 정도다.
‘나중에 뭐라도 좀 더 챙겨주긴 해야겠네.’
단언컨대, 이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다하는 걸 보는 건 베이로둠이 처음이었다.
“보여주지. 진짜 군세라는 게 무엇인지를.”
베이로둠이 책장을 펼쳤다.
본인도 읽지 못하는 문자들이 은은한 빛을 내며 빛났다.
진혁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말에 맞춰서, 열심히 립싱크를 시전했다.
그러자.
“키에에에에!”
“캬아아아!”
한껏 몸을 부풀린 쇼거스들이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
비틀….
“허억. 허억….”
수리부엉이가 가까스로 몸을 고쳐 잡았다.
피투성이가 된 몸.
입에서 나오는 숨은 당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았다.
쿠웅!
털썩.
수리부엉이를 추격하러 온 50층의 추격자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과타노차의 사냥개’.
그레이트 올드 원 중 하나로. 워낙에 끔찍한 외형 탓에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미이라가 되어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수십 마리를 처리한 수리부엉이었으나, 계속된 추격으로 인해 가뜩이나 바닥에 가까운 마력마저 전부 사용해 버렸다.
이런 놈들이 다시 한 번 온다면 그때야말로 끝장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이제 블라인드 스팟이 있는 지점이 눈에 보일 만큼 가까워졌으니까.
‘저기서 회복을 한 다음 강진혁에게 가야 해.’
다행히도 탐지가 가능한 곳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그들이 근처에 있다.
그런데 모든 고비를 다 넘겼다고 생각할 바로 그때였다.
쿠쿠쿠쿠쿠쿠!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렸다.
갈라지는 지면.
그 속에서.
검붉은 화염이 솟구쳤다,
죽어 있던 사냥개들의 시체가 모조리 재가 되었다.
“설마….”
수리부엉이가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쏴아아아….
잿가루들이 빨려들어가는 지면의 틈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이 폭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르르….”
“키이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사냥개들이 아닌.
[태고의 신격 ‘산 위에 있는 자’가 현현합니다!]과타노차 그 자체가 직접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이빨들이 달린 가지들이 사방에서 수리부엉이를 조여왔다.
몸 상태가 온전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과타노차를 상대하기는커녕 도망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여기…까지 인가.”
수리부엉이가 품속에서 둥근 형태의 단검을 꺼냈다.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발악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으니까.
“키키킥. 마, 맛있겠다.”
“다…단물이 다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씹을 건 있겠지.”
“우리 마음대로 해도 돼? 먹어도 되는 거야? 응응?”
“그래. 발견하면 처리하라고 하셨어.”
줄줄줄.
입에서 굵은 침들이 뚝뚝 떨어졌다.
식욕이 동한 듯, 이빨들이 연신 위아래로 부딪쳤다.
전후좌우.
완벽하게 포위를 갖춘 과타노차가 수리부엉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모든 살점이 원래 위치에서 뜯겨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
황금빛 운무가 과타노차의 입들을 집어삼켰다.
“키에에에!”
“크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퍼졌다.
태고의 언어로 씌어진 황금색 석판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건. 이 탑의 시작을 함께 했던 자.
릭 헤네시.
스스로를 완전히 자각한 설계자가 마침내 수리부엉이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상대하도록 하지.”
[한정능력 ‘사상 조각’을 발동합니다!]손에 쥔 조각칼이 새하얀 색으로 변했다.
무너져버린 탑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탑의 초월자가 개입하였다.
오